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자 어록 중 ‘극기복례’ ‘온고지신’ ‘화이부동’ 같은 표현은 현대인에게도 익숙하다. 공자가 자신의 일생을 몇 단계로 나눠 규정한 내용도 마찬가지다. 이를테면 40대를 불혹, 50대를 지천명의 연배라고 일컫는 것이 그러하다. 이번에는 공자가 회고한 자신의 일생을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2500년 동안 동아시아 사람들의 삶의 원리 기능을 해왔던 요소들을 추출해보자.
(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논어, 2:4)
공자는 73세의 나이로 죽었는데, 노경에 이른 그가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면서 여섯 대목으로 나눠 단계마다의 특징을 요약하고 있다. 먼저 지우학(志于學)이라, 열다섯 살에 ‘배움에 뜻을 세웠다’고 했다. 열다섯이라면 지금 학제로는 중학교 2~3학년에 해당하지만 공자가 살던 시대에는 소학을 마치고 대학에 들어가는 나이였다. 요즘 식으로 당겨서 해석하면 공자는 오늘날 젊은이들과 비슷하게 대학에 입학하면서 자신의 인생길을 확정지었다는 뜻이 된다.
하면 공자가 뜻을 둔 공부는 어떤 것이었을까? 공자 시대의 교과목은 보통 육예(六藝)라고 해 의례(禮), 노래와 춤(樂), 활쏘기(射), 마차 몰기(御), 글쓰기(書), 셈하기(數)를 든다. 이것들은 남과 관계 맺기에 요구되는 예와 악, 국토방위에 필요한 기술인 활쏘기와 마차 몰기, 그리고 관리나 지식인으로서 업무를 처리하는 기예인 글쓰기와 셈하기 등 고대에 지식인이자 무예를 겸비한 성인남자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 기술들이다.
한편 육예를 텍스트 중심으로 구분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는 첫째 중국 고대의 시집인 시경(詩經), 둘째 중국 고대의 정치와 역사를 서술한 서경(書經), 셋째 국가와 계급 간에 지켜야 할 예의범절을 규정한 예기(禮記), 넷째 음악에 대한 이론서인 악기(樂記), 다섯째 점치는 책인 역경(易經), 그리고 공자의 고향나라 노나라의 역사책인 춘추(春秋)를 꼽는다. 실제로 공자는 지식의 저장고인 책에 대해서 몹시 소중하게 생각한 흔적이 있다.
공자 제자 자로(子路)가 ‘서경’을 읽어보지 않은 친구 자고(子羔)를 비(費)땅 책임자로 추천하여 임명하도록 하였다.
공자 말씀하시다. “저놈, 또 남의 자식 하나 잡겠구나!”
자로가 말했다. “백성들 있겠다, 사직이 있어 귀신들이 보호하시겠다, 그러면 되는 것이지 꼭 ‘서경’을 읽은 다음에야 정치를 배웠다고 하겠습니까?”
공자 화를 내며 말씀하시다. “내가 이래서 저 입치레만 번드레한 놈들을 미워한다니깐!” (논어, 11:24)
무사 출신으로서 용맹을 숭상하던 제자 자로의 생각으로는 책을 읽지 않고도 충분히 국가를 경영할 수 있다고 보지만, 공자는 책을 통해 합리적인 정치, 경영론을 배우고 익힌 다음에야 나라를 운영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처럼 책을 중시한 공자의 생각은 최근까지 면면히 살아남아 책을 밟거나 훌쩍 뛰어 넘어가면 어른들에게 꾸지람을 듣는 풍속으로 남아 있다. 실은 이런 ‘책에 대한 숭배’, 아니 ‘배움과 익힘’에 대한 숭앙심은 오늘날 동아시아 국가들의 자본주의 발전 이유를 설명하는 개념인 ‘유교 자본주의’(confucian capitalism)라는 말 속에도 숨어 있다. 즉 한국· 대만· 중국 ·싱가포르 등 동아시아권 국가들의 유례없는 자본주의 성장 뒷면에는 유교문화의 전통이 자리 잡고 있는데, 이 전통 속에는 바로 ‘책에 대한 숭배’ ‘배움과 익힘에 대한 열정’이 원동력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뜻을 세워라
이렇게 보자면 시대변화에 따라 배우고 익히는 대상은 달라지지만 (즉 예악에서 영어· 수학으로, 또는 ‘말 몰기’에서 ‘자동차 운전’으로) 모르는 것을 배우고 그것을 몸에 익힘으로써 획득되는 기쁨의 크기와 질은 다를 바 없다. 여기에 ‘변치 않는 고전으로서 논어’의 의의가 있는 것이리라.
