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보아야 바로 쓴다.
시를 잘 쓴다는 것은 자기가 사는 당대 사회를 자기만의 눈으로
해석하고 담아내는 일이다.
김용택 (시인)
글을 쓰는 일은 어떤 일일까? “사물을 바로 보마”라는 말은 김수영 시인의 시 구절이다. 사물을 바로 보는 것. 그것이 시를 잘 쓸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다. 보지 않으면 무엇이 생각나지 않을 것이고, 마음에 생각의 파문이 일지 않으면 글을 쓸 수가 없다. 보고, 생각하고, 생각한 것을 표현하는 것, 그것이 글쓰기의 기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에 관심을 갖는다. 관심을 가질 뿐 아니라 그 관심을 종합해서 자기의 시적 경험으로 자기화해 그것을 시로 형상화한다.
글을 쓰기 전에는 그냥 무심히 보아 넘겨버렸을 그 어떤 것을 기억해 두었다가 시를 써야 할 때 그것을 끄집어내 글로 쓰는 것이다. 글쓰는 사람들의 보관 창고에는 그러므로 온갖 것들이 보관되어 있을 것이다.
나는 아이들과 매주 글쓰는 시간을 갖는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아이들은 아무런 자기 감정이 담겨 있지 않은 글들을 아무런 감흥 없이 써 왔다. 모두 관념적인 표현들뿐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글을 쓰기 시작한 지 반년이 되어서야 아이들은 자기 생각을 담아내는 글들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지 않을 때에는 그냥 스쳐지나버렸을 풍경들을 마음에 담는 습관이 생긴 것이다. 달이 떠 있는 강물, 혼자 보는 별, 하늘을 나는 새, 자기 집에 있는 곡식들과 짐승들의 모양, 아버지 어머니가 일하는 모습들을 마음에 담아 두었다가 글을 쓸 때 풀어내는 것이다.
나는 늘 아이들에게 자기가 한 일을 쓰라고 권한다. 없는 일을 만들어 쓰지 말고 한 일을 쓰게 함으로써 아이들은 사실을 쓰기 시작하고, 그 위에다가 자기의 생각을 얹어 보는 것이다. 나는 나무를 보는 일을 시킨다. 보아라 나무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보아라 강물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어떤 것이 있는가? 아이들은 그러므로 사물을 보는 것이다.
시는 무엇보다도 마음에서 우러나야 한다. 억지로는 절대 글이 되지 않는 법이다.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자세히 보아야 바로 보는 것이다. 바로 보는 일이란 남의 눈이 아니라 자기만의 눈을 갖는 것이다. 세상에는 새것이 없다. 다만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탄생한다고 한다. 그것이 창조다. 창조는 경이의 눈으로 사물을 보아야만 가능하다. 그래서 시인들은 감동을 잘 한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하찮고 별 볼일 없는 풀 한 포기로 세계를 읽어내는 경이의 눈을 시인은 갖고 있다.
우리 반 2학년 창우가 어느 날 아침 나에게 일기장 대신 글쓰기 노트를 가져왔다. 창우는 앞으로 일기 대신 동시를 쓰겠단다. 그러면서 글 한 편을 가져 왔는데 제목은 ‘반디불’이다. 반딧불이가 아니라 반디불이지만, 그리고 받침과 띄어쓰기와 문장의 앞뒤가 잘 맞지는 않았지만 나는 감동했다.
“반디불은 살으는대가 어디일까 반디불은 밤에 우리 집에 만치만 참 아름답다 반디불은 돌아다니는 게 참 예쁘다 나는 반디불이 아름답다 그리고 예쁜 반디불이다”
중요한 것은 창우가 드디어 무엇을 본 것이다. 반딧불이들이 날아다니는 앞산을 보고 방에 들어와 시를 썼을 창우의 마음과 모습은 그림이요 시다. 날아다니는 시인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창우가 그런 시를 쓰고, 시인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고 해서 시인은 아니다. 창우는 시의 눈을 가졌지만 세상을 종합하는 힘이 없는 것이다. 창우는 시 속에 아무런 사상이나, 사회와 역사, 그리고 인간 생활 전반에 대한 그 어떤 철학적인 내용을 담을 수 없는 것이다.
