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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승경의 ‘눈으로 듣는 음악’ ⑤

시대마다 얼굴 바꾼 ‘미국 아이콘’ 뮤지컬

  • 황승경 │국제오페라단 단장·공연음악 감독 lunapiena7@naver.com

시대마다 얼굴 바꾼 ‘미국 아이콘’ 뮤지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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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뮤지컬은 150여 년 동안 끊임없이 다양성을 모색하며 발전해왔다. 1600년대 오페라에서 발아한 뮤지컬은, 미국에서 ‘오페레타’와 ‘버라이어티쇼’가 결합하면서 최초의 뮤지컬 ‘쇼 보트’(1927)를 선보였고, 서정적인 ‘사운드 오브 뮤직’(1959)을 넘어 오늘날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각색한 초대형 뮤지컬로 발전하고 있다. 미국 대표 아이콘이 된 뮤지컬, 그 역사 속으로 들어가보자.
시대마다 얼굴 바꾼 ‘미국 아이콘’ 뮤지컬

뮤지컬 ‘스파이더맨 : 턴 오프 더 다크’.

외국에 다녀온 사람을 출세한 사람으로 생각하던 초등학생 시절, 같은 반 친구가 미국 뉴욕에 사는 고모 집에 다녀왔다며 자랑했다. 현란한 공연광고 조명과 간판으로 뒤덮인 브로드웨이의 사진을 보여주었을 때, “나는 왜 뉴욕에 사는 고모가 없을까” 하며 친구를 부러워했다. 어른이 돼 뉴욕에 살며 브로드웨이를 매일 가볼 수 있었지만, 유년기의 브로드웨이는 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브로드웨이는 맨해튼 남단의 배터리 공원 북동단에서 시작해 바둑판 모양으로 배열된 거리를 비스듬히 가로질러 북으로 통하는 긴 대로다. 1900년 42번가에 빅토리아극장이 처음 들어선 후 많은 극장이 생기면서, 브로드웨이는 미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말이 됐다.

순수음악을 전공한 필자는 ‘브로드웨이산(産) 뮤지컬’을 자본주의 산업사회의 중심계층인 세일즈맨들의 지친 삶을 위로해주는 오락문화라고 생각해왔다. 웃고 울며 하룻밤 즐기는 그런 공연양식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필자의 이런 생각은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구경하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변했다.

뮤지컬이란 장르는 오페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그렇지만 고대 그리스 비극의 공연양식인 ‘노래하는 연극’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뮤지컬은 로마 시대를 거쳐 중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계승된 그리스 비극의 공연양식을 이어받은 것이다.

피렌체에서 태어난 오페라



부연설명을 하면 이렇다. 오페라는 중세가 저물어가고 실증주의 사상이 대두하고, 신대륙 발견과 과학의 발달로 유럽세계가 크게 요동칠 때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태어났다. 당시 피렌체에서는 상공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귀족들의 지원을 받아 고대 그리스 로마 문화를 이상으로 여기는 고전예술부흥운동, 즉 ‘르네상스’라고 하는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시기 예술가들은 그리스 연극의 공연 장면을 오로지 문헌적 고증을 통해 상상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남아 있는 희곡작품의 대본을 바탕으로 공연 장면을 재구성하면서 ‘노래하면서 연기한다(recitarcantando)’는 기본 개념을 중심으로 새로운 극형식을 만들어냈다. 이는 마치 콜럼버스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고 새로운 항로를 찾기 위해 통상적인 항로와는 반대방향으로 항해하다가 우연히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것과 같다 하겠다. 그리스의 비극 공연을 되살려보려는 사람들에 의해 우연히 새로운 형식의 장르로 오페라가 탄생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르네상스시대에 소수의 엘리트집단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귀족들과 특정 신분의 시민들이 즐겼던 오페라는 그리스의 비극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반면, 일반 관객의 수요 속에서 자연스럽게 싹을 틔우고, 관객과 상호작용을 통해 발전과 변화를 거듭한 뮤지컬은 그리스의 비극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1600년대 중엽의 초기 오페라는 부유층을 위한 마땅한 여가선용 장르가 없었기 때문에 5막의 길이로 하루 종일 공연됐다. 그러다가 지루함을 막기 위해 막과 막 사이에 희극적인 가벼운 내용의 ‘막간극(Intermezzo)’을 넣어서 공연하기 시작했는데, 주객이 전도되는 일이 일어났다. 이 막간극인 ‘인터메조’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관객들은 이 짧은 공연을 보기 위해 지루한 본 공연을 참고 견뎠다. 처음에 시사적인 내용이 거의 없이 가벼운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던 막간극은 관객의 호응 속에 ‘희극 오페라(Opera buffa)’로 발전했고, 희극 오페라에 다시 풍자적이고 희화적인 요소가 가미되면서 ‘오페레타(Operetta)’, 즉 ‘작은 오페라’가 탄생했다.

연극처럼 대사가 있고 무용의 비중이 컸던 이 오페레타는 뮤지컬의 탄생에 직접적 영향을 미쳤다. 오페레타는 개연성이 희박한 줄거리에 감상적이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는데, 오페레타의 선구자였던 자크 오펜바흐(1819~1880)는 여기에 유쾌한 패러디와 성적인 은유를 가미했다. 이후 오페레타는 유럽 각 도시에서 관람객의 형태에 따라 조금씩 변화하다가 요한 슈트라우스 2세에 의해 흥겨운 왈츠풍의 ‘비엔나 오페레타’로 새롭게 변신했다. 뒤이어 런던 오페레타를 이끈 영국의 윌리엄 길버트(1836~1911)와 아서 설리번(1842~1900)은 고차원적인 풍자를 순화된 언어와 익숙한 멜로디에 결합시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현대 뮤지컬 출현의 발판을 닦았다.

오페레타와 버라이어티쇼의 결합

20세기에 들어 세계의 중심이 런던에서 뉴욕으로 이동하면서 각 오페레타 역시 다투어 뉴욕 공연을 시작했다. 그 결과 오페레타는 대중이 즐기는 다양한 연희 형태의 장르와 결합하는 ‘미국식 변화’를 겪게 된다. 요즘 TV 오락프로그램에서 많이 사용하는 버라이어티쇼(Variety Show)와 오페레타의 결합이 일어난 것. 흑인으로 분장해 희극적으로 웃음을 자아내던 ‘민스트럴쇼(Minstrel Show)’에서 기원한 버라이어티쇼에는 노래·춤·만담·콩트 등을 엮은 ‘보드빌’, 외설적인 내용의 ‘벌레스크’, 줄거리만 없을 뿐 뮤지컬과 거의 같은 형식을 가지고 있던 ‘레뷔’ 등이 속해 있었다. 이 버라이어티쇼와 오페레타의 결합으로 뮤지컬이 재즈와 함께 미국 고유의 독창적인 대표 문화양식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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