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박물관 하면 대개 두 가지 상반된 이미지를 떠올린다. 하나는 그 나라 문화의 정체성과 자존심을 드높이는 최고, 최상의 문화공간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쓸모가 없어진 구닥다리들을 모아놓은 곳이라는 것이다.
이런 부정적인 이미지는 매우 정적인 유물이나 작품을 보관, 전시하는 박물관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결과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세계의 이름있는 박물관, 미술관을 다니다 보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떻게 꾸미고 운영하느냐에 따라 박물관은 도서관·극장·공연장·미술관을 한데 합쳐놓은 것 같은 구실을 해내는 복합문화공간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바로 이와 같은 문화공간을 바라보고, 운영하고, 이용하는 데서부터 발상의 전환이 시작되어야, 말로 하는 ‘문화의 세기’가 아니라 명실상부한 문화의 세기를 이룩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된다.
문화란 말이 이렇게 시대의 화두가 됐다는 것은 산업사회를 이끌어왔던 물질이 한계를 맞았다는 것과, 그것을 혁파하고 새로운 비전을 갖기 위해서는 감동과 상상력을 키울 수 있는, 다시 말해서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문화에 대한 세뇌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새로운 아이디어나 기발한 상상은 머리를 붙들고 짜낸다고 해서 그냥 나오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고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르는 것은 더더욱 아니고. 결국 그건 자신의 경험 속에서 꺼낼 수밖에 없다. 꺼내긴 꺼내되, 시대 상황에 맞게 재해석의 과정을 거쳐서.
앞날을 밝힐 수 있는 비전과 새로운 가치는 늘 그렇게 얻었다. 씨앗을 뿌려야 싹이 돋고 꽃을 피울 수 있듯이 아이디어라는 것도 언젠가 자신이 경험했던 것, 아니면 어디서 보았거나 들었던 것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중국 역사에 자주 등장했던 ‘혁명’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주공(周公)의 질서로 복귀하려는 노력이었으며, 유럽 역사에 나타났던 르네상스도 고대 그리스·로마세계의 재해석을 통한 만남, 바로 그것이었던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과거의 유물을 보존, 전시하는 박물관을 어떻게 꾸미고 또 이용할 것인가를 각자의 위치에서 한번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를 위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하여 그 동안 박물관을 다녔던 이야기를 털어놓을까 한다.
박물관은 상상력을 극대화시키는 공간
고대 그리스에서 학예·시·음악 등을 관장하는 여신 ‘뮤즈’에게 제사를 드렸던 제단이나 신전을 일컫던 ‘무제이온(Museion)’에서 유래되었다는 영어의 ‘뮤지엄’은 우리말로 박물관으로 번역된다. 서양에선 미술품만 전시하는 미술관도 박물관이라는 말을 쓰지만(예: 흔히 MoMA라고 부르는 뉴욕의 현대미술관 Museum of Mordern Art), 미술관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우피치미술관(Galleria degli Uffizi)처럼 갤러리라고 쓰는 경우도 많다. 우피치미술관의 전시공간이 갤러리라고 부르는 회랑 구조로 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편의상 둘 다 박물관의 개념 속에 포함시키려 한다.
그런데 내가 놀랍게 생각하는 것은 동양 3국에서 쓰는 박물관이라는 번역 용어가 박물관의 기능과 양상을 너무나 잘 표현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내가 그 동안 둘러본 세계 각국의 박물관들은 하나같이 깊고 다양한 세계를 보여주면서 새로운 세계에 눈뜨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내가 박물관다운 박물관을 처음 찾은 것은 첫 유럽여행 길에 나섰던 81년, 런던의 자연사박물관이었다. 그날 이후 내 인생이 바뀌기 시작했으니 그걸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고백하건대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자연사박물관이 어떤 곳인지 몰랐다. 그때가 마침 박물관 창설 100주년이라면서 특별행사가 열리고 있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호기심에서 찾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거기서 나는 그만 압도되고 말았다.
