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제 우월성 교육으로 그릇된 환상 심어
- 한국 적응, 실생활에 도움 안 돼
- 하나마나 한 직업교육… “일할 곳은 식당뿐”
- 자본주의 ‘빛’뿐 아니라 ‘그늘’도 가르쳐야
12월 5일 강원 화천군에 터 잡은 제2하나원에서 개원 1주년을 자축하는 행사가 열렸다. 통일부가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법에 근거해 경기 안성시에 하나원을 개원한 때는 1999년 7월. 한국 입국 탈북자 수가 증가하면서 공간이 포화 상태에 이르자 총사업비 340억 원을 들여 지하1층~지상4층, 10개 동(연면적 1만5000㎡ 규모)으로 이뤄진 제2하나원을 화천군에 건립했다. 제2하나원 개소 이후 경기 안성시 본원은 여성·어린이 탈북자, 제2하나원은 남성 탈북자를 수용·교육하고 있다.
“반쪽짜리 교육”
탈북자가 한국 국민으로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초적 소양을 쌓도록 하는 게 하나원의 설립 목적이다. 한국에 정주하기를 희망하는 탈북자는 예외 없이 3개월 간 하나원 교육을 받아야 한다.
하나원 풍경은 차갑고 폐쇄적이다. 입구에 2중 차단장치를 설치했다. 감시카메라가 도처에 마련돼 있다. 외부인에게 주소를 알려주지 않는다. 10주년 기념행사 때 같은 특별한 날이 아니면 출입을 통제한다. 외부에 가족이 있어도 만날 수 없다. 교육에 포함된 단체활동을 제외하고는 외출이 금지된다. 외부에 하나원 내부를 공개하지도 않는다. 2009년 7월 설립 10년을 맞아 언론에 공개한 게 유일하다.
하나원 교육은 민주주의, 자본주의, 시장경제 등에 대한 이론 교육과 한국에서 생활하는 데 필요한 진로지도 및 기초직업 훈련으로 이뤄져 있다. 탈북자들은 석 달간 하나원에 머물면서 420시간가량 교육받는다. 교육과정은 탈북 이후 해외 체류로 인한 심신(心身) 상담 및 치료 50시간, 혼자 힘으로 자장면 사먹기, 시장에서 돈 주고 물건 사기 등 한국 사회 이해를 위한 경제교육 130시간, 제과·제빵, 컴퓨터 등 직업교육 180시간, 한국 정착을 위한 제도 안내 교육 60시간으로 짜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원에서 탈북자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배우는지는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하나원에서 배우는 자본주의가 현실의 자본주의와는 상당히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한 탈북자는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물건을 구입하고 신용카드를 사용하는지 가르쳐주지만, 정작 한국 사회에서 좋은 일자리를 찾고 그 일자리에서 얼마나 성실히 일해야 하며 직장에서 가지는 권리와 의무는 무엇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신용카드의 폐해나 신용불량자가 됐을 때의 끔찍한 상황 등 실질적으로 사회에 나와 생존 경쟁에 부딪혔을 때 만나게 되는 문제점과 대안에 대해서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한마디로 자본주의의 빛은 보여주지만 그늘은 숨기는 반쪽짜리 교육이다.”
‘산해진미’ 아닌 ‘미음’ 줘야
김형덕 한반도평화연구소 소장은 1993년 북한을 탈출해 이듬해 한국에 들어왔다. 탈북자 사회에서 한국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인물로 손꼽힌다.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국회의원 비서관을 지냈으며 대기업 기획팀에서 일했다. 2년간 미국 연수도 다녀왔다. 연세대 동아리에서 처음 만난 아내는 공기업에서 일하는 공인회계사다.
“저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 정착한 탈북자 대부분이 하나원에서 받은 교육이 실용적이지 못하다고 느낍니다. 막상 사회에 나가면 현실은 냉혹하거든요. 노력한 만큼 대가를 받는 시스템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자본주의가 가진 장점만 알려주는 게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자본주의의 안 좋은 점을 가르쳐줘야 적응하는 데 실제로 도움이 될 것 아닙니까.”
