- 당시 청와대 내부문서 기대이익 300억 추정, 비용 검토 없어
- 국방부, ‘민간업체 사용료’ 600억 탈법회계처리…예산감사 안 받아
- ‘적정 임대료 책정’ 국방연구원 검토의견 묵살
- ㈜유공, 국유재산을 사실상 사유재산처럼 원가에 사용
- 한미간 소유권이전 각서는 적법절차 거치지않아 ‘위헌’
- 부실한 송유관 인수는 ‘대통령 사돈’ SK 위한 배려?
- 이윤은 민간업체가, 처리비용은 국고에서
1992년 6월5일 최세창 당시 국방부 장관이 노태우 대통령에게 제출한 보고서의 결론 부분이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재산을 미군으로부터 무상으로 제공받았으며 이에 따라 긍정적인 효과가 유발된다.’ 크게 이문이 남는 장사가 아닐 수 없다. 굵은 글씨로 힘차게 쓴 국방부 장관의 서명에는 ‘어려운 협상을 잘 해냈다’는 자랑스러움이 담겨있는 듯하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2004년 4월, 경기도 안양시 지하철 4호선 인덕원역 인근의 K산업 레미콘공장. 저수조 창고에서 산소용접을 하던 직원 두 명이 갑작스러운 폭발로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긴급 후송됐다. 증발한 석유가 공기중에 떠다니다가 폭발을 일으킨 것이었다. 다섯 달 뒤 이 일대 지하를 관통하는 송유관에 구멍이 생겨 기름이 흘러나왔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바로 1992년 당차게 인수한 그 TKP였다.
이 지역에서는 이미 2001년부터 인덕원역 구내 지하철 터널로 휘발성 기름이 흘러들면서 심한 악취를 풍기는 등 피해가 보고된 까닭에 안양시와 국방부로부터 TKP 관리를 위탁받은 대한송유관공사가 공방을 벌이던 중이었다. 인근 수백m 범위로 유출된 기름으로 지하토양과 지하수가 오염됐고, 엄청난 비용이 들어갈 복구책임은 고스란히 대한송유관공사가 지게 됐다.
‘남는 장사’에서 골칫거리로
1968년 1·21 사태로 남북간 긴장이 고조되자 주한미군사령부는 전시긴요물자인 유류를 전방까지 안전하게 수송하기 위해 자국 예산(2677만달러·토지는 한국정부가 무상으로 공여)을 들여 송유관을 건설한다. 속칭 ‘주한미군 송유관’으로 불린 TKP다. 포항에서 대구, 천안, 서울을 거쳐 의정부까지(총연장 452km) 지표에서 1.5~2m 깊이에 직경 20~25cm의 파이프라인이 묻혔다. 1997년 한국정부가 여수와 울산에서 성남을 잇는 총연장 900km의 남북송유관(SNP)을 건설할 때까지 TKP는 남한 내 유일한 전국 송유관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주한미군 감축과 이에 따른 기지조정 문제가 수면으로 떠오르자 미군은 이 송유관을 한국측에 넘기고 송유관 관리부대인 19지원사령부 제2병참단을 해체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이양제의를 받은 한국 정부는 미군 유류를 계속 수송해주기로 하고 인수를 결정했다. 미군이 저유비용으로 매년 470만달러를 지불한다는 조건이었다.
이후 1993년 서울 강남에서 의정부까지 46km 구간은 한강 상수원을 보호하기 위해 폐쇄됐고, 당초 1996년까지 폐쇄할 예정이던 나머지 송유관 406km는 대체시설인 SNP의 완공이 미뤄져 수명이 연장되다가, 2004년 8월9일 한미 양국이 TKP로 나르던 주한미군용 유류를 SNP로 나르기로 합의하면서 인덕원~평택 등 일부 구간을 제외한 358km를 2005년까지 폐쇄하기로 확정한 상태다.
문제는 쌍수를 들어 인수했던 송유관을 이제와 폐쇄하려고 생각해보니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 땅속에 묻힌 송유관을 들어내고 흙으로 메우는 철거비용만도 부담스럽다. 그렇다고 그냥 땅속에 둘 수도 없다. 당장 환경부가 ‘철거하지 않으면 심각한 오염원이 되므로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국방부에 관련공문을 보냈다.
