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호

고3이 제일 공부 안 하는 학년 된 이유

文정부 학종 확대가 가져온 ‘교실 붕괴’

  • 김건희 객원기자 kkh4792@donga.com

    입력2019-11-09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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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시→학종에 의한 수시’ 입시 중심축 변화

    • 고3 교실 ‘수시로 대학 가는 게 유리’ 분위기 확고

    • 수시 늘면서 정시 영향력 급속 약화…1학기부터 교실은 ‘놀자판’

    • ‘조국 사태’ 입시 피로감 호소…수시파, 학종 하향 지원

    • 상위권과의 경쟁·학습권 침해로 이중고 겪는 정시파

    • 수업 파행 대책 시급… 교사들 “입시 일정 조정해야”

    [동아DB]

    [동아DB]

    10월 1일 오전 7시 서울 인문계 S고등학교 정문. 11월 14일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까지 한 달 넘게 남은 초가을 아침 공기는 큰 시험 앞둔 학생들의 심정만큼 스산한 기운만 감돌았다. 교문을 들어서는 학생들 얼굴은 하나같이 표정이 없고 까칠하다. 얼마나 시험 부담이 크기에 등교하는 학생들 얼굴이 메마를까. 안타까운 시선을 보내는 기자에게 이 학교 3학년 교무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공부하느라 피곤한 일부 학생도 있겠지만, 거의 상당수가 밤을 새워가며 게임을 해서 피곤할 겁니다. 일반고에는 공부를 거의 포기하다시피 하면서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이 많아요. 씁쓸합니다.” 

    대한민국에서 11월은 ‘수능의 달’이다. 대학입시에서 수능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수능을 잘 풀면 인생이 잘 풀린다’란 말을 고3 교실의 급훈이자 고3 수험생의 학구열을 불러일으키는 격언으로 꼽는다. 이맘때 매스컴을 장식하는 입시 풍경에는 수능을 목전에 두고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고3 교실이나 수능 막바지 준비에 박차를 가하는 수험생의 애환을 담은 모습이 거의 대부분이다. 1994년 처음 수능이 실시된 이래 고3 교실에는 적막과 긴장감이 감돌았다.

    언제 적 高3 교실?

    이는 이제 옛말이 됐다. 오늘날 고3 교실 분위기는 수능 공부에 열중하던 과거와는 사뭇 다르다. 바야흐로 ‘수시 중심, 학종(학생부종합전형) 시대’이기 때문이다. 수시모집 전형은 본고사가 폐지된 1997학년도 처음 도입됐고, 수시 선발 비중은 지난 22년간 꾸준히 늘어났다. 1980년대생이 수능을 치른 2000년대엔 정시로 대학 진학하는 양상이 일반적이었으나 1990년대생부터는 수시로 대학 가는 게 대세가 됐다. 최근에는 문재인 정부가 집권한 2018학년도를 기점으로 수시 선발 비율이 70%대를 돌파한 상태다. 

    ‘수시 천국’이 되면서 고3 교실에는 폐해도 뒤따른다. ‘고3 교실 붕괴’가 그것이다. 교실 붕괴는 교사가 학생에 대한 통제권을 잃은 상황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수험생 10명 중 7명이 수시로 대학에 진학하는 상황에서 수능의 영향력이 감소할수록 그만큼 공부를 손에서 놓는 고3 학생도 늘어나고 있다는 게 교육계의 중론이다. 



    더 심각한 대목은 수능이 끝나면 시작되던 교실 붕괴 현상이 이제는 3학년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난 직후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심지어 학기 초인 3월 말부터 교실 붕괴가 시작되는 고3 교실도 있다. 최근 일선 고등학교 교사들 사이에서는 ‘농담 반 진담 반’ 식으로 “고3은 고교 3년 중 제일 공부 안 하는 학년”이라는 말이 퍼지고 있다. 이는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지속적으로 수시 선발 비율과 학종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하면서 고착화된 현상이다. 


    2009 개정 교육과정 요지는 학종 중심의 수시

    세간에서 ‘수시 세대’ ‘학종 세대’라 부르는 현재 고3 학생들은 대부분 2001년생들이다. 이들은 2009 개정 교육과정으로 학습하고 대입을 치르는 막차를 탄 학년이다. 애초 취지로만 따지자면 2009 개정 교육과정은 분명히 ‘이상적인 정책’이다. 7차 교육과정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한 방법으로 도입했기 때문이다. 자율과 창의성을 중심으로 교육하자는 뜻에서 탄생한 7차 교육과정은 교과서만 자율적일 뿐 학교 교실에선 여전히 주입식 수업이 행해졌다. 학교 여건이 ‘실험과 실습을 통해 개념을 이해한다’는 교과서의 취지를 뒤받쳐주지 못하면서 결국 ‘실패한 교육정책’으로 끝났다.