그는 자신을 특별한 사례로 여겼다.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 가운데 잘 적응해 살아가는 예가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철저하게 내가 노력해서 살아가야 하는 곳입니다. 각자가 각자를 책임지는 곳이죠. 그런데 탈북자를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격리해놓고 판에 박힌 교육을 하는 게 그들을 지켜주는 방편일까요?”
그가 생각하는 하나원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격리 수용, 그리고 탈북자 수준에 맞지 않는 수업 내용이다. 3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사회와 분리해놓고 탈북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을 교육하는 것부터가 모순이라는 것이다.
강원 원주시에서 탈북 청소년을 위한 대안학교인 셋넷학교를 운영하는 박상영 교장은 하나원 교육은 탈북 청소년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포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참을 굶은 사람에게 산해진미가 펼쳐진 밥상을 들이미는 것은 그냥 먹고 죽으란 얘기와 비슷합니다. 북한 아이들은 남한 청소년처럼 십수 년 동안 피 터지게 공부하며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아이들이 아니라 얼마 전까지 산에서 나무하고 토끼 잡으며 살던 아이들입니다. 아무리 전문가들이 좋은 얘기를 늘어놓는다 해도 한국에서 사용하는 언어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흥미를 가지고 알아들을 리 만무해요. 이들에게 필요한 교육은 ‘산해진미’가 아니라 ‘미음’입니다.”
경기 안성시 하나원 재봉실습실(왼쪽). 하나원 유아방에서 탈북 어린이들이 장난감차를 타며 놀고 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한국에서 보낸 최초의 3개월, 그것은 첫사랑과 같습니다. 강렬하고 애틋하죠. 그런데 하나원의 커리큘럼을 교육 전문가가 아닌 공무원이 정합니다. 외부 자문도 전무한 상태예요. 모든 것이 세분화, 전문화하는데 하나원 교육만 제자리걸음이어서야 되겠습니까. 평생을 다른 문화에서 살아온 이들을 교육하려면 공무원이 아니라 교육 전문가, 북한 전문가가 앞장서야 합니다. 하나원은 전문가 위주로 교육이 이뤄지면서 공무원이 전문가를 지원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해요.”
하나원 교육을 두고 탈북자의 한국 정착을 돕기 위한 게 아니라 상부에 보여주려는 보고용 수준이라는 지적마저 나온다. 한국에 정착한 지 오래된 탈북자뿐 아니라 박 교장이 만난 탈북 청소년 대부분이 하나원에서 가르친 것을 올바르게 이해하거나 실생활에 적용한 예는 거의 없다고 한다.
“사실 가장 큰 문제는 언어예요. 북한 주민과 우리가 거의 비슷한 언어를 사용하는 것 같지만, 탈북민에게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외래어에 가깝습니다. 영어 등 외래어 사용이 많은 우리의 언어 습관 탓이기도 하지만 같은 단어도 사용하는 의미가 전혀 다른 경우가 허다해요.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말조차 서로 알아듣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이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직업기술을 가르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 아니겠습니까. 오히려 언어교육을 강화해야 해요.”
박 교장이 말한 언어교육은 영어와 같은 외국어가 아닌 한국인이 사용하는 말을 가리킨다. 남북 간 언어 간극이 상당하다는 게 탈북 청소년을 가르쳐온 그의 경험이다.
“하나원 처지에서 보면, 3개월 동안 기술교육을 제공해 사회에 내보냈는데 저 사람들은 왜 그런 걸 하나도 못 써먹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아이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현실입니다. 한자와 영어가 난무하는 전문용어에 한국에서만 사용하는 단어까지,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조차 없으니 시간만 때우려고 꾸벅꾸벅 졸았다는 겁니다. 하나원이 초빙한 강사는 자기 분야에서는 전문가일지 모르겠으나 탈북자의 지식 수준이나 언어 표현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으니 그 대목에부터 문제가 발생하는 거예요.”
겉보기엔 번듯하고 훌륭한 강사진이 이제 갓 한국에 들어온 탈북자에겐 그저 부담스럽고 소화하기 힘든 잘 차려진 밥상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게다가 직업교육은 실습보다 ‘견학’에 가깝다고 탈북자들은 입을 모은다. 유명무실한 직업교육 180시간만으로 사회에 나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한 여성 탈북자는 “하나원을 수료해 사회에 나가면 특별한 재주가 없는 사람은 일할 곳이 식당밖에 없을 수도 있다고 가르쳐주는 게 오히려 정착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재입북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힌 탈북자 손정훈 씨.