수백km의 송유관, 그것도 상당부분이 아스팔트 포장도로 밑에 있는 송유관을 들어내고 다시 포장하는 비용은 수백억 원을 가볍게 넘어선다. TKP 문제를 이슈화하고 있는 열린우리당 이목희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9월20일 관련부처와 환경단체, 국회의원들이 함께한 간담회에서 정부 관계자가 밝힌 예상비용은 km당 2억원씩 대략 700억원 규모. ‘신동아’가 철거전문업체 관계자에게 자문한 결과도 km당 적게는 1억5000만원에서 많게는 3억원씩 총 540억~1100억원으로 추산됐다.
이는 순수한 철거비용일 뿐 그 과정에서 환경오염이 확인될 경우 복구 비용은 훨씬 더 커진다. 송유관의 평균사용연한이라는 30년을 훌쩍 넘긴 TKP는 전에도 여러 차례 기름 누출사고를 일으켰다. 한국이 소유권을 넘겨받은 이래 확인된 사고만 18건. 이 가운데 대구 금호강 둔치 기름유출 사고의 경우 복원비용으로 35억원이 들었다.
더욱이 국방부가 1996년 미국의 전문회사에 용역을 맡겨 송유관의 상태를 조사한 결과 부식상태가 심각한 수준이었다. 관 두께의 20% 이상 부식된 것만 727군데(환경부 주장은 633군데), 51~60% 부식된 것이 21군데, 61% 이상 부식된 것이 9군데에 80%의 부식도를 보인 곳도 2군데 있었다는 것이다. 2002년 한미 양국이 송유관 대부분을 폐쇄하기로 합의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40% 이상 부식된 77개소는 1998년까지 보수를 끝냈고 나머지는 관리업체인 대한송유관공사가 지속적으로 관리, 보수하고 있으므로 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철거과정에서 환경오염이 확인된다 해도 대한송유관공사가 보험에 가입했기 때문에 국가예산이 들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고, 1992년 이전에 발생한 오염은 한미행정협정(SOFA)의 환경관련 규정에 따라 미군에 복구비용 분담을 요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환경오염이 1992년 이전에 발생한 것인지를 확인하는 일이 기술적으로 쉽지 않다는 데에 정부 관계자들도 암묵적으로 동의한다.
돈이 들어갈 곳은 또 있다. TKP 공여지에 관한 손해배상 비용이다. 1970년 건설 당시 송유관 양쪽으로 2m씩 총 162만평에 달하는 부지가 미군에 공여됐지만, 정부는 이 가운데 87만평에 달하는 사유지 지주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주지 않았다. 졸지에 토지사용권을 제한당한 토지 소유주들은 한국이 소유권을 넘겨받은 1992년 이래 총 34건의 소송을 제기했고, 정부는 23억원을 국가예산으로 배상해야 했다.
이번에 폐쇄되는 70만평에 대해서도 소송이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9월 이후 TKP 문제가 시끄러워지면서 민원이 부쩍 늘었으며 민원 중 상당수는 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 2002년 정부가 실시한 감정평가 자료에 따르면 그간 사유토지 사용료를 합친 돈만 220억원이다. 여기에 폐쇄되지 않은 구간에 대해 정부가 매입 등의 방식으로 합법적인 사용권을 확보하려면 그 비용도 400억원(매년 보상할 경우에는 2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앞서의 감정평가는 결론지었다.
1992년 합의는 따지지 못했다
정리해보자. 최소한 500억원의 철거비용은 반드시 들어갈 돈이다. 토지소유주 가운데 절반만 민원을 제기한다 해도 100억원이 지출된다. 이번에 폐쇄되지 않은 구간을 앞으로 5년간 유지할 경우 그 토지사용권 보상비용도 100억원 규모. 환경복구비용은 실사를 거쳐야 구체적 추산이 가능하겠지만, 금호강처럼 기름유출로 오염된 곳이 세 군데만 있어도 100억원을 넘을 것이다. 정부예산만 700억원+α에 대한송유관공사(정확하게는 보험회사)가 지급해야 할 돈은 또 얼마가 될지 추산하기도 어렵다.
