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탄소 녹색성장이 시대의 화두로 등장한 이후 관광 트렌드 역시 생태, 농촌 등 이른바 녹색관광으로 옮아가고 있다. 그러나 국내 녹색관광에 대한 인식은 아직 초보적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 ‘신동아’와 문화체육관광부는 녹색관광과 녹색관광지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돕기 위해 2010년 한 해 동안 ‘녹색관광 100배 즐기기’를 공동기획, 진행한다. <편집자 주>
경남 창녕 우포늪은 대표적인 생태관광지로 주목받고 있다.
관광산업은 업종과 여행 유형에 따라 온실가스 배출량이 상당한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에너지 소비 성향이 높은 산업인 동시에 기후변화에 민감한 산업이다. 관광산업에 있어 녹색성장이 중요한 과제가 된것도 이 때문이다. 이에 따라 세계관광기구(UNWTO)도 2008년부터 기후변화 문제를 최우선 의제로 정해 세계관광시장에 위협이 되지 않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 관광 분야에서 저탄소 녹색관광에 관한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적 뒷받침이 준비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관광이 국민 일상생활의 일부분이 돼가고 있는 시대에 녹색관광은 정부의 정책결정권자와 관련 업계, 그리고 관광객이 달성해야 할 하나의 과제가 아닐 수 없다. 필자는 녹색관광의 배경이 되는 녹색성장의 개념과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 녹색관광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살펴보고, 녹색관광의 실현을 위해 우리가 당면한 과제를 제언하고자 한다.
새로운 관광 패러다임
새로운 관광 패러다임으로서 녹색관광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녹색성장에 대한 이해가 전제돼야 한다. 주로 환경에 대한 비판적 접근으로 이해되던 ‘녹색’이라는 용어는 그동안 개발과 나아가 환경훼손을 떠올리게 하는 ‘성장’과는 적대적인 관계로 받아들여졌던 게 사실이다. 이렇게 배치되는 두 어휘가 ‘녹색성장’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등장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녹색성장(Green Growth)이라는 용어는 ‘이코노미스트’(2000.1.27)에서 최초로 사용했으며, 이후 ‘2005 UNESCAP 환경과 개발 장관회의’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했고 다보스 포럼을 통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한국은 2008년 8월15일 건국 60년 경축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국가 성장전략으로 저탄소 녹색성장을 처음 공론화한 뒤 중앙부처 및 관련 연구기관에서 저탄소 녹색성장과 관련한 다양한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녹색성장의 개념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녹색성장은 앞에서 언급한 대로 환경(Green)과 성장(Growth)의 가치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개념이다. 즉 기존의 경제성장 패러다임을 환경친화적으로 전환해 경제성장을 추구하되 자원이용과 환경오염을 최소화하는 것을 의미하며 현 에너지 경제 기후 생태 간의 악순환을 선순환으로 전환하는 새로운 발전 전략이다.
둘째, 녹색성장은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지속가능한 발전은 경제발전, 사회통합, 환경보호를 동시에 추구하는 개념으로 정의되고 있으나, 개념의 범위가 광범위하고 추상적이다. 이러한 가치를 반영한 지속가능발전기본법에 따르면 지속가능성을 현재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미래 세대가 사용할 경제·사회·환경 등의 자원을 낭비하거나 여건을 저하시키지 아니하고 서로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셋째, 녹색성장은 에너지·환경관련 기술과 산업 등에서 미래 유망품목과 신기술을 개발하고, 기존 사업과 융합하면서 새로운 성장동력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부는 녹색성장을 통해 자원이용과 환경오염의 최소화를 지향하고, 이를 다시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활용하는 선순환구조를 이루려 하고 있다.
따라서 녹색성장 관련 산업은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신재생에너지와 원자력에너지, 화석연료의 청정화를 기할 수 있는 고효율 석탄화력뿐만 아니라 정보통신·생명공학·나노·문화산업 등에도 녹색기술을 결부시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으로 확대 적용될 수 있다.
관광산업에서 녹색에 관한 논의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과거 대량 관광에 대한 반성으로 등장한 대안 관광 혹은 신 관광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생태관광’‘지속가능한 관광’‘녹색관광’ 등 환경적·경제적·사회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일련의 노력이 오늘날의 녹색성장과 그 맥을 같이한다. 또 한편에서는 녹색관광(green tourism)을 농촌관광(rural tourism)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해왔다. 따라서 최근 녹색성장의 논의 속에서 대두되는 녹색관광의 개념은 기존의 개념과는 달리 논의되고 이해돼야 한다.
