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호

“나이 들어서야 김성근 감독님이 왜 혹독했는지 알았어요”

김원형 SSG 랜더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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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혜연 기자

    grape06@donga.com

    입력2022-12-26 10:4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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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원형 SSG랜더스 감독은 프로야구 출범 40년 첫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 기록 등 대기록을 쌓으며 2022년 한국시리즈에서 통합우승을 거뒀다. [홍중식 기자]

    김원형 SSG랜더스 감독은 프로야구 출범 40년 첫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 기록 등 대기록을 쌓으며 2022년 한국시리즈에서 통합우승을 거뒀다. [홍중식 기자]

    KBO리그 개막 후 최다 연승(10연승), 구단 역대 최다승(88승), KBO 역대 최초 와이어 투 와이어(Wire to wire·정규시즌 처음부터 1위를 한 번도 놓치지 않고 마지막 경기에서 최종 우승을 거두는 일).

    2022년 11월 8일, 한국시리즈(7전4승제) 6차전에서 키움을 상대로 4대 3 역전승을 거두고 우승 트로피를 거머쥔 SSG 랜더스가 거둔 대기록이다. SK 와이번스에서 간판을 바꿔 단 지 2년 만에 거둔 쾌거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추신수·김광현·김강민 등 프랜차이즈 스타 선수들이 앞에서 팀을 이끌고, 야구단에 사활을 건 구단주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뒤에서 물심양면으로 팀을 밀어준 것이 우승 요인으로 꼽힌다.

    첫 우승 거두고 최고 수준 재계약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승리 요인이 바로 김원형(51) 감독이다. 감독 데뷔 2년차인 그는 핵심 전력인 투수진을 안정적으로 구성하고, 거를 타선 없는 타자들을 적시에 내보내 우승을 거두는 기염을 토했다. 그 덕에 김 감독은 시즌 종료 직후인 11월 17일 SSG 랜더스와 계약금 7억 원, 연봉 5억 원, 3년 총액 22억 원에 재계약을 맺었다. KBO리그 현역 감독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승리의 기쁨이 채 가시기 전이던 11월 말, 서울 충정로 동아일보 스튜디오에서 김 감독을 만났다. 1990년대 쌍방울 투수로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의 기개 넘치던 모습과 2022년 시즌 내내 보여준 감독으로서의 중후함이 오버랩 되는 듯했다. 우승 소감을 묻자 김 감독은 옅게 웃으며 “시즌 내내 우승을 목표로 달려왔는데 달성해서 개인적으로 매우 기분 좋고, 목표를 이루게 해준 선수들에게 다시 한번 고맙다”며 공로를 선수들에게 돌렸다.



    시즌 초반부터 1위를 사수했기 때문에 통합우승을 예감했을 것 같습니다.

    “시즌 초반에 경기가 잘 되고, 선수들도 컨디션이 좋다 보니 자신감도 컸고, 결국 마지막에도 1등하지 않겠나 생각했죠. 한편으로는 위기도 있었어요. 시즌 중반부터 선수들이 체력적으로 떨어지기도 했고, 경기가 잘 안 풀리는 상황도 생기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점점 2위(키움)와의 격차도 좁혀져서 개인적으로 걱정도 했습니다. 어쨌든 선수들이 서로 독려하며 잘 뭉쳤고, 그런 단합력 덕분에 우승할 수 있었죠.”

    우승을 결정지은 6차전이 쉽지 않았습니다. 경기 초반부터 키움이 2대 0으로 앞서갔고, 3회 임지열, 6회 이정후에게 두 차례 홈런을 맞으며 위기를 겪기도 했습니다. 결정적으로 9회초 1루수 오태곤의 호수비로 4대 3 역전승을 거뒀는데, 어떻게 평가하나요.

    “5차전도 쉽지 않았는데 그때 극적으로 승리를 가져온 덕분에 다행히 6차전에서 끝낼 수 있었어요. 솔직히 6차전에서 조금 끌려가는 양상의 경기를 했죠. 폰트 선수가 컨디션이 그렇게 좋은 상태가 아니었는데도 선발로 나서 7이닝이라는 놀라운 투구를 해줬어요. 거기에다가 김성현 선수가 적시에 2타점 2루타를 치면서 역전을 이끌어냈고요. 모든 선수가 끝까지 집중력 있게 경기를 치러 5·6차전에서 역전승을 거둘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와이어 투 와이어를 달성해 시즌 내내 큰 어려움은 없었을 것 같습니다만, 기억에 남는 어려웠던 경기가 있나요.

    “페넌트레이스(장기 리그전)를 하다 보면 144경기를 해요. 경기가 너무 쉽게 풀려 이기기도 하는데, 경기를 잘해도 결과적으로 패배하는 등 변수가 너무 많아요. 패배할 때마다 경기를 일일이 되짚어 보면 분명히 원인은 있죠. 특히 역전패를 한 경기들은 아쉬움이 크게 남고, ‘그때 이렇게 했더라면’ 하고 후회하기도 하죠. 그럴 생각이 들 때마다 ‘지나간 경기는 잊고 오늘 경기에만 집중하자’하고 나갔습니다.”