불과 12년 만에 이렇듯 엄청난 비용부담을 안겨줄 송유관을 정부는 왜 인수한 것일까. 무슨 복안이라도 있었던 걸까.
그러나 1992년 인수합의 당시 국방부는 처리비용에 관한 문제를 합의서에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 그렇게 소유권이 한국으로 넘어왔으므로 처리비용도 고스란히 한국이 떠안게 된 것이다.
다만 ‘송유관 폐쇄’ 등 향후 발생할 상황에 관한 조항은 합의서에 있다. 다시 말해 협상 당시에도 폐쇄 이후의 상황을 충분히 예상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관련 조항은 전적으로 ‘TKP가 폐쇄돼도 미군의 유류수송은 안정적으로 보장한다’는 내용 뿐이다.
1992년 합의서를 체결한 당사자인 윤종호 예비역소장(당시 국방부 군수국장·SOFA 합동위원회 시설 및 구역 소위원회 한국측 의장)은 “오래 전 일이라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철거비용에 관해 검토하지 않은 것 같다. 미국이 유상으로 인수하라는 것을 무상으로 돌렸으니 성공적인 협상이라 생각했고 담당자들은 포상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외무부, 동력자원부 등 관계부처와 실무위원회를 만들어 함께 검토했지만 추후 처리비용에 관한 지적은 없었다는 것이다. 수명이 다된 중고차를 넘겨받으면서 폐차비용을 생각하지 않은 셈이다.
그는 또 “당시 ‘한국이 송유관을 인수하지 않으면 폐쇄하는 길밖에 없다’는 게 미국측 입장이었다”고 말했다. 인수를 거부할 경우 그때까지 이용해온 민간기업이 유조트럭을 사용해야 하는 등 부담이 클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이야기다. “12년 전의 일을 현재의 잣대로 평가하면 안 된다. 시대마다 상황이 다른 법인데 그런 식으로 옛일을 캐면 어느 공무원이 제대로 일할 수 있겠느냐”는 반문도 있었다.
그렇다면 전문가들은 예상했을까. ‘신동아’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당시 국방부는 TKP 인수의 경제적 손익을 따지기 위해 한국국방연구원(KIDA)에 검토를 의뢰했다. 1990년 KIDA 군수관리연구실에서 작성한 ‘한국횡단(‘종단’의 오기인 듯)송유관 인수에 대한 타당성평가’라는 보고서가 그것이다.
‘신동아’가 이목희 의원실로부터 입수한 국방부의 ‘업무보고’ 문서(1991년 작성)에 따르면 이 보고서는 ‘TKP의 향후 수명을 10년으로 볼 때 한국측은 타수송수단 대비 2847만달러를 절감할 수 있다’고 평가했고, 이는 청와대에도 보고됐다.
한국종단송유관(TKP)와 남북송유관(SNP)
보고서 작성과정도 지나치게 허술했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우선 이 분야에 노하우가 없는 KIDA가 보고서를 작성한 것이 문제일 뿐더러, 향후 사용가능연한 등 대부분의 자료를 미국이 국방부에 전달한 자료에만 의존했다는 것이다. 보고서 작성팀이 미군의 송유관 담당자를 접촉하거나 브리핑을 받은 일은 없었다. 미군이 제공한 자료에는 철거나 환경 등에 관한 내용은 없었다고 한다. 이와 관련 앞서의 관계자는 “당시의 분위기상 데이터를 하나하나 따져가며 미국측에 뭔가를 요구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더욱이 이 무렵 이미 TKP는 미군용 보다 한국 기업체의 석유를 더 많이 나르고 있었다. 한국이 인수를 거절해 송유관이 폐쇄된다면 우리측 손해가 크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으리라는 점은 충분히 추론할 수 있다. 당시 검토과정에 관여했던 한 장관급 인사는 “인수 여부를 두고 정부 내에서 갑론을박을 벌인 기억은 없다. 인수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구체적 손익분석? 계획 없다”
1992년 당시 처리비용 문제를 검토하지 않고 인수에 합의한 것은 실책 아니냐는 질문에 국방부의 입장은 단호하다. 인수 후 한국이 얻은 이익이 더 크기 때문에 실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이라면 타당성이 있는 반론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당시 국방부 관계자들이 추산한 경제적 이익은 향후 10년간 2847만달러였다. 그러나 그 이익은 대부분 사기업 ㈜유공에 돌아갔을 뿐 국가예산에는 한푼도 들어온 것이 없다. 반면 우리 정부가 TKP와 관련해 들여야 하는 돈은 예산으로 집행해야 할 금액만 700억원을 넘을 것이 확실시된다.
