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작품의 산고(産苦)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많은 이들에게 학창시절 글짓기 시간은 지루하고 당혹스런 기억으로 남아있기 일쑤다. ‘봄’이니, ‘낙엽’이니, ‘남북통일’이니 하는 천편일률의 주제들은 아무런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데, 쥐어짜듯 몇 줄 써놓고 아직 한참 남은 원고지의 공백에 막막해지던 심정 말이다.
그런데 사회로 나와도 곤혹스런 글쓰기와 영영 이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다 못해 자기소개서나 업무상 필요한 보고서, 보도자료 한두 장을 쓸 일이라도 생긴다. 자주 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글쓰기는 더 까다롭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맞춤법과 문장은 제대로 됐는지, 의도한 바가 잘 담긴 글인지 도무지 자신이 없다.
요즘은 ‘자기표현의 시대’다. 말도 잘해야 하지만, 글로써 자기 의사를 정확히 전달하는 일도 중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글을 잘 쓸 수 있을 것인가. 전문가들의 조언을 토대로 그 원칙들을 살피고, 분야별 글쓰기 요령도 점검해본다.
▷ 글을 잘 쓰려면 이렇게
* 많이 읽고 많이 써야 한다
가장 흔히 나오는 글을 잘 쓰기 위한 방법으로는 ‘많이 읽고 많이 쓰라’는 조언이다. ‘감동적인 글을 읽어보지 못한 사람은 감동적인 글을 쓸 수 없다’는 말도 있다. 시인 김수영은 일기에서 ‘피로서 책을 읽고 무기로서 쌓아두어야 한다’고 적었다. 작가 김원일씨는 문학을 하게 된 동기의 첫째를 독서체험으로 돌린다. “남의 글을 부지런히 읽다보면 나도 글을 쓰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글쓰고 싶어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자비를 들여 수필집이나 자서전을 출판하기도 하고, 인터넷 사이트에는 수천명의 사이버 칼럼니스트들이 활동 중이다. 구청 공무원이 소설을 쓴다거나 현직 순경이 자신의 경험담을 인터넷에 연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글쓰기에 대한 선망은 크면서도 그 밑거름이 되어줄 글읽기에는 여간 소홀한 게 아니다. 한국 성인의 독서량은 한 해 평균 10권을 밑돈다.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면 한번쯤 자신이 얼마만큼 치열하게 책을 읽고 있는지 헤아려볼 일이다.
* 좋은 문장을 외운다
민음사 편집부장 장은수씨는 “글쓰기를 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좋은 글을 외우는 것”이라고 말한다. 주입식 교육의 폐해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지만, 문장교육만큼은 좋은 글을 외우는 주입식이 꼭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조선시대 지식 엘리트의 평균수준은 지금보다 높았다. 조선시대 서간문을 보면 고금의 전거를 넘나들며 유려하게 문장을 펼칠 뿐 아니라 논리정연하기까지 하다. 이것은 당대의 교육방식에서 비롯된 결과다. 옛날 선비들이 어릴 때부터 달달 외우다시피 하며 배운 ‘천자문’이나 ‘논어’ ‘맹자’ 등은 사실 시와 논설문의 전형 아닌가. ‘동문선’도 고금의 대표적인 문장들을 모아 70여 가지 글쓰기의 전형을 보여주는 참고서다. 결국 선인들은 이런 문장들을 되풀이 익히고 외움으로써 ‘동서고금의 아름다운 문장이 핏속에 흐르게 한’ 것이다.”
모델이 될만한 좋은 글을 많이 접해서 내면화하는 과정을 통해 독자는 글쓴이의 독창적인 사고와 표현체계는 물론 논리적이고 수사적인 글쓰기의 기본 요령도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된다. 처음에는 재미있고 쉬운 글에서 시작해 점차 정도를 높여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
* 말하기와 글쓰기는 다르지 않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덕무(1741-1793)가 지은 ‘사람답게 사는 즐거움’에는 선비의 예절을 이르면서 “언어는 소근거려도 안 되고, 지껄여도 안 된다. 또 산만하게 해도 안 되고, 지체해도 안 되며, 길게 끌어도 안 되고, 뚝뚝 끊어지게 해도 안 된다. 뿐만 아니라 힘없이 해도 안 되고, 성급하게 해도 또한 안 된다”고 적고 있다. 본디 이 구절은 말하기에 대한 것이지만, 글쓰기에 대한 원칙으로 바꾸어 되새겨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글을 잘 쓰는 한 방법은 말하듯 쉽게 쓰는 것이다. 자기가 쓴 글을 소리내어 읽어보는 것도 좋은 확인 방법이다. 말하듯 쉽게 쓴 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 가운데 하나가 홍명희의 ‘임꺽정’이다.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얘기를 들려주듯 담담하게 적어내려간 그 작품은 시대를 초월해 자연스런 문장의 한 표본으로 남아 있다.