성균관대에서 열린 추계석전대제 장면.
여기 ‘지’자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일렁거린다. ‘志’를 부수면 ‘士’와 ‘心’으로 쪼개진다. 그중에 ‘士’는 우리말로는 선비를 뜻하지만, 일본에선 똑같은 글자를 두고 사무라이라고 읽는다. 갑골문에서 ‘士’는 도끼를 형상화한 것인 데서도 (짧은 밑변은 도끼날을, 가운데 세로획은 도끼몸통을, 그리고 가로로 난 긴 획은 도끼자루다.) 이 글자에 무사·사무라이라는 뜻이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志’자 속에는 ‘무사의 마음가짐’이라는 의미가 숨어있다. 그러니까 ‘선비’ 또한 제 목을 칠 도끼를 들고 군주가 거처하는 궁궐 앞에서 상소했던 것이다.
끝내 나라가 망할 때엔 선비가, 주군이 패망할 적엔 사무라이가 목숨을 바치는 데서는 다 같은 마음인 것이다. 그 서슬 퍼런 결기, 두 마음을 갖지 않는 지조 같은 마음가짐은 선비에게나 사무라이에게나 공통된다(성삼문을 위시한 사육신의 행동을 연상하면 좋겠다). 그렇다면 ‘뜻을 세운다’는 말 속에는 ‘배움에 거는 내 뜻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내 배를 가르겠노라’, 또는 ‘내 학문이 끝을 맺지 못하면 내 목을 치겠노라’는 절박한 의지가 깃들인다. 그러니 참 무서운 말이다, ‘뜻’이라는 글자는.
그러니까 공자가 열다섯에 배움에 둔 ‘뜻’이란 목숨을 바칠 각오하고 배움에 투신했다는 것이지, 되다 말고 하다가 안 되면 그만두는 따위의 ‘한낱 희망사항’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이렇게 공자의 “배움에 뜻을 세움”이란 온몸과 마음을 다 배움에 던진다는 것이었으니, 그 10대의 투신이 등에 땀을 나게 만든다.
그러나 어디 사람뿐이겠는가. 사회단체나 학교, 나아가 기업에 이르기까지 모든 조직의 원리도 마찬가지리라. ‘뜻을 세운다’는 것은 그 조직의 방향을 수립하는 초심, 첫 마음가짐이니 그 단체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뜻 세우기’의 여부에 기업의 운명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음을, 현대 경영학자 짐 콜린스(J. Collins)는 다음과 같이 논한 바 있다.
모든 회사들이 제각기 최고가 되기를 바랄 테지만, 자기들이 어떤 분야에서 정말 최고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졌고 마찬가지로 어떤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없는지를 자기도취에 빠지지 않고 예리한 통찰력으로 명쾌하게 파악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리고 위대한 회사로 도약한 기업들과 비교 기업들의 주요한 차이점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짐 콜린스, ‘위대한 기업으로’, 김영사, 167쪽)
즉 기업 스스로 처음 ‘세운 뜻’을 “자기도취에 빠지지 않고 예리한 통찰력으로 명쾌하게 파악하는 경우가 드물다”라는 지적은, 공자가 강조하고 율곡이 주의했듯 ‘뜻 세우기’와 그 뜻을 유지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음을 지적한 것과 같다.
그런데 짐 콜린스는 여기 ‘뜻을 세운다’는 것이 단순히 ‘무엇을 하겠다’는 계획이 아니라 자기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또 처한 환경의 객관적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이것은 단지 강점이나 역량이 있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당신의 조직이 진정으로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지 알아내고 그것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것이기도 하다.”(짐 콜린스)
실로 공자가 세운 뜻이 얼마나 강렬하고 본질적이었던 것인지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으리!”(논어, 4:8)라는 장렬한 표현 속에 자옥하다. 열다섯 젊은 나이에 세운 뜻에다 삶과 인생 전체를 걸고 백척간두에서 몸을 던지는 투신의 열정이 있었음을 이 절규 속에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 공자는 자기 인생의 두 번째 단계를 이립(而立), 곧 “서른 살에 섰다”고 했다. 여기 ‘섰다’란 자립했다는 뜻이니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었다, 또는 자기 인생을 책임질 수 있는 실력을 갖추었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 한편 열다섯 살에 뜻을 세워서 ‘서른 살에 섰다’는 것은 곧 한 분야에 전문가로서 자립하는 데 15년의 세월이 걸렸다는 의미로도 읽을 수 있겠다.