백번을 양보해도 1992년에 철거비용만 염두에 뒀다면, 결코 남는 장사가 아니며 오히려 손익분기점을 휠씬 밑도는 장사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랬다면 한국정부는 인수를 포기하거나 철거비용 분담명목으로 오히려 돈을 받고 송유관 인수를 시도했을 것이다.
국방부 군수기획과측은 “민간기업의 이익도 국내에 남는 돈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인수 후 얻은 이익이 처리예상비용보다 크다면 이를 구체적으로 수치화해 국민에게 알릴 계획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그럴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한국이 인수를 거부해 미국이 송유관을 폐쇄했다면 ‘밝힐 수도, 수치화할 수도 없는 안보적 가치’가 사라졌을 것이므로 경제적 잣대로만 접근하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안보적 가치에 대한 평가도 1991년 국방부 군수국장이 장·차관에 보고한 문서를 보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 문서는 ‘안보적 가치’ 항목에서 ‘전시초기 30일간 일일 평균 소요물량이 ○배럴인데 비해 수송능력은 일일 ○배럴이므로 30%밖에 충족할 수 없으나 타 수송수단보다는 안정적’이라고 기술했다. 분명 도움이 된다는 내용이지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평가로 보기는 어렵다.
‘한국송유관이 완공되면 군사적 가치는 감소예상’이라는 대목도 있다. 다시 말해 TKP가 1992년 이후에도 유지됨으로써 얻는 안보적 가치는 SNP가 완공된 1997년까지 유효했던 셈이다. 인수를 검토하던 당시 SNP는 1996년에 완공될 예정이었다. TKP 폐쇄로 안보상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면 미국이 과연 “한국이 인수하지 않으면 폐쇄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을지도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나간 돈도 들어온 돈도 없다?
송유관을 인수한 이후 국방부가 이를 운영하는 과정에도 문제가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민간업체 유류의 수송비 처리에 관한 부분이다. 1992년 4월 송유관을 인계받은 국방부는 이를 전면 민간업체에 임대해 운영·관리하기로 하고 그 사업자로 ㈜유공(현 SK(주))을 선정한다. 당시 국방부 내부문서에 따르면 ‘군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려면 부대를 증편해야 할 뿐더러 기술측면에서 군은 송유관 운영경험이 전무’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관리를 위탁받은 유공은 1999년까지 주한미군이 지불하는 연 470만달러의 저유비용을 받으면서 수송원가만 들이고 자신들의 석유를 날랐다(국방부와 유공 사이의 회계처리에 대해서는 뒤에 다시 설명하기로 한다). 1999년부터는 당시 공기업이던 대한송유관공사가 관리업무를 위탁받는다. 그러나 관리업체가 바뀐 뒤에도 SK는 2003년 3월까지 별도의 사용료를 지급하고 TKP를 통해 석유를 수송했다.
5월17일 안양지역 시민단체와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국방부 민원실 앞에서 한국종단송유관 폐쇄를 촉구하는 집회 및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SK가 유공시절부터 국방부에 지급했다는 이 비용이 전혀 정부예산에 회계처리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수년간의 국방부 예산 및 결산 회계항목 어디에도 이 비용을 처리한 흔적은 없다. 국유재산법과 예산회계법에 따르면 정부 중앙부처가 국유재산을 민간에 임대해 사용료를 받는 경우에는 이를 반드시 정부예산의 세입항목에 반영해야 한다. 만일 임대사업을 위해 경비가 들어간다면 이 또한 세출항목에 반영해야 한다. 이른바 ‘세입세출의 전수주의’ 원칙이다.
