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단위 연차휴가 사용, 원칙적으로 수용해야
주도권 근로자에 있지만 ‘시기변경권’이 변수
병가보다 연차휴가 우선 사용, 노사 합의 시 가능
발생하지도 않은 내년 연차휴가 미리 써라?
법령 이해+성숙한 노사관계로 서로 배려해야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시간 단위 연차휴가가 가능한지” “회사가 허용하지 않으면 포기해야 하는지”를 두고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Gettyimage
이는 A씨만의 고민이 아니다. 연차휴가는 근로자에게 보장된 법적 권리이지만 사업주 입장에서는 경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 사안이다. 자연스레 양측 간 은근한 신경전이 펼쳐질 수밖에 없다. 15년간 노무사로 활동하면서 수많은 연차휴가 관련 질문을 받아왔는데, 여전히 현장에서는 혼란이 적지 않았다. 직장인 사이에서도 “시간 단위 연차휴가가 가능한지” “회사가 허용하지 않으면 포기해야 하는지”를 두고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시간 단위 연차휴가 사용, 원칙적으로 수용해야
과거에는 시간 단위로 연차휴가를 사용하기 위해 노사 간 ‘합의’가 필수였다. 2003년 고용노동부가 행정해석을 통해 “연차휴가는 원칙적으로 일 단위로 부여되며, 시간 단위 사용은 노사 합의가 있을 때만 가능하다”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근로기준법상 연차휴가의 기본 단위가 ‘1일’이라는 점을 전제로 한 해석으로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시간 단위 연차휴가를 허용하거나, 근로자가 임의로 청구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시간 단위 연차휴가를 사용하는 경우가 드물었고, 제도적 기반도 부족해 사회적 논쟁으로 번지지 않았다.시간이 지나며 현장의 양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많은 기업이 이른바 ‘시차제도’라 불리는 시간 단위 연차휴가 사용을 도입하기 시작했고, 고용노동부 역시 이를 외면할 수 없었다. 결국 고용노동부는 2021년 “연차휴가는 일 단위로만 부여해야 한다는 명문의 규정은 없으며, 실제 현장에서도 시간 단위 사용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인정했다. 나아가 2024년 법제처는 시간 단위 연차휴가 사용에 대해 명확한 기준을 제시했다. “근로자가 반반차(2시간) 단위로 연차휴가를 신청하더라도 사용자는 근로자가 청구한 시기에 휴가를 부여해야 하며,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는 경우에만 그 시기를 변경할 수 있다”고 밝힌 것이다. 이로써 시간 단위 연차휴가는 더는 ‘사용자의 재량’이 아닌, ‘근로자의 권리’라는 점이 명확해졌다.
이제 사업주는 근로자가 신청한 시간 단위 연차휴가를 원칙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다만 업무에 실질적이고 중대한 지장이 예상되는 경우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사유를 제시해 시기변경권을 행사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단순 불편이나 관행을 이유로는 거부할 수 없으며, 사업 운영에 막대한 차질이 생긴다는 사실을 사용자가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근로자 역시 시간 단위 연차휴가를 권리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조직의 업무 흐름을 고려해 사전 조율 및 협력하는 성숙한 태도가 필요하다.

주도권 근로자에 있지만 ‘시기변경권’이 변수
앞서 언급한 시기변경권은 연차휴가를 둘러싼 다양한 분쟁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개념이다. 대표 사례가 ‘당일 연차휴가 신청’을 둘러싼 논쟁이다. 연차휴가는 원칙적으로 근로자의 청구에 따라 사용 시점이 결정된다. 근로기준법 제60조 제5항은 “연차휴가는 근로자가 청구한 시기에 부여해야 한다”고 명시해, 연차휴가 사용의 주도권이 근로자에게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다만 예외가 있다.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발생하는 경우다. 이때 사용자는 근로자가 요청한 연차휴가의 시기를 변경할 수 있는데 이를 연차휴가 시기변경권이라 한다.결국 쟁점은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무엇을 의미하느냐에 모인다. 서울행정법원에 따르면 이는 “근로자가 지정한 시기에 연차휴가를 부여할 경우 사업장의 업무 능률이나 성과가 평상시보다 현저히 저하돼 상당한 영업상 불이익이 초래될 우려가 있거나, 그 개연성이 인정되는 경우”로 해석된다. 판례는 이를 판단할 때 △기업 규모 △업무량 증가 정도 △대체인력 확보 여부 △업무의 성질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며, 입증책임이 사용자에게 있다고 명시했다. 단순 불편이나 주관적 판단만으로는 당일 연차휴가 신청을 거부할 수 없는 셈이다.
실제로 2019년 4월 4일 서울고등법원은 사업주의 시기변경권 행사를 인정하지 않았다. 외근직 가전제품 수리기사가 5월 징검다리 연휴에 연차휴가를 신청했으나 회사가 이를 거부한 사건이었다. 법원은 “근로 인력이 줄어들어 남은 직원들의 업무량이 증가할 수 있다”는 수준의 가능성만으로는 시기변경권을 인정할 수 없다고 봤다. 해당 기간이 업무 폭증이 예상되는 극성수기도, 다른 근로자들이 집단적으로 연차휴가를 신청한 상황도 아니었다는 점 역시 중요 근거가 됐다. 이외에도 사용자가 같은 날 다른 외근직 수리기사 2명의 연차휴가를 승인했고, 징검다리 연휴로 인한 휴가 사용 증가가 충분히 예상 가능했던 만큼 대체인력 확보 등 대비가 가능했다고 봤다.
