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SK하이닉스 올라도 웃지 못하는 투자자
‘좋은 종목’ 확신에도 투자 실패하는 이유
①“과거 내 판단 틀렸다” 인정보단 자존심 우선
②“주식은 본인 책임” 말하면서도 타인 의존
③“본전만 오면 판다” 강력한 손실회피 성향

최근 필자가 주변으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지금이라도 삼성전자를 사야 하느냐”는 물음이다. AI 생성 이미지
요즘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주식 상담 환자들이나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이 던지는 질문은 약속이나 한 듯 똑같다. 최근 주가가 조정을 받고 있지만 상반기 내내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연일 신고가를 갈아치우며 시장을 장악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각종 미디어에서 “인공지능(AI) 슈퍼사이클” “역대급 영업이익” 같은 화려한 수식어가 붙은 뉴스가 쉴 새 없이 쏟아진다. 흥미로운 점은 정작 질문을 던지는 이들의 얼굴에 설렘이나 기대감 대신 극심한 불안과 초조함이 서려 있다는 사실이다. 기회를 혼자만 놓칠까 봐 불안하지만, 그렇다고 덜컥 진입하자니 혹여 꼭지에 물릴까 두려워하고 있었다.

SK하이닉스가 1분기 영업이익 37조 원을 돌파하며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사진은 경기 이천 SK하이닉스 본사. 뉴스1
①“과거 내 판단 틀렸다” 인정보단 자존심 우선
이러한 불안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주식 중독에 빠져 전 재산을 날려버린 뼈아픈 과거가 있기 때문이다. 친구들의 말만 듣고 시작한 주식투자였다. 초심자의 행운에 취했고, 이성이 마비된 채 불나방처럼 뛰어들었다. 끝은 쓰라린 파국이었다. 13층 오피스텔에서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던 아픈 기억이 여전히 선명하다. 전 재산이 녹아내리면서 공황장애와 신체적 통증이 몰려오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진료실에서 듣는 “지금이라도 사야 하느냐”는 질문은 단순한 재테크 고민이 아닌 ‘심리적 비명’으로 들리곤 한다.왜 우리는 좋은 종목이라는 확신을 갖고도 막상 매수 버튼 앞에서 손가락을 떨게 될까. 투자의 최종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타인의 확신을 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 1%의 손실, 단 한 번의 실패조차 용납하지 못하는 강박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주식투자를 할 때 무의식 깊숙이 숨어 있는 세 가지 심리적 함정을 소개한다.
첫 번째 함정은 “실적이 좋은 건 알겠는데…”라는 망설임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고, 기업가치 역시 크게 높아졌다는 사실은 이제 초등학생도 안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선뜻 매수 버튼을 누르지 못한 채 머뭇거리기만 할까. 인간의 뇌는 본능적으로 안전을 추구하도록 설계됐기 때문이다. 이에 이미 크게 올라버린 자산, 혹은 호재를 마주하면 기쁨보다 의심이 고개를 들게 된다. 이른바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상태에 빠지게 된다. 주가가 가파르게 상승하는 종목을 보는 순간 중뇌변연계 보상회로는 도파민을 분출하며 짜릿함을 안겨주지만, 동시에 편도체는 위험신호를 보낸다. ‘내가 사는 순간 떨어지는 것 아닐까’ 하는 방어기제가 작동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기회비용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포모(Fear Of Missing Out·기회 상실 공포)’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SK하이닉스가 10만 원대였을 때, 삼성전자가 5만~6만 원대였을 때 사지 못했던 과거의 자신이 떠오르는 순간, 뇌는 일종의 심리적 역회전에 빠져든다. ‘그때 샀어야 했는데’ 하는 뒤늦은 후회가 고개를 들고, 그 감정은 곧 ‘지금 가격에 사면 왠지 손해를 보는 것 같다’는 왜곡된 인식으로 이어진다. 현재 기업이 지닌 가치나 미래의 성장 전망보다, 놓쳐버린 과거의 가격이 판단의 기준이 되는 셈이다.
이처럼 실적이 좋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매수를 망설이는 진짜 이유는 기업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다. 진짜 원인은 자신이 과거의 기회를 놓쳤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 즉 자존심 때문이다. 이전보다 비싼 가격에 주식을 매수하는 행위는 “과거의 내 판단이 틀렸다”고 시인하는 것과 다름없다. 대부분의 사람은 금전적 손실을 보는 것보다 자존심이 상처받는 것을 더 견디기 어려워한다. 정신분석학적으로 보면 이는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 작동하는 방어기제의 한 형태다.