국방부측은 이에 대해 “SK가 지불한 모든 비용은 관리비로 상계처리되었다”고 주장한다. 형식상 SK(주)와 국방부는 매년 송유관 사용 계약을 맺어왔지만, 이를 1원 단위까지 맞추어 국방부가 대한송유관공사에 관리위탁료를 지급한 것으로 처리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나간 돈도, 들어온 돈도 없다는 것이다. 계약서 명목상 돈이 오갔을 뿐 국방부는 사실상 금전거래를 한 일이 없으므로 국가예산 세입세출에 반영할 필요도 없다는 논리다.
정진택 국방부 군수기획담당관은 “2003년의 경우 대한송유관공사가 투입한 송유관 관리운영비가 미군과 SK로부터 받은 사용료를 초과했지만 그대로 국방부가 관리위탁료와 사용료를 상계 처리했다”고 말했다. 그간 관계기관으로부터 단 한 차례도 이 같은 회계처리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받은 적이 없으며 처리방식에 이상이 있다고 보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사실상 계열사끼리 상계처리
우선 법적인 문제가 있다. 기획예산처의 예산담당 관계자는 “그런 식의 회계처리는 예산회계법이나 관련규정에 어긋나는 것으로 본다”고 잘라 말했다. 철도청의 열차승차권 판매처럼 특별한 예외규정이 법에 명시된 경우가 아니라면 아무리 좋게 말해도 변칙, 강하게 말하면 불법이라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어떻게 한 차례도 지적받지 않았는지가 궁금하다”고 덧붙였다.
이런 식의 회계처리는 정부예산에 반영되지 않아 기획예산처나 재정경제원, 국회 등으로부터 관련비용이 적절했는지 점검받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다. 쉽게 말해 시설을 관리하는 측이 실제로 투입한 관리비보다 많이 썼다고 보고하면 사용료와의 차액을 남겨 고스란히 수익으로 얻는 구조다. 세입세출에 반영됐다면 확보할 수 있는 이윤이 모두 국고로 들어왔는지 예산감사기관이 실사를 벌이겠지만 ‘법외로’ 처리된 것은 견제할 장치가 없다.
국방부는 자료공개를 거절했지만, 만약 2003년과는 반대로 대한송유관공사가 투입한 관리비용이 미군과 SK로부터 받은 사용료보다 훨씬 적다면 이 돈은 고스란히 대한송유관공사의 몫이 된다. 한편 대한송유관공사는 2001년 1월부로 민영화되면서 SK가 지분 34%의 최대주주가 되었고 공정거래위원회는 대한송유관공사를 SK계열사로 발표한 바 있다. 즉 2001년부터 2003년까지는 사실상 SK그룹 계열사끼리 TKP라는 국유재산의 관리비와 사용료를 산정해 상계처리하는 구조였던 것이다.
관리비가 수입보다 커서 대한송유관공사가 적자를 봤다는 2003년의 경우 SK는 1월에서 3월까지만 TKP를 사용했다. 1년 내내 사용한 이전년도에는 실제 투입된 관리비용이 사용료보다 적을 개연성이 큰 것이다. 그렇다면 국방부는 대한송유관공사가 제시한 자료를 근거로 차액을 포기한 셈이 된다. 국유재산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수익을 민간기업에 그냥 줘버린 것이나 다름없는 결론이 나온다.