웅장한 로마네스크 건물, 중앙 홀을 주인처럼 차지하고서 방문객을 맞아주는 거대한 공룡의 뼈, 태초의 지구 생김새와 그후 계속된 생명 진화의 역사, 지구상에 나타났다가 사라진 수많은 동물과 식물의 표본, 그리고 그들의 핏줄과 살갗, 뼈마디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화석, 신기하기 짝이 없는 돌멩이들, 인간의 사고작용과 꿈꾸는 과정을 비롯하여 인간에게서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을 시청각적으로 보여주는 인간관(館), 달에서 가져왔다는 운석….
나는 이런 것들을 보면서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시간의 세계는 얼마나 장구한지, 인간의 가능성은 또 얼마나 무한한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순간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저렇게 넓은 세상을 두고 코앞에 닥친 작은 것들에 왜 그토록 버둥거렸는지를 후회했던 나는, 문명과 역사가 시작된 원점에 서서 인간이 도대체 무엇인지, 그들이 그 동안 이룩해 놓은 것들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구명해 보자고 결심했다.
그날 이후 나는 어디를 가건 그곳에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있으면 거의 빠지지 않고 찾았으며, 그러다 보니 지금에 와선 역사여행가로, 또 문명비평가라는 이름으로 일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인생의 전기라는 것도 아주 우연히 찾아올 수도 있는 거구나 생각한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자연사박물관이란 동물과 식물, 광물, 지질, 화석, 천체 그리고 인류의 과거와 현재에 관한 각종 표본을 수집, 전시, 연구하는 기관으로서 식물학, 동물학, 고생물학, 의학, 화학, 지질학, 광물학, 물리학, 천문학, 지리학, 유전공학, 철학, 고고학, 문화인류학 등을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찾아야 할 그런 학술문화공간이다. 이를 다시 내 나름대로 정의를 내린다면 ‘지구 생명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곳’ 정도라고나 할까. 지구를 하나의 생명체로 생각하고는, 그가 태어나고, 지진 화산폭발 융기 습곡 침식 퇴적 태풍 해류 운행 등의 모든 활동과 그 과정에서 키워내는 동식물의 세계를 빠짐 없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대형 자연사박물관들은 저마다 DNA연구실을 두고 수천만 년 전의 화석에서 추출한 DNA와 현존하는 생물종의 그것을 비교해 진화과정을 연구하는 작업까지 행하고 있어 머지 않아 스필버그의 영화 ‘쥐라기공원’에서 보여주었던 장면들을 과학적 근거에 입각하여 박물관에 전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상상의 세계가 현실로 실현되는 것을 진보라고 말할 수 있다면, 박물관은 그런 상상을 마음껏 펼쳐볼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문화의 세기에 가장 어울리는 문화공간이라 할 것이다.
문화제국주의의 상징, 대영 박물관
자연사박물관이 있는 런던의 사우스 켄싱턴 지구는 한마디로 박물관 단지다. 일대에 100만 점이 넘는 방대한 양의 암석, 광물, 화석과 지질의 형성과정을 보여주는 지질박물관, 세계 각국에서 수집한 각 시대의 미술공예품, 생활용구, 민속자료, 악기류, 건축 디테일 등을 집대성해 놓은 빅토리아 알버트박물관, 과학기술에 관한 영국 최고의 박물관으로서 특히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 등 산업혁명기의 여러 발명품을 모아놓은 과학박물관 등 대형 박물관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최고급 공연장인 알버트홀과 세계 각국의 다양한 지도와 탐험 기록들을 보관하고 있는 영국왕립지리학회까지 있어 지적 호기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며칠을 보낸다 해도 시간 가는 줄 모를, 그런 곳이다.
그런데 이 박물관들은 모두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프랑스나 독일의 박물관은 우리와는 달리 입장료가 만만찮은데, 이 점을 생각한다면 영국의 무료입장제는 나처럼 주머니가 가벼운 여행자에겐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무료 입장의 전통은 영국의 거의 대부분 박물관에 공통되는 사항으로, 그 연원은 대영박물관의 창립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
의사이자 전직 외교관이었고, 또 대단한 컬렉터였던 한스 슬로안 경이 평생에 걸쳐 수집한 필사본 메달 서적 악기 그림 지도 드로잉 등 7만여 점을 국가에 바친 것이 계기가 되어 1753년에 설립된 대영박물관은 설립 초기에 이미 기증자 슬로안 경의 뜻에 따라 ‘모든 수집품은 연구자와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언제나 공개돼야 한다’는 원칙을 정했기 때문이다. 그게 다른 박물관에도 적용되어 무료 입장의 전통이 수립된 것이다.