* 단문을 쓰는 훈련을 한다
글을 잘 써보겠다며 수식어를 자꾸 집어넣다 보면 글이 길어지게 된다. 이것은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글이 길어지면 잘못된 문장이 되기 쉽다. 특히 주어 술어의 호응이 엇갈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간단하다. 한 문장에는 한가지 생각만 담기로 하는 것이다. 여자의 스커트와 연설은 길이가 짧아야 한다는 우스개소리가 있다. 이것은 글쓰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렇다면 짧은 글쓰기 연습은 어떻게 할까. 미국에서 통용되는 아주 기술적인 교육법으로 단문을 반복하는 훈련이 있다. 이를테면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는 동작을 3단계로 묘사한다고 하자. 동전을 넣는다-자판기 단추를 누른다-커피를 꺼낸다가 된다. 이것을 4단계, 5단계, 10단계 하는 식으로 계속 늘려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상황을 정확하고 명료하게 묘사하는 습관, 사고훈련이 이뤄진다.
* 글쓰기의 특징과 단점을 빨리 찾아내 고친다
문장도 각자 개성이 있는 것이므로 일률적으로 어떤 모범답안만을 따르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일반인들은 자기 글의 특징을 빨리 발견해 단점을 반성하고 고치는 것이 중요하다. 가령 단락의 첫 부분에 ‘그러나’ ‘그런데’ 등 접속어를 계속 써야 말이 이어지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대표적인 잘못된 습벽인데, 이런 것들은 얼른 찾아내 고쳐야 한다. 또 늘 문장이 길어진다면 짧고 간결하게 구사하는 문장도 간간히 집어넣고, 늘 짧게만 쓴다면 지속성과 유장한 흐름이 없으므로 복문을 쓴다든가 하는 식으로 의식적인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
* 짜임새 있고 자연스러운 글을 쓰도록 노력한다
서울대 권영민교수는 “부분적으로 아무리 표현이 아름답다 하더라도 그 자체로 잘 쓴 글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전체를 훑어보아 짜임새가 있어야 한다”고 ‘좋은 글’에 대한 기준을 밝힌다. 이 짜임새란 단락의 구획이라든가 논의의 흐름같은 여러 측면에 해당할 수 있다. 글이란 생각을 표현해놓은 하나의 덩어리이므로, 짧은 글이건 긴 글이건 사고의 균형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그가 지목하는 것은 얼마나 정확한 어휘를 사용하는가이다. 상황에 맞는 어휘를 동원할 수 있는 능력은 중요하다.
그러나 이것은 다소 전문가적인 접근이며, 사실 일반인들은 막힘 없이 자연스럽게 읽힌다면 좋은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심오한 사상을 담았더라도 문장이 자연스럽지 못하다면 잘 쓴 글이라고 보기 어렵다. 오래 써온 자기 언어에 대해서는 누구나 어느 정도 직관을 가지고 있다. 좋지 않은 문장은 굳이 잘못된 점을 따져보지 않아도 단박에 부자연스런 느낌이 온다. 이런 부자연스런 느낌이 적은 것이 좋은 문장이다. 글에 변화를 주는 것도 중요하다. 변화가 없다면 밋밋한 문장이 될 것이다.
* 글에 개성을 살려라
글맛 좋기로 소문난 작가 이윤기씨는 모든 글에 적어도 하나의 위트를 집어넣는다. 그의 글을 읽는 이들은 언제 어디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오나 기대감을 갖고, 그런 덤을 만날 때마다 싱긋 웃음짓는다. ‘관촌수필‘에서 보여준 이문구의 해학, 지적인 유머를 선보이는 성석제의 톡톡 튀는 문장도 때론 미소를, 때론 폭소를 자아내며 읽는 흥을 돋운다.
