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라면을 끓였다 달걀은 풀지 말아달라고,
친구는 내게 부탁한다 봉지 속에 면발을 사등분으로 부술 때마다
경미하게 눈가가 떨려왔다 그게 누구였냐고
왜 그랬느냐고 물으려던 찰나, 당혹은 비밀이었다
나는 가위로 얼린 파를 싹둑싹둑 자른다 양은 냄비의 뚜껑을 덮고
온몸에 열이 돌 때쯤에도 도무지 친구가 무섭지 않았다 고백이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방책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사람을 죽였다는 그 손 또한 아름다워 보이기 시작했다
질투가 필요했다 이따금씩 서로의 눈을 찾아오는
짐승들에게도 얼룩을 허용해야 했다 라면이 다 익을 동안
한 사람의 죽음과 우리는 상관이 없어진다 단지 라면이 매웠을 뿐,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공포가 난투처럼 창을 만든다
서로의 얼굴에 환하게 솟구치는 천국, 나는 여전히 구원을 믿지 않는다
⁎시집 ‘잘 모르는 사이’ 중에서
박 성 준
● 1986년 서울 출생
●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동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 2009년 ‘문학과 사회’ 시, 201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평론 등단
● 시집 ‘몰아 쓴 일기’, ‘잘 모르는 사이’ 등
● 박인환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