10년을 두고 변화
그리고 30대 이후의 공자 인생은 10년 단위로 질적 고양, 요즘 식으로 하자면 ‘업그레이드’를 이루고 있음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이 40대의 불혹(不惑)과 50대의 지천명(知天命), 그리고 60대의 이순(耳順)으로 표현되고 있다.
여기 40대에 공자가 획득했다는 불혹의 경지란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신념을 갖게 되었음’을 말한다. 거꾸로 보면 30대에 한 분야의 전문가로 자립하긴 했으나, 그동안 자기 일과 삶에 대해 의심과 회의(懷疑)에 시달렸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른 일을 했더라면 더 좋은 성과를 내지 않았을까, 또는 다른 일에 재능이 더 있었을 수 있는데 하는 미심쩍은 마음가짐이다. 그런데 40대에 이른 어느 날 내가 하는 이 일이 확신으로 와 닿았다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프루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에서 묘사된 바와 같이, ‘남의 길’에 솔깃하거나 ‘다른 길을 갔더라면…’하는 흔들림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옛날 고시 합격생들의 체험기를 모은 책 제목을 빌리자면,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가겠노라는 확신에 이른 것이다.
공자는 50대에 또 한 번 질적 도약을 하는데 그것을 지천명이라고 일렀다. 여기 ‘천명을 알다’(知天命)란 그동안 나의 일, 혹은 나의 삶이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더라는 통렬한 깨침이다. 40대의 불혹에서 이 일이 나의 길임을 확신했는데, 50대 어느 날 이것이 나의 주체적, 자율적 선택이 아니라 내 배후에 어떤 ‘님’이 있어, 그에 의해 선택된 것임을, 그 ‘님’의 역사(役事)에 ‘나’가 쓰이고 있다는 깨우침이다. 내가 성취의 주체가 아니라 기껏 도구에 불과하다는 깨달음의 자리인 셈이다. 여태 ‘내가 무엇을 한다’라고 믿었던 능동태가 실은 ‘님으로 말미암아 무엇을 하게 되었다’는 수동태임을 깨닫는 순간이라고 할까. 그렇다면 ‘지천명’이란 곧 ‘신의 뜻’을 느끼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기독교 신자들이 “나를 주님의 역사에 도구로 써주소서”라는 말을 쓰곤 하던데, 이것이 그 턱이다.
60대에 이르러 공자는 또다시 업그레이드를 체험하는데 그것을 이순(耳順), 곧 귀가 순해지는 경지로 이름 붙인다. ‘귀가 순해진다’라는 것은 세속적 인간으로서의 자아(ego)가 사라졌다는 뜻이다.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E. Fromm)의 잘 알려진 개념인 ‘소유냐, 존재냐’를 여기에 적용하면 50대 지천명의 순간에 ‘소유’ 의식이 사라졌다면 60대의 어느 날, ‘나’라는 존재 의식조차 사라진 것이라고나 할까.
일이나 사건에 대해 ‘A는 B다’라고 규정하는 나, 혹은 ‘A는 B가 아니다’라고 부정하는 주체(나)가 사라지고 도리어 나는 남의 말과 자연의 소리를 듣는 존재, 곧 말은 사라지고 귀만 남은 사람으로 심플해진 것이다. 이순의 ‘나’는 말과 소리가 소통되는 통로이지 말로써 규정하고 명령하는 ‘존재’가 쑥 빠져 사라진 것이다. 공자의 남의 소리를 잘 듣는 점은 다음 대목에서도 엿볼 수 있다.
공자는 사람들과 노래를 부를 적에, 잘 부르는 이가 있으면 반드시 앙코르를 청하였다. 그 다음엔 이에 화답하였다. (논어, 7:31)
이렇게 남의 노래·소리를 잘 들어서 그 맛을 음미하고 또 그에 대해 화답하는 공자의 듣기 태도는, 소통(커뮤니케이션)을 원활하게 하는 이순의 길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면 남과 자연에 대해 평가하던 ‘나’가 사라지고, 평가하려는 나조차 지긋이 돌이켜보는 경지가 이순이겠다. 불교의 어법을 빌리자면, ‘지천명’의 50대에 획득한, “산은 더 이상 산이 아니요, 물은 더 이상 물이 아니라”는 부정의 정신을 심화해 “산은 다시금 산이요, 물은 역시 물이라”는 경지에 닿은 것이라고 할까? 저기 황희 정승이 집안을 다스리면서, “네 말도 옳고 또 저 말도 옳다”고 내내 긍정하기만 했다던 것이 이 경지일까?
