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와 세력의 관계를 모른다면 주식시장의 현실적 메커니즘을 이해할 수 없다. 주식시장의 현실은 장기 투자자를 위한 건전한 투자의 장이 아니고 세력이 개미를 먹고 사는 구조로 돼 있다. 한마디로 개미는 세력의 밥이다. 개미가 주식 매매를 하는 동안 저 위에 자리잡은 세력은 그 움직임을 내려다보며 입맛을 다신다. 많은 개미들은 자신이 세력의 밥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순진한 개미는 그런 말을 해도 믿지 않는다. 주가가 오르면 모두가 돈을 번다고 생각한다. 물론 모두가 돈 버는 시장이란 없다.
개미는 주식시장을 공정한 머니게임의 장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주식도 상품이다. 시장에는 수익을 남기고 장사를 하는 장사꾼이 있다. 증시는 세력이 개미를 상대로 주식 장사를 하는 시장이다. 세력은 자금력을 이용해 물량을 매집하고 고점에서 개미에게 판다. 이를 위해 정보를 이용한다. 호재를 퍼뜨려 개미를 유인한 다음 물량을 처분해버리는 것이다.
세력은 ‘장사’를 함에 있어 개미의 심리를 철저히 이용한다. 독자적 판단능력이 없는 개미들은 분위기에 약하다. 주가가 오르는 것을 보면 처음에는 가만히 지켜보다가도 참지 못하고 더 오르기 전에 사려 달려들어 세력의 물량을 받아준다.
주가가 내리면 개미는 처음에는 본전 심리 때문에 팔지 못하다가 하락 막판에 더 이상 견디지 못해 손을 털고 만다. 혹자는 이를 개미의 본성인 ‘탐욕’과 ‘공포’ 때문이라고 했다.
주식시장은 세력과 개미의 전쟁터다. 주식을 매매하는 것을 실전이라 하는데 이는 ‘진짜 전쟁’이라는 의미다. 고수들은 ‘실전 매매란 진짜 칼을 들고 싸우는 것과 같다’며 진검 승부라 부르기도 한다. 주식시장에 처음 들어오는 개미는 주식시장이 진검 승부하는 곳이라는 현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개미는 대개 주위에서 주식으로 돈을 번 사람이 하나 둘 나타날 때 증시를 만만하게 보고 여유 자금을 돌려 투자를 시작한다.
개미는 남들이 다 돈 버는 상승장에서 돈을 조금 번 다음 자만에 빠져 점점 더 큰돈을 투입한다. 주가가 계속 오르는 것을 흥분해 지켜보다 결국 고점에서 크게 물리고 만다. 고점에서는 항상 개미가 물린 거래량이 터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개미는 주가가 무너질 때도 ‘내가 산 좋은 주식만큼은 반등하겠지’하며 이른바 물타기를 하다 빚까지 진 채 결국 시장에서 쫓겨나고 만다.
주식시장이 스포츠와 다른 점은 체급 차이나 핸디캡을 인정하지 않고, 세력과 개미가 같은 링에 올라 시합을 한다는 것이다. 언뜻 보면 아주 공정한 룰 같지만 개미에겐 원초적 불행의 씨앗이다. 농촌에서 주식 열풍이 불 때쯤이면 막판이라고 한다. 주식시장은 가정주부, 농민 등 ‘순진한 개미’를 통째로 벗겨 먹는 사기 도박판이다. 조금 나은 개미에게도 거대한 몸집의 세력과 맨몸으로 맞서 싸워야 하는 전쟁터인 것에는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아직 우리는 주식시장에 대해 완전시장의 가설, 효율적 시장의 가설이란 ‘공식적 견해’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개미의 현실 인식을 가로막는 족쇄다.
실전 주식시장은 대단히 위험하다. 불완전하고 룰도 통하지 않는다. 그것이 진실이다.
가치 투자로 성공하는 것이 이상적 주식시장의 모습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주가는 기업의 실제 가치와 별 관계없이 움직이기 일쑤다. 1999년과 2000년 초의 코스닥 열풍은 기업 가치만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 주식시장 전체가 거대한 대국민 사기극의 무대였던 셈이다. 물론 사기극의 피해자는 개미였다.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과 기업 가치를 믿고 투자한 그야말로 순진한 개미들이었다.
가치 투자가 먹히지 않는 이유
가치 투자를 주장하는 자들은 주가가 회사의 내재적 가치보다 고평가 됐다면 주가는 내려갈 것이고, 저평가 됐다면 올라갈 것이므로 저평가된 주식을 사 주가가 오르면 수익을 실현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논리는 너무나 그럴 듯해 보여 개미들이 쉽게 혹하게 된다. 쌀 때 사 비쌀 때 팔자는 식의 너무도 당연한 얘기지만 현실에선 사실상 적용 불가능한 논리다.
많은 개미들이 주가가 저평가된 종목을 노리지만 수익을 제대로 내지 못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가치 투자에는 최소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근본 문제가 존재한다.
첫째, 개미는 기업 가치에 관한 정보를 분석할 능력도, 시간도 없다. 회사의 내재적 가치를 분석하려면 재무구조·실적·회사의 성장 가치·산업 환경·경제적 환경 등 많은 항목을 분석해야 한다. 공시 활성화로 정보 접근성이 많이 좋아졌지만 문제는 분석 능력이다. 주식 각 종목을 분석하려면 그에 맞는 전문성이 필요하다. 그것은 전문가에게나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설사 분석 능력이 있다 해도 시간이 없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도 업종 한두 개 분석에 하루종일 매달린다. 결국 세력에게 정보를 의존하는 아이러니가 벌어진다.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