시기변경권이 인정된 사례도 있다. 7월 17일 대법원은 시내버스 운전기사가 단체협약에서 정한 휴가 신청 기한(3일 전 사전 신청)을 지키지 않은 채 연차휴가를 요청한 사건에서, 사용자가 근로자가 청구한 시기에 연차휴가를 부여하지 않은 것은 정당한 시기변경권 행사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점들을 근거로 회사의 조치를 인정했다. 첫째, 노선버스는 정시 운행이 필수적이며 운전자 1인의 결원만으로도 전체 운행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 둘째, 근로자는 단체협약의 청구 기한을 준수하지 않고 연차휴가를 신청했다. 셋째, 회사가 대체인력을 확보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정리하면 시기변경권은 사용자가 근로자의 연차휴가 사용 시점을 제한할 수 있는 유일한 법적 수단이지만 매우 엄격한 요건 아래에서만 인정된다. 단순히 사전 신청 원칙이나 업무상 불편만으로는 행사할 수 없으며, 이를 근거로 연차휴가 사용을 거부한다면 부당한 조치로 판단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사용자는 사전에 관련 제도를 정비하고, 개별 사례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통해 불필요한 노사갈등과 법적 분쟁을 예방할 필요가 있다.

병가보다 연차휴가 우선 사용, 노사 합의 시 가능
직장인 B씨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일주일간 병가가 필요했지만, 회사 취업규칙에는 “병가 사용 전 남은 연차휴가를 모두 소진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연초에 상당수 연차휴가를 사용해 남은 일수가 많지 않았던 B씨는 사실상 연차휴가를 모두 사용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더 난처한 것은 회사가 “그다음은 내년 연차휴가를 당겨서 쓰면 된다”고 안내했다는 점이다. B씨는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연차휴가를 어떻게 미리 쓰라는 것이냐”며 의문을 제기했지만, 회사는 “관행”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근로기준법은 질병 및 부상으로 인한 병가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병가는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 등을 통해 자율적으로 운영되며, 제도의 유무와 운영 방식은 각 사업장의 내부 규정에 따라 다르다. 다만 병가 제도가 연차휴가와 연계될 경우 법적 쟁점이 발생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연차휴가의 선(先)사용은 조건부로 가능하다. 고용노동부는 “병가 사용 시 연차휴가를 먼저 사용하도록 하는 것은 노사 약정에 따른 것으로 법 위반으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즉 노사가 ‘남은 연차휴가를 먼저 사용한 후 병가로 전환하는 방식’을 취업규칙에 명확히 규정했다면 이는 유효하다.
그러나 B씨의 경우처럼 다음 해 발생할 연차휴가를 병가 전 강제로 우선 사용하게 하는 것은 위법이다. 해당 연차휴가는 아직 발생이 확정되지 않았을뿐더러, 심신 회복이라는 연차휴가의 취지와도 어긋나기 때문이다, 연차휴가를 당겨서 사용하도록 강제하면 근로자의 연차휴가 사용 청구권이 침해될 우려가 있다.
결과적으로 병가는 다음과 같은 원칙 아래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첫째, 병가 제도를 적용할 경우 취업규칙에 병가의 인정 요건과 사용 기간 등 명확한 기준을 규정한다. 둘째, 연차휴가의 선사용은 이미 발생한 연차휴가의 범위 내에서만 허용하며,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의 연차휴가를 강제로 사용하게 해서는 안 된다. 셋째, 연차휴가는 근로자의 법적 권리이므로, 근로자의 사전 신청을 전제로 운영해야 한다.
연차휴가를 둘러싼 노사갈등의 핵심은 대부분 ‘소통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근로자는 자신의 법적 권리를 정확히 알지 못한 채 회사의 관행에 따르거나, 반대로 권리를 지나치게 경직되게 주장하며 조직과의 협력을 소홀히 하는 경우다. 사업주 역시 변화된 법령과 해석을 따라가지 못한 채 관행을 고수하거나, 막연한 우려만으로 근로자의 정당한 연차휴가 사용을 제한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명확한 규정 정비가 선행돼야 한다. 취업규칙에 연차휴가의 신청 절차, 병가와의 관계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이를 근로자들에게 충분히 안내할 필요가 있다. 특히 연차휴가 시기변경권의 행사 기준을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마련해 자의적 판단이 촉발하는 분쟁을 예방해야 한다.
노사 간 상호 신뢰하고 배려하는 문화도 필요하다. 근로자는 연차휴가가 권리임을 인식하되, 가급적 규정에 따라 사전에 신청하고 업무 인수인계를 철저히 하는 등 조직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업주 역시 연차휴가 사용이 생산성 저하가 아닌 근로자의 재충전을 통한 장기적 효율성 증대임을 이해하고, 대체인력 확보나 업무 재배치 등을 준비해야 한다. 연차휴가는 단순히 쉬는 날이 아니다. 근로자가 일과 삶의 균형을 유지하며 지속 가능하게 일할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제도다. 이 제도가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법령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서로를 존중하는 성숙한 노사관계가 뒷받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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