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 랑이 무척 아름다운 시리아 알레포의 대(大)모스크에서 아주 특별한 노인들을 보았다. 회랑 앞에 옹기종기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노인들은 맹인이었는데, 그들이 눈 멀게 된 까닭이 나를 놀라게 했던 것이다. 그들이 눈 멀게 된 것은 타고난 것도, 사고로 인한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스스로 자기 눈을 찔러서 맹인이 됐던 것이다. 그러니까 ‘자발적 맹인’이었다.
어떻게 자기 눈을 찌른단 말인가? 충격적인 것은 시리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이곳 알레포를 자청해서 안내해준 젊은이가 들려준 설명이었다.
“저 노인들은 메카로 성지순례를 다녀온 사람들입니다. 이미 천국을 봤기 때문에 이 세상에선 볼 것이 더 남아 있지 않다고 저렇게 한 것입니다. 이슬람 사회에는 저런 사람이 많습니다.”
순간, 종교에 대해 갖고 있던 내 생각이 갑자기 지진을 만난 듯 심하게 흔들렸다. 종교란 도대체 뭔가 하면서, 나는 다시 원점에 섰던 것이다.
89년 6월, 나는 바그다드 국제공항을 통해 처음으로 아랍땅을 밟았다. 공항의 출입국 수속장은 무슬림과 비(非)무슬림 출구로 나뉘어 있어 내국인·외국인으로 되어 있는 여느 국제공항과 달랐다. 그들에게는 국적보다는 이슬람을 믿느냐, 아니냐가 더 중요한 것 같았다. 이것이 세상을 ‘다르 알 이슬람(이슬람이 지배하는 세계, 즉 평화의 세계)’과 ‘다르 알 하르브(아직 이슬람의 법이 미치지 않는 세계, 즉 악의 세계)’로 이분하는 그들 세계관을 반영한다는 사실은 뒤에 알았다. 몇몇 모스크가 나같은 비무슬림에게는 아예 접근할 기회마저 주지 않아 속으로 ‘종교라는 게 정말 이래도 되는 건가’ 하면서 불평해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다르 알 이슬람, 다르 알 하르브
웬만한 곳에선 모스크 앞의 중정(中庭)까지는 입장을 허락했지만, 모로코의 페스란 곳에 있는 거대한 가라윈 모스크에선 입구에서부터 막고 나섰다. 그렇다고 거기에 들어가기 위해 ‘나는 무슬림이요’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양심을 속여서가 아니라 금방 들통날 일이었기 때문이다. 무슬림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려면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신 알라 신의 이름으로…’ 하고 시작되는 그들의 ‘주기도문’을 아랍어로 들려줘야 하는데, 그건 내게 불가능한 일이었다.
가보지는 않았지만 이슬람 최고의 성지로 꼽히는 사우디 아라비아의 메카는 도시 전체가 성지라 비무슬림의 접근이 원천적으로 봉쇄돼 있다고 한다. 그래서 세계 곳곳에 내로라하는 사진기자들을 파견하는 권위 있는 지리정보지 ‘내셔널 지오그래픽’도 이곳 사진은 어쩔 수 없이 이슬람측이 지정한 무슬림 사진사에게 부탁하곤 한다는 것이다.
성(聖)이란 따지고 보면 아무나 접근하지 못하도록 무언가로 가려져 있거나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는 대상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범상은 그와 반대로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것이고. 성경에서 말하는 낙원(paradise)이란 것도 그런 것이다. ‘paradise’는 고대 페르시아어로 ‘둘러쳐진 정원’이란 뜻의 ‘pairi daeza’에서 유래된 것이니까. 그곳에 사는 사람도 ‘먹지 말라’는 것은 먹지 말아야 하지 않았던가?
성지순례가 스스로 눈을 멀게 할 만큼 무슬림의 중대사라면 그것을 가능케 하고 고무하는 제도적 장치 혹은 분위기가 있을 것이다. 바로 그것이 1년에 1주일간 주어지는 성지순례 휴가 ‘하지(Haji)’다. 이때가 되면 사람들은 모든 일상을 접고 성지를 향해 떠난다. 일상에서 해방되어 ‘근원’과 만나고, 그리하여 종교적 열정을 다잡으려는 이 기간에 그들은 메카까지 못 가도 가까운 성지를 찾아 떠난다.