기억해두어야 할 것은 이 이상한 회계처리의 뿌리가 1992년 합의 당시로 거슬러올라간다는 점이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1992년부터 1999년까지 TKP의 위탁관리자는 ㈜유공이었다. 이 시기 SK는 주한미군의 석유와 함께 자사의 석유도 TKP를 통해 수송했다. 송유관 사용료를 위탁관리비와 상계처리해 정부에 한푼도 지급하지 않았음은 마찬가지여서, 최소한 금전적으로는 마치 송유관을 자기 소유나 다름없이 사용한 셈이다. 이 또한 세입세출에 반영되지 않았으므로 예산감사기관이 들여다볼 수 없어 SK가 투입한 실제 관리비용이 TKP를 사용해 얻은 이익보다 적다 해도 차액은 고스란히 SK의 이윤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노태우 정부와 SK의 ‘특별한 관계’
한편 1991년 정부가 TKP 인수를 확정짓고 그 운영방안을 준비하던 무렵 국방부는 정상적인 방식으로 임대료 문제를 처리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국방부 내부문서에 따르면, 이 시기 KIDA가 작성한 ‘한국종단송유관 인수후 운영방안’ 보고서는 임대조건으로 ‘관련법에 따라 타당한 (정액) 임대료를 책정하되 (업체가 관리비로 쓰는) 지출이 과다할 경우 받지 못할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임대수입금의 경우 ‘예산회계법 제41조 및 동시행령 제22조에 따라 대체수입경비로 지정하는 방안과, 예산회계법 14조, 48조에 의거해 국고 세입세출에 반영하는 방안 중 하나로 택일’한다고 돼있다. 다시 말해 법에 따라 정액 임대료를 받는 대신 적자가 나는 경우에는 받지 않는 방식이다. 물론 이 과정은 정부 내 예산감사시스템의 감시를 받게 된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이처럼 합리적인 초기검토는 허공으로 사라져버리고 앞에서 살펴본 것과 같은 탈법적인 회계처리가 11년 동안 지속됐다. 1999년까지 유공이 실비로 송유관을 사용하는 동안 국방부는 유공으로부터 이윤을 받아내는 방안에 대해 검토하지 않았고, 1999년 이후에는 대한송유관공사에 초과수익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신경 쓰지 않았다. 초기의 검토의견이 왜 채택되지 않았는지에 대해 국방부측은 “이미 12년 전의 일이라 자료가 없고 담당자도 바뀌어 답변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은 1992년 당시 노태우 정부와 유공의 관계다. 원래 공기업이던 유공은 1980년 SK그룹의 전신인 선경그룹에 인수됐고, 1988년 노태우 대통령의 딸 노소영씨는 선경그룹 최종현 회장의 장남 최태원씨(현 SK㈜ 회장)와 결혼했다. 1992년 노태우 정부는 제2이동통신 사업자로 SK를 선정했다가 특혜시비와 반발에 부딪히자 SK의 자진반납 형식으로 취소한 바 있다. 그러나 SK는 이 사업권을 포기했다는 명분을 바탕으로 1994년 공기업인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을 인수하는 데 성공한다.
한편 1980년 선경의 유공 인수 배후에도 신군부 실세였던 노태우 당시 보안사령관이 있었다는 증언이 공개된 바 있다.
최동규 전 동자부 장관은 1999년 12월 산업자원부가 펴낸 역대 상공·동자부 장관 에세이집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에서, 전두환 대통령이 자신과 함께 골프를 치다가 “그때 유공을 선경에 넘기게 한 사람은 노태우야. 나도 몰랐어”라고 말했다고 기록했다.
같은 책에서 유양수 전 동자부 장관은 1980년 7월 하순 최종현 회장이 장관실로 직접 찾아와 단도직입적으로 유공을 넘겨달라고 했던 일화를 소개한다. 이 때 유공 민영화를 독촉하던 고위층의 뒤에 최 회장이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 면담 2주 후 동자부 차관과 관련 간부들이 국보위에 불려가 유공 불하 계획을 구체적으로 작성, 보고하라는 지시를 받았고, 이에 반발한 자신은 5공화국 출범 직후 최단명 장관 기록을 세우고 물러났다는 내용이다.
이들 증언이 나오자 SK는 해명자료를 통해 “SK와 노 전 대통령의 인연은 1989년에 시작됐다. 유공 민영화 추진은 1980년 최규하 대통령 시절 진행됐다. SK가 유공을 인수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국내 민간기업 중 원유공급 능력이 가장 우수했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런저런 사정을 돌아보면 의미심장한 포인트에 생각이 미친다. 한국 정부가 TKP를 인수함으로써 가장 큰 경제적 이익을 본 주체가 SK라는 점이다. 앞서 살펴본 것 같이 당시 KIDA 보고서나 국방부 내부 보고서는 모두 송유관 사용이 ‘타 수송수단에 비해 비용면에서 연 2847만달러 줄일 수 있다는 경제성’을 주요 인수이유로 꼽고 있다. 한국이 TKP를 인수하지 않아 송유관이 폐쇄됐다면 당시 유공은 모든 석유를 지상이나 해상으로 날라야 했을 것이고 이전에 비해 매년 2847만달러로 추정되는 타격을 입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물론 석유의 특성상 수송이 원활해지면 국내경제 전체에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미친다. 그러나 송유관을 사용할 민간업체가 유공뿐이었음을 감안하면 직접적인 이익이 SK로 돌아간다는 데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LG정유나 현대정유는 정유공장의 위치상 TKP 사용이 불가능하다). 국방부 내부문서가 인수이유로 제시한 ‘한국측의 이익’은 ‘SK의 이익’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노태우 정부가 처리비용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TKP를 인수한 것은 SK를 배려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 자연스레 도출된다. 지나친 음모론일까.
