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호

혐중 낙인찍기 그만두고, 국민 위한 울타리 제공해야

외국인 범죄자 체포‧추방할 수 있는 법적 근거, 수사 조직을 확충 필요

  •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 jeongtaeroh@ries.or.kr

    입력2025-11-11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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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혐중, 시민사회가 비판으로 자제시켜야

    • 정부, 형법으로 시위 틀어막는 것 옳지 않아

    • 중국인 향한 반감‧음모론 국민 불안감에서 시작

    • 우려를 혐오라고 몰아세우면 불안 해소될 수 없어

    “10월 3일 있었던 개천절 혐중 시위에서는 집회 참가자들이 ‘짱개, 북괴, 빨갱이는 대한민국에서 어서 빨리 꺼져라’라는 내용이 포함된 일명 ‘짱깨송’을 부르며 국정자원관리원 화재에 중국인 개입, 부정선거 중국 개입 등 허위 사실을 유포하며 특정 국가와 특정 국민에 대한 모욕과 명예훼손을 일삼았음.”

    11월 5일, 양부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여당 의원 9명(이광희·신정훈·박정현·윤건영·이상식·박균택·허성무·서영교·권칠승) 및 최혁진 무소속 의원과 공동 발의한 ‘형법 일부 개정 법률안’의 제안이유 중 한 문단이다. “최근 온·오프라인을 불문하고 특정 국가, 특정 인종에 대한 혐오 발언으로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고 각종 혐오 표현이 난무하는 집회·시위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며, 그런 행위를 처벌하기 위한 형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이다.

    9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인근에서 열린 ‘중국인 무비자 입국 반대 집회’에서 한 참가자가 피켓을 들고 있다. 뉴스1

    9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인근에서 열린 ‘중국인 무비자 입국 반대 집회’에서 한 참가자가 피켓을 들고 있다. 뉴스1

    당연한 말부터 하자면, 외국인을 향한 혐오는 옳지 않다. 그 외국인이 어떤 나라 사람이냐와 무관한 일이다. 가령 미국인을 상대로 ‘양키 고 홈’을 외치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누군가 일본인 관광객을 상대로 혐오 발언을 내뱉거나, 심지어는 일본 제품을 사용하는 한국인을 상대로 비난과 협박을 한다면 규탄 받아야 마땅하다.

    그런 면에서 중국인 관광객을 향해 ‘짱개’라고 외치며 고함을 질러대는 것을 바람직한 행위로 볼 수는 없다. 시민사회가 보편적인 인권과 상식에 기반해 그런 일탈 행위를 비판하고 자제시켜야 마땅하다.

    시위 하려면 ‘중국인’ 아닌 ‘중국’ 대상으로 해야

    하지만 이 경우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시민사회’가 아닌 ‘국가’가, ‘비판’이 아닌 ‘형법’을 동원해, 유독 중국을 향한 비난의 목소리를 틀어막으려 드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법률안 제안이유를 보면 그 취지는 분명하다. “이에 특정 집단에 대한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과 모욕이 인정되도록 집단에 대한 구성요건을 추가하고 집단의 특성상 명예훼손에 있어서의 반의사불벌죄와 모욕에 있어서의 친고죄(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처벌할 수 있는 범죄) 규정은 준용하지 아니하여보다 실효적인 법 적용이 가능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입법 취지가 미심쩍다. “특정 국가, 특정 인종에 대한 혐오적 발언”이 문제라면서 정작 예로 든 것은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욕설과 비속어뿐이다. 중국을 향한 부정적 표현을 ‘입틀막’ 하려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명예훼손죄와 모욕죄의 객체로 ‘사람’이 아닌 ‘집단’을 추가하고, 심지어 친고죄가 적용되지 않게 하겠다는 주장은 더욱 당황스럽다. 중국이라는 국가가 가만히 있어도 제3자가 ‘저 사람이 중국을 모욕하고 있어요’라고 경찰에 신고하고 처벌하는 일이 가능케 하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 ‘중국 심기 경호법’ 등의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

    특정 국가, 국민에 대한 모욕과 명예훼손을 막겠다는 이유로  형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양부남 더불어민주당 의원. 뉴스1

    특정 국가, 국민에 대한 모욕과 명예훼손을 막겠다는 이유로 형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양부남 더불어민주당 의원. 뉴스1

    특정 국가, 특정 인종에 대한 혐오적 발언이 범람하고 있으며 사회적 갈등이 높아지고 있다. 굳이 형법으로 국민을 처벌해야겠다고 주장하는 여당의 논거다. 그렇다면 여기서 세 가지 문제를 제기해볼 수 있다. 첫째, 중국에 대한 국민 상당수의 부정적 감정과 표출을 ‘혐오’라 이름 붙이는 것이 타당한가. 둘째, 그것이 혐오가 아니라면 어떤 종류의 부정적 감정이라 말할 수 있을까. 셋째, 그러한 부정적 감정을 최소화하고 긍정적 한중 관계를 도모하려면 어떤 법과 정책이 필요할까.