‘잘 먹고 잘살기 위해’ 국경을 넘어 탈출한 이들에게 한국 사회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이데올로기 교육에 가까운 이론교육과 실효성 없는 직업교육은 북한 사회에 퍼질 대로 퍼진 한국에 대한 환상만을 더한다는 지적이 많다. 한류 드라마 속 일상을 떠올리고 한국에 들어왔다 실망하는 이도 적지 않다.
탈북자들은 풍요로운 삶을 꿈꾸며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지만,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도 살아남기 어려운 생존경쟁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채비를 갖추기엔 현실이 차갑기만 하다. 하나원에서 단체로 견학한 63빌딩과 롯데월드는 그들이 일평생 다시 가보지 못할 꿈의 공간이 돼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再입북하는 탈북자들
최근 탈북자 문제와 관련해 가장 큰 이슈는 한국을 떠나거나 북한으로 되돌아가는 이가 늘고 있는 것이다. 재입북한 탈북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한국 사회를 비난하는 등 북한 당국의 체제 선전에 악용되는 사례가 잇따라 발생하는가 하면,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월북을 시도하다 붙잡힌 탈북자도 있다. 탈북자 단체들은 재입북한 탈북자가 100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지난 7월 손정훈 전 북한이탈주민비전네트워크 대표가 공개적으로 북한에 되돌아가겠다고 선언해 화제의 중심에 섰다. 그는 아직까지 실제로 재입북을 감행하지는 않았다. 그는 ‘2등 국민’ 낙인을 씻기 어려운 탓에 북한으로 되돌아가겠다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탈북자들이 잘살아갈 거라고 생각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들을 북한으로 데려갈 생각도 없다. 처벌받더라도 내가 받아야지 아들에게 짐을 지울 수는 없다. 가능하면 아들이 다른 나라에서 살았으면 좋겠다. 그동안 일반 학교에 다니면서 탈북자라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해 상처를 많이 받았다. 돌이켜보면 아들 목숨을 걸면서까지 여기 올 필요가 없었다. 미국이나 유럽에 갔더라면 지금처럼 자기 민족에게 차별받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그는 자신이 아는 재입북자만 수십 명에 달한다고 주장한다. 중국에서 3~4년 살다 한국에 들어와 1~2년 생활한 이들이 재입북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고도 했다.
탈북자 커뮤니티는 손 전 대표가 재입북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혔을 때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극빈층으로 전락한 이들에게 북한은 모두가 가난하고 힘들지만 그나마 마음을 의지할 수 있는 가족과 친구가 있는 고향이라는 것이다.
정부는 탈북자의 재입북 사태를 놓고 “외부 요인에 의한 비자발적 선택”이라는 분석을 내놓으면서 “북한이 분단된 상황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탈북자들의 열악한 환경을 악용하고 있다”는 식으로 해석하지만, 이들의 문제를 단순히 북한의 악의적 행보 때문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탈북자 범죄율 4.6배 높아
또한 극빈층으로 전락한 탈북자들의 범죄율과 범죄피해율이 높은데도, 대책 마련은커녕 실태 파악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경찰청 통계는 “1998년부터 10년 동안 국내에 정착한 탈북자 8835명 가운데 20%에 달하는 1687명이 범죄자가 되어 한국 사회 전체 평균 범죄율인 4.3%보다 4.6배 높다”고 밝힌다. 그중 강력 범죄자가 살인 5명, 폭력 603명, 강간 12명 등 899명으로 전체의 53.2%를 차지했다. 탈북자가 범죄의 피해자가 될 확률도 평균치보다 5배나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범죄율과 피범죄율이 이렇듯 높은 것은 탈북자 대부분이 하나원에서 나오자마자 빈곤층으로 유입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이 2012년 실시한 생활실태조사는 “조사 대상 탈북자 8299명 중 30%가량이 월평균 소득이 100만 원도 채 되지 않는 빈곤층이며 전체의 80%가 월평균 소득 150만 원 이하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힌다. 대졸 신입사원의 급여와 비슷한 월소득 301만 원 이상을 번 탈북자는 2%에 그쳤다.
