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월19일 민주노총 화학섬유연맹 산하 NCC 노동조합 김주석 지회장(가운데)이 서울 중구 프라자호텔에서 민주노총 탈퇴 기자회견을 열고 “민노총은 정치투쟁을 멈추고 노조 본연의 활동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밝혔다.
토론자로 나선 정 위원장도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위한 법 정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 위원장의 말이다.
“자주적 노조로 가기 위해서는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는 불가피하다. 전임자 임금이 조합원 주머니에서 나간다면 (조합원들은) 전문성을 갖추고 조합원을 위해 일하는 전임자를 뽑게 된다. 노조가 전임자 임금 자체 충당을 통해 자주성을 확립해나간다면 국가경제와 국정 전반에 좋은 결과가 나타날 것으로 믿는다.”
포럼의 멤버인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사용자가 지급하는 전임자 임금과 각종 편의를 제공받으면서 노조가 사용자를 뒤에서 비난하는 뒷간식 노사관계는 글로벌 관행에도 어긋날 뿐 아니라 노조의 자주성을 논하기 부끄럽다”는 견해를 밝혔다.
임원급 대우받는 노조전임자
사실 노조전임자에 대한 임금 지급 문제는 하느냐 마느냐는 당위의 문제를 떠나 사용자 측에 큰 경제적 부담이 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지난해 노동부가 발표한 ‘2007년도 노동조합 조직현황’에 따르면, 사측이 지급한 노조전임자 임금은 무려 4288억원에 달했다. 2005년에 3439억원이던 것이 2년 만에 849억원이나 늘었다. 게다가 상당수 대기업 노조의 노조전임자에 대한 임금이 일반근로자들의 평균임금을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덕적 해이니 노동귀족이니 하는 식의 도덕성 시비가 불거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노조전임자의 55.5%가 평균임금 수준을 받고 있으며 평균임금 이상의 급여를 받는 곳도 28.2%에 달했다. 일을 하는 근로자보다 노조에서 일하는 사람이 더 많은 월급을 받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여러 기업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도덕적 해이는 대기업 노조에서 더 심각한 것으로 나타난다. 지난 4월 경총이 발표한 자료 ‘노조전임자 급여는 노동조합이 부담해야’는 이를 잘 보여준다. 이 자료에 따르면, 단체협약시 (대기업 노조의 경우) 노조위원장에 대한 임원급 대우, 접대비, 차량 및 기사 제공 등의 무리한 요구가 제기되고 있으며 노조전임자에 대해 연월차휴가수당 및 연장근로수당 외에도 출퇴근 시간 등의 면제, 전임자 특별수당, 차량지원, 출장비(유류비 지원), 전임기간 종료시 상위직급으로의 복귀 등의 요구사항도 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와 관련, 재계의 한 관계자는 “근로를 하지 않는 노조전임자는 법률상 연월차휴가수당 및 연장근로수당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없도록 되어 있지만 실제 사업장에서는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파업 중에도 상당수 대기업 노조전임자는 특별근무수당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7월 노사정위원회는 사실상의 정부안인 ‘공익위원 단일안’을 내놓고 중재에 나섰다. 정부 차원의 합의안 도출이 여의치 않자 ‘단일안’으로 수위를 조금 낮췄다.
단일안은 기본적으로 노조전임자의 임금 지급을 허용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다만 노무 관리적 성격을 가진 활동에 한해 근무시간으로 인정하는 이른바 ‘타임오프제’(유급 근로시간 면제제도)를 도입한다고 제시했다. 근무시간으로 인정되는 노조 활동으로는 ▲근로자 고충처리 ▲산업안전보건에 관한 활동 ▲단체교섭 준비 및 체결에 관한 활동 ▲노사 공동의 이해관계에 속하는 활동 등이 포함된다. 그러나 조합 가입 권유 등의 조직활동과 조합홍보, 노조 자체 회의, 상급활동 참여 등 노조의 자체 활동은 유급 처리하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다. 공익위원으로 참여한 이승욱 이화여대 법대 교수는 “원칙적인 기준이 법에 나열식으로 제시돼 있고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의 시간을 어느 규모에 한해 ‘타임오프’로 인정할 것이냐는 노사 간의 교섭에 맡겨진다”고 단일안을 설명했다.
찬밥신세 된 노사정위 단일안
그러나 재계와 노동계 모두 노사정위원회의 단일안이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재계의 반발이 크다. “타임오프제의 인정 범위가 지나치게 넓고 포괄적이며 개념도 모호해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것. 재계의 한 관계자는 “노사관계의 상황에 따라 대통령령에 의해 노동면제 사유를 추가할 수 있도록 해놓고 있어 사실상의 임금 지급으로 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지난 2월2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에서 민주노총 주최로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렸다. 이날 참석자들은 용산참사 정권규탄과 MB악법저지를 주장했다.
그렇다면 외국의 경우는 어떨까. 다른 나라에서는 노조전임자의 급여를 누가 지급하며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까.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등 각국의 노조전임자 제도는 우리나라의 풀타임 노조전임자와는 기본적으로 성격을 달리한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근로시간이 면제되는 정도에서 노조전임자 활동이 보장되고 있다. 근로제공을 전혀 하지 않는 우리나라식의 노조전임자는 노사 협력적 기능을 가진 노사협의회 활동가 정도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산별노조 등 개별기업 단위를 넘어서는 노조전임자에 대해 사용자가 급여를 지원하는 것은 어떤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현상이다.
미국의 경우 노조전임자에 대한 급여지급은 노조가 부담하고 있으며, 무노동무임금 원칙이 확립되어 있다. 노조에 대한 어떠한 방식의 경비지원도 부당노동행위로 규정되며, 위반시 처벌할 수 있는 규정도 두고 있다.
일본도 사정은 비슷하다. 1949년 노동조합법을 개정한 일본은 사용자로부터 경비원조를 받는 노조의 조합자격을 인정하지 않고 있고 사용자의 경비원조행위를 부당노동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사용자가 초기업단위 노조의 조직에 대해 어떠한 금전 및 물질적 지원도 하지 않으며, 노조 측에서도 노조의 자주성 유지를 위해 사용자 측에 금전 등 기타 물질적 지원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노조의 재정자립 절실
지난 13년간 이 법의 적용이 유예된 데는 노조의 재정적인 어려움에 대한 일종의 배려가 깔려 있었다. 노조전임자의 급여를 사측에서 받아온 노조가 갑작스러운급여지급 금지로 재정적인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노조법 부칙에서 급여지급 금지 규정의 적용이 유예되는 대신 유예된 기간에 노조와 사용자가 노조전임자에 대한 급여지원 규모를 점진적으로 축소하도록 노력하고 그 재원을 노조의 재정자립에 사용토록 규정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규정에도 불구하고 지난 13년간 우리나라의 노사관계는 변화하지 않았다. 오히려 같은 기간 노조전임자의 수는 늘었고 노사분규는 증가했다. 이를 보여주는 통계는 이미 많이 나와 있다. 산별노조 등 대단위 노조 형태로 환경이 바뀌면서 노동운동의 성격도 조합원의 권익을 위한 활동보다는 정치투쟁, 대(對)정부투쟁이 늘어나는 식으로 변해갔다.
상황이 이쯤 되자 재계에서는 “그동안 노조가 재정자립에 대한 어떠한 의욕과 노력도 보이지 않았다”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더 이상 이 법의 집행을 늦출 명분이 사라졌다는 것.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문제가 외국 정부나 기업과의 교류, 외국인직접투자(FDI) 과정에서 우리나라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는 분석도 재계 쪽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