혹독한 자연, 혹독한 계율
하지는 정말 대단했다. 도로란 도로는 차량으로 넘쳤고, 거리 곳곳에서 축제가 벌어져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서로 으르렁거리는 사이라 해도 성지순례를 목적으로 방문하겠다고 하면 두말 없이 비자를 발급해주는 것이 이슬람 국가의 전통이라고 했다. 정치적인 이유로 순례를 방해할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마치 고대 그리스인들이 올림피아드 기간에는 휴전을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런 배경 때문에 무슬림에게 국경의 의미는 아무래도 퇴색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국경 없는(borderless) 시대’를 살아오면서 ‘동(動)의 문화’를 일궈왔던 것이다.
그러나 나 같은 비무슬림의 눈에는 이슬람이 지독스런 그 무엇으로 보였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좀처럼 용납하지 않는 것 같아서였다. 메카순례를 다녀온 사람이 자기 눈을 찌르는 것은 극히 일부 신자에게 있는 일이라고 쳐도, 매일 몇번씩 기도를 올리고, 1년에 한 달 동안 낮에 먹고 마시고 피는 일을 삼가야 하는 ‘라마단’을 지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만약 금식을 어기면 60일 동안 다시 라마단 금식을 해야 하는 것은 물론, 60명의 배고픈 이들을 흡족하게 먹여야 했으니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 그 동안 몇 차례 그 지역을 여행하면서 알게 된 것이지만, 그곳의 자연환경은 혹독하기 짝이 없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쬘 때엔 수은주가 50℃까지 올라갔고, 그런 날 사막길을 달리기라도 하면 숨이 턱턱 막혀와 정말 견디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먹을 것, 마실 것이 넉넉한 것도 아니니 그들은 어쩔 수 없이 강인해져야 하고 나태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 자신의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은 삼가야 했다.
그러나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런데도 그걸 게을리하면 살아남을 수 없으니 어떡하겠는가. 그게 사막의 삶인데. 그렇다고 그것이 부모가 자식에게 가르쳐서 해결될 것도 아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바로 이슬람 경전인 코란이었다. 종교의 이름으로, 신의 명령으로 그 땅에 태어나 사는 모든 이에게 사막에서 안전하고 넉넉한 삶을 살 수 있는 지혜를 가르치는 것이다. 코란은 이렇게 인간의 영적·육체적 삶의 모든 영역을 다스린다. 그들에게 종교는 예술이나 정치·경제보다 앞서는 것이다. 그들 사회에서 이슬람의 법인 ‘샤리아’가 인간이 만든 법에 앞서는 것은 이런 사정 때문인데, 그러므로 이슬람은 종교라기보다는 삶의 방식인 것이다. 비록 그들이 ‘인살라’라며 알라신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 해도.
무슬림이 삶을 기대고 살아가는 자연조건이 이렇듯 혹독하기에 코란은 어려운 것을 사람들에게 요구하고, 그러다 보니 그런 문화에 익숙지 않은 자의 눈에는 지독스럽게 비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이토록 가혹한 자연조건을 갖고 있지 않은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 등은 이슬람 국가이면서도 아랍지역의 무슬림에 비해 융통성이 많다. 인도네시아에선 라마단 기간 중에도 맥도널드 햄버거집에서 창문에 커튼을 치고 먹을거리를 팔면 눈감아 주며, 여성에 대해서도 까다롭지 않다. 인도문화의 영향을 받은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 같은 곳에서는 차도르를 걸친 여성이 수상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중동국가에서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아랍의 이슬람에 부드러운 면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그중의 하나가 새벽이면 어김없이 미나렛(모스크 옆의 첨탑)에서 들려오는 ‘무에진’(코란의 독경소리)이었는데, 정말 아름다웠다. 그 소리에 자주 잠을 깨곤 했지만, 그 특유의 음색과 리듬에는 무언가 애틋한 것이 깃들여 있는 듯해 내 가슴을 울렸다. 무에진은 다름아닌 이슬람의 소리이자 그들의 심장을 움직이는 맥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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