미군이 송유관을 관리하던 1992년 이전에 SK가 얼마나 많은 석유를 수송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정부자료는 없다. 다만 1993년 TKP로 수송된 미군 석유가 전체 수송량의 20% 가량에 불과한 데 비해 나머지 80%는 유공의 석유였음을 감안하면, 이전에도 상당기간 유공이 TKP를 절반 이상 사용했으리라고 추정할 수 있다. 송유관이 폐쇄되면 가장 손해를 보는 것도 유공이었고 한국 정부가 인수함으로써 가장 이득을 본 것도 유공이었음은 분명하다.
다시 1992년 합의 당시로 돌아가보자. 마지막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 합의가 결과적으로 국내법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률은 ‘국가가 외국과 맺은 법적구속력이 있는 문서’를 모두 조약으로 본다. 모든 조약은 대통령의 정부협상대표 위임, 협상안에 대한 법제처의 심의(국회의 비준이 필요한지도 여기서 검토한다), 국무회의 상정, 대통령 재가, 필요한 경우 국회의 비준, 관보 게재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1992년의 합의는 국방부 군수국장이 ‘SOFA 합동위원회 시설 및 구역 소위원회 한국측 의장’ 자격으로 서명한 문서다. ‘대한민국 정부를 대표하여’ 같은 대표권 위임 표현은 없다. 이 협상안이 법제처의 심의를 받지 않았고, 대통령에게도 사후보고 했을 뿐 협상안에 대해 법적인 재가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선 국방부도 인정했다.
사실 이 문제는 SOFA에 따라 한미간에 만들어진 합의문서가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결함이다. SOFA는 양국간에 논의할 사항이 생겼을 때 한국의 외교통상부 북미국장과 주한미군 부사령관이 위원장을 맡는 SOFA 합동위원회에서 이를 논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세부적인 사항은 하부위원회에 위임할 수도 있다. 과거에는 이렇게 합의한 문서가 그대로 법적효력을 갖는 것으로 생각해 왔다.
이 때문에 SOFA 문서 대부분은 조약체결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TKP 소유권 이전 합의각서도 마찬가지다. 더욱이 (당시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해도) 이 합의는 장차 ‘국가에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게 될 내용을 담고 있었다. 대한민국 헌법 60조1항은 이러한 조약은 반드시 국회의 비준동의를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합의각서는 국회 동의도 거치지 않았다.
만약 1992년의 합의가 조약의 절차를 거쳐 체결됐다면 어땠을까. 법제처와 국무회의를 거치면서 국민에게 그 내용이 공개되고 공론화됐다면 철거비용이나 환경복구 문제도 지적되지 않았을까. 그 와중에 ‘폐쇄 후 처리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갈 수 있으므로 국회 비준을 받아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되지 않았을까.
수백억 원의 ‘수업료’
국회 및 시민단체 일각에서는 “1992년 합의가 적법한 국내절차를 거치지 않았으므로 무효이고, 따라서 재협상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외교부는 “강압에 의해 맺은 것도 아닌데 이제 와 뒤집을 수는 없다”고 반박한다. 그나마 외교부는 ‘문제는 있으나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인데 비해, 주무부처인 국방부 담당자들은 아예 “1992년 합의에 문제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현재 상황에서 정부가 미국과 TKP의 소유권 문제를 재협상하거나 철거비용 등의 분담문제를 협의하자고 나설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1992년 당시 정부의 무능을 아쉬워하는 것밖에 없는 것은 아니다. 쉽게 간과한 문제점이 훗날 심각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음을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정책결정자들이 국회 비준을 앞두고 여전히 논란에 휩싸여 있는 용산기지 이전협상 등의 현안에서 이를 반면교사로 삼는다면 수백억 원의 ‘수업료’는 아깝지 않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