시를 잘 쓴다는 것은 자기가 사는 당대 사회를 자기만의 눈으로 해석하고 담아내는 일일 것이다. 자기와 세계 간의 긴장을 시라는 형식을 통해 새로운 눈으로 해석하는 것, 그것이 시를 잘 쓰는 것이다. 우선 사물을 자세히 보고, 그리고 사물을 바로 보는 일이야말로 자기를 세상에 바로 세우는 일일 것이다.
약장수가 가수를 내세우는 까닭
노회한 약장수는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다짜고짜 만병통치약 살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노련한 작가도 마찬가지다.
이윤기(소설가)
나는 어떤 도시로 여행하면 먼저 그 도시의 장거리를 구경하고 싶어한다. 국내의 도시로 여행하든 외국 도시로 여행하든 마찬가지다. 해거름에 장거리에서 첫날의 저녁밥을 먹는 일은 그 도시의 속살 냄새를 맡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남도(南道)의 한 소도시. 나는 초행인 그 소도시의 장거리를 홀로 걷는다. 어디에선가 슬픈 노래가 들려오고 있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서는 더이상 들을 수 없을 듯한, 한물간 여가수의 흘러간 노래다. 나의 걸음은 그쪽으로 쏠린다. 짐작했던 대로 약장수가 판을 벌이고 있다. 보고 듣는 사람의 마음을 짠하게 하는 여가수의 노래는, 울긋불긋하게 차려입은 차력사의 차력 시범으로 이어진다.
발길 돌릴 것 없다. 잠들기 전까지 마땅히 할 일도 없다. 밑져야 본전이다. 차력사의, 보아도 그만 안 보아도 그만인 차력 시범은 원숭이 묘기로, 원숭이 묘기는 약장수의 본론인 약 선전으로 이어진다. 그러다 나는 그만 여가수의 페이소스, 차력사의 오버액션, 약장수의 허풍에 차례로 정이 들고 만다.
어둑어둑해진 녘에 장터를 떠나는 내 손에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게 된, 나에게는 소용도 없는 만병통치약이 들려 있다. 약장수는 여가수의 노래로 나를 판으로 끌어들여 약을 팔아먹은 것이다. 언필칭 성동격서(聲東擊西)다. 공갈은 동쪽에다 치고 주먹질은 서쪽에다 하기다.
나는, 글쓰는 일 역시 장거리 약장수가 약을 파는 것과 흡사하다고 생각한다. 장거리 약장수가 약을 팔려면 먼저 사람을 모아야 하듯이, 글로써 자기 뜻을 전하려면 먼저 독자를 글 속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읽게 해야 한다. 읽히는 데에 실패한 주장은 발화(發話)되지 못한 주장이나 마찬가지다. 약장수에게, ‘독자를 글 속으로 끌어들이기’ ‘그 글을 기어이 읽히기’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사람 모으기다. 그래서 노회한 약장수는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다짜고짜 만병통치약 살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는 먼저 여흥을 베풀어 사람들 마음을 느슨하게 푼 다음에 본론을 슬그머니 내놓는다. 노련한 작가가 쓴 글의 도입부는 대체로 사람 마음을 푸근하게 만든다. 그래서 독자는 그 글에 끌려 들어간다. 작가는 한참 끌고 들어가다가, 본론에 이르면 안면을 싹 바꾸어 버린다. 약은 이 대목에서 파는 것이다.
“어린이 여러분, ‘보통’의 반대말이 무엇이지요?” 하고 선생님이 묻자, “예, 선생님, ‘곱배기’요” 하는 대답이 즉시 튀어나왔다. 그는 자장면 집 아들이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자신이 젖어 있는 습관이나 스스로 처해 있는 상황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경제학자 정운영 박사가 올림픽 이후의 경제를 걱정하면서 지금부터 12년 전에 ‘한겨레신문’에다 쓴 글의 들머리다. 이 노련한 약장수는 이런 들머리로, 경제수치 읽는 것이 질색인 나 같은 사람에게까지 자신의 주장을 펴는 데 판판이 성공한다.