하나원을 퇴소한 탈북자는 대부분 정부가 마련해준 임대주택에서 4인가족 기준 2000만 원의 정착 기본금을 기간별로 나눠 받으며 한국 생활을 시작한다. 2012년까지 1900만 원이던 정착지원금이 물가상승률을 고려해 100만 원 인상됐다. 독신의 경우는 700만 원을 지급받는다.
“돈 벌 곳이 유흥업소밖에…”
하지만 언뜻 보기에 적지 않은 액수인 정착지원금은 탈북할 때 도와준 브로커 비용을 치르기에도 모자라다는 것이 탈북자들의 주장이다. 브로커 비용 탓에 오히려 빚을 지고 한국 생활을 시작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한다. 북한에 남은 가족에게 한국에서 생활비를 보내야 하는 탈북자 또한 적지 않아 생활고는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다.
탈북자 대다수가 한국에서 살아온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낮은 교육 수준과 경험치를 갖고 있어 좋은 일자리를 얻기는 어렵다. 사람들이 꺼리는 이른바 3D 업종에서 일하며 저임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북한에서 살다 한국으로 넘어온 여성들의 구술을 받아 녹취한 기록에 나오는 탈북 여성의 증언은 참담하다.
박상영 셋넷학교 교장은 “탈북민은 우리와 함께 세계로 나아가야 할 동포”라고 강조했다.
“아르바이트할 때 새터민이라고 하면 안 받아준대요. 담당형사가 따라다니니까 회사 사람들이 불편하다고 하고요. 새터민은 안 받지만 조선족은 받아들인대요.”
“일하면서 북한에서 왔다고 한 번도 말 안 했어요. 중국 교포라고 그러죠. 스트레스 받기 싫어서. 사람들이 이북 새끼, 북한이 포를 쏘고 어쩐단다, 이런 말을 하면 속으로 뜨끔해요.”
“지원금을 타려면 회사에 서류를 신청해야 해요. 그 순간 회사에서 납작해지는 거죠. 북한 사람 아니라고 속였는데, 딱 정체가 밝혀지면 회사를 더는 못 다니는 거죠.”
그들에게 한국의 자본주의 경쟁체제는 머리로도 가슴으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가시밭길이다. 신용불량이 무엇인지, 그것이 어떤 일인지 모르는 이들에게 수백만 원의 정착금과 신용카드는 마법의 램프처럼 어마어마한 위력을 발휘하지만 돌아오는 대가는 너무나도 혹독하다. 박상영 셋넷학교 교장은 이렇게 말했다.
“신용카드를 함부로 긁으면 왜 안 되는지, 다른 사람 보증을 대신 서주거나 사채를 쓰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그들은 알지 못합니다. 하도 답답해서 남한에서 ‘신용불량자’란 북한에서 ‘사상범’과 같은 것이라고 설명해줬죠. 그렇게 얘기하니 어렴풋이 이해하는 듯하더군요.”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빈곤층으로 전락하거나 범죄자가 되는 탈북자가 많은 것은 정착지원금이 부족한 탓은 결코 아니라는 게 박 교장의 생각이다. 설령 지금보다 더 많은 지원금이 지급된다 해도 어떻게 유용하게 사용할지, 미래를 위해 어떻게 투자할지 감조차 잡기 어려운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 비추는 거울”
박 교장은 탈북자들이 겪는 문제는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순도 높게 보여준다고 말했다. 탈북자가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여과 없이 비춰주는 거울과 같다는 것이다.