    차별이란 사람들이 속한 집단, 계층 또는 기타 범주에 따라 불공정한 대우를 하는 것이다. 황인종이라는 이유로 어떤 백인이나 흑인이 조롱하는 것이 차별이듯 중국인이 중국인이라는 이유로 위압감을 주기 위해 소리를 지르는 등의 행동 역시, 이론의 여지가 없는 차별적 행위에 속한다. 표현 방식에 따라 혐오로 볼 여지도 충분하다.

    ‘혐오는 나쁘다.’ 민주당에서 앞세우고 있는 도덕적 당위다. 여행 온 관광객의 면전에 소리를 지르고, 그들을 도발하겠다는 의도가 명백한 행동은 옳지 않다.이것은 따로 배울 필요조차 없는 기본적 도덕관념이다.

    여권에서 ‘혐중 시위’라 부르는 행사에 참여하는 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들 스스로는 중국 정부의 대외 정책 등에 반대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관광객이 아니라 중국 정부, 가령 대사관을 ‘향하여’ 시위를 해야 한다. 대사관 ‘근처’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시위해선 안 된다. 중국인 스스로가 얼마나 자국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느냐와는 별개로 그가 선택하지 않은 요인을 근거로 그를 ‘차별’하고 ‘혐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 군가 틀고 서울 시내 활보하는 일은 당혹

    문제는 모든 종류의 반중 감정을 혐오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는 데 있다. 반중 감정의 확산은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수많은 이들이 실제로 중국과 중국인의 태도에 불만을 갖고 있다.

    개인적 경험을 먼저 말해보고자 한다. 9월 19일 필자는 성균관대에서 열린 외국인 학자 초청 강연에 참석했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온 젊은 역사학 교수가 ‘17~18세기 서유럽에 중국의 유학이 수입된 경위와 그 영향’ 등에 대해 최신 연구 성과를 전달했다. 강연은 영어로 이뤄졌다. 한국 학생과 교수들도 영어로 질문을 하며 대화가 이어졌다.

    그런데 중국인 유학생의 행동은 달랐다. 중국어로 질문을 한 것이다. 옥스퍼드 교수는 중국어도 할 줄 알았기 때문에 중국어로 듣고 영어로 답을 했다. 중국 유학생은 만족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객석에서는 상당한 불만이 쌓였다(적어도 필자는 그렇게 느꼈다). 중국어를 할 줄 모르는 사람, 이 학교의 주인인 한국인 학생과 교수는, 반쪽자리 질의응답을 듣게 된 꼴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은 필자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적지 않은 수를 차지하는 중국인 유학생들은 대학가의 고질적 문제다. 이들은 한국어로 진행되는 수업을 따라오지 못하거나 심지어 수업 진행에 지장을 초래하기도 한다. 이처럼 청년층은 일상에서 기성세대보다 훨씬 더 많이 중국인과 접하고 있고, 그 만남은 적잖은 경우 썩 좋지 않은 인상을 남기곤 한다.

    ‘청년들이 중국 혐오에 물들었다’고 손쉽게 비난하는 기성세대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가령 11월 6일 세간을 발칵 뒤집어 놓은 ‘한강공원 중국인 군복 행진 사건’을 떠올려 보자. ‘한국(한강)국제걷기교류전 중국 걷기 애호가’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약 100여 명의 중국인이 10여 명씩 같은 군복과 유사한 옷을 맞춰 입은 채, 중국 군가를 틀고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을 걷는 영상이 공개됐다. 해당 영상은 10월 31일 한국문화교류사업단과 중국건강걷기체육협회가 함께 진행한 ‘국제걷기교류’ 행사 중 한 장면이었다.

