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호

‘강은 흘러야 한다’

  • 입력2010-05-28 17: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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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벗, 홍일선(60) 시인은 5년 전 서울을 떠나 경기도 여주군 점동면 도리로 이사했다. 남한강 북서쪽의 강변마을이다. 하지만 강이 좋아 서울살림을 접고 내려왔던 그는 요즈음 울적하다. 4대강 사업으로 온 마을이 공사판이 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강의 여울이 내던 아름다운 소리도, 갈대와 억새밭도 사라졌다. 왜가리와 고니는 보이지 않고, 숲속 고라니도 모습을 감추었다. 야적장에 산더미같이 쌓아올린 준설토가 주위풍경을 황량하게 할 뿐이다. 시인은 꿈을 꾸었다.

    ‘꿈 속/ 억겁(億劫)의 시간이 훼손되었던 듯/ 거대한 소음이 나를 깨웠다/ 강물 여울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덤프트럭들이 운구차처럼 검은 띠를 두르고/ 강천보 제방을 저속으로 운행하고 있었다/ 강의 마음 속 곳곳에/ 날카로운 쇠말뚝이 박힐 때/ 광목 흰 깃발들이 나부끼고/ 온몸에 꽃문신을 한 토건복합체/ 푸른 포크레인이 무슨 말을 하는 것도 같은데/ 나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산란처를 찾지 못해 강을 떠도는/ 야윈 물고기들이 언뜻 보였다/ 남한강 도리섬 한 귀퉁이/ 갯버들이 새싹을 틔우지 못하고서도 그럭저럭 수줍음 많은 봄이었고/ 그때였을 것이다/ 밝은 눈 맑은 귀를 한 고니 한 마리 찾아온 것이/ 먼 시간 을숙도에서 오셨을 거라고/ 강물이 귀띔하지만/ 꿈 속 나는 벙어리에다 귀머거리여서/ 그 새 고니에게/ 내내 무탈하시라고 빌지도 못했다(시, ‘꿈에 그 새가 찾아오셨다’)

    5월8일 필자가 찾은 ‘한강 살리기 6공구 여주 4지구’에서는 강천보 건설이 한창이었다. 강을 절반으로 나누어 오른쪽 물을 뺀 뒤 준설을 한 다음 같은 방식으로 왼쪽 물을 빼고 4∼6m 깊이로 강바닥 모래와 자갈을 파내는 반체절(半體切)준설공법이라고 한다. 공사장 한편에 세워진 ‘강천보 조감도’를 보면 웅장한 보와 소수력 발전소, 강 좌우의 인공 생태하천 등이 어우러져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그러나 건설현장의 강은 참혹했다. 강물은 반으로 잘려나갔고, 물이 빠진 강바닥은 쉼 없이 파헤쳐지고 있었다. 길이 440m에 높이 3m인 강천보가 물을 가두면 참혹한 모습도 물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자연의 강이 그 본래의 모습을 잃는 것은 피할 수 없을 터이다. 자연습지를 인공습지로 대신한다고 해서 그것이 같은 습지일 수 있겠는가. 갈대와 억새를 비워내고 자전거도로를 만드는 것이 과연 강을 살리는 것인가.

    건설현장 위 도로에는 커다란 입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한강이 살고, 사람이 살고, 지역경제가 살아납니다.’ 이른바 ‘녹색 성장’의 슬로건이다. 그러나 이날 강천보를 찾은 예술단체 회원들, 대학교수 및 대학생들 그리고 각지에서 온 많은 시민들은 ‘강은 흘러야 한다’는 로고가 새겨진 조끼를 입고 있었다. 정부의 4대강 사업이 강을 살리는 게 아니라 생명과 평화의 강을 죽이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쪽 주장이 맞는가? 이명박 대통령 말처럼 지금 반대하고 있는 사람들도 4대강 사업이 완료되면 모두 찬성하는 쪽으로 돌아설 것인가? 전문가들조차 의견이 엇갈리는 이 문제에 필자가 당장 답을 내릴 수는 없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제 4대강 사업은 단순한 국책사업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대립하는 가치관을 상징하는 핵심 의제가 되었다는 점이다. 대립하는 가치관은 일방적 홍보로 풀 수도 없고, 밀어붙이기 식 속도전으로 해결할 수도 없다. 4대강 사업에 대한 대통령과 정부의 인식이 달라져야 하는 이유다.



