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호

시계 계급도 꼭대기에 앉은 오데마 피게

[럭셔리 스토리] 파텍 필립 제치고 가격 상승률 높은 시계 1위 등극

  • 이지현 서울디지털대 패션학과 교수

    입력2024-09-15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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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많은 사람이 자신의 소유물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 관계, 열망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시계는 주로 생일, 졸업 또는 경력의 관록을 표현하는 데 쓰인다. 이렇듯 시계가 강력한 감정의 부적이 되는 이유는 개인적 이야기를 담고 추억을 불러오며 현재 나의 위치를 반영하는 데 있다. 손목에 찬 근사한 시계는 태도부터 걸음걸이까지 자신 있게 만들어준다.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시계’로 통하는 오데마 피게(Audemars Piguet)가 바로 그런 브랜드다. 오데마 피게는 롤렉스(Rolex), 파텍 필립(Patek Philippe)과 함께 스위스 워치 메이커 ‘빅 3’로 꼽힌다.
    [오데마 피게]

    [오데마 피게]

    시계 장인이던 즬 루이 오데마(Jules-Louis Audemars·1851~1918)와 에드워드 오귀스트 피게(Edward-Auguste Piguet·1853~1919)는 1875년 그들의 고향인 스위스 르브라수스(Le Brassus)에 공방을 오픈했다. 제네바 북쪽의 쥐라 산맥에 자리한 이곳에서는 고급 스위스 시계 제작의 중심지 중 하나인 발레 드주(Vallée de Joux) 지역의 천연자원을 얻기가 쉬웠다. 특히 철광석을 추출할 수 있는 숲과 물, 얼음, 암석은 시계 산업이 발전하고 번창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 시계는 천문학에 근거해 시간의 흐름을 표현한 것으로, 자연은 항상 시간 측정 장치를 개발하는 데 영감을 줬다.

    오데마 피게는 1892년 최초의 미닛리피터(소리로 분 단위까지 시각을 알리는 기능) 손목시계 무브먼트(시계를 움직이는 부품 집합체)를 제작했다. 1899년에는 시계에 일곱 가지 컴플리케이션을 갖춘 그랜드 컴플리케이션(여러 개의 기능이 구현되는) 회중시계를 선보였다. 이 회중시계는 그랜드 및 스몰 스트라이크(소리를 내어 경과 시간을 알려주는 기능), 미닛리피터, 알람, 퍼페추얼 캘린더(일·월·요일·연도 등을 자동으로 설정하는 기능), 데드비트 세컨드(Deadbeat second·초침이 점핑하듯 움직이는 기능), 점핑 세컨드(초침이 60초를 지날 때 크로노그래프의 분침이 정확히 한 칸을 점핑해 나타내는 기능)가 있는 크로노그래프, 스플릿 세컨드 핸드(두 개의 시간 격차를 측정할 수 있는 기능) 등의 기능이 탑재됐다. 전에 없던 기능 덕에 오데마 피게의 역사적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1921년 오데마 피게는 혁신 정신을 보여주는 최초의 점프 아워(Jump Hour) 손목시계를 생산했다. 점프 아워 시계는 ‘시’를 전형적 시침으로 알려주는 대신에 ‘숫자 창’ 등을 통해 디지털로 표시한다. 마치 캘린더의 요일이 바뀌듯이 시간 창에 표시된 숫자가 분침이 60분 위치에 위치하면 다음 시간으로 바뀌는 것이다.

    1925년 오데마 피게는 세계에서 가장 얇은 1.32mm 포켓 워치 무브먼트를 제작했다. 1934년에는 시계의 복잡한 메커니즘을 보여준 최초의 스켈레톤 시계를 소개했다. 스켈레톤 시계는 시계의 내부 무브먼트를 밖으로 보이게끔 디자인해 시계 제작의 미학과 정밀함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1957년 선보인 칼리버 2120은 중앙 로터(rotor·회전자)가 있는, 세계에서 가장 얇은 오토매틱 무브먼트로 시계 산업 역사상 뛰어난 벤치마크로 기록된다.

    아이콘의 탄생, 럭셔리 스포츠 시계 ‘로열 오크’

    로열 오크를 디자인한 제럴드 젠타(위)와 첫 번째 로열 오크 5402 모델 출시 당시 광고. [gerald genta heritage, 오데마 피게]

    로열 오크를 디자인한 제럴드 젠타(위)와 첫 번째 로열 오크 5402 모델 출시 당시 광고. [gerald genta heritage, 오데마 피게]

    100년 넘은 전통을 가진 브랜드는 대부분 보수적이다. 반면 오데마 피게는 역사가 오래됐음에도 실험적 시도를 계속하는 젊은 이미지의 브랜드다. 1970년대 초반 오데마 피게는 쿼츠 파동(Quarts Crisis)에도 굴하지 않고 실험적 시도로 어려운 시기를 잘 버텨냈다. 쿼츠 파동은 미국과 일본의 시계 산업이 값싼 쿼츠 시계를 중심으로 비약적 발전을 이루는 사이 스위스 시계 산업은 수익성이 나빠져 많은 업체가 파산한 일을 두고 하는 말이다.