현재 관광분야에 있어 녹색성장과 관련된 일련의 활동은 관광지 혹은 관광자의 입장에서 환경의 보존 및 성장에 초점을 두고 있다. 즉 기후변화에 관광산업이 대응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로서 환경·사회·경제를 모두 고려하는 지속가능한 관광을 추구하고 있으나 실제 활동의 대전제는 환경의 훼손을 최소화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 정부의 녹색성장 개념은 지금까지 진행돼온 관광부문의 전세계적 행동을 포함하되, 거기서 나아가 경제·산업·기술·환경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관광분야에서 녹색관광의 전개 양상은 관광객의 관광행태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최근 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 슬로시티 등 새로운 형태의 관광이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웰빙 트렌드에서 시작된 이러한 움직임은 기존의 관광행태와는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이며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관광객과 지역주민이 주체가 돼 만들어내는 새로운 관광 트렌드의 변화 속에서 녹색관광의 가치와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관광객들이 전남 순천만 갈대숲에 조성된 길을 걷고있다.
‘올레’는 제주도 방언으로 ‘거릿길에서 대문까지의, 집으로 통하는 아주 좁은 골목길’을 뜻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발음상 ‘제주에 올레?’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제주 올레길은 정신적·육체적 휴식이 가능한 가장 보편적인 제주의 길로 느림의 길, 평화의 길을 목표로 한다. 크고 넓은 길이 아니라 조그만 길,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여유를 즐기며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올레길이 돋보이는 이유는 조성에서 운영 전반을 민간단체가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사단법인 ‘제주올레’가 답사를 통해 길을 조성하며, 이 과정에서 지역주민을 대동하여 길을 함께 찾거나 주민을 통해 옛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마을길 또는 개인 소유의 밭길을 지나는 경우에는 지역주민 및 관계자의 동의와 협조를 통해 사업을 추진한다. ‘제주 올레’는 길을 찾아내고 중간에 화장실과 쉼터 등을 마련하며, 곳곳에 위치한 하수종말처리장, 해녀탈의실 등 기존시설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이같이 ‘제주올레’는 사람이 사람답게 걸을 수 있는 길 만들기를 목표로 제주 전역에 고리 모양의 친환경적 도보길을 조성하고 있다.
#이야기를 테마로 한 지리산 둘레길
지자체와 마을이 연합한 지리산 둘레길은 ‘이야기’를 테마로 한 여행 행태를 보여준다. ‘지리산 둘레를 걷는다’는 의미인 지리산 둘레길은 지리산 둘레에서 만나는 자연과 마을, 역사와 문화의 의미를 발견하고 이어주는 길이다. 둘레길을 통해 속도의 문화는 느림과 성찰의 문화로, 위로만 오르는 수직의 문화는 눈높이 맞추는 수평의 문화로 전환된다.
산림청 녹색사업단의 지원을 받고, 사단법인 ‘숲길’(지리산 생명연대)에서 탐방노선의 조성·발굴·운영·관리를 담당하고 있다. 현재 ‘숲길’에서는 이미 만들어진 70㎞의 구간과 안내센터에 대한 운영·관리 업무를 담당하고 있으며, 나머지 구간에 대한 조사 설계는 ‘숲길’에서 맡고 조성은 각 구간별 지자체(남원시, 구례군, 함양군, 하동군, 산청군)에서 진행 중이다.
한국형 트레일의 전형으로 떠오른 둘레길은 국내 최초의 장거리 도보길 조성으로 느림(slow) 지향의 문화를 확산하고 이를 통해 국민의 육체와 정신 건강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느림의 가치를 실현하는 슬로시티
슬로시티는 느리지만 행복한 삶을 지향하며, 자연환경 속에서 지역의 먹을거리와 고유문화를 느끼며, 여유 있고 쾌적한 삶을 향유하기 위한 운동이다. 1999년 이탈리아에서 시작한 이 운동은 2009년 16개국 116개 도시로 확대됐다. 우리나라는 신안군 증도, 담양군 삼지천 마을, 완도군 청산도, 장흥군 반월, 하동군 악양, 예산군 등 6개소가 지정돼 관광자원화 사업이 추진 중에 있다.
