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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비빔밥, 퇴비로 익힌 달걀, 그리고 황홀한 청주 한 잔…아!

꽃비빔밥, 퇴비로 익힌 달걀, 그리고 황홀한 청주 한 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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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도움말에 따라 무를 연필 깎듯 ‘깎아썰기’를 하고, 대파도 두어 줄기 넣고 함께 끓였다. 마음이 바쁜지 내 손이 투박해서 그런지 깎아썰기가 두꺼워졌단다. 익을 동안 10분쯤 더 끓이는 사이 호두도 네 알 까서 넣었다. 어째 환자식 비슷해진다. 소금 간을 살짝 하고 나서 뚜껑을 닿고 다시 5분쯤 기다린다.

큰아이가 조심스럽게 먹어보더니,

“맛있네요. 닭죽이랑 비슷해.”

아내도 참새죽을 먹으면서 멋쩍은지,

“정말이지, 별걸 다 먹어보네.”



모두 잘 먹는다. 새 알은 아내 그릇에 들어갔다. 아내는 그 알을 무위 먹으라고 준다.

큰아이와 아내는 참새죽을 한 그릇 먹고 또 한 국자 더 먹었다. 죽이 부족했다.

퇴비 열로 달걀 익히기

농사를 짓다 보면 뜻밖의 일을 겪곤 한다. 퇴비 만들기도 신비한 일 가운데 하나다. 퇴비를 만들 때 발효 과정에서 뜨끈뜨끈 열이 난다. 농사 선배들을 통해 이론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손수 해 보니 훨씬 신비롭다. 퇴비가 발효되기 시작하고 며칠만 지나면 퇴비 속 온도가 나날이 달라진다. 온도계로 재어보니 60℃, 그 다음날은 65℃ 또 다음날은 70℃. 여러 가지 미생물의 먹이 활동이 놀랍다. 먹고 먹히는 과정 자체가 열이고 에너지인가 보다.

이 에너지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여러 사람이 모이면 열이 나듯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도 모이니 무척 뜨거워진다. 우리집 고양이는 틈만 나면 퇴비더미 위에서 따뜻한 온욕을 즐긴다. 뱃속에 새끼를 배고 있으니 아침 햇살을 즐기며 따뜻한 퇴비더미 위에 엎드려 있으면 뱃속 새끼에게 참 좋겠다 싶다.

퇴비 속에서 올라오는 열이 아까워 달걀을 익혀보기로 했다. 퇴비 거죽을 파내고 안에다가 식구 수대로 달걀 네 알을 넣었다. 퇴비 속은 너무 뜨거워 자칫 손을 델 정도다.

하지만 열이 펄펄 끓는 정도는 아니니 달걀을 오래오래 익혀야 한다. 아침 10시에 넣은 달걀을 저녁 6시에 꺼냈다. 껍질을 까보니 반숙이 지나 살짝 익었다. 그런데 흰자보다 노른자가 더 잘 익은 게 신기했다. 끓는 물에 반숙을 하면 노른자는 안 익고 흰자만 익는다. 그런데 퇴비 속에서는 노른자는 다 익었고 흰자는 흐물흐물하다. 그래서인지 껍질 까기가 쉽지 않다.

조심조심 껍질을 까서 먹었다. 그런데 다른 식구들은 안 먹는다. 안 먹어본 음식이라 비위에 안 맞나 보다. 스스로 퇴비를 만들어보면 맛이 달라질 텐데.

예전에는 시골에서 두엄을 썩혀 썼다. 두엄을 썩히면 냄새가 고약하다. 하지만 퇴비는 썩히는 게 아니라 ‘띄우는’ 거다. 청국장, 김치처럼 미생물 발효가 되는 것이다. 퇴비가 발효되자면 먹이가 충분하고, 온도가 적당하고, 수분이 있어야 한다. 쌀겨, 산의 부엽토, 볏짚, 왕겨, 깻묵 따위가 발효를 촉진한다. 여기에다가 사람 똥오줌 그리고 동물 똥도 함께 넣고 발효를 시킨다. 이 모든 것이 서로 어우러지면서 열기를 뿜어내는 것이다.

자연 에너지로 익힌 달걀. 똥오줌에 대한 선입견으로는 도저히 먹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과정을 손수 했기에 느낌이 다르다. 나 혼자서 두 알을 맛나게 먹었다. 다른 식구들이 안 먹어도 서운하지 않았다. 눈을 돌려 세상을 넓게 보면 우리나라 사람이 보기에는 혐오스럽거나 별난 요리도 고급요리가 되지 않는가. 프랑스 달팽이 요리, 중국의 모기 눈알 수프. 그리고 구더기 요리는 에스키모인의 별미라고 하니까.

퇴비 열로 익힌 달걀의 신비로운 맛은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자연 발효되는 약한 열로 천천히 오래오래 익혔기에 맛이 깊다. 게다가 수억, 수조 마리의 미생물이 힘을 함께 써준 것이다. 이를 제대로 맛보자면 아주 천천히 먹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이 맛을 다시 보자면 가을까지 기다려야 한다. 퇴비 만들기는 봄가을 들꽃이 필 때가 좋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달걀 요리는 내가 퇴비를 만들 때나 한두 번 먹어볼 수 있는 아주 ‘희귀한 요리이자 고급요리’라고 자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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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화 농부 flowing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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