    1972년 오데마 피게가 출시한 ‘로열 오크(Royal Oak)’는 시계 제작의 장인인 제럴드 젠타(Gérald Genta)가 디자인했으며, 가장 상징적인 럭셔리 스포츠 시계 중 하나다. 당시 남자 시계 사이즈가 대부분 35~36㎜이었는데, 시계 브랜드 최초로 사이즈를 39㎜로 키웠다. 또한 스테인리스스틸 케이스, 일체형 브레이슬릿, 눈에 띄는 나사로 고정된 팔각형 베젤이 특징으로 원형 케이스가 아닌 독특한 8각 디자인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다. 팔각형 베젤은 19세기 영국 전함 로열 오크의 포문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이 디자인은 전통적인 명품 시계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스포츠 시계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과감하게 기존의 틀을 깨고 세상에 없던 스타일로 출시된 로열 오크 시리즈는 최정상의 시계 브랜드로서 오데마 피게의 입지를 다지는 계기가 됐다. 최초의 스테인리스스틸 소재 사용으로 유명해진 로열 오크는 파텍 필립을 대표하는 스테인리스스틸 시리즈인 ‘노틸러스(Nautilus)’를 탄생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986년 오데마 피게는 최초의 오토매틱 와인딩 울트라-신 투르비옹 손목시계를 출시해 브랜드의 기술력을 강화했다. 1993년에 출시된 ‘로열 오크 오프쇼어(Royal Oak Offshore)’는 오리지널 로열 오크보다 더 견고하고 스포티한 버전이다. 2012년 오데마 피게는 ‘로열 오크 탄생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여러 리미티드 에디션 모델을 출시, 디자인의 지속적 가치를 재확인했다.

    시계의 새로운 시작 알린 ‘코드 11.59 컬렉션’

    코드 11.59 퍼페추얼 캘린더(왼쪽)와 코드 11.59 투르비옹 오픈워크드. [오데마 피게]

    코드 11.59 퍼페추얼 캘린더(왼쪽)와 코드 11.59 투르비옹 오픈워크드. [오데마 피게]

    2019년 9월에는 새로운 세대를 위한 현대적이고 혁신적 시계 라인인 ‘코드(CODE) 11.59 컬렉션’을 출시했다. 도전(Challenge), 자신(Own), 대담(Dare), 발전(Evolve)의 각 앞 글자를 따서 브랜드 철학과 새로운 날이 시작되기 1분 전인 11시 59분을 나타내는 ‘11.59’를 합친 이름이다. 이 컬렉션은 ‘투르비옹 오픈워크드’ ‘로열 오크 미닛리피터 슈퍼소네리’ ‘로열 오크 퍼페추얼 캘린더’ ‘로열 오크 프로스티드 골드 크로노그래프’ 네 개의 시계로 구성됐으며 현대적 디자인과 첨단 기능을 갖춘 것이 특징이다.

    투르비옹 오픈워크드는 다이얼 전체에 더해진 스켈레톤 러그 일체형의 구조물로 손목에 매우 편안한 41㎜의 곡선형 케이스, 미들 케이스는 핑크골드로 제작됐다. 그 외 부분은 18ct 화이트골드로 만들어졌다. 로열 오크 미닛리피터 슈퍼소네리에는 직경 42㎜의 티타늄 케이스에 칼리버 2953 무브먼트가 탑재됐다. 백케이스에는 미닛리피터가 벨을 울릴 때 표현되는 파형이 각인됐다. 로열 오크 퍼페추얼 캘린더는 전체가 티타늄으로 제작됐다. 직경은 41㎜이며 무브먼트에는 칼리버 5134가 적용됐다. 케이스는 크리스털로 제작됐다. 다이얼을 통해 시간과 날짜, 윤년 같은 세부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로열 오크 프로스티드 골드 크로노그래프는 직경 41㎜로, 칼리버 4401이 탑재됐다. 케이스에는 사파이어가 사용됐다. 모두 단일 컬러로 출시된 나머지와 달리 유일하게 18ct 화이트골드와 핑크골드, 두 가지 컬러로 출시됐다. 다이얼에 오데마 피게의 브랜드명이 새겨졌고, 다이얼 가운데 ‘12’는 두 줄의 직선으로, 나머지는 한 줄의 직선으로 표현됐다. 핸즈와 서브 다이얼이 모두 같은 컬러인 것이 특징이다.

    출시 당시 모든 모델은 18K 화이트골드 또는 핑크골드로 제작됐다. 코드 11.59 컬렉션은 론칭 5년 만에 로열 오크의 대항마로 떠오르며 브랜드 매출 증가에 큰 역할을 한다.