탁월한 문장가로 꼽히는 작가 이문열씨는 논란이 많았던 소설 ‘선택’에서 보듯, 옛스런 의고체(擬古體) 문장을 잘도 구사한다. 방대한 한학 지식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그 역시 독자들을 매료시키는 훌륭한 도구임에는 틀림없다. 산문집 ‘풍경과 상처’ ‘자전거 기행’ 등에서 김훈은 현기증 날 정도의 미문으로 읽는 이의 기를 질리게 한다.
이렇듯 글 잘쓰는 사람들에게는 그 사람 나름의 개성이 글에서 묻어 나온다. 유명 작가 수준의 명문장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반인도 자신의 글에 자신만의 체취를 담아볼 일이다. 그 방법은 솔직하게, 열심히 쓰는 것이다. 따뜻한 성품이 우러나는 글, 정직한 글, 재치있는 글, 시원시원한 글, 모두 매력적이고 좋은 글이다.
* 전문가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우리나라는 문장 교열 전문가가 드물다. 몇몇 출판사의 고참 편집자들도 대부분 기획과 편집, 행정업무까지를 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편 필자들은 자기 글에 손대는 것을 마치 권위를 침범당하는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이것이 제대로 된 좋은 글, 좋은 책이 나오지 않는 중요한 한 가지 이유가 된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아무리 유명한 대학교수라도 책을 내기 전에는 출판사를 통해 철저한 전문 교열과 편집을 거친다. 전문가들은 문제점을 지적하며, 필요하다면 책 전체의 구성을 재조정하기도 한다. 표기법이나 어법상으로 완벽하면서도 저자의 개성을 살리는 글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적어도 공식적으로 출간되는 글이라면 제도적으로 전문가의 손을 거칠 필요가 있다. 일반인들도 혼자서 끙끙대지 말고 전문가에게 자신의 글을 보여 잘잘못을 가리고 고치는 기회를 가진다면 좋을 것이다. 외국 대학에서는 자체적으로 학술문장센터가 있어 글쓰기 실력이 모자란 학생들이 잘못된 점을 교정하고 좋은 글을 쓰는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학들에도 이런 체제의 도입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고도의 지식과 자격을 갖춘, 제대로 된 편집 교열자를 길러내는 일이 우선되어야 하겠지만.
* 글쓰기에 관한 책을 참조한다
‘뉴욕타임스’나 AP 등 해외 유명 언론사들은 독자적인 문체집(style book)을 펴내곤 한다. 이런 책들은 훌륭한 영어문장 쓰기의 원칙과 사례들을 보여준다. 윌리엄 스트렁크(1869∼1946)가 쓰고 얼윈 브룩스 화이트가 개정한 ‘문체의 요소들(The Elements of Style)’은 100여쪽에 불과한 분량에다 1930년대에 출간된 옛날 책임에도 핵심을 찌르는 원칙과 좋은 문장으로 오늘날까지 글쓰기의 바이블로 통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대형서점에 가보면 글쓰기에 관한 책들이 꽤 많이 나와 있다. 대학 입학시험에 논술이 포함된 이후 입시용으로 나온 책들까지 포함하면 더욱 그렇다. 이런 책들은 맞춤법이나 문장론 전반을 다루기도 하고, 자기소개서 이력서 논문 에세이처럼 상황에 따른 글쓰기 요령을 알려주기도 한다. 필요에 따라 이런 책들을 골라 참조하면 좋을 것이다.
다만 문제는 그런 책들 가운데 정작 읽기가 괴로운 책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딱딱하게 어휘나 문법적인 사실만을 나열한다거나, ‘실전…’ ‘해법…’ 식의 중고교생 참고서처럼 기술만 가르치는 책은 손이 안 가게 된다.
중견작가 한승원씨의 ‘한승원의 글쓰기 교실’, 문학평론가 박동규 서울대교수의 ‘글쓰기를 두려워 말라’ 등의 책은 비교적 읽는 맛도 있으면서 좋은 글쓰기의 이론과 실제를 풀어놓고 있다. 좀더 관심있는 사람들이라면 글쓰기의 고전으로 꼽히는 이태준의 ‘문장강화’와 시인 박목월의 ‘문장의 기술’을 찾아봐도 좋겠다.
이즈음의 젊은 필자로 주목받는 이는 고종석이다. ‘국어의 풍경들’ ‘감염된 언어’ 등은 직접적으로 글 잘 쓰기를 일러주는 책은 아니지만 말과 글쓰기에 대한 단상들을 모아놓은 것으로 일독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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