    소속 선수들이 다 고맙겠지만 특별히 고마운 선수가 있나요.

    “이 질문이 제일 어려워요(웃음). 팀이 우승할 수 있던 원동력은 모든 선수들이죠. 정규 시즌에 개인 성적이 떨어진 선수도 있었고, 좋아진 선수도 있었어요. 중요한 건 고참 선수들과 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선수들이 자기 몫을 잘 해줬다는 거예요. 투수 쪽에서는 외국인 선수도 잘했고, (김)광현이가 선발 투수로서 중심을 잡으면서 고참 역할을 잘 해줬어요. 야수 쪽에서는 추신수·김강민 이런 최고참 선수들이 잘 뛰어줬고, 한유섬 선수가 주장 역할을 잘하면서 선수들을 이끌었죠. 이외에 최정·김성현·박성한·최지훈 등 젊은 선수들도 제 역할을 해줬어요. 아무리 젊어도 풀타임으로 경기를 뛰면 체력적으로 엄청 힘든데 ‘우리는 젊어서 체력이 좋다’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박)성한이는 유격수인데도 힘든 내색도 않고 거의 전 경기를 뛰다시피 했어요. 이번 시즌에 야구에 욕심이 많은 선수들이 다 모여서 좋은 결과를 이끌어냈어요. 특정 누군가를 꼽기보다는 모두에게 고맙습니다.”

    에이스 투수에서 감독계 신성으로

    김원형 감독은 프로야구가 없던 1970년대 유년 시절, 자석에 당겨지듯 야구에 빠져들었다. 동네에서 친구들이 야구하던 모습을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할 정도로 그에게 야구의 첫인상은 강렬했다. 다니던 초등학교에 야구부가 생겼고, 누가 권유할 것도 없이 먼저 가입했다. 이후 야구 명문 전주고를 거쳐 에이스 투수로 떠올랐고, 1991년 쌍방울 레이더스에 입단했다.

    데뷔 첫해부터 1군에서 뛰던 그는 첫 경기에서 당대 최고의 스타 선동열과 맞대결해 최연소 완봉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이후 SK 와이번스로 간판이 바뀔 때까지 21년간 한 팀에서 545경기를 뛰며 134승을 거뒀다. 역대 통산 9위의 전적이다.

    위기가 찾아온 건 2009년. 왼쪽 팔꿈치 부상으로 수술을 받고 전력에서 이탈했다가 이듬해 복귀하는 등 부침을 겪던 김 감독은 2011년 39세 나이로 은퇴를 선언했다. 그 뒤 9년간 SK·롯데·두산 등에서 코치로 지도자 경력을 쌓았고, 2021년부터 SSG 랜더스의 지휘봉을 잡았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야구와 함께했는데, 이 길을 선택한 것에 만족하나요.

    “저희 세대는 힘든 과정이 많았어요. 훈련 강도가 높았고, 감독님과 선배들한테 많이 혼나기도 했죠. 왜 그렇게 버텼는지 생각해 보면 답은 간단해요. 야구가 너무 좋았거든요. 태어나고 자란 도시가 전주인데 당시 고등학교를 졸업해도 프로야구 선수가 되기 어려운 환경이었어요. 야구를 사랑했지만 특별한 목표는 없었고, 프로야구 선수도 그냥 막연한 꿈에 불과했어요. 그러다 졸업할 때 운 좋게 지역 프로야구 팀이 생기면서 입단하게 됐죠. 제 철학이 ‘하루하루 열심히 하자’거든요. 하루하루 즐겁게 야구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1991년에 선동열 선수와 맞대결에서 최연소 완봉승, 2007년에는 SK 와이번스 주장으로서 우승, 이번에 SSG 랜더스 감독으로서 우승을 경험했는데 언제 가장 기뻤나요.

    “어릴 때는 얼떨떨했어요. 그때는 1군에서 볼 던지는 자체가 즐거웠죠. 그날은 정말 재수로 좋은 결과가 나왔던 것 같고요. 2007년에 주장으로 우승했을 때 사실 선수로 처음 우승한 거라 너무 행복했죠. 평생 잊지 못할 기억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또 그건 너무 오랜 과거가 됐잖아요(웃음). 지금은 이번 시즌 우승한 게 더 기분 좋아요. 선수일 때는 팀의 성적과 별개로 개인 성적에 의해 기분이 달라지기도 하죠. 반면 감독은 모든 면에서 다 평가받기 때문에 시즌 내내 걱정도 많고 부담도 커요. 그래서 이번 우승이 가장 좋습니다.”

    투수로서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을 뒤로하고 2011년 부득이하게 은퇴를 선언했는데, 아쉬움은 없었나요.

