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녁 어스름이 깔릴 무렵 숙소에서 나와 천천히 걸었다. 나라 길이가 3㎞ 남짓한 터라 웬만한 데는 걸어가면 된다. 선(SUN) 카지노는 해안가 페어몬트호텔 지하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카지노의 테이블 게임은 오후 6시에 시작된다. 이른 시각이라 그다지 붐비지는 않았다. 카지노 구조는 폐쇄형이 많은데, 이곳은 입구에 들어서면 실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개방형 구조다. 모나코 카지노에선 슬롯머신보다 테이블 게임이 더 인기 있다. 선 카지노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는 블랙잭 테이블에 끼어들었다. 일단 100유로를 칩으로 바꿨다. 둘러앉은 손님은 우리 일행 3명을 포함해 6명. 옆에서 같이 게임하는 백발노인에게 말을 붙여보았다. 뉴욕 출신의 미국인이다. 월스트리트에서 오랫동안 증권 업무에 종사했다는 그는 은퇴 후 이곳에 정착해 매일 카지노에 출근한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올해 83세라는데 표정에서 여유가 넘친다. 베팅하는 품이 많이 해본 솜씨다. 그는 무리하지 않고 한 판에 몇십유로씩만 걸었다.
이 판의 최소 베팅액은 5유로(1유로는 약 1600원). 최대 베팅액은 500유로다. 우리 일행은 한 판에 10유로씩 걸었다. 몇 번 해보니 붙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딜러가 생각보다 강하지 않고 블랙 잭(딜러로부터 받아든 카드 두 장의 합이 21인 경우)도 자주 나온다. 견습생쯤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 딜러는 미숙했다. 카드를 섞거나 나눠줄 때 종종 카드를 떨어뜨렸다. 손님들에게 질 때가 많았다. 덕분에 우리는 100유로로 2시간가량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일행 중 한 명은 150유로를 따기까지 했다.
그레이스 켈리, F1 그랑프리, 카지노

모나코 카지노의 대명사 몬테카를로 카지노.
모나코는 프랑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지만 이탈리아와도 가깝다. 시내 중심부에서 차를 타고 서쪽으로 30분쯤 달리면 프랑스의 니스가 나타나고 동쪽으로 20분쯤 가면 이탈리아 국경이 보인다. 중간에 멍통이라는 프랑스 마을을 지나야 한다.
모나코 왕실의 뿌리는 이탈리아 제노바의 그리말디 가문이다. 하지만 18세기 후반 프랑스의 지배를 받은 이후 프랑스와 밀접한 관계가 됐다. 프랑스어가 공용어이고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프랑스인이다. 정부 관리를 비롯한 공무원 중에도 프랑스인이 많다. 모나코엔 경찰만 있고 군대가 없다. 프랑스가 국방을 맡고 있기 때문. 외교도 프랑스에 의존하고 있다. 총리에 해당하는 행정수반을 임명할 때도 프랑스 정부와 협의한다. 모나코가 입헌군주제의 독립국임에도 프랑스 보호령이라는 얘기를 듣는 이유다.
모나코에서 가장 유명한 것 세 가지를 꼽는다면 1950년대 모나코 국왕과의 결혼으로 전설이 된 할리우드 배우 그레이스 켈리(상자기사 참조), F1 그랑프리, 그리고 카지노다. 모나코 시내도로를 코스로 이용하는 모나코 그랑프리는 82년 역사의 유서 깊은 대회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레이스’로 일컬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