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이후 영업이익 77.4%↑ ‘능력 입증’
격식보다 가치 집중하는 실용주의 추구
5년간 영입한 임원급 인재만 100여 명
AI·Bio·Cleantech에 5년간 54조 원 투자
6월 29일 취임 5주년을 맞은 구광모 대표는 재임 기간 매출 37.7%, 영업이익 77.4% 성장을 기록해 내며 경영자로서 능력을 입증했다. [㈜LG ]
구 대표 취임 당시 LG그룹에 세간의 관심이 쏟아졌다. LG는 1947년 창업주 구인회 회장이 설립한 락희화학공업사에서 출발해 1970년 2대 구자경 회장의 럭키그룹 시대, 1995년 3대 구본무 회장의 LG그룹 시대를 거치며 재계 4대 그룹으로서 지위를 공고히 해온 터였다. 4대 구광모 회장 시대가 열리면서 LG그룹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관심을 모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40대 젊은 총수가 지주회사 및 계열사를 제대로 이끌 수 있을지 재계 안팎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흘러나왔다.
지난 5년간 구 대표는 이런 의혹을 불식했다. 취임 초부터 자신만의 경영 방식으로 그룹 내 다양한 사업의 선택과 집중을 추진해 포트폴리오를 고도화했다. 특히 미래 먹거리로 분류되는 배터리 및 전장 사업에서 두드러진 성장을 이끌어냈다. 구 대표는 숫자를 통해 능력을 입증했다. LG그룹 매출은 구 대표 취임 이듬해인 2019년 138조1508억 원에서 2022년 190조2925억 원으로 약 37.7%,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4조6341억 원에서 8조2202억 원으로 약 77.4% 성장했다.
젊은 총수의 다른 리더십
LG그룹이 지난 5년간 두드러지게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구광모 대표의 남다른 리더십이 첫손으로 꼽힌다. 그는 ㈜LG 회장에 취임한 후, 사업 포트폴리오를 관리하고 인재를 발굴 및 육성하는 지주회사 대표 역할에 집중했다. 스스로 ‘회장’이라는 직위가 아닌 ‘대표’라는 직책으로 불러달라고 한 이유도 그 역할에 집중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경영인에게 요구되는 여러 덕목 가운데 ‘과감한 결단력’은 빠지지 않는 요건이다. 업계 상황과 전망을 냉정하게 판단하고, 비교우위를 점하는 사업 분야를 중심으로 과감한 결단력을 갖고 생존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구 대표는 그런 면에서 경영인으로서 면모를 제대로 보였다. 최근 5년간 모바일(스마트폰) 사업 종료, LX 계열 분리, LG에너지솔루션 기업공개(IPO), AI연구원 설립 등 그룹 내 굵직한 변화를 이끌어냈다.
구 대표는 이와 함께 세부 변화도 시도했다. 지주회사 대표와 계열사 CEO의 역할을 명확하게 구분한 것이 그 일환이다. 전체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상하고 사업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일에 집중하면서, 각 계열사 CEO가 구체적인 전략을 짜고 실행해 나가도록 했다. 지주회사가 계열사 경영에 지나치게 간섭하거나, 무책임하게 방관하는 일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그는 계열사 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도 항상 열린 자세를 보였다. 계열사 임원들에게 “사업을 진행함에 있어 어떤 부분이 필요한지, 어떤 도움을 드리면 되는지 가감 없이 말해 달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고. 사업 전략을 짜고 실행에 옮기는 일은 계열사 CEO의 몫이지만 구 대표는 그들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지지해 준 것으로 알려졌다.
구 대표의 이런 면모는 형식이나 격식에 연연하지 않는 열린 리더의 자세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그는 가치에 집중하고 실용주의를 추구하는 리더로 알려져 있다. 그는 대표 취임 후 가장 먼저 그룹 차원의 회의체나 모임을 실용적 형태로 개선했다.