    천주교는 ‘4대강 사업 저지를 위한 전국 사제 선언’(3월8일)을 통해 “오늘 우리는 역사상 가장 참혹한 자연의 죽음 앞에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며 젖줄인 강의 말 못하는 고통을 대신 말하고자 모였다. 강가의 계곡이 포클레인으로 벗김을 당하고 있고, 강변의 오솔길이 대형 트럭으로 짓밟히고 있다. 수천 년 우리 곁에서 흐르던 강물이 만신창이로 파헤쳐져 흙탕물이 되어 죽어가고 있다. 4대 강의 죽음이 우리 모두의 무관심에서 비롯되었음을, 이것이 자연에 대한 우리 모두의 죄였음을 고백한다. 이 죽음의 상황을 끊지 않는다면 이는 결국 우리에게 대재앙으로 되돌아올 것”이라고 선언했다.

    5월10일에는 명동성당에서 1987년 이후 23년 만에 대규모 시국미사가 열렸다. 이날 미사의 강론을 맡은 윤종일 신부는 “4대강 사업은 반(反)생명 반생태적인 사업으로, 전국 곳곳의 4대강 사업현장만 가 봐도 강을 살리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주장이 완벽한 거짓임을 알 수 있다. 4대강 사업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파괴하는 사업이다. 정부가 국민과의 대화와 소통 없이 사업을 밀어붙일 때, 또 얼마나 많은 국민이 눈물을 쏟아야 하는지를 우리는 독재정권 시절의 경험을 통해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고 했다.

    미사에 이어 발표된 ‘4대강 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사제·수도자 선언’에서는 “6월 지방선거에서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인 투표에 적극 참여해 ‘강의 생명’을 약속하는 후보들을 식별하고 선택할 것”이라며, “투표를 통해 4대강 사업에 대해 분명히 심판할 것이며, 이는 사제들의 정치적 개입이 아닌 신앙인의 의무이자 정의의 실천”이라고 강조했다. 종교가 현실정치에 개입하고 있다는 일부세력의 비난에 선을 그은 셈이다.

    불교계는 4월17일 서울 조계사에서 ‘4대강 생명살림 수륙대재’를 봉행했다. 1만여 명의 불자들이 참석한 대규모였다. 이날 조계종 전 교육원장 청화스님은 고불문을 통해 “강이 울고 있다. 어리석은 중생이 생명의 젖줄인 강을 욕망의 대상으로 무분별하게 파헤치고 갈아엎고 자연이치를 거스르고 있다. 천지가 나와 한 뿌리이고 만물이 나와 한 몸이라는 진리를 보지 못하고 나와 남, 나와 강, 나와 자연을 별개의 존재로 보고 있는 것이 비극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중앙종회의장 보선 스님은 “조금만 신중하자는 숙고의 틈도 없이, 어떠냐는 물음도 없이 강의 생태를 바꾸어 물길을 달리한다면 그 변화의 몸살은 결국 우리가 앓게 된다”며 정부의 4대강 사업 강행을 비난했다. 불교환경연대를 이끌고 있는 수경 스님은 “4대강 개발과 같은 대규모 국토파괴 행위는 지금까지 보아온 생태계 교란이나 자연훼손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국토를 한낱 소모품으로 전락시키고 역사를 지우는 자연과 국토에 대한 테러행위이다. 국민의 대다수가 반대하는 현 정부의 4대강 개발 사업을 국민을 상대로 벌이는 ‘이명박의 난(亂)’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에 앞서 3월15일에는 불교 천주교 개신교 원불교 등 4대 종단 종교인들이 경북 상주시 낙동강변에서 4대강 사업 저지를 위한 공동기도회를 열었다. 신자들 모두의 생각을 대변한다고 할 수는 없을지라도 한국종교계의 공식 입장은 4대강 개발 반대로 모아진 것이다. 정부는 4대강 사업을 생태복원과 국민 삶의 질 향상,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 등을 함께 이룰 수 있는 ‘다목적 녹색뉴딜 사업’이라고 홍보한다. 그러나 종교계는 ‘탐욕에 눈 먼 성장주의’의 발로로서, 오로지 대통령 임기 내의 가시적 성과를 위해 국민적 합의과정을 무시하고 밀어붙이는 토목사업으로 규정할 뿐이다.

