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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다큐멘터리 ‘동물의 번식’으로 본 北 주민의 性의식

“너무 비싸게 굴지 말고 어서 벌거벗으라”

북한 다큐멘터리 ‘동물의 번식’으로 본 北 주민의 性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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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북한의 동물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국내에 비디오테이프로 출시된 이 다큐멘터리는 당초 가축 및 동물을 사육하는 북한 주민의 생산증대를 위해 제작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동물의 번식 시기나 성교 방법, 성교 성향 등에 대한 정보를 적나라한 영상, 걸쭉한 내레이션으로 제공함으로써 말이죠. 그러한 목적과 무관하게 우리는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북한 주민의 성(性)의식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북한 다큐멘터리 ‘동물의 번식’으로 본  北 주민의 性의식
때는 2001년. 국내에 ‘동물의 번식’이라는 제목의 북한 다큐멘터리 한 편이 수입됐습니다. 북한 조선과학영화제작소에서 제작한 이 다큐멘터리는 한국의 나래필름을 통해 5만달러에 수입되어 국내 개봉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무려 6년이라는 긴 시간 북한의 산야와 동물원에서 찍은 각종 동물의 종족번식 장면을 담은 이 4시간50분짜리 다큐멘터리는 ‘동물의 쌍붙기’라는 재미난 부제를 달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도 TV를 통해 일부 내용이 소개된 것으로 알려집니다.

이렇게 야한 영화가 북한에서?

내용으로 보건대, 이 영화는 당초 가축 및 동물을 사육하는 북한 주민의 생산증대를 위한 교재로 사용됐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판단하고 있습니다. ‘북한영화의 역사적 이해’를 최근 펴낸 부산대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민병욱 교수는 “영화관이 아니라 협동농장과 같은 생산현장에서 이동영사 시설을 이용해 제한적으로 상영됐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농촌 주민이나 농장의 사육사들을 위한 교육 재료로 제작된 것 같다”고 추정했습니다. 즉, 동물별 번식 시기나 성교 방법, 성교 성향 등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주민들이 해당 동물을 사육하고 새끼를 얻도록 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죠.

이 영화는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입니다. 동물들의 번식은 물론, 오럴섹스와 가학-피학(SM)행위, 자위행위, 그리고 성적 흥분을 이겨내지 못해 벌이는 목숨을 건 위험한 성행위까지 적나라하게 담고 있습니다. 마치 ‘종족보존을 위한 생식욕구’의 차원이 아니라, ‘동물들도 색(色)을 밝히고 즐긴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합니다. 게다가 북한 인민 성우가 들려주는 내레이션은 얼굴이 화끈거리는 동물의 번식 장면을 걸쭉한 입담으로 ‘실황중계’하고 있어 보는 이의 배꼽을 잡게 만듭니다. 한마디로 ‘동물을 소재로 한 포르노그래피’였던 겁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결국 국내에서 소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2002년 등급심의에서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음으로써 ‘제한상영가’ 결정을 받은 첫 번째 영화로 기록됐습니다. ‘제한상영가’란 ‘제한상영이 가능한 영화관에서만 상영할 수 있다’는 결정이니까, 제한상영관이 전무하던 당시 현실을 감안하면 사실상 ‘상영불가’ 조치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동물들의 성기와 삽입 장면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까닭에 이 영화는 비디오 등급 분류에서도 다섯 차례나 ‘등급 보류’ 판정을 받아 사실상 출시가 금지됐죠.

북한 다큐멘터리 ‘동물의 번식’으로 본  北 주민의 性의식
종국에는 곤충이나 새가 등장하는 부분을 걷어내고 들짐승의 성행위 중심으로 재편집해 ‘18세 관람가’ 등급을 받았지만, 다시 긴 상영시간 때문에 극장 개봉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68분 분량으로 지난해 8월 극장에서 ‘잠깐’ 개봉했던 이 영화는 여론의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조용히’ 비디오테이프로 출시됐죠.

‘동물의 번식’은 지난달 세상을 떠난 신상옥 감독이 북한에 머무는 동안 제작한 영화 ‘불가사리’가 2000년 7월 국내 개봉한 이래 두 번째로 국내 개봉한 북한 영화로 기록됐습니다. ‘불가사리’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도 국내 관객의 차가운 외면을 받고 소리 소문 없이 잊혀졌지만요.

음란비디오, 北 사회문제로 대두

오늘 이 북한 다큐멘터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우리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과감한 표현과 노골적인 해설이 영화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북한에서는 야한 장면을 ‘자본주의의 퇴폐성’으로 여기기 때문에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공식’ 매체에서는 절대로 노출될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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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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