    이런 문제를 보완하고 학교의 자율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교육부가 마련한 방안이 2009 개정 교육과정이었다. 이때 학종에 의한 수시 선발 비중을 확대했다. 실제 현재 고3 학생에게 적용되는 2020학년도 대입전형 수시 선발 비중은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에 따르면 수시 선발 비중은 77.3%로, 2019학년도(76.2%)보다 1.1%포인트 상승했다. 모집 인원 역시 26만8776명으로 2019학년도(26만4641명)보다 3895명 증가했다. 반면, 정시 선발 비율은 22.7%(7만9090명)로 2005년 이후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교육계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수시 확대, 정시 축소’ 기조와 대학들의 ‘학생 선점’ 경쟁이 함께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고3 교실에는 ‘수시로 대학 가는 게 유리하다’는 분위기가 확산하면서 학생과 학부모는 물론 교사들 또한 수시로 대학 가기에 혈안이 돼 있다. 오죽하면 ‘수시 납치’란 말까지 탄생했을까. 수시 납치는 수험생이 안정적인 합격을 위해 수시모집 전형에 하향 지원했다가 합격해 정시전형 지원의 기회를 박탈당하는 경우를 뜻하는 21세기 신조어다. 입시 전문가들은 “수능시험 성적이 아무리 좋아도 수험생이 수시모집 전형에 합격하면 정시 지원이 어렵기 때문에 수시 납치의 가능성을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수업 내용 이해하지 못하는 고3

    현행 수시모집 전형에서 수험생은 총 6차례 복수 지원할 수 있다. 수시모집 전형 유형은 ▲학종 ▲교과전형(학생부교과전형) ▲논술전형 ▲특기자전형 총 4가지로 구분된다. 수험생들이 선호하는 서울대를 비롯한 상위권 ‘인(in)서울’ 대학은 학종 선발 인원이 상대적으로 많다. 2020학년도 수시 대입 정원 26만8776명 중 24.4%(8만5168명)를 학종으로 선발한다. 학종은 자기소개서,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 교사 추천서를 바탕으로 대학이 학생부를 정성평가해 1차 합격자를 선발한다. 이후 대부분의 대학은 면접을 본다. 최근 학종 비중이 급증해 수시 교과전형, 정시와 더불어 대입의 주요 3대 전형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다. 

    학종은 취지만 놓고 보면 비판할 데가 없다. 지나친 점수 경쟁, 학생 줄 세우기를 통한 서열화가 아닌 학생의 잠재력과 발전 과정을 중요하게 본다는 점에서 더할 나위 없이 이상적인 제도로 간주한다. 애초에 잠재력을 지닌 학생을 선발하기 위한 전형이므로 ‘자신의 잠재력과 발전 과정을 어필한다는 점’에서 수험생에게 자기화의 기회를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학생들의 입시제도 선택권을 보장하는 동시에 사교육비를 경감하고 고교 교육 정상화까지 도모하는 ‘일석사조 효과’가 있다. 

    그러나 이런 취지가 무색할 만큼 학종이 고3 교실의 파행 수업을 부추기고 있다. 사실상 학종은 고교등급제가 암묵적으로 실시되고 있어 특목고·자사고·비평준화 명문고 학생의 경우 상대적으로 낮은 내신으로 합격할 수 있는 전형이다. 반면에 일반고 학생의 경우에는 최상위권 내신일 때 합격을 기대해볼 수 있다. 당연히 학종으로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는 일반고 학생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내신 경쟁에서 3등급(상위 21%) 밖으로 밀려난 대다수의 고3 학생들이 직면한 현실은 거의 절망적이다. 수험 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3월 초, 수시냐 정시냐 정하지 못한 채 열의를 가지고 공부에 임한다. 내신 관리에 힘쓰는 동시에 수능 공부에도 전념한다. 작심은 한 달을 못 간다. 수업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학교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데, 수능 공부가 잘될 리 없다. 다음은 경기도의 인문계 H고등학교 영어교사 이모 씨의 설명이다.