    이 메워지기 어려울 것 같은 간극(間隙)은 4대강 사업이 애초 대통령의 대선공약이던 한반도대운하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대운하에 대한 반대여론이 강하자 4대강 사업으로 돌아섰다. 하지만 끝내 대운하에 대한 미련은 버리지 못한 듯 했다. “4대강 복원은 내가 하고, 4대강을 연결해 대운하를 만드는 것은 다음 대통령이 필요하면 그때 판단하면 된다(2009년 11월)”는 발언 등을 보면 그렇다. 이렇게 시작된 불신은 4대강 사업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확장되었다. 왜 그렇게 보를 많이 세우고 강바닥을 깊게 파느냐?, 물그릇을 크게 해 홍수를 예방한다고 하지만 실제는 나중에 배를 띄우기 위한 대운하용이 아니겠느냐? 이런 근원적 의문에서 출발한 논란은 환경 및 생태계 파괴 논란은 물론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 등 각론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어졌다. 예컨대 정부는 4대강 사업으로 34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하지만 대부분 중장비가 일을 하는 토목공사에 무슨 일자리가 그렇게 많이 생기겠느냐, 기껏해야 1만∼2만개의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는 게 반대 측 비판이다.

    명동성당에서 대규모 시국미사가 열린 날, 김영호 유한대 총장, 도법 스님,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엄기영 전 MBC 사장, 소설가 황석영씨 등 각계인사 77인은 긴급선언을 발표하고 “4대강 사업을 중단하고, 이 사업의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4대강 사업이 강을 살리는 사업이라면 2년 만에 서둘러 끝낼 일이 아니다. 국민적인 동의와 절차적 정당성을 무시하고 성급하게 추진한다면 치명적인 문제점이 드러나도 돌이키기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강은 흘러야 한다’
    全津雨

    1949년 서울출생

    동아방송 기자

    월간 신동아 편집장

    동아일보 논설실장·대기자

    現 경원대 초빙교수

    저서: 작품집 ‘하얀 행렬’ ‘서울의 땀’, 칼럼집 ‘역사에 대한 예의’


    국민의 60% 이상이 4대강 사업을 우려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 공사가 끝나고 4대강이 화려한 겉모습을 드러낸다고 해도 몇 년, 또는 몇 십 년 후 생태 환경의 변화로 재앙이 닥친다면 어떻게 할 것이고, 누가 책임질 것인가? 아무리 SOC사업은 가급적 빨리 하는 것이 좋다지만, 공사현장에 군부대까지 투입하고 현장노동자들이 힘들다고 비명을 지르는데도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속도전’으로 몰아붙이는 이유가 뭔가? 22조원이 넘는 천문학적 예산이 들어가는 이 거대한 사업을 꼭 대통령 임기에 맞춰 서둘러 끝내야 하는가? 이런 의문과 우려를 털어내지 못하는 한 4대강 사업은 이명박 정부의 성패(成敗)에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4대강 사업에 대한 이 대통령의 생각은 조금도 변할 것 같지 않다. 최근 종교계를 중심으로 사회각계에서 거세게 일고 있는 반대 움직임에 대해서도 그는 “국가정책에 대한 반대의 소리도 배척만 할 것이 아니고 귀를 기울이면 우리의 정책추진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4대강에 대한 반대 의견은 우리가 더욱 치밀하게 정책을 검토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을 뿐이다. 4대강을 어찌 할꼬! 강은 흘러야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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