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사진이 징그러웠다”고 그는 말했다. “독한 사진…” “사진하려면 독해야 해”라고도 했다. 구순이 넘은 나이에도 눈 밝고, 귀 맑으며, 총기가 또렷했다. 독하게 또 치열하게 살아서 그러리라.
이명동 전 월간 ‘사진예술’ 발행인이 7월 24일 서울 중앙보훈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9세. 보도사진 개척자면서 방향타였고 조타수였다. 예술가로도 거인의 발자국을 남겼다.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순간을 치열하게 앵글에 담았다. 한국 사진 역사 그 자체였다. 6·25전쟁 때 육군 7사단 종군 기록사진가로 활동하며 무공훈장을 받았다. 4·19혁명을 비롯한 격변의 현장을 지켰다.
1955년부터 1979년까지 동아일보 기자로 재직하며 ‘동아사진콘테스트’와 ‘동아국제사진살롱’ 창설을 주도해 한국 사진의 지평을 넓혔다. 2011년 인촌상을 받았다.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됐다.
보병 제7사단 전투지역 중동부전선(1951년 작).
서울 종로 고려대생 시위(1960년 작). 이 사진으로 1961년 4·19혁명 제1주년기념우표가 제작됐다.
백범 김구가 서거하기 사흘 전인 1949년 6월 23일 촬영한 사진. 사진으로 남은 백범의 마지막 모습이다(1949년 작).
1950년대 동아일보 근무 시절의 이명동.
인촌 김성수 빈소를 찾은 이승만(1955년 작).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1962년 작).
전북 부안 위도(1961년 작).
전남 신안 흑산도(1961년 작).
1961년 서울시 문화상을 받는 이명동.
호국의 꽃 (1953년 작).
제주 마라도(1968년 작). 신동아 1968년 2월호에 실린 작품이다.
제주 마라도(1968년 작). 신동아 1968년 2월호에 실린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