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脫중동 공백 노려
네타냐후-시진핑 만난다지만…
중동서 中 한계 명확
러시아보다도 영향력 낮아
중국 신장웨이우얼자치구 우루무치에서 촬영한 구금 시설. 서방은 중국 당국이 이곳에서 위구르인을 상대로 각종 잔혹 행위를 한다며 규탄해 왔다. [AP뉴시스]
이스라엘과 미국은 가까운 우방으로 외교·안보 면에서 밀접한 행보를 보여왔다. 통상 이스라엘 총리는 취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백악관의 초청을 받고, 미국 대통령을 만나 중동 이슈를 중심으로 향후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하는 게 관례였다.
그런 점에서 네타냐후 총리가 7개월이 되어서야 백악관의 초청을 받은 모습은 이례적이다. 특히 네타냐후 총리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긴 기간 총리로 재임한 이른바 ‘국민의 두터운 지지’를 받고 있는 정치인이란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AP뉴시스]
유대인 정착촌 문제는 팔레스타인 영토에 유대인 집단 거주지를 늘리는 조치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갈등의 핵심 원인 중 하나다. 이스라엘은 미국과 관계도 중요하지만 러시아와 척을 지는 것도 어려운 상태다. 이란과 시리아 같은 중동 국가에 러시아의 영향력이 상당해서다. 이 같은 배경 때문에 이스라엘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중립을 선택했다. 네타냐후 정권의 뜻대로 사법부 권한이 약화되면 의회 과반 동의 시 대법원 확정 판결을 뒤집을 수 있다.
이스라엘 텔아비브대에서 중동학 박사학위를 받은 성일광 고려대 중동이슬람센터 교수(한국이스라엘학회장)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재임 시절에도 미국과 이스라엘의 사이가 소원해졌다”고 설명했다. 이는 미국과 이란의 관계 때문이다. 이란과 이스라엘은 앙숙이라 할 정도로 사이가 나쁜 나라다.
성 교수는 “당시 미국은 이란과 적극적으로 핵 협상을 진행하고, (이란의) 무장 정치단체들을 이용한 지역 영향력 확장 전략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아 이스라엘과 관계가 소원했다”며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처럼 이스라엘 총리와의 만남이나 대화에도 소극적인 모습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AP뉴시스]
中, 중동에서 ‘빌드업’ 시작
네타냐후 총리는 지금까지 중국을 네 번 방문했다. 중국과 이스라엘 간에 민감한 문제 혹은 갈등은 딱히 없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중국 관계에는 분명한 거리가 있었다.기본적으로, 중국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분쟁(이·팔 분쟁)에서 팔레스타인 편을 들어왔다. 유엔에서 진행되는 이·팔 분쟁 관련 표결에서 중국은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쪽에 주로 투표해 왔다. 이스라엘을 겨냥한 조치는 아니었지만, 중국은 이스라엘이 가장 치명적인 ‘주적’으로 여기는 이란과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네타냐후 총리가 바이든 대통령보다 시 주석을 먼저 만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외교가에서 화제가 되는 게 당연하다. 중국의 대(對)중동 정책 전반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계기이기도 하다.
사실 네타냐후 총리의 중국 방문이 아니더라도 올해 중동에서 중국의 존재감은 남달랐다. 물론 그동안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을 통해 중동 국가들과 다양한 경제협력을 진행해 왔다. 알자지라방송에 따르면 중국은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약 2730억 달러(약 356조3470억 원)를 투자했다.
