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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과 영화의 행복한 만남

클래식과 영화의 행복한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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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래식, 즉 고전이란 오랜 시간 계속해서 사랑받아온 예술장르를 뜻한다. 이 중 유일하게 귀로 듣는 예술인 클래식 음악은 문학, 미술, 무용, 영화 같은 다른 예술장르와도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 우리 주위에 항상 존재해온 클래식 음악을 파헤쳐보고 이 무한한 보물을 내 것으로 만들자.
클래식과 영화의 행복한 만남

웅장하고 다채로운 클래식을 배경음악으로 사용하는 영화가 많다. ‘아마데우스’ ‘스머프’ ‘세븐’(위쪽부터).

클래식 음악은 처음 영화가 만들어질 때부터 영화와 함께했다. 소리가 나오지 않는 무성영화 시절에는 극장에서 연주자가 직접 연주를 했다. 러시아 작곡가 쇼스타코비치(Dmitri Shosta-kovich)는 어릴 때 아르바이트로 이 일을 한 적이 있었다. 남들은 이런 활동이 그의 재능을 향상시켰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쇼스타코비치는 이 일을 싫어했다고 한다.

20세기 초, 점점 발전하는 영화 매체를 위해 여러 작곡가가 영화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 영화교과서 앞부분에 늘 등장하는 에이젠슈테인의 영화에는 작곡가 프로코피예프(Sergei Prokofiev)의 음악이 있었고, 할리우드는 오스트리아의 천재작곡가 코른골트(Erich Wolfgang Korngold)를 영입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영화화할 때는 영국 작곡가 월튼(Sir William Walton)이 참여하기도 했다. 모두 영화사의 초기에 기반을 잡은 뛰어난 작곡가였다.

이후 더 많은 영화음악 작곡가가 등장했고, 또 기존의 클래식 음악을 영화에 삽입하는 작업도 활발했다. 대중은 처음 듣는 음악들 사이에서 조금이라도 익숙한 음악이 나오면 반가워했다. 또 검증된 걸작들이 영상과 어우러지면서 새로운 감동을 자아내는 효과도 있었다. 어떤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 쓸 음악을 위해 클래식 음악을 오랫동안 연구했다. 그것은 영화를 위한 새로운 실험이자, 선배 예술가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했다. 실제로 영화 속에 클래식 음악이 등장하는 장면들을 떠올려보면, 신기하게도 그 대부분이 명장면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바로크 음악들

영화 속 클래식 음악 중에는 바로크 시대의 음악이 유난히 많다. 전달하고자 하는 분위기가 명확하고 고풍스럽다는 이유도 있지만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영상과 강한 대조를 이루기 위해 음악이 사용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바로크 시대 영국에는 헨리 퍼셀(Henry Purcell)이라는 작곡가가 있었다. 그가 작곡한 ‘론도’는 ‘압델레이저’라는 연극을 위한 음악이다. 많은 사람이 이름만 듣고는 이 곡을 얼른 떠올리지 못한다. 그렇다면 영화‘오만과 편견’을 보자. 제인 오스틴의 유명한 소설 ‘오만과 편견’은 여러 번 영화화되었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 두꺼운 책을 고작 두 시간짜리 영화로 보게 해주다니. 그것도 최신작엔 ‘캐리비안의 해적’에 등장한 아름다운 여배우 키아라 나이틀리가 나온다. 그녀가 처음 초대받은 마을 무도회 장면을 기억해보자. 여기에서 우리는 귀에 익숙한 멜로디를 듣게 된다. 한 악사가 바이올린으로 구슬픈 곡을 연주하는 장면인데 실제로 이 곡은 바이올린곡이 아니라 현악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으로 바로 헨리 퍼셀이 작곡한 ‘론도’다.