    “은퇴할 당시 선수로서 나이도 많았지만 팔이 볼을 던질 수 있는 상태가 아니어서 스스로 은퇴를 결정했어요. 크게 아쉬울 건 없는데 뒤돌아보면 딱 한 가지가 걸리더라고요. 은퇴 전에 마운드에서 마지막으로 한 번, 1이닝이라도 던졌으면 어땠을까. 그런데 그런 환경을 감독님이 안 만들어준 게 아니라 팔 상태가 안 좋아서 던질 수가 없었어요. 투수로 마운드에 수십 수백 번 올라가는 게 당연하던 시절이 지나고, 투수코치로 일하면서 마운드에 섰을 때 너무 낯설더라고요. ‘선수일 때 당연하던 것들의 소중함을 일찍 알았더라면…’ 하는 생각과 ‘조금만 더 던질 수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기는 합니다.”

    2022년 감독으로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는데, 팀 운영에 특별한 철칙이나 철학이 있다면.

    “야구를 잘하는 선수는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고, 야구를 조금 못하면 관심을 덜 받죠. 그래서 잘하는 선수든 못하는 선수들 최대한 똑같이 대하자는 마음을 갖고 있어요. 절대적으로 공평할 수는 없겠지만 최대한 서운함이 없게끔 똑같이 대하고 싶어요. 그게 개인적인 철칙이고 철학인데, 선수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좀 더 노력해야 할 것 같고요.”

    감독으로서 존경하거나 배울 만한 점이 있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나요.

    “선수 경력 21년 중에 김성근 감독님과 20대 중반, 30대 중반 5년씩 10년을 같이했어요. 김성근 감독님은 백 마디 말보다 여러 가지 훈련을 했어요. 20대 때 처음 감독님 밑에 있을 때는 너무 힘들어서 ‘이걸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불평불만이 많았어요. 30대 때는 생각이 바뀌었어요. 체력은 20대가 더 좋지만 훈련을 꾸준히 하고 관리만 잘하면 30대도 좋은 선수의 요건을 갖출 수 있겠더라고요. 그제야 감독님이 왜 혹독한 훈련을 하는지, 왜 훈련이 중요한지 알게 됐죠. 저도 감독으로 부임하고 선수들 상태에 따라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지 찾아서 훈련하고 있어요. 또 질책보다는 칭찬도 가끔 해주고요. 지금 생각해 보면 김성근 감독님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았나 싶어요. 존경합니다.”

    지난 우승은 잊고 새 우승에 도전

    선수들의 끈끈한 결속력, 구단주와 팬들의 열렬한 지지, 그리고 김원형 감독의 융합 리더십으로 SSG 랜더스는 간판을 바꿔 단 지 2년 만에 통합우승을 거뒀다. 그러나 한 번 우승했다고 해서 2023년에도 우승하리란 보장은 없다. 승리에 도취하기보단 전열을 가다듬고 기세를 이어나가야 한다. 그래서 김원형 감독은 비시즌에도 마음을 놓지 않는다.

    SSG 랜더스를 상대로 많은 팀이 칼을 갈고 있을 것 같습니다. 비시즌 동안 어떤 준비를 할 계획인가요.

    “쉼 없이 달려온 선수들이 이 시점에 휴식을 취하고 여러 가지 즐거움을 누리고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굉장히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어쨌든 2022년 우승은 지나갔어요. 선수들이 2023년에도 우승할 수 있도록 준비를 빨리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쓴소리로 들릴 수 있겠지만 프로야구 선수는 어쨌든 직업의식이 있어야 하거든요. 야구 선수는 정해진 정년이 없어요. (김)강민이도 (추)신수도 마흔이 넘었는데 선수 생활을 하고 있죠. 꾸준히 자기 관리를 했기 때문에 가능한 거예요. 그래서 젊은 선수들에게 ‘스스로 철저히 관리해야 오래간다’고 진심으로 얘기해 주죠. 또 건강해야 좋은 성적을 낼 수 있고요. 선수들이 1월까지 쉬면서 훈련도 충실히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2023년 우승을 위한 각오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지난 시즌 제일 행복한 사람이 저라고 생각합니다. 옆에서 도와주신 분도 너무나 많았고, 선수들도 목표 의식이 뚜렷했기 때문에 대기록을 쌓았다고 봅니다. 무엇보다 인천 SSG 랜더스 팬분들이 시즌 관중 동원 1등이라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정말 뿌듯하고 감사한 기록이라고 생각하는데 또 그만큼 찾아올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목표가 생겼고요. 힘을 내서 2023년에도 우승으로 보답하고 싶습니다.”



    정혜연 차장

    정혜연 차장

    2007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여성동아, 주간동아, 채널A 국제부 등을 거쳐 2022년부터 신동아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금융, 부동산, 재태크, 유통 분야에 관심이 많습니다. 의미있는 기사를 생산하는 기자가 되기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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