먼저 임원들이 모여 대표에게 보고하고, 대표가 경영 메시지를 전달하는 과거의 회의 방식에서 탈피했다. 현재는 임원회의도 회의 때마다 상황에 맞는 주제를 정해 토론하는 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필요에 따라 외부 전문가를 초청해 강연을 듣기도 한다. 400여 임원이 분기마다 모이던 임원 세미나를 없앤 것도 큰 변화다. 회의 성격에 따라 50명 미만의 인원이 참가하고, 온라인 등을 활용해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이 직접 다양한 의견을 내는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다.
조직 내 근무 문화도 구광모 대표 취임 이후 바뀌고 있다. 2021년 LG는 여름철 반바지까지 허용하는 완전 자율 복장 제도를 도입했다. 직원들이 가벼운 옷차림으로 근무하며 유연하고 스마트하게 업무에 몰입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한 것이다. 제도 시행 2년이 지난 현재, 서울 여의도 LG 트윈타워에서는 하절기 반바지나 샌들을 착용한 직원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다.
굵직한 인재 영입이 만든 선순환
구광모 대표는 2020년 LG AI연구원을 출범하고 국내외 AI 분야 인재들을 대거 영입해 왔다. LG AI연구원은 현재 인력을 200여 명으로 확대했고, 올해까지 그룹 내 1000명의 AI 전문가를 육성해 글로벌 AI 리더십을 확보한다는 목표다. 사진은 세계 10대 AI 석학으로 꼽히는 이홍락 CSAI. [㈜LG]
구 대표는 주력 사업 분야에서 인재를 두드러지게 영입해 왔다. 취임 이듬해인 2019년 3M의 해외사업을 이끌던 신학철 부회장을 LG화학의 CEO로 영입했고, 2020년에는 세계 10대 AI석학으로 꼽히는 이홍락 미국 미시간대 교수를 LG AI연구원 CSAI(Chief Scientist of AI)로 영입했다. 2021년에는 백악관 사물인터넷부문 혁신연구위원 출신인 이석우 전무를 LG전자 북미이노베이션센터장으로, 2022년에는 미국 ST&T 출신의 황규별 전무를 LG유플러스 CDO(Chief Data Officer)로 선임했다. 올해 1월에는 아마존 출신인 문혜영 LG생활건강 북미사업총괄 부사장을 영입했다.
2018년부터 올해 5월까지 LG에 합류한 임원급 인재는 100여 명에 달한다. 굵직한 임원급 인재 영입은 회사를 성장시키는 한편 이를 발판으로 더 좋은 인재들이 몰리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특히 AI 분야에서 인재 영입이 두드러졌다. 이홍락 CSAI 영입 이후 2022년에는 국내 AI 분야 최고 석학으로 꼽히는 서정연 서강대 교수가, 마이크로소프트 리서치의 초빙교수로도 활동하며 글로벌 AI 최신 연구를 주도한 이문태 미국 일리노이대 교수가 LG AI연구원에 합류했다. 글로벌 AI 전문가들이 대거 LG로 자리를 옮기자 함께 일하고자 하는 젊은 인력도 자연히 늘었다. AI연구원 설립 당시 70여 명에 불과하던 연구 인력은 현재 200여 명으로 3배가량 증가했다. LG가 AI 분야에 얼마만큼 사활을 걸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임원 인사에서 젊은 인재를 과감하게 기용한 것도 눈에 띄는 변화다. 구 대표는 5년간 ‘고객 가치’와 ‘미래 준비’를 키워드로 잠재력과 전문성을 갖춘 젊은 인재를 대거 기용했다. 2022년 인사에서 114명의 신임 상무를 발탁했는데 이 가운데 92%가 1970년 이후 출생이다. 또한 빠르게 변모하는 글로벌 시장경제 트렌드에 발맞춰 민첩하고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 구 대표는 상무층을 두텁게 만들었다. 이는 중장기적 관점에서 CEO 후보 풀을 넓히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최근 2년 연속 전체 승진자 가운데 70% 이상이 신규 임원인 점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구 대표 취임 이후 여성 임원이 늘어난 것도 긍정적 변화로 볼 수 있다. 2018년 말 29명에 불과하던 여성 임원의 숫자는 올해 61명으로 2배 이상 늘었다. 전체 임원 가운데 여성 임원 비율도 2018년 2.9%에서 2023년 6.7%로 증가했다. 지난해 인사에서는 2명의 여성 CEO가 탄생해 이목을 끌었다. 이정애 코카콜라음료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해 LG생활건강의 CEO로, 박애리 지투알 전무는 부사장으로 승진해 CEO 자리에 올랐다. 4대 그룹 상장사 가운데 오너 일가를 제외하고 여성 전문경영인이 CEO로 선임된 것은 두 사람이 처음이다.