슬로시티는 전통보존, 지역민 중심, 생태주의 등 느림의 철학을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커뮤니티를 의미한다. 즉 공해 없는 자연에서 지역의 유기농 음식을 섭취하고 그 지역의 문화를 보존 및 공유하며 느림의 삶을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개발과 단순한 성장이 지상 최대의 목표이던 시절, 빠르고 큰 것을 지향하던 삶의 가치에 정면 배치되는 것으로 녹색의 가치에 부합한다.
체험관광에 나선 가족단위 관광객들이 갯벌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동안 추구해오던 성장으로 인한 폐해와 한계에 직면한 오늘날 ‘저탄소 녹색성장’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새로운 패러다임이자 가치체계임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나아가 기후변화와 환경에 대한 논의는 에너지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바로 우리의 일상으로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이제 녹색관광은 대중관광을 넘어선 새로운 관광시장을 형성하고 있으며 그 범주는 농촌관광, 생태관광, 체험관광 등으로 폭넓게 진화하고 있다.
관광행태의 다변화 속에서 녹색관광의 새로운 개념과 형상을 만들어가는 주체는 다름 아닌 관광객 자신이다. 올레길, 둘레길, 슬로시티 등의 사례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자연과 문화의 가치를 발견하고, 그 속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여행이 바로 녹색관광이다. 관광객은 어디서든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녹색관광을 실천할 수 있다.
이에 더하여 새로운 국가발전 패러다임인 저탄소 녹색성장을 관광부문에서 실현하기 위해 관광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관광정책의 최상위 목표로서 녹색성장을 설정해야 한다. 녹색성장은 국가발전의 비전이자, 세계적 패러다임에 대응하는 전략이며, 산업 전반을 관통하는 경영전략이자 국민 삶의 변화를 이끄는 생활혁명이기도 하다. 녹색성장이 기후변화에 대응한 산업정책과 규제정책 차원을 넘어 좀 더 포괄적인 차원에서 국민 개개인의 삶의 변화를 꾀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새로운 에너지 환경, 친환경소비자 확대, 국제환경규제 및 표준 강화 등 시장경쟁력의 핵심요인은 변화하고 있다. 생산, 유통 및 소비를 포함한 가치체계 전 과정에서 산업발전 패러다임의 전환이 진행되고 있다. 이에 대응하는 관광부문의 과제를 제언하면 첫째, 공급사슬(Supply Chain) 전반의 친환경화를 유도해야 한다. 이를 위해 탄소제로(0) 관광상품 개발과 관광목적지의 친환경 개발, 관리시스템의 전환 등을 이뤄야 한다.
둘째, 관광객과 관광상품을 연결하는 여행업의 녹색성장을 실현할 필요가 있다. 여행상품 탄소배출표기를 의무화해 신뢰를 구축하고 교통, 숙박업과 연계한 녹색관광 상품개발은 구체적인 실천전략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관광객 소비활동의 녹색전환이다. 즉 녹색관광자원 개발, 관광산업의 녹색기술 적용뿐만 아니라 관광객의 행동패턴을 녹색화하는 일이다. 기존의 시설 중심 소비형 관광에서 벗어나 자연친화적으로 지역문화를 체험하는 새로운 녹색 관광문화를 창출하기 위해, 도보와 자전거 등 무동력 이동수단을 활용해 여행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노력들이 관광활동의 녹색화를 위한 선도사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녹색성장 시대 관광산업의 가치는 새로운 부가가치의 창출에 있다. 이를 위해 녹색기술과 녹색에너지를 기반으로 기술의 복·융합을 통한 다양한 관광상품을 창조하는 게 필요하다. 더불어 관광객의 역할은 관광행태의 변화를 통해 다양한 녹색관광상품 개발을 유도하고, 상품을 구매하며, 관광행태의 녹색화를 지향하는 것이다. 또한 녹색관광의 성공적 실현을 위해서는 공공과 민간 각 주체 간 협력과 공감대 형성이 선결돼야 한다.
녹색관광은 이제 단순한 성장에 기대던 과거의 발전가치를 넘어 지속가능한 발전을 지향하는 오늘날 한계에 도달한 기존 관광에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은 관광이 한국의 새로운 성장동력의 하나가 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녹색관광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