    2023 제네바 시계 그랑프리 1위 석권

    2023 제네바 시계 그랑프리에서 ‘에귀유 도르’상을 수상한 ‘코드 11.59 울트라 컴플리케이션 위니베르셀’. [오데마 피게]

    2023 제네바 시계 그랑프리에서 ‘에귀유 도르’상을 수상한 ‘코드 11.59 울트라 컴플리케이션 위니베르셀’. [오데마 피게]

    매년 열리는 제네바 시계 그랑프리(GPHG)에서는 우먼 워치, 아이코닉 워치, 아티스틱 크래프트 워치, 크로노메트리, 이노베이션, 매케니컬 클록 부문으로 나눠 시상한다. 여러 부문 중 그해 가장 인상적 시계를 만든 브랜드에는 최고 영예인 ‘에귀유 도르(황금 바늘)’ 상이 주어진다.

    2023년 출시된 시계 중 가장 개성 있고 독창적이라는 평가를 받은 ‘에귀유 도르’ 시계가 바로 오데마 피게의 ‘코드 11.59 울트라 컴플리케이션 위니베르셀(CODE 11.59 Ultra-Complication Universelle)’이다. 이 시계는 원형과 팔각형이 완벽한 조화로 균형을 이룬 디자인의 ‘코드 11.59 바이 오데마 피게 컬렉션’에 현대적 감각을 더했다. 2023년 10월, 오데마 피게는 ‘코드 11.59 바이 오데마 피게 컬렉션’의 새로운 소재와 사이즈, 컬러로 다채로운 컬렉션을 공개했다.

    그중 ‘코드 11.59 바이 오데마 피게 울트라 컴플리케이션 위니베르셀’은 오데마 피게에서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매뉴팩처(공장제 수공업)에서 선보인 최초의 울트라 컴플리케이션 자동식 손목시계라는 점에서 큰 가치가 있다. 7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오데마 피게의 디자이너, 시계 제작자 등 장인이 긴밀히 협력해 완성한 최고의 결과물이다.

    이 시계는 매뉴팩처의 시계 제조 노하우를 ‘자동식 칼리버 1000’이라는 하나의 무브먼트에 모두 쏟아냈다. 그랑 소네리 슈퍼소네리, 미닛리피터, 퍼페추얼 캘린더, 스플리트 세컨즈 플라이백 크로노그래프, 플라잉 투르비옹 등 23개의 컴플리케이션을 포함한 40가지 기능을 갖추고 있다. 물론 인체공학적 설계로 사용자에게 편안한 착용감과 편의성도 제공한다.

    설립자 가문이 직접 경영하는 유일한 브랜드

    스위스 르부라수스에 있는 오데마 피게 본사. [오데마 피게]

    스위스 르부라수스에 있는 오데마 피게 본사. [오데마 피게]

    2023년 명품 시계를 다루는 글로벌 이커머스 플랫폼인 크로노24는 전 세계 120여 개국, 130만여 명의 시계 수집가가 사용하는 기능인 ‘워치 컬렉션’ 데이터를 집계해 ‘가격 상승률이 높은 시계 브랜드’ 순위를 발표했다. 전 세계 시계 수집가가 등록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자료를 수집하고, 사용자가 ‘워치 컬렉션’에 시계를 등록한 시점과 2022년 시점을 비교해 가격 상승률이 높은 브랜드에 순위를 매겼다.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인 브랜드는 오데마 피게로 71%를 기록했다. 파텍 필립은 70%로 2위, 리처드 밀은 56%로 3위에 올랐다. 롤렉스는 45%로 4위를 차지했다.

    오데마 피게는 현존하는 명품 시계 브랜드 가운데 설립자 가문이 직접 운영하는 유일한 회사다. 모든 시계는 제조한 장인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혼자 만드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모건스탠리가 럭스 컨설턴트와 함께 진행한 ‘2023 스위스 럭셔리 시계산업 리포트’에 따르면 오데마 피게는 지난해 2조 9200억 원 매출을 올려 세계 시계 시장점유율 4위를 기록했다. 이 리포트에서 주목할 점은 오데마 피게가 파텍 필립을 제치고 4위에 오른 점이다.

    오데마 피게는 그동안 자사 제품을 극소수의 딜러 숍을 통해서만 국내에 유통하다 2021년 8월 한국 지사를 설립했다. 국내에 브랜드가 소개된 이후 매년 성장세를 보였고, 시장 자체도 어느 정도 성숙했다고 판단해 중간 유통업자를 배제하고 한국에 직접 진출한 것이다. 한국은 오데마 피게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지사를 설립한 국가다. 한국 직영점을 오픈한 이후 오데마 피게는 더욱 안정적인 매출 성장세를 보이며 국내에 브랜드 가치를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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