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호

분단과 평화의 공존 출판·예술의 대표도시로 거듭나다

경기도 파주시

  • 구자홍|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jhkoo@donga.com |

    입력2010-12-02 1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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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반도의 중심부에 자리한 파주는 판문점과 임진각, DMZ가 말해주듯 격동의 한국 현대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역사의 현장이다. 생태적인 측면에서도 한강과 임진강이라는 큰 강을 두 개나 끼고 있고, 경기 5악의 하나인 감악산이 위치해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한다. 고려 도읍지 개성과 조선 도읍지 한양의 중간에 자리 잡아 유서 깊은 문화 유적도 곳곳에 남아있다. 예술과 출판의 메카로 부상한 헤이리 아트밸리와 출판도시는 파주의 미래가 살아 꿈틀대는 명소다.
    분단과 평화의 공존 출판·예술의 대표도시로 거듭나다

    임진각 전경.

    서울 도심에서 자동차로 1시간 남짓이면 군사분계선을 경계로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는 현장에 닿을 수 있다. 수도권 서북부에 위치한 파주시는 분단국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 중 상당수가 파주를 찾는다.

    그렇지만 우리 국민에게 임진각은 분단의 상징이라기보다 일상을 벗어나 여유를 즐기는 휴식공간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높게 솟은 빌딩 숲과 답답한 사무실 공기에 질식하기 직전에 있는 이라면 임진각 평화누리로 한번 가보시라. 사방팔방 시원하게 펼쳐진 평화누리를 거닐다보면 가슴속까지 상쾌해짐을 느낄 수 있다. 주말이면 삼삼오오 임진각을 찾아온 가족과 친구, 연인들이 저마다 소망을 실어 연을 날리는 광경을 볼 수 있다.

    휴식공간이자 축제마당, 임진각

    임진각에서는 매년 네 차례 굵직한 축제가 개최된다. 2월에는 민속축제 한마당, 10월에는 개성인삼축제, 11월에는 장단콩축제, 12월에는 제야행사가 각각 열린다.

    특히 11월 하순 열리는 파주장단콩축제에서는 파주의 청정 환경에서 자란 우수한 품질의 장단콩을 시중가격보다 저렴하게 팔아 수도권 주민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지난해에는 사흘간의 축제기간 동안 콩 9000가마(38억원어치)가 팔려나갔고, 기타 농산물과 음식을 포함 8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올해 11월26일부터 28일까지 임진각 광장에서 열리는 장단콩축제 역시 맛과 멋, 흥이 어우러진 다채로운 마당이 준비돼 있다. 장단콩과 파주지역 농특산물의 우수성을 알리는 전시공간 ‘알콩마당’, 장단콩과 관련된 다양한 체험과 참여프로그램으로 꾸며진 ‘놀콩마당’, 장단콩과 관련된 각종 음식을 직접 맛볼 수 있는 먹을거리 장터인 ‘달콩마당’이 각각 손님을 맞는다. 여기에다 난타공연과 미2사단 군악대공연, 금산농요공연 등 다채로운 볼거리로 찾는 이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줄 예정이다. 파주시청 관계자는 “장단콩축제는 한 해 농사를 마치고 수확물을 이웃과 나누는 의미가 있는, 한국판 추수감사절 행사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파주에는 임진각 외에도 평화의 소중함과 생태를 함께 체험할 수 있는 관광지가 여럿 있다. 남한 최북단 역인 도라산역은 평양을 지나 중국과 시베리아, 나아가 유럽까지 뻗어가려는 한민족의 염원을 담고 있고, 고구려와 백제가 주도권 싸움을 치열하게 벌였던 군사적 요충지 오두산에는 통일전망대가 들어서 있다.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는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남북이 대치하는 분단의 현실을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다.

    문화예술혼 살아 숨 쉬는 ‘헤이리’

    임진각과 도라산역, 통일전망대 등이 분단이라는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를 상징하고 있다면 문화예술특구로 지정된 헤이리는 한국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살아 꿈틀대는 공간이다. 박물관과 미술관, 서점과 갤러리, 공방 등이 밀집해 있는 헤이리 아트밸리는 건물 하나하나가 독특한 매력을 뿜어내 어느 곳에 들어서더라도 색다른 체험을 할 수 있다. 무엇보다 헤이리 아트밸리는 자연이 살아 숨쉬는 생태마을로 꾸며졌다. 산과 구릉, 늪과 개천 등 자연환경을 원형 그대로 두고 건물들이 자연에 안기듯 들어서 있다. 단지 전체는 녹지 네트워크가 신경망처럼 연결돼 있어 헤이리 어느 곳을 가더라도 숲과 나무를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다.