여기서 우리는 공자의 일생에서 삶의 질이 도약하는 기간이 10년 단위로 구성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하리라. 그런데 공자의 일생에서 전형적으로 드러나는 ‘매 10년간의 질적 도약’을 법칙으로 승화시킨 사람이 현대 경영사상가 말콤 글래드웰(M. Gladwell)이다.
그는 한 분야에 특출한 성취를 이룬 사람을 아웃라이어(outlier)로 호칭하는데(공자식으로 표현하자면 ‘군자’가 유사하다), 아웃라이어가 되기 위한 조건으로서 “어떤 분야든 숙달되기 위해선 하루 3시간 10년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빌 게이츠와 비틀스, 체스게임 챔피언들을 보세요. 한결같이 창의적이고 창조적인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창의와 창조는 이러한 시간의 준비를 필요로 합니다. 그들 스스로를 표현하기 위해서죠. 그냥 일반적인 차원이 아니라 대단히 전문적인 수준에서 숙달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식의 기초가 있어야 창의와 창조의 핵심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1만 시간 법칙입니다. 1만 시간은 하루 3시간씩, 일주일 꼬박, 10년을 보내야 확보되는 시간입니다. 특별한 일을 하기 위한 훈련 단위죠. 타이거 우즈는 탁월하게 창의적이고 창조적인 골퍼이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 매일 아침 일어나 골프 훈련을 통해 창의적인 골프를 하는 데 필요한 기초를 쌓아온 것입니다. (‘위클리비즈’, 290~291쪽)
지난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든 김연아 선수의 쾌거도 얼음 위에서 밤낮으로 1만 시간의 노력을 쏟은 결과물일 것이다. 흥미롭게도 ‘미실’이라는 소설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김별아도 한 대학의 특강에서 글래드웰이 제시한 1만 시간의 노력을 강조하고 또 요구하고 있다.
김별아씨는 강원대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세계 문명사를 공부하면서 결국 내가 가장 잘 이해하고 다룰 수 있는 우리 역사로 돌아온 것이 ‘미실’을 쓰게 된 계기”라면서 “이 작품으로 상을 받으면서 10년간의 무명작가 생활을 청산할 수 있었다”고 웃음 지었다. 그는 강의실을 가득 채운 100여 명의 대학생들에게 “젊은 시절에 성공하는 것이야말로 큰 불행”이라면서 “정말 좋아하는 일에 10년의 세월을 투자할 각오를 하고 실천에 옮기면 시간이 보답할 것”이라는 충고로 강의를 마무리했다. (춘천=연합뉴스)
그러니까 ‘10년간 1만 시간의 법칙’은 미국이나 서구의 성공사례일 뿐 아니라, 우리 주변의 성공한 사람들 뒷면에도 역시 10년을 두고 꾸준히 노력하는 피나는 과정이 깔려 있는 것이다.
열정적으로 몰두하라
앞서 보았듯 공자의 일생도 10년을 단위로 질적 도약과 인격의 심화과정을 보여주는데, 그 역시 10년마다 1만 시간 이상의 노력을 투자했던 것임에 분명하다. ‘논어’ 속에는 공자의 열정적 몰두가 잘 드러나 있다.
이를테면 공자의 제자들은 스승이 성취한 놀라운 지적 도덕적 능력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 아닐까 의심했지만, 공자는 스스로 “나는 태어나면서 아는 사람이 아니다. 다만 옛것을 좋아하여 그것을 구하려 민첩하였을 따름이다”(子曰, “我非生而知之者, 好古敏以求之者也.” 논어, 7:20)라고 주장한 데서 이를 엿볼 수 있다. 즉 공자는 스스로의 능력이 첫째 타고난 것이 아니라는 점, 둘째 ‘옛것을 좋아하여 끊임없이 구하려 하였다’는 점을 들고 있다. 이 점이야말로 공자를 공자답게 만든 핵심요소라고 할 수 있다. 글래드웰은 마치 공자의 말을 엿듣기라도 한 듯 탁월한 성취자(아웃라이어)의 특성을 요약한다.