박 교장은 또 중국에서의 경험 또한 탈북자들에게 악영향을 끼친다고 부연했다. 중국은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넘어오는 과도기에 있는 터라 돈만 벌면 된다는 식의 사고가 팽배해 있는데, 탈북자들은 그것이 자본주의인 양 착각하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탈북자들은 잘못된 자본주의를 복사기처럼 받아들입니다. 음식물에 장난을 친다거나 하는 비상식적 일이 중국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데, 굶주림과 가난에 지쳐 중국으로 넘어간 탈북자들은 그런 모습을 보고 착각합니다. ‘아, 돈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벌어야 하는 거구나’ 하는 거죠. 사정이 이런데 자본주의의 우월성을 역설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직업교육으로 시간을 채우는 게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박 교장은 탈북자 수준에 맞지 않는 대학특례입학제도 또한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탈북 청소년 대부분이 대학 진학을 바랍니다. 한국에서 살아가려면 대학은 꼭 나와야 한다는 생각을 하나원에서부터 가지게 됐다더군요.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이 죄다 고학력자다보니 직업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이해하고 고민하기보다 자신이 눈으로 본 것을 그대로 따라 하려는 경향이 생기는 겁니다. 대학만 나오면 자신이 꿈꾸던 화려한 삶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 착각하는 거죠. 탈북자들은 특례입학제도 덕분에 서울 유수의 대학을 거의 무료로 다닐 수 있으니 너도나도 대학부터 들어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대학이라는 곳은 남한 아이들이 십수 년 동안 휴일은 고사하고 명절까지 반납해가며 피 터지게 공부해도 들어갈 수 있을까 말까 한 이른바 명문대학입니다. 별다른 준비 없이 덜컥 특례로 입학한 탈북 청소년이 따라갈 학업 수준이 아닌 겁니다.”
서울만 고집하는 탈북자들
지난 10년간 120명이 넘는 탈북청소년이 셋넷학교를 졸업했고, 그중 6명을 제외한 아이들이 모두 대학에 입학했다고 한다. 셋넷학교가 정한 교육 과정을 모두 이수하지 않고 잠시 스쳐 지나간 아이들까지 합치면 그 숫자는 훨씬 많아진다. 아이들에게 대학 진학 대신 현실적 대안을 제안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이 막무가내이거나 부모와 함께 탈북한 가정의 경우는 아이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부모가 대학 입학을 강하게 원한다고 한다.
2011년 강원 화천군 간동면에서 열린 ‘북한이탈주민 초기교육 시설 제2하나원 착공식’에서 학생들이 축하공연을 하고 있다.
“물론, 대학에 가야 할 아이들도 있습니다. 반면 대학 과정을 수학할 기초학력은커녕 의사소통도 제대로 되지 않는 아이들은 대학에서 배울 수 있는 게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남한 아이들과의 괴리감 탓에 상처 입고 반발심만 키우게 될 뿐입니다. 탈북민들은 자존심이 굉장히 강해서 중도에 학업을 포기해놓고도 능력이 부족해 대학에서 적응하지 못했다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학우들이 자신을 깔보았다거나 배척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대부분이죠. 그런데도 일부에선 대학 문을 더욱 활짝 열어주자는 무책임한 발언을 하더군요. 그것은 아이들을 두 번 죽이는 일입니다.”
그가 본 탈북자 출신의 명문대생 대부분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걸친 듯 불편해 보였다고 한다. 오로지 명문대생이라는 허울만 등에 업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번 돈을 유흥비로 탕진하는 게 현실이라는 것이다.
셋넷학교는 2012년 11월 서울에서 강원도 원주로 터전을 옮겼다. 서울만 고집하는 탈북 청소년들에게 지역에서 터전을 마련하고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고 싶은 욕심에서였다. 다행히 인근 대학의 학생들이 교사 역할을 맡아 적극적으로 수업을 이끌어가고 있는 데다 뜻있는 지역 인사들의 도움으로 학교가 차츰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셋넷학교 학생들은 최근 구미에서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며 야간대학을 다니는 탈북자 출신 여성을 초청해 강연을 들었다. 이 여성의 경험담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박 교장에게도 큰 감동을 안겨줬다고 한다. 이 여성처럼 지방도시에서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내며 건실하게 살아가는 탈북자의 모습은 아이들에게 값진 산 교육이 되고 있다고 한다. 탈북자들은 자본주의 세상에 대한 환상 탓에 지방의 작은 도시에 내려가 정착할 생각은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한다.
