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사편찬위원회의 방선주박사와 정병준박사가 발굴한 자료는 광복 직후 좌우가 격심하게 대립했던 한국 현대사의 이면을 엿보게 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 자료(향후 미군자료)에 나오는 사람중 가장 관심을 끄는 인물은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염동진이란 인물.
중국의 남의사(藍衣社)를 본떠 만든 백의사(白衣社)의 총사령 염동진에 대한 증언자나 자료를 찾아본 결과 증언자는 직접 만나기 힘들었지만 염동진에 대한 자료와 증언 기록집은 이미 시중에 출판되거나 국사편찬위원회에 보관돼 있었다.
백의사와 염동진에 대한 정보가 가장 광범위하고 자세하게 소개된 자료는 ‘이영신의 현대사 발굴, 비밀결사 白衣社’ 상·중·하(1993년 도서출판 알림문). 저자 이영신은 황해도 안악 출신으로 반소(反蘇) 운동에 가담했다가 1946년에 단신 월남, 1960년 9월 장면 총리의 비서로 잠깐 일하기도 했다. 그동안 ‘광복 20년’ ‘격동 30년’ 등 방송극을 집필했다. 그가 쓴 ‘백의사’는 현재 절판인데다 출판사도 문을 닫은 것으로 보여 시중에서 구하기는 힘들다. 아래에 소개하는 백의사와 염동진에 대한 이야기는 대부분 이 책에서 발췌한 것이다,
이외에 백의사와 염동진에 대한 부분적인 기록은 ‘사선을 넘어서(김인호 1984년 진흥문화사), ‘해공 신익희 일대기(유치송 1984년)’, ‘인간 김일성 그의 전부(이기봉 1989년 길한문화사)’ 등이 있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는 백의사 단원이었던 백근옥, 선우길영, 최의호와 조재국씨 등이 1980년대에 증언한 기록을 보관하고 있다.
학술적인 연구중에는 백범 연구의 전문가로 알려진 도진순 창원대 교수의 ‘한국민족주의와 남북관계(서울대학교출판사)’에 백의사에 대한 언급이 있다.
일제시대 때 자료로는 일본 동경에 있는 한국연구원장 최서면(崔書勉)씨가 이영신씨에게 보낸 자료 ‘京高特秘 第3210號 金九 一黨의 愛國團員 檢擧에 關한 件’이 있는데 염동진에 대한 기본 사항이 기록되어 있다.
이 자료는 1935년 12월10일자로 경기도지사가 조선총독부 경무국장, 경성지방법원장, 상해총영사, 남경총영사 등에게 보낸 극비정보 보고서로서 중국의 남경중앙군관학교 낙양분교 한인반 사관후보생들의 인적 사항과 동태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낙양분교 제1기 졸업생으로서 ‘김구 일당의 애국단원’으로 체포된 엄창복(嚴昌福, 당시 24세)이 진술한 내용과 다른 경로로 입수한 자료를 토대로 작성한 것. 자료를 제공한 사람은 내부인으로 낙양분교 한인반 사관후보생 92명의 신상을 소상하게 보고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자유민주민족회의 의장인 이철승씨는 전화통화에서 “염동진을 한번도 보지는 못했지만 당시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맹인이라고 들었다. 백의사는 정치적인 운동과는 관계없는 자그마한 단체였다”고 회고했다. 백의사 단원으로 활동한 사람들중에서 상당수가 이미 사망했거나 노환이거나 해외로 이민한 것으로 알려진다. 앞에서 언급한 자료들중에서 염동진에 대한 의문을 풀만한 내용을 집중적으로 추려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