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콘텐츠 넘나들며 장수
웹툰 가치 키운 콘텐츠 프랜차이즈 전략
흥행 불확실성이 웹툰에 집착게 해
웹툰, 소설 대체재 아닌 영화의 크로스 미디어 도구
2018년 7월 24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에서 열린 웹툰 원작 영화 ‘신과 함께-인과 연’ 언론 시사회에 참석한 김용화 감독(왼쪽부터), 배우 주지훈, 김동욱, 마동석, 김향기, 하정우, 이정재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뉴스1]
2015년 KT경제경영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웹툰 시장의 규모는 약 1조 원에 달할 전망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2018년 상반기 영화산업의 매출액을 2조7568억 원으로 추산했다. 숫자상 규모로만 가늠해보면 산업으로서 영화는 웹툰을 단연 압도한다. 그러나 여러 정황을 비교해보면 생각이 조금 달라질 수 있다. 영화산업 매출액은 2016년 하반기부터 등락세를 지속하고 있다. 반면 웹툰 산업은 점점 더 성장하고 있다.
각광받는 웹툰의 영상화
별개 콘텐츠로 여겨지던 웹툰과 영화의 운명은 2000년대 들어 바뀌기 시작했다. 2006년 웹툰 ‘아파트’와 ‘다세포소녀’가 처음 영화로 제작된 이후, 웹툰은 영화나 드라마 등 영상화를 위한 원작 콘텐츠로 각광받았다. 특히 2012년 개봉한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와 2015년 개봉작 ‘내부자들’, 2017년과 2018년에 잇달아 개봉한 ‘신과 함께’ 1, 2편이 흥행하면서 웹툰의 영상화에 관한 업계의 관심이 한층 높아졌다.그중 2017년작 ‘신과 함께-죄와 벌’은 영화진흥위원회가 집계한 역대 박스오피스 순위 2위에 올랐다. 웹툰이 영화 시장에서 원작으로서의 역량을 한껏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달리 말하면 해를 거듭할수록 웹툰 원작을 영상화하는 영화업계의 노하우가 축적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간에는 웹툰이 완결된 후 영화가 제작되는 공식이 대세였다. 이는 관행처럼 굳어지는 듯했다. 영상화를 전제하지 않은 상태에서 출발한 웹툰 콘텐츠가 대중적 호응을 얻고 난 이후에야 영화화 가능성이 논의됐다. 하지만 최근 이를 뒤집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일례로 2017년 말 개봉한 영화 ‘강철비’의 경우 영화와 웹툰이 동시에 선을 보였다. ‘강철비’는 2011년 ‘다음’에서 연재된 웹툰 ‘스틸레인’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이후 영화 ‘강철비’ 개봉에 발맞춰 ‘스틸레인’에 새로운 내용을 더 담은 웹툰 ‘강철비’가 함께 발표됐다.
지난해 12월 말부터 연재를 시작한 웹툰 ‘한도수’는 영화화에 앞서 곽경택 감독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웹툰에 대한 독자 반응을 살핀 후, 향후 영화를 만드는 데 참고하겠다는 비즈니스 전략이다. 이제 웹툰이 굳이 영화에 앞서지 않아도 된다. 영화가 막을 내린 후에도 웹툰이 얼마든지 영화의 후일담을 이끌어갈 수 있게 돼서다. 미디어업계 종사자들이 크로스 미디어 전략을 구사해 웹툰과 영화의 경계를 허물어뜨린 셈이다.
미키 마우스에서 해리 포터까지
웹툰·웹소설 같은 웹 콘텐츠가 인기를 끌기 시작한 지는 오래됐다. 그런데 한국의 미디어업계가 이를 일종의 ‘지식재산(intellectual property·IP)’으로 인식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초창기 웹툰 산업은 지금에 비해 콘텐츠 경쟁력이나 콘텐츠를 유통시키는 플랫폼의 영향력이 현저히 낮았다. 그렇다 보니 웹툰을 또 다른 장르의 콘텐츠로 재생산하려는 시도 자체가 많지 않았다.그러나 2000년대 중반부터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영화, 방송업계 종사자들이 웹툰을 영상화 소재로 활용하는 사례가 계속 늘었다. 미국, 일본 등 해외시장에서도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의 흥행이 잇달았다. 이에 웹툰이 산업적 자원으로 재조명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IP에 콘텐츠를 더한 ‘콘텐츠 IP’라는 비즈니스 개념이 각광받기 시작했다. 콘텐츠 IP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오리지널(원작) 콘텐츠도 더불어 부각됐음은 물론이다.
미디어업계에서 콘텐츠 IP가 확장되는 과정에 주요하게 언급되는 사례들이 있다. 1928년 세상에 등장한 디즈니의 ‘미키 마우스’에서 2000년대 ‘해리 포터’에 이르기까지 만화와 소설 원작이 바로 그것이다.
세계의 소비자들은 이들 원작의 영상화는 물론, 캐릭터 상품과 테마파크로 발전하는 과정을 꾸준히 목도해왔다. 또한 DC와 마블 코믹스의 슈퍼 히어로물도 대표적인 콘텐츠 IP의 확장 사례다. 종이책에 인쇄된 DC와 마블의 만화는 더 실감 나는 입체영상으로 변화해 전 세계의 팬층을 확보하며 지금도 성공에 성공을 거듭하고 있다.
