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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범의 범주

강력범의 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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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범의 범주
자, 그럼 이들은 어떤 종류의 강력범죄자일까. TV에서 한 짓이 우발적이었는지, 아니면 사전 모의한 것이었는지를 가리기 위해 10시간 넘게 이들을 격리해놓고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다. 결론은 이미 처음부터 나 있었던 대로 ‘사전 모의’한 것으로 났다.

물론 조사 과정이 어땠는지는 모르겠으나 격리, 10시간, 강도 높은, 뭐 이런 단어들은 그 ‘별생각 없는’ 장난기 많은 20대 아이들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어떤 과정이 있었음을 암시할 수도 있다. 하여튼 그들은 자기들이 한 짓이 ‘사전 모의한 것’임을 시인했고, 결국 구속됐다. 그들의 죄목은 ‘공연음란, 업무방해죄’였다. 그 정도면 강력범죄인가? 여전히 잘 알 수 없다.

TV에 등장하는 다른 범죄자들을 한번 보자.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가 TV 화면에 등장하는 것을 가끔 본다. 우리나라 범죄사상 유례가 없는 끔찍한 연쇄살인을 저지른 유영철은 야구모자를 쓰고 얼굴을 마스크로 가린 채 TV에 등장했다. 마스크가 하늘색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깊이 눌러 쓴 모자, 그리고 마스크 때문에 유영철의 맨얼굴을 TV 화면을 통해 본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짐작한다. 유영철 자신도 제 얼굴을 사람들에게 공개하고 싶지 않았겠지만 보는 사람들 처지에서도 유영철 같은 끔찍한 살인마의 맨얼굴을 보는 일이 그리 즐겁지 않았을 것이다. 그와 같은 피차간의 사정으로 야구모자에 하늘색 마스크라는 유영철의 ‘패션’이 탄생하지 않았을까.

반면, 엄청난 액수의 뇌물수수 혐의를 받고 있다고 소개되면서 검찰 청사의 엘리베이터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정치인들은 속으로는 똥줄이 탈 게 뻔하지만 마치 자기와 이 뇌물수수 사건은 아무 관계가 없는 일이라는 듯이 허허거린다. 조명 때문에 더욱 번들거리는 얼굴은 꼴보기도 싫지만 마치 그런 얼굴을 보여주는 것이 언론의 사명인 양, 기자들은 기를 쓰고 그 앞에 카메라를 들이민다.

그에 비해 어쩌다 등장하는 연예인의 간통 사건이라든가, 마약 복용 사건의 구속 현장에서 연예인들은 한사코 얼굴을 가린다. 장금이가 유행하기 이전 허준의 일대기를 그린 드라마에 출연해서 유명해진 황수정이 그만 히로뽕을 복용하여 경찰서로 갈 때 역시 온 얼굴을 가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미지가 밑천인 연예인에게는 이미지에 타격을 받는 일만큼 치명적인 것이 없으니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그런데 카우치 또한 그렇게 얼굴을 가리고 경찰서를 드나드는 장면이 TV에 방영됐다. 과연 그들은 맨얼굴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누가 시킨 일은 아닌 듯했다. TV에 아랫도리가 노출됐으니 더는 창피할 일도 없을 텐데, 그들은 한사코 얼굴을 가렸다. 연예인 흉내를 낸 걸까. 아니면 그런 일 때문에 TV에 나오는 사람은 당연히 그렇게 얼굴을 가려야 한다는 모럴 같은 게 본능적으로 발동한 걸까.

처음에는 멋모르고 그런 짓을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빚더미 같은 것에 눈이 부셔 얼굴을 가리게 된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은 일종의 도피였다. 나중에는 그것도 지쳤는지 자포자기한 듯 얼굴을 푹 숙이고 경찰서 입구로 들어가는 장면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순간, 거꾸로 여론이 카우치에게 어떤 죄목을 강요하려 했는지 비로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들은 강간범 취급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 대목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고 말하고 싶다. 카우치를 아무리 미워하더라도 그들을 강간범과 혼동해서는 절대 안 된다. 인권 유린이 다른 게 아니라 바로 그것이다. 그들의 행위는, 그것이 아무리 다수의 10대 소녀 앞에서 해선 안 될 끔찍한 일이었다 해도 ‘예술 행위’였음을 강조하고 싶다. 만일 그들이 조금 더 똑똑해서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고 치자.

“그렇다! 우리는 허구한 날 외설적인 댄스가 난무하는(지난 여름인가 렉시의 어떤 춤은 정말 가관이었다. 후반부에 렉시가 자기 톱을 찢어버리자 거의 젖가슴이 다 드러날 정도로 출렁거리는 것을 보고 30대 아저씨인 나도 약간은 흥분했다.), 10대 청소년들을 위한 가요 프로그램이 얼마나 상업적인 눈속임이고 비교육적인지를 고발하기 위해 펑크 뮤지션답게 결단을 내려 이와 같은 ‘알몸 시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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