    분단과 평화의 공존 출판·예술의 대표도시로 거듭나다

    헤이리 아트밸리는 주말이면 가족 단위 방문객으로 북적인다.

    헤이리에 들어선 건물들은 국내외를 대표하는 건축가들의 작품 전시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냥곽을 쌓아놓은 듯한 획일적인 아파트나 상가 건물에 식상한 이에게 헤이리의 건축물들은 예술적 감수성을 일깨워준다. 애초 헤이리는 책과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책마을로 조성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출판계 외에도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찾아오면서 문화예술마을로 확대됐다.

    헤이리가 자리 잡은 파주 통일동산에는 한국의 살아있는 예술혼을 느끼려는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인근에는 프로방스 등 파주 맛고을이 자리 잡고 있어 파주의 멋과 맛을 한꺼번에 느끼려는 연인과 가족단위 방문객이 많다.

    헤이리 아트밸리가 문화예술의 메카로 떠오르고 있다면 출판도시는 국내외 지식을 축적하고 전파하는 지식강국 코리아의 첨병과도 같다. 출판도시 역시 헤이리와 마찬가지로 저마다 특색 있는 건축물로 채워져 이국적인 느낌을 준다. 깔끔하게 단장된 도로변에 저마다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 건물을 감상하며 지식의 향기를 맘껏 향유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출판도시다.

    문향(文響), 문덕(文德)의 고장 파주는 일찍부터 준비된 출판도시였다. 퇴계 이황이 파주에서 여생을 보냈고, 우계 성혼과 율곡 이이의 성리학을 계승한 기호학파 발상지이자 성리학의 본고장이 바로 파주다.

    한국 출판의 메카, 출판도시

    파주에는 책과 관련된 지명이 여럿 남아 있는데, ‘문화 또는 글이 널리 퍼져나간다’는 뜻을 가진 ‘문발리(文發里)’에 파주출판도시가 들어서 있다. 또한 ‘문지리(文智里)’는 파주가 배출한 ‘황희 정승처럼 문장이 뛰어나고 지혜로운 인물이 많이 태어나라’는 뜻으로 조선시대 문종이 직접 지어준 지명이다. 율곡 선생이 일생을 보낸 동문리(東文里)와 독서동(讀書洞) 역시 책과 글의 의미가 담긴 지명이다.

    ‘책농사 공동체’를 지향하며 출판인들이 십시일반으로 1조원을 만들어 투자한 파주출판도시는 우리나라 전통인 ‘향약정신’에서 비롯됐다. 특히 출판도시는 정조의 규장각 건립 정신을 근간으로 삼고 있다. 정조가 ‘도서관이 선 나라는 오래 살고 백성 역시 풍요로운 정신을 누릴 수 있다’며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제의 근본적 해결방안을 ‘책’에서 찾기 위해 규장각을 건립했듯, 파주 출판도시는 ‘아시아 지식문화 아카이브’와 ‘영혼의 도서관’으로서 현대의 규장각을 실현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1단계 공사가 마무리된 파주출판도시에는 130여 개의 출판사와 57개사의 인쇄 및 출판지원사가 들어서 있다. 현재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2단계 부지에는 첨단 문화예술 산업인 영상과 미디어 산업체를 적극 유치해 출판과 영상이 결합한 미래형 문화도시로 진화시킬 계획이다.

    반구정과 자운서원

    파주에는 평화의 소중함과 생태를 체험하고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는 명소도 많지만, 역사적 유적지도 풍부하다. 황희 정승이 관직에서 물러나 갈매기를 벗 삼아 여생을 보낸 곳으로 유명한 반구정과 율곡 이이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지방 유림들이 창건한 자운서원이 대표적이다.

    반구정과 자운서원에서 성현의 발자취를 더듬어봤다면, 이번에는 파주 곳곳에 위치한 삼림욕장에서 몸과 마음의 묵은 때를 벗겨내는 것도 좋다.

    파주에는 감악산, 심학산, 박달산, 초리골 등 네 곳에 삼림욕장이 있는데 어디를 가든 찾는 이에게 편안한 휴식과 생활의 활력을 제공한다.

    인터뷰 | 이인재 파주시장

    “파주를 자자손손 살고 싶은 도시로 만들겠다”


    분단과 평화의 공존 출판·예술의 대표도시로 거듭나다
    “저는 ‘약속의 땅’ 파주를 사랑합니다. 파주의 장점과 잠재력을 충분히 발현시켜 파주에 사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자자손손 대를 물려 살고 싶은 도시로 만들고 싶습니다.”

    이인재 파주시장은 ‘재임 중에 당장 무엇을 만들어내겠다’는 욕심보다 미래를 내다보며 큰 그림을 그리는 안목을 갖고 있다.

