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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뻔하고 능청스럽던 허장강, 부릅뜬 눈으로 세상을 노려보던 황해

악당, 그 뜨거운 매혹

뻔뻔하고 능청스럽던 허장강, 부릅뜬 눈으로 세상을 노려보던 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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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 배우의 깊게 팬 주름

황해는 1960년대 초 많이 만들어진 범죄 영화에 단골로 출연했다. 범죄 영화들은 항상 연기력이 풍부한 악당 주인공을 원한다. 황해가 출연한 수많은 범죄 영화가 모두 사라져 지금은 볼 수 없지만 황해의 아들 전영록이 어린 시절 보고 지금도 잊지 못한다는 범죄 영화 한편이 있다. ‘창살 없는 감옥’(강범구 감독, 1963). 6·25전쟁이 일어난 날 6월25일 새벽의 서울. 형사는 범죄자를 잡기 일보 직전이다. 그를 잡으려는 순간 전쟁이 터지고, 당황한 형사의 손아귀에서 범죄자는 달아난다. 범죄자는 형사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군에 자원입대하고 형사는 악마적인 집념으로 범죄자의 뒤를 따라 자원입대해 추적한다. 둘은 숙명적으로 격전지의 한복판에서 조우하고 형사가 부상을 당한다. 범죄자는 형사를 죽이고 달아날까 아니면 그를 구할까를 고민한다. 죄의식에 휩싸이고, 형사의 집요한 추적을 피해 달아나며 두려움에 떠는 주인공 역을 황해가 해냈다.

영화 ‘마부’(강대진 감독, 1961)에서 황해가 연기한 싸움꾼 둘째아들도 잊을 수 없는 캐릭터다. 형제들에게 미움을 사고, 아버지를 원망하며 자신에게 항상 다가오는 불운을 저주하는 황해는 어둠 속에 숨어 아버지 김승호와 형제들을 노려보며 입을 앙다물고 이를 부득부득 간다. 황해에게 이때 붙여진 별명이 있다. 한국의 제임스 케그니. 두 배우 모두 작은 키에 항상 열등감에 휩싸여 세상을 노려보는 역할을 훌륭하게 했다. 황해는 입을 앙다물고 세상을 노려보는 사나이였다.

좋은 악역 배우들은 그들의 사생활에서 극도의 긴장을 유지하며 윤리적으로 살려고 노력한다. 배우 리 반 클립은 악역을 하되 언제나 원칙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영화 속에서 아이를 쏘는 장면은 절대 안 한다는 것. 감독들은 그를 존중해 아이를 쏘는 장면은 대역을 써서 촬영했다고 한다. 나는 영화인으로 허장강과 황해의 아들들과 촬영을 했고, 친분을 유지하기도 했다. 그들 모두 똑같은 말을 했다. 악역 배우였던 아버지는 사생활에서 항상 엄격하게 스스로를 통제했다는 것이다. 수긍이 간다. 그런 엄격함으로 경계를 마련하지 않는다면 악역 배우로서 자존심을 갖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배우들은 나이를 먹고, 얼굴에 주름살이 생기면서 품격을 갖춘다.

뻔뻔하고 능청스럽던 허장강, 부릅뜬 눈으로 세상을 노려보던 황해
오승욱



1963년 서울생

서울대 조소학 학사

영화 ‘킬리만자로’ 각본 및 연출

1999년 제36회 대종상 영화제 각본상


황해는 말년에 박광수 감독의 ‘그들도 우리처럼’(1990)에서 탄광 노동자로 일생을 살아온 정직하고 관용 있는 인물을 깊이 있게 연기한다. 나는 영화를 보며 황해의 주름살 사이에 낀 탄가루를 보고 그의 영화 인생 전체를 존경했다. 허장강의 ‘명동잔혹사’(변장호 감독, 1972) 라스트 신도 잊을 수 없다. 영화에서 내레이터로 등장한 그는 깡패들이 의리 없는 싸움 끝에 모두 죽는 잔혹한 결말이 벌어지자 고아 소년의 눈을 가리며 “보지마라 이 잔혹한 명동을 떠나자”라고 한다. 두 눈 사이에 깊은 주름을 만들며 눈을 감는 허장강. 일생을 깡패 소굴 명동에서 바텐더로 살며 그들에게 당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친구도 있었던 그가 소중한 것을 모두 잃고 내뱉은 대사였다. 좋은 악역 배우들이 영화 속이라는 다른 세상에서 악당으로 살면서 그 경계를 유지하기 위해 성찰한 고뇌와 그 깊이는 그들 얼굴에 새겨진 주름살로 드러난다. 허장강과 황해의 얼굴에 새겨진 주름에는 그것이 있었다.

신동아 2011년 10월호

4/4
오승욱│영화감독 dook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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