반면 올해 중국은 과거 미국이 사실상 독식해 왔던 ‘중동 내 갈등 중재’에서 눈에 보이는 성과를 거뒀다. 이는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중국은 경제뿐 아니라 외교·안보 이슈에서도 중동의 핵심 플레이어에 어울리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사우디-이란 관계 회복 중재
3월 10일 중국 베이징에서 무사드 빈 모하메드 알아이반 사우디아라비아 국가안보보좌관(왼쪽)과 알리 샴카니 이란 국가안보회의 의장(오른쪽)이 중국 외교 사령탑인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을 가운데 두고 악수하고 있다. [AP뉴시스]
걸프만을 사이에 두고 있는 사우디와 이란은 중동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영향력 확장 경쟁을 펼치는 나라다. 또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나라다. 종교적으로 사우디는 이슬람교 수니파, 이란은 시아파의 종주국이다. 사우디는 아랍의 맹주, 이란은 페르시아의 후예다. 정치체제 및 외교안보 전략에서도 사우디는 왕정과 친미, 이란은 신정공화정과 반미를 추구해 왔다.
이처럼 불편한 관계 속에서도 외교관계를 유지해 온 두 나라의 관계는 2016년 1월 최악으로 치달았다. 사우디가 정부에 비판적인 자국 내 시아파 종교지도자들을 대거 체포하고, 일부 인사에 대해선 사형을 집행해서다. 당시 이란에선 사우디의 조치에 대한 대응으로 보수 시아파 세력이 주이란 사우디 대사관과 총영사관을 공격했다. 두 나라는 공식적인 ‘단교 상태’를 맞이했다.
사우디와 이란은 2012년부터 이어진 예멘 내전에서 각각 다른 진영을 지원하고 있다. 사우디는 예멘 정부군, 이란은 시아파의 분파인 후티 반군을 돕고 있다. 예멘 내전을 놓고 중동의 패권을 다투는 두 나라 간의 사실상의 ‘대리전’이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처럼 얽히고설킨 갈등 구조 때문에 중동 안팎에서 사우디와 이란 간 관계 개선은 어렵다는 전망이 많았다.
중국이 사우디-이란 관계 해결을 위해 나섰다. 중국은 중동의 외교안보 이슈에서 상대적으로 영향력이 크지 않던 나라다. 중동, 나아가 국제사회에 팽배하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중동의 조정자는 미국이다’라는 인식을 흔들 수 있는 사건이었다.
독일 아놀드-베르크스트레서연구소의 줄리아 구롤-할러 부연구위원은 알자지라방송과 인터뷰하면서 “사우디-이란 합의는 중국이 미래 주도권을 잡는 데 발판이 될 수 있다”며 “중국이 갈등 중재에서 이전보다 더 큰 역할을 할 준비가 돼 있음을 선언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사우디와 이란 간 합의로 자신감을 얻어서일까. 중국은 이·팔 분쟁에서도 중재 역할을 하겠다고 나섰다. 4월 17일 중국 외교부에 다르면 친강(秦剛) 외교부장(장관)은 엘리 코헨 이스라엘 외교장관, 리야드 알 말리키 팔레스타인 외교장관과 각각 전화 통화를 했다. 이 과정에서 친 부장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관계 개선을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할 용의가 있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조만간 네타냐후 총리와 시 주석이 정상회담을 할 때 이·팔 분쟁과 관련해 어떤 대화를 나누고, 메시지를 내놓을지 벌써부터 시선이 집중되는 이유다.
중국 영향력 아직은 러시아에도 못 미쳐
중국이 이전부터 강점을 보여온 경제는 물론이고,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중동 내 개입 수준을 높이고 있는 가장 큰 이유로는 미국의 ‘탈(脫)중동 전략’이 꼽힌다. 미국은 셰일가스 생산 확대로 과거처럼 중동산 석유와 천연가스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 또 중동에서 계속된 전쟁과 테러, 이로 인한 미군과 자국민 사상자 증가로 인한 피로감도 컸다.그 결과가 2021년 8월 미군의 아프가니스탄(아프간) 전면 철수다. 미국은 ‘9·11 테러’ 직후인 2001년 10월부터 아프간에서 전쟁을 치러왔다. 마국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이었다. 미국은 ‘9·11 테러’ 직후 이를 기획한 테러 조직 알카에다 리더 오사마 빈 라덴을 보호해 준다는 이유로 극단주의 무장 정치단체 탈레반이 지배하던 아프간을 공격했다.