셋넷학교의 캠프는 국내 캠프와 해외 캠프로 나뉘는데 국내 캠프는 탈북자 중 안정적으로 정착해 자기 삶을 꾸려가고 있는 이들과의 만남을 목적으로 한 것이고, 해외 캠프는 남한의 또래들과 함께 어울려 해외문화 체험과 국제봉사활동, 휴식 등을 병행하면서 자신감을 회복하고 글로벌 시민 의식을 함양하는 데 초점을 맞춰 운영하고 있다. 해외 각국을 돌며 7년째 계속해오던 해외 캠프의 거점을 최근 필리핀에 마련했다.
“탈북 청소년들이 서울만, 서울에 있는 대학만 고집하는 풍토는 우리 사회가 가진 건강하지 못한 문화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른 세대를 가르치고 바꾸기란 어렵지만 청소년 세대는 다릅니다. 변화의 가능성이 충분한 나이니까요. 이 아이들이 어떻게 우리 사회 곳곳에 안착하느냐는 통일 시대를 준비하는 우리에게 몹시 중요한 과제입니다.”
해외 캠프는 주눅 들어 있던 탈북 청소년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고 있다. 한국에선 자신들보다 영어도 잘 하고 키도 크고 아는 것도 많아 보이는 남한의 또래 아이들과 비교 아닌 비교를 하며 열등감에 젖어들 수밖에 없었지만, 막상 해외 봉사활동에 나서면 체구가 작은 탈북 청소년들이 일을 훨씬 잘한다. 아날로그적인 삶을 살다 온 이들이다보니 손재주가 좋아 무엇이든 뚝딱뚝딱 해낸다.
서독의 脫동독민 끌어안기
“남한 아이들과 함께 해외 캠프를 보내는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성과는 남한 아이들과 공통의 경험, 추억을 간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탈북민들은 남한에 대해 지극히 추상적인 교육만을 받았으며, 남한 사람들은 탈북민에게 아예 관심조차 없거나 일자리와 터전을 빼앗는 잠재적 적으로 간주하기도 합니다. 탈북민들은 우리 땅에서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우리의 이웃입니다. 우리와 함께 세계로 나아가야 할 사람들이죠.”
1998년부터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던 탈북자 수는 김정은이 집권한 이후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2012년 탈북자 수는 1502명으로 2011년 2706명에 비해 44%나 줄었다(표 참조). 탈북자가 감소한 것이 탈북자들은 물론 북한 주민들의 남한에 대한 인식이 과거보다 나빠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979년 판문점 인근 부대 소대장으로 근무하다 탈북한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장은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이들도 북한에서 온 박사를 가르치려고드는 게 현실입니다. 왜 이렇게 탈북자에 대한 인식이 나쁜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하루아침에 해결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인식의 공통분모를 찾아야 합니다. 과거에는 탈북자를 귀순용사라고 부르면서 영웅시했습니다. 지금은 환영하는 게 아니라 멸시하거나 천대합니다. 물론 우리 탈북자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죄를 짓는 사람 수도 많고….”
김형덕 소장은 독일 통일과정에서 서독인들이 탈(脫)동독민을 어떻게 끌어안았는지를 눈여겨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독의 경우 탈동독민들을 하나원과 같은 격리된 장소가 아닌, 지역 거점에 위치한 카운슬링 센터를 통해 교육하면서 서독에서 정착할 수 있게끔 도왔습니다. 물론 독일과 우리의 상황은 다르므로 우리에게 맞는 적절한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어떤 방식이 되든 하나원의 교육 내용이 더욱 실효성 있게 바뀌어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남한체제의 우월성과 경제적 우위는 탈북민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건 하나원에서 굳이 가르칠 필요가 없어요.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삼아 이들이 스스로를 책임지는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교육하고 지원하는 시스템도 필요합니다.”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 수가 2만5000명이 넘는다. 북한이 싫어 천신만고 끝에 넘어온 동포를 껴안지도 못하면서 통일을 이룰 수 있을까. 탈북자들은 북쪽에 남은 가족에게 한국 사정을 어떻게 전하고 있을까. 독일의 통일을 누구보다 바랐던 것은 서독의 경제력과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에 매료된 동독인이었으며 실제로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린 이들 역시 동독인이었음은 하나원 교육을 비롯해 탈북자의 한국 정착을 돕는 정책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