특히 마블 코믹스는 수십 년 동안 이야기를 꾸준히 확장시켜왔다. 어떻게? 하나의 이야기나 캐릭터로 출발해 이를 다른 이야기와 결합하는 방식을 활용해서다. 이를 두고 미디어학계에서는 ‘콘텐츠 프랜차이즈’라 일컫는다. 본사 개념의 원작 콘텐츠가 여러 성격의 가맹점을 통해 파생된 콘텐츠를 만들어나갈 수 있음을 뜻한다. 예를 들어 ‘아이언맨’이나 ‘토르’는 그 자체로 독자적인 영웅담이지만, 동시에 ‘어벤저스’와 같이 영웅들의 집합에 속할 수 있다. 이처럼 콘텐츠 프랜차이즈는 원작의 부가가치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주요한 비즈니스 전략으로 떠올랐다.
웹툰 영상화에 뛰어든 네이버
한국의 경우 중소 플랫폼의 약진이 도드라졌다. 레진 코믹스, 케이툰, 투믹스, 저스툰 등 특수 장르와 독자층을 공략하는 플랫폼의 약진이 웹툰의 질적 성장을 견인해왔음은 부정할 수 없다. 그중 레진 코믹스는 최근 들어 영상화에 적극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웹툰 ‘DP 개의 날’과 ‘조국과 민족’이 영화사와 공동제작으로 영화화될 예정이다. ‘너의 돈이 보여’의 영상화도 결정됐다.
물론 웹툰을 영화, 드라마, 게임 등으로 자유롭게 확장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여건은 역시나 대형 플랫폼이 갖추고 있다. 대형 플랫폼은 웹툰의 영상화를 위해 기존 영화사나 방송사와 협업관계를 맺기도 하지만, 막대한 자본력과 자체 콘텐츠를 앞세워 독자적인 제작환경을 구비해나가기도 한다.
예컨대 지난해 네이버 웹툰은 자회사 ‘스튜디오 N’을 설립해 웹툰 영상화 지원에 집중하기로 했다. 네이버 웹툰은 ‘스튜디오 N’의 대표로 권미경 전 CJ E&M 영화사업부문 한국영화사업본부장을 영입했다. 이후 스튜디오 N은 약 2000여 개에 달하는 네이버 웹툰을 선별하고 이를 다각도로 사업화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스튜디오 N은 10편에 달하는 네이버 웹툰의 영상화 라인업을 발표했다. 인기 웹툰 ‘상중하’ ‘피에는 피’ ‘대작’ 등이 영화로 제작되며, ‘연의 편지’는 애니메이션으로, ‘비질란테’는 방송과 영화로 동시 기획 및 제작되는 실험을 감행할 예정이다.
오리지널 콘텐츠로서 웹툰에 대한 업계의 관심은 향후에도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텍스트로만 구성된 소설과 달리 웹툰은 이미 시각 이미지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영화나 드라마 등으로 영상화하는 데 더 유리하다는 게 업계의 인식이다. 더군다나 웹툰의 경우 소설이나 시나리오와 달리 연재기간 동안 독자의 반응을 살필 수 있다. 이는 영상화 과정에서 주요한 참조사항으로 쓰일 수 있다. 대형 블록버스터급 영화 제작에 치중된 영화 시장의 트렌드도 ‘성공한 웹툰’이라는 검증된 이야기에 대한 의존도를 자극한다.
흥행의 비밀은 누구도 몰라
2018년 5월 14일 서울의 한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관객들이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어벤저스3)’ 티켓을 예매하고 있다. 마블 코믹스는 콘텐츠 프랜차이즈 전략을 통해 성장해왔는데, 그 대표 콘텐츠가 어벤져스다. [뉴스1]
따지고 보면 영화산업이 웹툰에 주목하는 이유는 비교적 단순하다. 웹툰의 성공 여부를 통해 시장의 향배를 미리 알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특정한 이야기를 향한 대중의 마음을 알아야 그것을 영화 제작을 위한 나침반으로 쓸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흥행의 비밀을 알고 있는 이는 없다. 그 어떤 수치나 성공모델도 그 비밀을 완벽하게 해부해주지 못한다. 누구도 당대의 대중이 어떤 영화에 몰입하고 어떤 영화에 진절머리를 낼지는 모른다. 이렇듯 흥행의 불확실성은 앞으로도 영화업계가 웹툰의 성공 여부에 더욱 집착하도록 이끌 것이다.
하지만 이미 대중은 웹툰 원작 영화를 바라보는 시각이 한층 예민해졌다. 대중은 영화의 형식과 내용 측면에서 웹툰을 어떻게 변용했는지 더 세심하게 따질 것이다. 연재될 당시 웹툰이 가진 시의성과 감수성이 영화로 만들어진 시기까지 연결될 수 있을지 여부도 살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영상화된 웹툰이 대중에게 또 다른 상상력을 제공할 수 있는지도 중요한 판단의 잣대로 자리 잡을 것이다.
웹툰을 소설의 대체재로만 바라본다면 웹툰의 영상화는 찬란한 미래를 약속하기 어렵다. 팬덤을 형성하고 인터넷 밈(meme·유행요소)을 만들어내는 동력이 뒷받침돼야 상호작용에 익숙한 오늘날의 대중을 영화 흥행의 장으로 이끌어낼 수 있다. 이를 위한 과제가 미디어와 플랫폼을 넘나드는 유연한 사고다. 장벽을 과감하게 깨부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웹툰 기반 영화가 원작을 뛰어넘는 단계에 다다를 수 있다. 이 복잡다단한 고차방정식을 푸는 이가 흥행의 짜릿함을 맛볼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