    수시파, 정시파로 나뉘는 고3 교실

    “주입식 교육, 강의식 수업에서 탈피한다는 교육부 방침에 따라 고교에서도 교사의 재량에 따라 활동식 수업이 이뤄집니다. 대부분이 토론·체험형 수업이죠. 사실 이런 형태의 수업은 학습의 기초가 잘 다져진 후에 적용해야 효과가 있어요. 물론 최상위권 학생들은 예외입니다. 이들은 강의식 수업이든 활동식 수업이든 어디서나 실력을 발휘해요. 문제는 대다수 학생의 경우인데, 기초 개념을 쌓아야 할 고1 때부터 활동식 수업을 하는 건 옹알이하는 아기에게 웅변해보라는 얘기와 같아요. 고3 학생이 심화 수준의 공부를 따라가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죠.” 

    활동식 수업은 지식 주입이 아닌 학업 역량 강화에 목표를 둔다. 평가 역시 지필 평가보다는 수업 중 학생의 참여 활동 등을 관찰해 평가한다. 교육부는 교사들에게 학생의 참여를 높이고 협력을 도모할 수 있는 모둠활동이나 토론 같은 여러 가지 수업 방식을 활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활동 대부분이 진로와 적성에 맞춰져 있긴 하지만, 학생들에겐 이조차 귀찮음의 대상이다. 발표에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의 수업 태도는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활동식 수업은 학교 시험이나 수능 대비에는 적합하지 않아 불만인 학생이 많다. 궁여지책으로 교사들은 활동식 수업을 수행평가 점수에 반영한다. 그래야 학생들의 태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교사 이씨는 이에 대해 이렇게 자조한다. 

    “활동식 수업이 제대로 운영이라도 되면 좋을 텐데, 학교 현실에서는 어려운 일이에요. 대학 진학이 유일의 목표인 일반고에서는 많은 학생이 시험 대비 외에는 다른 활동을 할 마음의 여유가 없어요. 활동식 수업이 지지부진하게 이뤄지는 점도 문제이지만, 활동식 수업의 원래 취지를 살리지 못하는 게 더 큰 문제라고 봐요.”

    하향 지원은 차선 아닌 차악?

    8월 25일 서울 여의도 63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0 성균관대 수시 지원전략 설명회. [동아일보]

    8월 25일 서울 여의도 63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0 성균관대 수시 지원전략 설명회. [동아일보]

    3학년 1학기 말에 이르면 이른바 ‘수시파’와 ‘정시파’로 고3 학생들이 나뉜다. 수시파는 말 그대로 수시 준비하는 학생들을, 정시파는 정시 준비하는 학생들을 뜻한다. 수시파와 정시파는 각기 다른 길을 간다. 수시는 내신 성적 3학년 1학기까지 반영하지만, 일부 수시파는 일찌감치 학교 공부를 작파하고 자기소개서나 면접 준비 등에 열중한다. 3학년 때 열심히 공부해 내신 등급이 오르더라도 자신의 입시 결과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판단 때문이다. 

    ‘인서울’ 대학 진학 가능성은 낮아지고, 입시지옥에서 하루빨리 탈출하고 싶은 수시파의 수시 전략은 차선(次善)이 아닌 차악이다. 보통 6개의 수시 지원 카드는 상향 지원 2장, 적정지원 2장, 안정 지원 2장으로 나눠 활용한다. 더러 하향 지원을 고려하는 경우가 있지만 ‘수시 납치’의 가능성 때문에 극히 드물다. 그러나 일부 수시파는 수시 지원 카드 6장 중 절반 가량을 학종 전형에 하향 지원하는 데 써버린다. 심지어 6장 모두 학종에 하향 지원하는 학생도 있다. 

    경기도 인문계 B고등학교 수학교사 안모 씨는 “학생과 교사는 물론 학부모 모두 입시 피로감이 상당하다. 입시제도가 자주 바뀌는 탓도 크지만, ‘조국 사태’를 통해 교육 불평등의 실체를 목도한 점이 더 큰 영향을 끼쳤다. 자신과 부유층 자녀가 어떻게 다른 생의 길을 가는지 알게 된 학생들은 어떻게 해서든 수시로 입시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며 말을 이었다. 