우리는 성공을 개인적인 요소에 따른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발견한 모든 사례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기회를 꽉 잡은 후, 1만 시간의 훈련으로 뒷심을 쌓지 않으면 최고 수준의 플레이를 하는데 필요한 기술을 익히는 것이 불가능하였다. 모든 시대를 통틀어 최고의 음악 신동이라 불리는 모차르트도 1만 시간의 훈련을 통해 독창적인 작품을 썼다. 성취공식은 ‘재능 더하기 연습’이다. 문제는 관찰하면 할수록 타고난 재능의 역할은 줄어들고 연습이 하는 역할은 커진다는 것이다. (말콤 글래드웰, ‘아웃라이어’, 김영사.)
이와 유사하게도 ‘논어’에는 공자가 음악을 배우는 데에 얼마나 깊은 열정으로 몰두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도 있다.
공자가 제나라에서 고전음악 소(韶)를 듣고는, 석 달 동안 심취하여 고기를 먹어도 그 맛을 모를 정도였다. 흥취에서 깨어나서 토로하기를 ‘음악의 세계가 이 경지에까지 이르렀을 줄은 차마 몰랐노라’라고 하였다.(논어, 7:13)
석 달 동안 밥을 먹으면서도 고기 맛을 잊을 정도로 심취했다는 것은, 그가 배우려는 대상에 푹 빠져서 자신을 잃을 정도로 몰두하는 특성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글래드웰이 아웃라이어의 특징으로 제시한 하루 3시간, 10년간의 노력 정도는 공자의 몰두에는 오히려 비교될 수 없을 만큼 가벼운 것이 된다. 그러니까 공자는 스스로 “나의 사람됨은 모르는 것이 있을 적에는 분해서 밥 먹는 걸 잊어버리고, 알고 나면 그게 즐거워서 근심걱정을 잊어버리고 급기야 늙어가는 세월조차 알지 못하는 그런 자”(其爲人也, 發憤忘食, 樂以忘憂, 不知老之將至云爾. 논어, 7:19)라고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어디 배움이란 것이 음악이나 미술처럼 특정한 것에 국한될 수 있으랴. 공자에게 배움은 실로 주변의 모든 것에 대한 것이었다.
공자 말씀하시다. “세 사람이 길을 감에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 잘난 사람에게는 그렇게 되기를 배우고, 못난 사람에게는 ‘저래선 안 되겠다’는 것을 배운다.”
(子曰, “三人行, 必有我師焉,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 논어, 7:21)
여기에는 평생을 학습의 장으로 보는 유교의 인간관, 인생관이 잘 표현되어 있다. 세 사람이 길을 가는데, 나를 제외한 나머지 두 사람 모두로부터 배울 것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곧 나를 둘러싼 환경, 주변이 다 나의 스승이 된다는 뜻이다. 설핏 스치는 바람결에도 우리는 배움을 얻을 수 있다. 다만 나 자신이 배우는 자세를 갖추고 있는지, 아닌지의 문제가 있을 뿐이다. 이것은 곧 공자가 평생을 두고 10년 단위로 질적 도약을 이룰 수 있었던 비밀을 보여준다. 음악을 배우든 역사를 배우든 대상에 침식을 잊고 몰두하는 것, 그리고 주변에서 스승을 찾아 배우는 겸손한 자세, 이것이 공자를 공자답게 만든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카리스마는 없다
이제 공자 인생의 마지막 70대에 얻은 성취를 살펴보자. “마음대로 하여도 경우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했다. 이것은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궁극의 경지다. ‘내 마음이 쏠리는 대로 말하고 움직여도 전혀 거리낌이 없다’라는 것은 사람이 주어진 환경과 착착 들어맞는 높은 경지를 이름이다. 비유하자면 내 마음이 ‘꽃이 피는구나’ 하니 꽃이 피었고, 내 마음이 ‘열매를 맺는구나’ 하니 열매가 맺히는 식이다. 벌써 이 지경이면 자연과 하나가 되어버린 것이다. 물아일체, 즉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되어 틈조차 사라진 것! 공자가 평생을 두고 공부한 결과가 이것이다. 10년마다 질적 도약을 이룬 결과, 인생의 종착점에서 신의 경지를 획득한 셈이다.
현대 인도의 수도승 라즈니쉬가 시바 신(神)을 묘사하면서 표현했던 바를 빌리자면, “춤추는 사람은 사라지고, 오로지 춤만 남은 상태”에 맞춤하게 들어맞는 경지라고 할까. 또는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 속에서 묘사했던, 조르바가 재산을 몽땅 다 털어먹고 떠나는 마당에 자기를 잊고 추던 춤사위 같은 것, 혹은 카잔차키스의 묘지명에 쓰인, “나는 아무것도 원치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와 같은 경지가 공자의 그것이 아닐런가.