    “너무 많이 담지 않으려고 합니다. 당장 성과를 내려고 의욕을 앞세우다보면 난개발로 흐르기 쉽습니다. 들과 산은 최대한 보존하고, 공장은 한데 모으려고 합니다. 자연경관과 어울리지 않는 나 홀로 공장이나 논두렁 옆 건물 등 점(點) 단위 개발은 막으려고 합니다.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후대에도 쓰임새가 충분한 여백이 있는 도시로 만들어나가겠습니다.”

    경기도 문화관광국장과 파주시 부시장을 역임한 그는 ‘세계도자기엑스포’ 유치와 임진각 현대화 및 파주출판단지 1단계 공사를 마무리한 경험을 갖고 있다. 굵직한 사업을 기획하고 집행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이 시장의 구상은 파주에 머물지 않고 DMZ(비무장지대)를 관통하고 있다.

    “파주에서 고성까지 DMZ를 동서로 연결하는 도로를 내고, 주변에 모터사이클이 달릴 수 있는 전용도로를 내면 어떨까 싶습니다. 제가 접경 지자체협의회 부회장을 맡게 됐는데, 다른 단체장들께 구상을 말씀드렸더니 많이 호응해주셨습니다. 자치단체 차원에서 추진하기 어려운 사업입니다만, 지혜를 모으면 불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묶여 오랫동안 개발에서 소외된 이 지역을 국제적인 행사가 가능한 명소로 탈바꿈시키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생태 문화관광지로 파주는 어떤 장점을 갖고 있나요.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고, 유네스코 생물권 보존지역 지정이 추진되고 있는 DMZ가 있는 파주는 문화관광 자원이 풍부한 고장입니다. 파주 삼릉과 임진왜란 때 선조의 피난길, 황희 정승과 율곡 이이 선생의 유적지 등 이야기를 테마로 한 관광거리도 많습니다. 헤이리와 출판도시도 파주의 자랑입니다. 이처럼 풍부한 관광 자원을 살려 관광산업을 파주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육성할 것입니다.”

    -파주 DMZ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환경부에서 한국형 생태관광 모델로 선정했습니다. 어떤 구상을 갖고 계십니까.

    “지역적 특수성을 살리면서도 친환경적으로 개발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그 일환으로 분단국가의 상징처럼 돼 있는 DMZ 일원을 돌아보는 ‘DMZ 접경 트레킹 대회’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역사와 전통이 담긴 유적지에는 작은 전시관을 만들어 컴퓨터 그래픽 기술을 도입해 역사적 사건을 재현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파주 곳곳에 스며 있는, 스토리가 있는 문화생태 탐방로를 발굴하고 복원해 학습과 가족관광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통일동산을 문화지구로 지정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면서요.

    “서울 인사동과 대학로에 이어 전국에서 세 번째로 헤이리 아트밸리가 문화지구로 지정됐습니다. 헤이리와 더불어 인근 통일동산까지 문화특구로 지정되면 이 지역을 예술과 교육, 안보가 결합한 종합문화예술단지로 재탄생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파주 하면 출판도시를 떠올리는 분이 많습니다. 이 시장의 공약 가운데 하나가 ‘파주국제도서전’ 개최인데요. 어떻게 실천해나갈 계획입니까.

    “출판도시의 장점을 살린 ‘세계적인 북 페스티벌’을 기획해 파주시의 대표적인 축제로 키워나가겠습니다. 이를 위해 지난 8월에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베이징도서전’을 다녀왔고, 10월에는 세계적인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 출판인들과 함께 다녀왔습니다. 두 번의 도서전을 참관한 후 ‘파주 국제도서전’의 밑그림을 그려오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해외 도서전을 흉내 내지는 않을 겁니다. 60년 전통의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을 가보니 어설프게 흉내 냈다가는 망신당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출판인들과 충분히 상의해서 우리나라의 특장을 발휘할 수 있는 도서전을 준비하겠습니다. 직지심경이나 팔만대장경 등 고서를 주제로 한 도서전 같은 것이 하나의 예가 될 수 있겠습니다.”

    인터뷰 말미에 이인재 시장은 자신이 쓴 책 한 권을 건넸다. 제목은 ‘약속의 땅 파주의 미래를 본다’였다. 제한된 시간에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하지 못한 아쉬움을 대신하려는 듯 했다. 이 책에는 이 시장의 25년 공직생활 경험과 파주시와의 인연이 담담한 필체로 기술돼 있었다. 책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저자 서문에 오렌지색으로 인쇄돼 있는 글귀와 맥이 닿아 있었다.

    “파주는 가히 ‘다듬어지지 않은 보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웅대한 잠재력을 품은 파주를 갈고닦아 영롱한 빛을 내는 보석으로 세상에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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