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들은 몰라.” 후진하는 어린이집 차에 치여 자식이 숨진 부부는 이런 말을 주고받는다. “많은 이들이 ‘내가 이만큼 울어줬으니 너는 이제 그만 울라’며 줄기 긴 꽃으로 아내를 채찍질하는 것처럼 보였다.”(‘입동’) 남겨진 이들을 구원하는 건 또 다른 남겨진 이의 공감이다. 물에 빠진 제자를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남편을 원망하던 아내는 제자의 누나가 보낸 감사 편지를 받는다(‘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소설은 뭔가를 잃어버린 뒤의 풍경만큼 뭔가를 떠나보내는 이들의 내면도 파고든다. 오래된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통고하려는 여성은 그가 큰 잘못을 저질러주기를 기다렸음을 깨닫는다(‘건너편’). 유기견을 거둬 동생처럼 키운 어린이는 노쇠해 병고에 시달리는 개를 ‘안락사’시킬 돈을 모으지만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 제품을 사는 데 헐어 쓴다(‘노찬성과 에반’).
책에 실린 7편의 소설 중 ‘사라지는 언어들의 영(靈)’이라는 독특한 화자를 내세운 ‘침묵의 미래’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결국 용서에 대한 이야기다. “없던 일이 될 수도 없고, 잊을 수도 없는 일은 나중에 어떻게 되나. 그런 건 모두 어디로 가나.”(‘노찬성과 에반’) 인간의 기도는 ‘그저 한번 봐달라’는 것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