군대 생활할 때 나는 책을 좀 읽고 싶었다. 하지만 하급자 시절에는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하사관들이나 고참병들은 내가 즐겨 읽는 영미 소설이나 일본 소설을 자주 빼앗아가고는 했는데 나는 책을 빼앗길 때마다 심한 절망을 느끼고는 했다. 항의하다가 얻어맞은 일도 있다. 그래서 나는 전략을 수정했다. 표지를 갈아 끼운 것이다. 말하자면 표지를 ‘세속의 길 열반의 길’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존재와 무’ 따위로 바꾼 것이다. 하사관이나 고참병들은 더 이상 빼앗아가지 못했다.
그들로 하여금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읽힐 묘안을 낸 것도 그 때다. 책표지를 ‘청춘의 쌍곡선’으로 바꾸면 얼마든지 가능했을 것이다. 나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도 들머리는 ‘청춘의 쌍곡선’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번도 뵌 적이 없지만, 미국까지 싸가지고 간 ‘광대의 경제학’ ‘저 낮은 경제학을 위하여’를 정독하면서 글쓰기를 배웠으니 나는 그분의 문하인 셈이다. 약장수가 가수와 차력사를 내세우는 까닭을 이제야 어렴풋이 짐작한다.
글쓰기 노하우글쓰기는 내 삶의 표현
내게는 문학이 반찬, 미술이 밥이다. 둘이 다투는 경우는 거의 없다.
두 우물에서 나온 물은 행복하게 뒤섞여 공존한다.
김병종(화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받는 한결같은 질문이 있다. 화가인 당신은 왜 글을 쓰느냐. 한 우물만 파도 될까말까 한 세상에 그렇게 여러 가지를 하면 화가로 성공할 수 있겠느냐와 같은 것이다.
가끔 호의적인 반응을 보내오는 분도 있기는 하다. 전문적으로 글쓰는 일에 종사하지도 않는 당신이 어쩌면 그렇게 글을 잘 쓰느냐는 물음이 그것이다. 지난 30년간 이런 질문을 하도 많이 받다 보니 이제는 누가 물을라치면 속으로, 또 그 얘기, 하고 실소해버린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사람들의 머릿속은 참으로 토지등기등본처럼 영역가름이 선명하구나 하는 것을 느끼곤 한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한마디로 말해서 글쓰기가 내겐 삶의 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림 그리기가 내 삶의 한 방식인 것처럼 글쓰기도 나의 유력한 삶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 점에 있어서는 독서나 여행도 마찬가지다. 나는 서음(書淫)이라 할 만큼의 독서광에, 세계를 예순 나라 이상 돌아다닌 여행광이다. 독서나 여행 또한 내 삶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삶의 한 방식임은 물론이다.
그런데도 허다한 사람들의 뇌리 속에는 그림은 언제 그리나 하는 ‘껄쩍지근함’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런 염려일랑 접어두어도 좋을 듯하다. 나는 충분히, 그리고 열심히 화가라는 역할을 감내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문학의 시대는 갔다’는 비관적인 견해를 피력한다. 더 나아가 인문학은 죽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느 정도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전자 매체가 발달한다 해도 문학이나 글쓰기의 행위는 죽을 수 없는 사항이다. 인간이 사색하는 한 글쓰기는 계속될 것이다. 오늘도 나는 사색한다. 그리고 그 사색의 결정물들을 성격에 따라 글과 그림으로 나누어 표현한다.
내가 글쓰기에 별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 것은 물론 수십 년 동안의 왕성한 독서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내 나름의 회화적(繪畵的) 글쓰기 스타일을 갖게 된 것에는 그림의 상상력이 많은 도움이 되어주었다. 마찬가지로 그림 그리는 작업에는 문학적 상상력이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그래서 내게는 문학이 반찬, 미술이 밥이다. 둘이 다투는 경우는 거의 없다. 두 우물에서 나온 물은 행복하게 뒤섞여 공존한다.
문학과 글쓰기가 죽어버린 시대인지는 모르겠으되 요즈음 문학과 글쓰기의 영역이 현저히 줄어버린 것은 사실이다. 이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사색이 줄어들고 행위만 난무하는 시대라는 증거일 것이기 때문이다. 사색 없는 행위는 얼마나 건조하고 위험한 노릇인가. 노래방이 퍼져서 아마추어 가수들이 넘쳐나게 되었듯 작문 교실이라도 퍼져서 글쓰기의 유행이라도 불어닥쳤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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