물론 뜻있는 사람들로부터 기부는 받는다. 실제로 그런 돈이 박물관의 수장품을 늘리고 새로 꾸미는 데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 이번에 개관한(11월8일) 대영박물관 내의 한국전시관도 국제교류재단과 우리 기업의 기부금으로 지은 것이다.
그렇게 설립된 대영박물관은 그 후 영국 정부가 관리 운영해 왔는데, 그 과정에 외국으로부터 거의 빼앗다시피 하여 손에 넣은 유물들이 생겨났고, 그리하여 대영박물관은 ‘문화제국주의의 온상’이란 좋지 않은 말도 듣게 됐다. 그중에도 그리스가 오스만제국의 지배하에 있던 1801∼1806년 사이 이스탄불 주재 외교관이었던 엘진(Elgin) 백작이 아테네 파르테논신전의 박공부분에서 떼어낸 대리석 조각, 소위 ‘엘진 마블’은 두고두고 이 박물관의 짐이 되고 있다.
지난 83년, 당시 그리스의 멜리나 메르쿠니 문화부 장관이 영국을 방문, “파르테논신전은 고대 그리스를 엿볼 수 있는 유일한 기념물로, 거기에 양각된 조각들을 탈취해간 행위는 사람의 몸에서 팔과 다리를 떼어간 것이나 다름없다. 19세기 초 몇 푼 안 되는 돈으로 반출한 것을 합법화하려는 것은 계략에 지나지 않는다”며 반환을 촉구한 이래 원래 소유국인 그리스가 박물관의 명품 중에 명품의 반환을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약탈 문화재의 원래 소유국 반환은 이미 국제법으로 정해진 것인데도 이게 지켜지지 않아 문제가 되고 있다. 그건 강제력이 갖추어지지 않아서인데, 그런 유물을 대거 보유하고 있는 영국과 프랑스 등은 “과거의 일은 과거의 일이다” “원래 소유국보다 우리가 더 잘 보존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줄곧 거부하고 있다.
그래서 최근 다시금 우리의 관심사로 떠오른 외규장각 도서 반환 문제도 잘 풀리지 않고 있다. 외규장각 도서 반환의 경우, 그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프랑스의 대통령이나 문화부장관 또는 관장이 아니라 ‘레기스터(registre)’라는 보존 담당 실무책임자다. 그들은 정치적 성향이 강한 대통령, 장관, 관장의 의견이 유물 보존원칙에 어긋난다고 생각하면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런데다 그들의 행정체계상 아무리 상부의 결정이라고 해도 해당 분야의 실무책임자인 레기스터의 사인이 없으면 아무것도 처결할 수 없는 구조니, 우리가 뭐라 해도 동종의 의궤와 맞교환해야 한다는, 지금과 같은 협상결과 이상을 얻기가 힘든 것이다. 비전문가이자 그때그때 여론이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대통령이나 장관이 ‘뚝딱’ 하면 문화고 과학이고 교육의 큰 줄기가 바뀌어버리고 마는 우리 나라와는 일의 처결방식이 전혀 다른 것이다. 전문가 집단이 장기적 안목을 갖고 일을 추진해 나간다는 그들의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한 채 늘 고위직 인사를 만나 차나 마시고 함께 사진 찍는 방식으로는 그들과 백날 협상해도 얻을 게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의 요구를 그대로 들어주라는 뜻은 아니다. 그와 같은 틀을 깨부술 수 있는 새로운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외규장각 도서를 편찬한 것은 조상들의 일이었지만, 그것을 보존하고 활용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몫이다. 시한을 미리 정해 놓고 협상을 하다가 우리 뜻대로 되지 않는다며 적당히 타협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 안목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냉정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 과정에 우리와 같은 처지인 그리스나 이집트 등과 공동전선을 펴는 일도 고려해 볼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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