2011년 5월 미군 특수부대가 파키스탄에 숨어 있던 빈 라덴을 사살하며 전쟁은 동력을 잃었다. 2019년 2월부터 탈레반과 아프간 전쟁 종결을 위한 협상을 본격적으로 진행했고, 결국 2021년 8월 최종 철수했다.
문흥호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명예교수(중국학)는 “아프간 철군은 미국이 글로벌 전략에서 중동이 차지하는 비중을 급격히 줄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조치였다”며 “반면 글로벌 패권국으로서 자리매김하길 원하는 중국은 ‘중동에 공백이 생겼고, 미국이 빠진 부분을 우리가 차지할 수 있다’는 기회의 순간으로 봤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국은 글로벌 패권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중앙아시아, 중동, 지중해, 유럽으로 이어지는 지정학적 영향력 키우기에 관심이 많다. 이를 위해서는 전통적으로 미국이 강세를 보여온 중동에서도 분명한 존재감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중국이 중동 내 미국의 영향력을 대체하긴 어려워 보인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때부터 군사력을 바탕으로 중동에서 강한 존재감을 보였다.
실제로 미국과 중국은 중동 내 군사력을 놓고 보면 비교가 어려운 수준이다. 아프간에서는 철수했지만 여전히 미국은 사우디와 이란 사이에 위치한 카타르에 1만 명 이상의 미군이 주둔 중인 대형 공군기지인 알우데이드 기지(미국 공군의 해외 기지 중 최대 규모)를 운용하고 있다. 걸프만의 섬나라 바레인에는 미국 해군 5함대가 주둔하고 있다. UAE와 튀르키예 등에도 미군이 주둔한다. UAE는 한국에서 배치를 놓고 사회적 갈등이 초래됐던 미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가장 먼저 도입하기도 했다.
반면 중국은 동아프리카 지부티에 있는 해군기지가 유일한 중동권 내 군사 인프라다. 사실 지부티 해군기지는 중동은 물론이고 중국이 해외에 보유하고 있는 유일한 군사기지다.
현재는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협력 중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역시 글로벌 패권을 놓고 경쟁할 가능성이 높은 러시아에 비해서도 중국의 중동 내 군사 역량은 다소 부족하다. 러시아는 시리아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다. 세습 독재자인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2011년 반군과의 내전이 전면적으로 확대되자 어려움에 빠진다. 2015년 러시아에 도움을 요청했다. 러시아는 이라크·튀르키예·레바논·요르단·이스라엘과 국경을 맞대고 있고, 지중해도 접하고 있는 시리아의 지정학적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러시아가 알 아사드 정권에 대규모 군사 지원을 결정한 이유다. 알 아사드 대통령이 권좌를 유지했고 반군을 완전히 제압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러시아의 군사 지원이 있었다.