    “올해는 고3 수험생이 전년에 비해 6만 명가량 줄어들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상향 지원 경향이 나타날 수 있다는 내용의 언론 보도가 나오자 학생들이 지나치게 위축된 나머지 안전·하향 지원하는 경향이 뚜렷해졌습니다. 한 학생은 수시 지원할 만한 수도권 소재 대학이 없어 서울 소재 전문대 수시 지원을 고려했다가 이마저도 쉽지 않게 되자 연고 없는 지방의 4년제 대학에 하향 지원했어요. 그 대학에 합격하더라도 한 학기 다니다 휴학하고 입시에 재도전할 거라 하더군요.” 

    교과전형은 대입 전형 유형 중 가장 많은 학생을 선발한다. 2020학년도 대입 정원 34만7866명 중 43.4%(14만7345명)를 교과전형으로 뽑는다. 중하위권 대학, 지방 소재 대학일수록 교과전형으로 모집하는 인원이 많다. 그래서 중하위권 학생들도 관심을 갖는 수시 전형 중 하나다. 교과전형은 크게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적용하는 대학과 적용하지 않는 대학으로 나뉘는데, 수능 최저학력기준 때문에 자칫 고배를 마실 위험이 있다.

    게임, 시험 불응, 무단결석… 고3 교실 ‘난장판’

    학생부종합전형 확대를 요구하는 교육단체와 정시 확대를 요구하는 단체가 2018년 4월 25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정문에서 서로 마주 보며 피켓을 들고 있다. [원대연 동아일보 기자]

    학생부종합전형 확대를 요구하는 교육단체와 정시 확대를 요구하는 단체가 2018년 4월 25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정문에서 서로 마주 보며 피켓을 들고 있다. [원대연 동아일보 기자]

    한 입시학원 관계자는 “교과전형 수시파도 하향 지원 전략을 활용한다. 하향 지원할수록 그만큼 수능 최저학력기준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충족시킬 정도로만’ 수능 공부에 임한다. 근래 들어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고3 교실 황폐화 현상은 더욱 가속화된다. 교사 안씨는 요즘 고3 교실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수시파는 스마트폰이나 노트북만 들고 등교해요. 교실에선 삼삼오오 앉아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들으며 잡니다. 그나마 이 정도까지는 좀 낫죠. 매일 게임 대항전이 열리는 고3 교실도 있어요.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난 7월 중순 직후 수시파 중심으로 시작된 모바일 게임 경쟁이 사이버 머니를 걸고 펼치는 게임 대결로까지 번진 거죠. 충격적인 건 우리학교만 그런 게 아니란 겁니다. 동료 교사 얘기로는, 소위 공부 좀 한다는 강남의 고교 분위기도 그렇다고 해요.” 

    수시 접수를 시작하는 9월부터는 고3 교실의 수업 파행이 본격화한다. 서울의 인문계 C고등학교 3학년 부장교사 황모 씨는 얼마 전 2학기 중간고사 시험기간에 3학년이 수학 시험을 치르는 교실을 순회하다가 아연실색했다. 문제지를 나눠준 지 5분도 채 안 돼 객관식 답안지를 마킹하고 엎드려 자는 학생이 절반이 넘은 상황. 수학시험이 어려워 그런 줄로 알았으나 다른 교과목 시험시간에도 비슷한 장면이 연출됐다. 아예 응시하지 않는 학생도 있다. 교사 황씨는 “3학년 2학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시험은 대입 수시모집에서 내신 성적에 반영되지 않고, 정시에서 수능 성적 100% 반영하는 대학들이 있기 때문에 학생들의 관심이 없다”며 씁쓸해했다. 

    출결 상황도 나날이 나빠진다. 학교에 늦게 등교하는 학생은 물론 무단 조퇴하는 학생까지 대거 나타난다. 심지어 등교조차 하지 않는 학생들도 있다. 수능 공부나 면접을 준비하기 위해 독서실, 학원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정시파를 둘러싼 현실은 더 암울하다. 고3 교실에서 그나마 학업 의욕을 불태우는 이들은 소수파다. 정시파는 30%도 채 안 되는 정시 선발 비중을 특목고·자사고 최상위권 학생이나 재수생의 몫이라 여긴다. 현실적으로 일반고 학생이 이들과 경쟁해 대학에 합격할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정시파는 학습권 자체를 위협받는 처지까지 내몰린다. 면학 분위기가 좋지 않은 교실에서 온전히 수능 공부에 전념해야 하는 처지다. 이들은 자신의 선택 과목이 아닌 수업시간에는 귀에 이어폰 끼고 인터넷 강의를 듣거나 다른 과목 공부를 한다. 교사가 제지하면 학생이 “선생님이 제 인생 책임질 거냐”며 반문한다.