    10월 31일 한국문화교류사업단과 중국건강걷기체육협회가 함께 진행한 ‘국제걷기교류’ 행사 중 100여 명의 중국인들이 군복과 유사한 유니폼을 입고 중국의 군가에 맞춰 행진을 하고 있다. 뉴스1

    10월 31일 한국문화교류사업단과 중국건강걷기체육협회가 함께 진행한 ‘국제걷기교류’ 행사 중 100여 명의 중국인들이 군복과 유사한 유니폼을 입고 중국의 군가에 맞춰 행진을 하고 있다. 뉴스1

    이런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경기 여주시 신륵사 관광단지 일대에서 열린 ‘2025 여주오곡나루축제’도 비슷한 논란에 휩싸였다. 중국 인민해방군을 상징하는 군기가 휘날리고 인민해방군이 행진하는 영상이 상영됐다. 심지어 인민해방군 제복을 입은 중국인들이 무대 위로 올라오기까지 했다. 당시 여주세종문화관광재단 측은 공식적으로 사과문을 발표했다.

    중국은 한국전쟁 당시 북한의 편을 들어 압록강을 건너 참전한 나라다. 역사적 맥락을 따져볼 때 그들의 군복을 입고 서울 시내를 활보하는 일은 당혹스럽다. 중국을 향한 국민 전반의 감정이 경계심 어린 눈빛으로 바뀌는 것은 일견 타당하다.

    국민을 위하는 정부, 정당이라면, ‘중국 혐오를 처벌하자’는 식의 단순한 대응을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한국 뿐 아니라 중국과 중국인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 국민 편을 들어야 할 정부와 여당이 중국 눈치만 보고 있다는 ‘오해’만 더 키울 뿐이다.

    간첩법 개정 필요성에 대해 이재명 정부도 동의

    그렇다면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할까? ‘좋은 울타리가 좋은 이웃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지금 한중관계에 필요한 것도 바로 그것이다. 중국인 전반에 향하는 대중적 반감과 중국인 관광객을 향해 제기되는 온갖 음모론은 국민이 느끼는 불안감에서 시작한다.

    중국인에게 무비자 입국을 허락했는데 범죄자들이 무턱대고 들어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중국인 ‘관광객’들이 한국의 군사 기지 인근에서 드론을 날리다가 적발되는 일이 종종 발생하는데 그들이 순수한 관광객이 아닌 스파이라면 어찌해야 하는가. 이런 식의 문제 제기 중 일부는 근거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우려를 음모론이나 혐오 발언이라고 몰아세우면 대중의 불안이 해소될 수 없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범죄자를 색출하고 체포하거나 추방할 수 있는 법적 근거와 수사 조직을 확충하는 것이다. 중국인 뿐 아니라 그 어떤 외국인이라도 간첩 행위를 할 경우 처벌할 수 있도록 법을 갖추는 일 또한 반드시 필요하다.

    한국의 법과 정책은 정반대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문재인정부는 ‘검수완박’을 한다며 통합적인 수사 지휘 체계를 모두 망가뜨렸다. 윤석열정부는 국제수사와 외국인 범죄를 담당하는 외사경찰 인력을 축소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간첩 수사 핵심 기관이던 국가정보원의 수사 기능 역시 사실상 분해되어버렸다.

    간첩법 개정을 둘러싼 논란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의 유년기는 오직 북한이라는 단 하나의 적을 상대하는 것으로도 버거웠다. 간첩법의 대상이 북한으로 한정되어 있었던 이유다. 하지만 한국은 중견국가로 성장했다. 간첩죄의 적용 대상을 모든 국가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11월 6일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를 찾아가 간첩죄 조항의 신속한 개정을 요구했다. 간첩법 개정 필요성에 대해 이재명 정부도 동의한다는 뜻이다. 김 원내대표도 동의했지만 넘어야 할 벽이 하나 더 있다. 지난해 7월 법사위원장직을 맡고 있던 정청래 대표다. 그는 “예상치 못한 피해”, “악용 가능성” 등을 거론하며 간첩법 개정에 제동을 걸고 있다.

    외국인을 향한 혐오는 옳지 않다. 몇 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삐뚤어진 차별 의식과 혐오를 방관하는 것은 안보와 국익 뿐 아니라 국민의 일상적 행복까지 망가뜨린다. 더 많은 외국인이 찾아와 한국인과 장기적으로 교류해나갈 때 ‘글로벌 코리아’가 될 수 있다.

    ‘중국 심기 경호법’으로는 그런 목적을 이룰 수 없다. 해당 법안 발의자로 이름을 올린 최혁진 무소속 의원이 바로 얼마 전 국정감사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을 상대로 ‘조요토미 희대요시’ 합성 사진을 들이밀었던 것을 상기해 보자. 다른 국가와 국민에 대한 혐오에 편승하고 부추겼던 국회의원이 혐오에 반대한다면서 형법까지 뜯어고치겠다고 할 때, 그 의도를 순수하게 받아들일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될까. 민주당은 혐오자 낙인찍기를 그만두고, 우리 국민을 위한 ‘좋은 울타리’를 제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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