그러나 공자가 인생의 끝자락에서 물아일체, 곧 성인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하더라도 스스로는 한 번도 자신을 성인으로 자처한 적이 없었다. 곧 목표를 달성했다고 과시한 적이 없었고 남에게 뻐긴 적은 더더욱 없었다. 어쩌면 명사(목표)적 인간이 아니라 동사(현재진행형)적 인간이라는 점에 공자의 공자다움이 있을 것이다.
공자 말씀하시다. “가령 성인(聖)이라느니 인(仁)의 경지라느니 하는 것이 감히 내게 당키나 하리오. 다만 그렇게 되길 노력하는데 싫증내지 않고, 또 남에게 가르치는 일에 게으르지 않는 것이라면 몰라도.” (논어, 7:34)
오늘날 식으로 표현하자면 공자는 이른바 ‘카리스마’가 없는 사람이었던 셈이다. 주변사람으로부터 언제나 배우려 드는 사람이 어찌 자기 성취를 의식하고 또 과시하는 짓을 할 수 있으리오. 도리어 아랫사람일지라도 주장이 이치에 맞으면 공자는 언제나 스스럼없이 자기 견해를 고집하지 않고 받아들였던 것이니, 이에 불치하문(不恥下問)이라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음’을 사람됨의 핵심요건으로 강조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스승의 사람됨의 특징으로서, “공자에겐 네 가지가 없었다. 사사로운 의식이 없었고, 꼭 뭘 이뤄야 한다는 아집이 없었고 제 견해를 고집함이 없었으며, 또 이기심이 없었다.”(子絶四. 毋意, 毋必, 毋固, 毋我. 논어, 9:4)라고 평했던 것이다.
공자는 구획하지 않고 툭 트인 열린 마음(open mind)으로 언제나 배우려 드는 사람이었다.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배우려 드는 ‘현재진행형’이 공자로 하여금 끝내 물아일체의 경지에 닿게 만든 동력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스스로를 내세우지 않고 상대방으로부터 겸손하게 배우려드는, ‘탈-카리스마’의 면모는 오늘날 이상적인 기업가들의 면모와도 닮았다. 즉 공자의 면모는 오늘날도 리더십의 전범으로 여길 만하다는 점이다. 경영연구자 짐 콜린스는 평범한 기업에서 위대한 기업으로 전환한 기업인들을 연구한 대목에서 꼭 공자가 획득한 경지와 흡사한 언어를 토로하고 있다.
보통기업의 리더들이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것과는 대조적으로 위대한 기업으로 도약을 성공시킨 리더들은 자신들 이야기를 얼마나 삼가는지를 보고 우리는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흔한 거짓 겸양이 아니었다. 평범한 회사를 위대한 회사로 도약시킨 리더들과 함께 일하거나 그들에 대해 글을 쓴 사람들은, ‘조용한,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조심스러운, 수줍어하는, 정중한, 부드러운, 나서기 싫어하는, 말수가 적은, 자신에 관한 기사를 믿지 않는’ 등의 단어나 표현을 계속 썼다.”(짐 콜린스, ‘위대한 기업으로’, 57-58쪽)
반면 회사를 말아먹은 리더들은 이른바 카리스마가 강하고, 또 자기중심적이며 개인적 자아(에고)가 강한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망해버린 스콧 페이퍼 회사 이야기는 우리 연구에서 극적인 이야기 중 하나이긴 하지만 그리 유별난 사례는 아니다. 비교 기업들 중 3분의 2 이상에서 우리는 회사가 소멸하거나 계속 평범한 기업으로 남는 데 공헌하는, 개인적 자아가 엄청나게 큰 리더들의 존재를 확인했다. (짐 콜린스, ‘위대한 기업으로’, 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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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현대경영학의 태두로 추앙받는 피터 드러커의 다음 지적은 ‘카리스마적 특성이 리더십의 요건이 결코 아님’을 재확인시켜준다. 역시 이런 특성은 공자의 삶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사람다운 삶’의 교훈과 일치한다.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이자 진짜 ‘지도자’는 일반적인 통념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며 다르게 행동한다. 그는 사람들을 카리스마로 이끌지 않는다.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노력과 헌신으로 이끈다. 모든 것을 자기 손아귀에 집중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팀을 구성한다. 조종이 아닌 성실성으로 지배한다. 영리한 것이 아니라 단순하고 정직하다.” (‘피터 드러커 자서전’, 33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