미래성장동력 A·B·C 육성
LG그룹은 미래세대와 공존하는 지속 가능한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미래성장동력으로 클린테크(Clean Tech) 관련 사업을 적극 육성해 나가기로 했다. 사진은 지난해 6월 마곡 LG화학 R&D 연구소를 방문해 바이오 소재, 폐플라스틱 재활용 관련 기술개발 현황을 살피는 구광모 대표. [㈜LG]
우선 LG는 다양한 산업 분야의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초거대 AI 분야 투자에 속도를 내고 있다. 초거대 AI는 대용량 연산이 가능한 컴퓨팅 인프라를 토대로 대규모 데이터를 스스로 학습해 인간처럼 사고, 학습, 판단할 수 있는 AI를 말한다. LG AI연구원이 2021년 공개한 초거대 AI ‘엑사원(EXAONE)’은 AI 개발자가 아니라도 쉽고 간편하게 초거대 AI를 활용할 수 있도록 3대 서비스 플랫폼(유니버스·아틀리에·디스커버리)을 개발했다.
‘엑사원 유니버스’는 초거대 언어 모델 기반 플랫폼, ‘엑사원 아틀리에’는 텍스트와 이미지 간 양방향 생성이 가능한 멀티모달 기능을 탑재한 플랫폼, ‘엑사원 디스커버리’는 논문 및 특허 등 전문 문헌뿐 아니라 수식과 표, 이미지까지 스스로 학습해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세상의 난제를 해결하도록 돕는 플랫폼이다.
바이오 분야에서는 세포치료제와 같은 최신 기술을 활용해 암이나 대사질환 같은 질병을 정복하는 혁신 신약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최근 LG화학 생명과학본부는 4개 팀과 40여 연구인력을 갖춘 ‘세포치료제 TF’ 조직을 가동했다. 살아 있는 세포를 활용해 암을 치료하는 세포치료제는 최근 의약품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술이다. 연평균 50% 성장이 예상되는 미래 바이오 기술이기도 하다. 특히 제3세대 바이오 의약품은 ‘꿈의 항암제’로 불리기도 한다. 지난해 구 대표는 오송 LG화학 생명과학본부를 찾아 신약 파이프라인 구축 현황과 개발 과정을 살피고, 실행력을 높이기 위한 역량 강화에 주력해 줄 것을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지막으로 LG는 클린테크 분야에서도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관련 사업은 △바이오 소재를 활용한 친환경 플라스틱 개발 △폐플라스틱 및 폐배터리 재활용 기술 개발 △신재생에너지 기반의 탄소 저감 기술 강화 등이다. 특히 유럽을 중심으로 기업이 배출하는 탄소는 물론 협력회사와 물류 과정 등 제품 수명주기 전 단계에서 배출되는 탄소까지 관리하는 방향으로 환경 규제가 엄격해질 전망이다. 이에 LG는 친환경 클린테크 기술을 선제적으로 확보해 탄소 저감을 고민하는 고객사에 빠르게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LG그룹 관계자는 “전 세계적으로 탄소중립에 대한 인식이 강화되는 것에 대응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동시에 미래세대에게 안전하고 깨끗한 세상을 물려주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정혜연 차장
grape06@donga.com
2007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여성동아, 주간동아, 채널A 국제부 등을 거쳐 2022년부터 신동아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금융, 부동산, 재태크, 유통 분야에 관심이 많습니다. 의미있는 기사를 생산하는 기자가 되기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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