그렇다면 작곡가나 제목이 익숙하지 않은 이 곡이 왜 귀에는 낯설지 않을까? 그 이유는 우리가 중학교 음악시간에 필수로 배우는 ‘청소년을 위한 관현악 입문’에 이 선율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역시 영국 작곡가인 브리튼(Benjamin Britten)은 오래전 퍼셀이 만든 멜로디를 가지고 오케스트라의 구성을 설명하는 곡을 만들었다. 론도의 선율이 먼저 나오고 “자, 이건 현악기입니다. 다음은 목관악기입니다”라는 식으로 내레이션이 들어간 곡이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이 곡을 가르치며, 당연히 음악시험 문제로도 자주 등장한다. 이렇게 우리에게 익숙해진 선율이 영화를 통해 다시 들려오는 것이다. 우리는 자연스레 기억을 되짚는다. “아, 청소년을 위한 관현악 입문.” 아니다. 이 곡은 헨리 퍼셀의 ‘론도’다.

동시대를 살았던 파헬벨(Johann Pachelbel)의 최고 히트작은 ‘캐논 변주곡’일 것이다. 이 곡은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겔리온’에 삽입된 적이 있는데 로봇 파일럿인 주인공들이 학교 특별활동시간에 이 곡을 연주한다. 같은 음을 여러 번 반복하는 첼로 파트를 위로하는 대사가 아주 사실적이다. 연주를 해본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이 곡에서 정말로 첼로의 음이 8개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살인과 바흐 음악의 묘한 어울림

바로크 시대의 거장이자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바흐(Johann Sebastian Bach)의 음악은 영화에서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할 때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브래드 피트와 모건 프리먼이 주연한 영화 ‘세븐’은 암울하고 충격적인 연쇄살인 이야기다. 고참형사가 살인자의 심리를 파악하기 위해 도서관에서 책을 찾기 시작한다. 친분이 있는 도서관 경비원이 오래된 턴테이블로 음악을 틀어주는데, 그 곡이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다. 너무나도 지적이고 평온한 분위기로 연출된 이 장면은 시종일관 긴장되고 어두운 이 영화의 백미다.

인터넷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플래시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만들어진 ‘바시르와 왈츠를’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전쟁 다큐멘터리다. 이 영화에서도 바흐의 음악이 빛난다. 피아노로 느리게 연주되는 ‘라르고’는 군인들이 레바논의 한 마을에서 과수원 사이로 이동할 때 흐른다. 나무들 사이로 새어들어 오는 빛은 군복과 무기들을 어루만지듯 움직이고 있다. 잠복해 있던 누군가가 바추카포를 들고 연합군을 공격하자 군인들은 그쪽을 향해 총을 난사한다. 사격이 멈추자 수많은 총알을 맞고 쓰러져 있는 소년이 보인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이 장면에 흐르는 바흐 음악의 아름다움은 잔인하기까지 하다.

바흐와 함께 바로크 음악을 절정으로 끌어올린 작곡가로 ‘음악의 어머니’ 헨델(Georg Friedrich Handel)이 있다(사실 그는 남자다). 그가 작곡한 하프시코드 음악 중 하나인 ‘사라방드’는 많은 영화에 단골로 사용되었다. 스탠리 큐브릭의 ‘배리 린든’은 느린 진행으로 유명한 걸작인데 한 인간의 성공과 몰락을 다룬 영화다. 처음엔 우연히 권총결투를 하게 된 주인공이 우여곡절로 성공의 길에 오르지만 결국 결투로 파멸한다. 주인공이 한쪽 다리를 잃고 마차에 오를 때 등장하는 엔딩 타이틀이 ‘사라방드’다. 이 적절한 타이밍에 등장하는 비통한 음악은 비극이 주는 ‘카타르시스’ 그 자체다. 어쩌면 이러한 감동은 직전에 등장하는 슈베르트(Franz Schubert)의 피아노 트리오 2번이 먼저 분위기를 잡고 있었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마지막 장면에도 헨델의 ‘사라방드’는 비장한 효과를 내고 있다. 어린 소녀가 예언에 의해 지구를 구해낼 때 나오는 음악이다. 하지만 실제로 하프시코드로 연주되는 ‘사라방드’는 그렇게 비통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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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범│현악사중주단 콰르텟엑스 리더 yoonbhum@m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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