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랜스젠더 수술 장면.
“형법 제297조는 강간죄를 ‘폭행 또는 협박으로 부녀를 강간한 자’라고 하여 객체를 부녀에 한정하고 있고, 위 규정에서 ‘부녀’라 함은 성년이든 미성년이든, 기혼이든 미혼이든 불문하며 곧 여자를 가리키는 것이다. 무릇 사람에 있어 남자, 여자라는 성의 분화는 정자와 난자가 수정된 후 태아의 형성 초기에 성 염색체의 구성(정상적인 경우 남성은 XY, 여성은 XX)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발생과정이 진행됨에 따라 각 성 염색체의 구성에 맞추어 내부 생식기인 고환 또는 난소 등의 해당 성선이 형성되고, 이어서 호르몬의 분비와 함께 음경 또는 질, 음순 등의 외부 성기가 발달하며, 출생 후에는 타고난 성선과 외부성기 및 교육 등에 의하여 심리적·정신적인 성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형법 제297조에서 말하는 부녀, 즉 여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도 위 발생학적인 성인 성 염색체의 구성을 기본적인 요소로 하여 성선·외부 성기를 비롯한 신체의 외관은 물론이고 심리적·정신적 성, 그리고 사회생활에서 수행하는 주관적·정신적인 성 역할 및 이에 대한 일반인의 평가나 태도 등 모든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사회통념에 따라 결정하여야 한다.
아무개씨는 어릴 때부터 정신적으로 여성에의 성 귀속감을 느껴왔고, 성전환 수술로 인하여 남성으로서의 내·외부 성기의 특징을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으며 남성으로서의 성격도 대부분 상실하여 외견상 여성으로서의 체형을 갖추고 성격도 여성화되어 개인적으로 여성으로서의 생활을 영위해가고 있다 할지라도, 기본적인 요소인 성 염색체의 구성이나 본래의 내·외부 성기의 구조, 정상적인 남자로서 생활한 기간, 성전환 수술을 한 경위·시기 및 수술 후에도 여성으로서의 생식능력은 없는 점, 그리고 이에 대한 사회 일반인의 평가와 태도 등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보면 사회통념상 여자로 볼 수는 없다.”
요약하면, 형법의 규정은 강간죄의 대상을 ‘부녀’로 한정하고 있으며, 트랜스젠더는 아무리 성전환수술을 했고, 본인 스스로 여성으로서의 성의식을 가졌다 하더라도 본질상 여성이 아니므로 결국 트랜스젠더를 강간해도 강간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같은 판결을 바라보는 보통 사람들의 생각은 다양할 것이다. 형법이 강간죄의 객체를 ‘부녀’로 한정했으니, 남성은 성전환을 해도 여전히 남성이므로 죄형법정주의 원칙상 강간죄의 객체가 될 수 없다는 이 판결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성으로 외형이 바뀐 트랜스젠더를 사회통념상 ‘부녀’로 보면 그만이지, 굳이 본질상 여성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법원의 태도를 냉소적으로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또한 그렇게 판단할 수밖에 없는 ‘법’의 본질을 논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물론 위의 사건에서 가해 남성들은 추행하고 난 뒤에도 자신들이 트랜스젠더를 강제추행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검사는 강간죄로 그들을 기소했지만, 어이없게도 그들은 무죄선고를 받았다. 다만 피고인들은 강제추행치상죄로 처벌됐다. 강간죄를 범한 사람은 분명 피해자가 여성이라 생각했으며, 피해자 역시 스스로는 여성이라고 생각하고 있음에도 트랜스젠더이기 때문에 강간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면 이는 형평에 맞지 않는 경직된 법률해석일 수도 있다.
이미 10년 전의 사건으로, 새삼 당시에 성립된 판례가 틀렸다거나 진리와 평등에 위배됐다고 하려는 건 아니다. 당시로서는 최선의 판결일 수 있는 판례를 보면서 판결도 때로 어리석을 수 있다는 한 예를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든다. 우리는 주위에서 이와 유사한 판결을 종종 보게 된다.
필자는 다만 시대가 변해버린 지금, 사회통념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그리고 그에 따른 통찰의 퇴적물을 반추하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