결론적으로 중국은 미국이나 러시아와 달리 중동의 핵심부에 위치하고 있는 군사기지도, 실제 군사작전을 펼친 경험도 없다. 중동 내 외교·안보 성과가 없으니 중국은 최근 미국이 보이는 탈중동 움직임에 집중하고 있다. 중동에서 영향력을 키울 절호의 기회로 이용하려고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리스크 큰 對中 협력
중국은 중동 국가들을 대상으로 외교·안보 전략을 구사할 때 ‘내정 불간섭’ 원칙을 강조한다. 내정 불간섭은 중국 정부가 외교·안보 전략에서 공식적으로 내세우는 원칙이기도 하다. 이는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이 그동안 중동 국가들에 민주화, 인권보호 수준 증진, 정책 투명성 등을 강조한 것과 큰 차이가 있다.그리고 정도 차이는 있지만 왕정 혹은 독재 성향의 정부가 주를 이루는 중동 국가들에 중국의 내정 불간섭 원칙은 매력적 요소로 꼽힌다. 미국 조지타운대 외교대학이 발간하는 ‘조지타운 국제문제 저널(GJIA)’은 6월 ‘중동에서 커지는 중국의 역할’ 보고서를 통해 “중국의 (내정 불간섭을 앞세우는) 접근은 자율성을 보장받기를 원하는 중동 국가들의 바람과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쉽게 말해, 중동 국가들에는 경제나 군사 지원을 할 때 정치, 사회 측면에서도 변화를 줄 것을 적잖게 요구하는 서방 국가들보다 중국이 더 매력적인 협력 대상일 수 있다는 뜻이다. 이수정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책임연구원(중동학)은 “중동 국가들의 전반적인 민주화나 인권 의식 수준은 낮고, 이를 개선하라는 서방 국가들의 요구를 계속 받아온 것에 대한 부담감이 크다”며 “중국의 내정 불간섭 원칙은 매우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중국이 마냥 호감만 주는 강대국인 건 아니다. 아프리카와 서남아시아 국가들의 사례에서 나타났듯 중국과 협력하면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중동 국가들도 잘 알기 때문이다. 일대일로에 적극 참여한 아프리카의 지부티, 서남아시아의 라오스, 스리랑카 등 개발도상국들이 대부분 중국에 경제가 종속되고, 중국인들의 갑작스러운 대규모 이주로 큰 혼란을 겪는 게 좋은 예다.
이권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세계지역연구센터 소장은 “중국과의 대규모 협력으로 인한 부작용이 있다는 건 이미 전 세계가 알고 있고, 이로 인해 중국의 매력도 많이 떨어졌다”며 “경제보다 민감도가 더 큰 안보 분야에서 중국과 협력하려 할 때는 당연히 부담도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015년부터 총 450억 달러(약 58조7475억 원) 이상을 들여 신(新)행정수도(NAC·New Administrative Capital)를 만들고 있는 이집트는 이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대규모 투자를 받았다.
NAC 프로젝트는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서 동쪽으로 약 45㎞ 떨어진 사막 지대에 700㎢ 규모의 행정수도를 조성해 대통령궁, 정부 부처, 국회, 외교공관 등 주요 시설을 이전할 계획이다. 이집트 현지에서는 ‘수에즈 운하’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국책사업으로 통한다. 또 압둘 파타 엘 시시 대통령이 정권의 명운을 걸고 진행 중인 사업으로도 여겨진다.
중국은 385m의 초고층 건물을 포함해 18개의 대형 건물이 들어설 예정인 NAC 상업지구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이 지역의 건설 대부분은 중국 국영기업 중국건축공정총공사(CSCEC)가 담당한다. 그동안 이집트에서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을 만큼 경제 사정이 안 좋은데 NAC 건설을 계기로 중국의 영향력이 너무 커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신장위구르, 영향력 확장 걸림돌
장기적으로는 중국의 ‘내부 문제’가 중국의 중동 내 영향력을 키우는 데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바로 신장웨이우얼자치구(신장위구르) 문제다. 주민 다수가 이슬람을 믿는 신장웨이우얼자치구는 티베트와 더불어 중국에서 가장 동화가 잘 안 되는 지역으로 꼽힌다. 중국 정부는 신장위구르의 반정부 시위, 나아가 분리·독립 움직임에 강경하게 대응해 왔다. 최근에는 신장위구르 지역에 대규모 수용소를 만들어 반정부 성향 주민들에 대한 강제노동과 고문을 자행하고, 어린이와 청소년 등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는 대대적인 ‘교화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신장위구르 문제가 계속 주목받는다면 이슬람의 종주국임을 내세우는 사우디 등 중동 국가들로서는 어떤 형태로든 목소리를 낼 가능성이 높다. 문 명예교수는 “중동 국가들과의 협력 폭이 넓어지고, 깊어질수록 신장위구르 문제를 둘러싼 갈등도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며 “중국으로서도 이슬람 국가인 중동 나라들이 신장위구르에서 종교를 바탕으로 영향력을 키우는 것 역시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