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양산업으로 치부되던 섬유산업에 왜 투자하느냐는 비판도 거셌다고 한다. 그러나 조 사장은 스판덱스가 캐시카우가 될 때가 올 거라고 확신했다. 효성의 또 다른 임원의 설명은 이렇다.
“화섬산업은 장치산업이라 투자 규모도 크고 기술력도 갖춰야 한다. 더욱이 중국산 저가제품 공세에 고전한 터라 이익 창출이 불분명한 스판덱스 투자를 부정적으로 보는 이가 많았다. 어느 날 임원과 전문가들로부터 이런 의견을 듣던 조 사장이 갑자기 TV를 켰다. 운동기구를 판매하는 홈쇼핑 TV였다. ‘웰빙, 운동, 건강 등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스판덱스 수요는 분명히 증가할 것이다. 청계산 등산객들도 이제 스판덱스 등산복을 입고 다니더라. 쫙 달라붙는 스판덱스를 한번 입어보면 헐렁한 옷은 절대 못 입는다’라고 하더니 ‘투자’로 결론지었다. 미래 소비 트렌드를 정확하게 읽은 거다.”
1992년 세계에서 4번째로 스판덱스 자체 개발에 성공한 효성은 기술경쟁력을 끌어올리고 해외 투자를 늘렸다. 결국 8년 만인 2010년 세계시장 1위로 올라섰다. 2011년 1조9060억 원이던 매출액(영업이익 1062억 원)이 올해는 상반기에만 1조647억 원(영업이익 2189억 원)을 기록했다. 이런 추세라 면 올해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낼 것으로 예상된다. 효성은 2020년까지 29만t 생산능력을 갖춰 세계시장의 40%를 차지한다는 계획이다.
탄소섬유 種子 심는다
효성의 대표적인 현재 먹을거리가 스판덱스(제품명 ‘클레오라’)라면 미래 먹을거리는 탄소섬유와 폴리케톤이다.
탄소섬유는 탄소를 92% 이상 포함한 섬유로, 무게는 철의 4분의 1이지만 강도는 10배 이상이다. 2011년 국내 최초로 개발에 성공해 2013년부터 ‘탄섬’이라는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지금은 낚싯대나 골프채 샤프트, 등산 스틱, 비행기 날개 등에 많이 사용되지만, 향후 그 쓰임새는 무궁무진하다. 지난해 11월 전북창조경제혁신센터를 전주 친환경복합산업단지에 연 것도 탄소섬유가 지역사회와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미래 먹을거리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조 사장의 분석은 이렇다.
“현재 탄소섬유는 철강보다 8배 정도 비싸다. 기술혁신을 통해 가격차이가 3배 정도로 떨어지면 수요가 급격히 증가할 것이다. 비행기나 자동차는 무게를 줄여야 연비가 좋아지는 만큼, 고유가 시대의 총아가 되리라 본다. 소재산업은 1조 원을 투자하면 전후방 산업 육성 효과가 커 10조 시장이 된다. 우리는 탄소섬유의 종자(種子)를 심는 것이고, 훗날 그 열매를 함께 따 먹으려면 많은 기업이 참여해야 한다. 자동차, 선박, 골프채 제조업체 등이 탄소섬유를 써보고 피드백을 해주면서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2013년 독자 기술로 세계 최초 개발 및 상용화에 성공한 폴리케톤에 거는 기대도 크다. 폴리케톤은 올레핀(에틸렌, 프로필렌)과 일산화탄소를 가공해 만든 친환경 고분자 신소재로, 폴리케톤을 적용한 플라스틱 시장은 66조 원 규모에 이른다. 폴리케톤 외에도 효성은 다람쥐 도토리 모으듯 미래 먹을거리를 차곡차곡 쌓아두고 있다.
사물인터넷 전문기업으로 육성하는 ‘효성 ITX’와 간편결제서비스인 ‘갤럭시아페이’를 출시한 갤럭시아컴즈도 그런 ‘미래의 도토리’다. ATM(자동입출금기) 제조회사가 ATM 시대 이후의 핀테크(Fintech, IT 기반 금융 기술) 시대를 대비한다니, 아이러니가 따로 없다. 섬유부문과 함께 주력제품인 ATM의 현지화 전략도 조 사장이 지휘하고 있다. 1998년 미국에 ATM을 수출하기 시작한 후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통해 2013년 기준 미국 내 시장점유율 28.7%를 차지하면서 1위에 올랐다.
효성의 이러한 약진은 조 사장의 글로벌 감각과 인적 네트워크에 힘입은 바 크다. 스판덱스를 최초로 개발한 듀폰사는 효성이 시장점유율을 높이자 한때 적대적으로 대했다고 한다. 그러던 듀폰사의 태도가 어느 날 확 바뀌었다. 조 사장은 ‘신동아’ 인터뷰에서 그 연유를 들려줬다.
“고교(미국 세인트폴) 시절 기숙사 생활을 함께한 친구가 듀폰가(家) 자제인데, 평소 나와 효성에 대해 아버지께 좋게 말씀드렸다고 한다. 나중에 들어보니, 듀폰가가 나서서 듀폰 CEO에게 ‘효성과 협력하라’고 당부했다고 하더라. 이후 듀폰사와 툭 터놓고 대화했고, 스판덱스 사업에 대한 우리의 의지가 강한 걸 알고는 스판덱스 부문을 팔아버렸다(웃음).”
수출기업 CEO의 글로벌 감각
조 사장의 지인인 아르만드 하르트노 인도네시아 BCA(Bank Central Asia) 부행장은 효성과 ATM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덕분에 효성은 인도네시아 ATM 시장의 40%를 차지하며 시장점유율 1위에 올랐다.
“효성은 수출이 80%를 차지하는 회사다. 대부분의 비즈니스가 외국에서 일어난다. 그러니 각국 환율이나 유럽, 중국의 경제상황, 유가 등을 모두 체크해야 한다. 판단을 하려면 제대로 된 정보가 필요한데, 정보를 얻으려면 해외 인적 네트워크가 정말 절실하다.”
세계시장의 흐름에 대한 식견과 인적 네트워크가 조 사장의 ‘외치(外治)’를 떠받친다면 내치(內治)를 돕는 것은 덕(德)과 배려인 듯하다. 조홍제 창업주는 함안 조씨 세거지인 경남 함안군 동촌리에서 태어나 한학을 배운 선비였다. 장손인 조 사장은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조부 집에서 자라며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가 ‘위정이덕(爲政以德)’을 경영철학으로 삼은 것도 할아버지의 경영철학인 ‘숭덕광업(崇德廣業)’을 실천하는 방법론이다. 이정원 효성 상무는 ‘효성인상’ 얘기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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