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또한 시대착오적인 종북론(從北論) 갈등을 털어내고 합당하는 것이 순리다. 하지만 민주당이 이른바 ‘빅 텐트론’의 명분하에 민노당과 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합치되 각 당의 지분과 역할을 별도로 인정하면 된다는 통합우선론은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통합론자들은 모든 야당이 합쳐 한나라당의 재집권을 막는 것이 우선적 과제라고 주장한다지만 그것은 대단히 일방적인 요구일 수 있다. 줄잡아 세상의 반은 생각이 다른 법이다.
민주당은 최근 진보성을 강화했다고 하지만 근본적으로 중도 개혁의 성격이 강한 정당이다. 소속의원들의 이념적 스펙트럼도 보수우파에서 진보좌파까지 그 폭이 넓다. 이념정당이라기보다는 대중(국민)정당에 가깝다. 그에 비한다면 민노당은 진보 좌파의 색채가 짙다. 따라서 두 정당의 결합은 통합의 시너지 효과를 내기보다는 그 반대일 위험성이 크다.
이번 재·보선에서 의원배지를 달아 명실상부한 야권의 1인자가 된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지난해 “그 어떤 가치와 이념이라도 우리가 함께 행복하지 않다면 올바른 선택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실사구시(實事求是) 정치가 우리가 가야 할 길이며 국민이 기준이 되는 정치가 진보의 길이다”라는 말도 했다. 그의 중도적 성향을 보여주는 말이다. 분당의 유권자들이 그의 중도 이미지에 표를 주었다는 분석은 과히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중도는 매우 어려운 길이다. 양다리 걸치기도 아니고 적당히 타협하는 것도 아니다. 치우치지 않고 중심을 잡는 것은 양극단의 주장을 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손 대표가 5월 초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과정에서 보인 태도는 어정쩡했다. 그는 선거 전 ‘전면적 검증 없는 한-EU FTA 비준 저지’라는 야권연대 정책합의에 동의했다. 그러나 선거 직후 박지원 원내대표에게 여·야·정 합의 협상을 일임했다. 그런데 박 원내대표가 정부 여당과 비준안 처리에 합의하면서 일이 꼬였다. 손 대표는 당내 최고위원들의 반대와 야권연대 정책합의 파기라는 비난에 직면하자 비준안 합의처리 불가(不可)로 돌아섰다. 하지만 국회 표결에서 퇴장하는 형식으로 사실상 한나라당의 일방 통과처리를 방관했다. 비준안 처리에 찬성하자니 야권연대 정책합의에 어긋나고, 강력하게 반대하자니 분당에서 그를 지지한 중도 지지층이 등을 돌릴까 우려한 임시방편이라는 게 정치권의 해석이다. “민주노동당 등과의 선거연대를 고려해야 하지만 중산층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는 만큼 처리는 한다”는 손 대표의 발언은 정치권의 해석을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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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단일정당을 위한 통합우선론이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지적한 것은 바로 이런 경우 때문이다. 소수정당과의 정책연대도 이처럼 간단치 않은데 집권을 위해 무조건 통합부터 한다면 내부 갈등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당은 집권을 제1의 목표로 삼는다. 그러자면 무엇을 위한 집권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무턱대고 여야 1대1 구도로 가면 승리한다는 셈법으로는 다수 국민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 한나라당은 이번 재·보선에서 ‘민심의 쓰나미’에 직면했다. 민주당은 승리했지만 그들이 잘 해서 얻은 결과는 아니다.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선거는 변덕스럽다.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를 쉽사리 허용하지 않는다. 여론조사 따위는 이제 효력을 상실했다. 높은 투표율을 두려워하는 정당은 살아남기 어렵다. 하지만 이겼다고 오만하고 민심 읽기를 소홀히 한다면 오늘의 승자는 곧 내일의 패자가 될 수 있다. 2012년 레이스는 이미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