    30%도 안 되는 정시 비율에 정시파 ‘암울’

    교사 안씨는 “간혹 자습시키지 않고 수업한다고 교사들이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항의를 받기도 한다. 그래서 고3 교실의 수업시간은 자습시간이 되기 일쑤다. 학교 교실인데 수업하지 말라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되는 게 과연 정상인지 묻고 싶다. 교사도 사람인지라 이럴 때면 깊은 회의감이 몰려온다”고 털어놓았다. 

    정부는 수험생의 입시제도 선택권 보장을 목적으로 한 학종, 교과전형, 정시 등 다양한 입시 선택지를 마련했다지만, 학생 입장에서는 세 가지 입시를 모두 준비해야 한다. 우왕좌왕하다가 이도저도 안 돼 포기하기 일쑤다. 교직 경력 30년차 수석교사 강모 씨는 “고3 교실에서 수업이나 교육 의미가 사라진 건 이미 오래”라며 “결과적으로 입시제도가 고3 교실을 완전히 무너뜨린 셈”이라고 일갈했다. 

    고3 교실의 수업 파행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수년 전부터 고민해온 우리 교육의 고질병이다. 지난 8월 교육부와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은 운전면허증, 컴퓨터 자격증 취득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내용을 담은 ‘수능 이후 학사운영 지원계획’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금융감독원·국세청과 협력해 마련한 금융교육, 근로교육, 세금교육 등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이는 모두 ‘수능 이후’ 고3 교실 정상화 방안일 뿐이다. 

    수석교사 강씨는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이 원칙을 내세우며 ‘정상 등교’ 시켜서 ‘정상 운영’하라며 학교를 압박한다. 정부의 책임 회피용 발언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이런 비정상적 행태가 나타나는 게 좋은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지 못한 학교 탓이고, 성실하지 못한 학생들 탓인가. 고3 교실의 현실을 모르는 교육부는 오늘도 수능 끝난 직후 고3 교실의 수업을 정상화하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라며 교육 당국을 향해 날을 세웠다. 

    그러면서 그는 “이제라도 정부와 교육부가 현실을 직시하고 수능 이전 고3 교실의 수업 파행에 대한 대책도 마련해주길 바란다”고 지적했다.

    입시 일정 조정 불가능?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 방법은 없을까. 현행 입시 일정은 3학년 1학기까지 반영된 학생부를 비롯한 각종 서류와 수시 원서를 9월 둘째 주에 접수한다. 그래야 11월 수능일 이전까지 수시 지원자에 대한 정성평가를 마칠 수 있다. 

    이에 대해 교사들은 “입시 일정 조정만으로도 해결이 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11월 말에 기말고사, 12월 초에 수능을 보고, 12월 말 내신·수능 성적이 나온 이후 다음 해 1월 초 수시와 정시를 같이 모집하면 학생들이 학기를 마칠 때까지 정상적으로 등교해 공부하고, 대학 입시를 준비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학교 운영 정상화는 물론 고3 교실 붕괴 문제가 해소될 수 있다. 내신과 수능 성적이 모두 나온 상태이므로 수험생은 자신에게 맞는 대학 전형을 비교·선택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이에 대해 대교협 측은 “학종은 정성평가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서류를 면밀하게 검토할 수밖에 없는데, 한 달에서 두 달 정도 소요된다. 수시·정시로 나뉜 현행 대입 체제하에서는 수시전형 일정을 조절하는 방안으로는 고3 2학기 수업을 정상화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한편 교육부는 요즘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 정리에 집중하고 있다. 조국 법무부 장관 자녀 입시 특혜 의혹이 불거진 이후 학종이 ‘금수저 전형’이란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이른바 ‘자동봉진(자율·동아리·봉사·진로활동)’으로 불리는 비교과 영역 폐지라는 극약 처방을 검토하고 있다. 

    교사들은 “대책이 발표되면 전국의 고등학교에는 또 한 번 한바탕 난리가 나겠지만 어쨌든 학생들은 입시정책에 맞춰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과연 새로운 입시 대책은 앞으로 입시를 치를 예비 고3 교실과 고3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신동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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