②“주식은 본인 책임” 말하면서도 타인 의존
두 번째 함정은 투자의 책임을 타인에게 떠넘기고 싶어 하는 마음이다. 우리는 투자의 최종 책임이 오롯이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왜 끊임없이 주식 리딩방을 기웃거리고, 전문가가 나오는 유튜브 영상을 반복해서 돌려보며 “제발 지금 ○○주식을 사라고 확신을 달라”고 갈구하게 되는 걸까.심리학에서는 이를 ‘의존성 성격 특성(dependent personality traits)’과 ‘자기효능감의 결여’로 설명하고 있다. 예측할 수 없는 주식시장의 움직임 앞에서 인간은 때때로 극도의 무력감에 휩싸인다. 이때 뇌는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데 에너지를 쓰기보다, 나보다 똑똑해 보이는 전문가나 애널리스트, 혹은 돈을 벌었다는 지인에게 의탁하려는 퇴행 습관을 보이게 된다.
겉으로는 “주식은 당연히 본인 책임이지”라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누군가 지금 사면 무조건 2배 오른다고 말해 줬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는 투자에 실패했을 때 원망하고 탓할 대상을 미리 확보해 두려는 무의식적 계산이 작동한 결과다. 스스로의 결정으로 손실을 보면 자존감이 타격을 받지만, 남의 말을 듣고 투자했다가 실패하면 책임을 외부로 돌릴 수 있다. “유튜브 속 전문가가 사기꾼이었다” “친구 놈 말만 믿었다가 독박 썼다”는 식으로 핑계를 대는 식이다.
투자의 자율성을 스스로 반납하는 이 같은 행위는 전두엽이 과도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퓨즈를 꺼버리는 상태와 같다. 감당할 수 있는 자산 규모나 위험 수준을 넘어섰을 때 우리는 자신의 분석보다 남의 확신에 기대려 한다. 숙고의 고통을 외면한 채 눈앞의 쉬운 탈출구를 찾는 것이다. 일종의 ‘편안함에 중독된 상태’로, 책임을 회피하려는 심리적 방어기제가 작동한 결과로 볼 수 있다.
③“본전만 오면 판다” 강력한 손실회피 성향
마지막이자 가장 강력한 심리적 쇠사슬은 ‘절대 손실을 보지 않으려는 마음’이다. 행동경제학에서 입증한 ‘손실회피 성향(loss aversion)’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력하다. 인간의 뇌는 같은 크기의 이익과 손실을 전혀 다르게 받아들인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100만 원을 벌었을 때 느끼는 기쁨보다, 100만 원을 잃었을 때 마주하는 고통이 2.5배나 강하다고 한다.수많은 투자자가 하락장에서 겪는 이른바 ‘본전 강박증’도 여기서 비롯된다. 주가가 반토막이 나면 사람들은 흔히 “딱 본전 가격만 오면 미련 없이 팔고, 다시는 주식판에 얼씬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정작 주가가 회복하며 본전 가격이 되면 대부분 매도 버튼을 누르지 못한다. 손실을 만회했다는 안도감보다, 그동안 지옥 같은 하락장을 견뎌온 시간과 감정적 소모에 대한 ‘보상’을 받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주가가 떨어지면 손실을 인정하기 싫다는 이유로 대출까지 끌어와 물타기에 나서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필자 역시 과거 상장폐지를 앞둔 종목에 마지막 순간까지 돈을 쏟아부으며 물타기를 반복했던 흑역사가 있다. 당시 내게 손절이란 단순한 투자 판단이 아니었다. 그것은 곧 “내가 틀렸다”는 선언처럼 느껴졌고, 손실을 확정하는 순간 자존감이 무너질 것 같았다. 돌이켜 보면 당시 수익을 얻기 위해 주식투자를 한 것이 아니었다. 오직 내 판단이 옳았음을 증명해 보이겠다는 이유로 주식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장은 우리의 자존감을 지켜주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 아니다. 손실을 보지 않으려는 강박은 역설적으로 당신의 일생을 송두리째 앗아갈 커다란 손실을 부르기 십상이다. 주식시장은 살아 움직이는 생물과 같아서 변동성이 필연적이다. “내 사전에 손실은 없다”는 자세는 마치 몰아치는 거대한 파도를 맨몸으로 막아서겠다는 만용과 다름없다. 시장은 우리의 상처를 치유해 줄 의무가 없으며, 주가는 투자자의 개인적 억울함이나 기다림의 시간을 고려하지 않는다. 결국 나의 투자 원금에 기준을 둔 모든 의사결정은 비합리적이고 감정적일 수밖에 없다. 본인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비대해진 자아가 뇌를 완전히 지배할 때, 투자는 더는 이성적 행위가 아니라 도박이자 중독으로 변질된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를 지금 사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정답은 사실 아무도 모른다. 그것은 투자 고수도, 유튜버도, 애널리스트도 결코 알 수 없는 영역이다. 내일의 주가는 내일의 시장이 결정할 뿐이며, 이를 아는 것은 신의 영역이다.
시장의 속도에 일상의 집중력 빼앗기지 말아야

투자란 변동성이라는 파도 위에서 자신의 멘털을 지키고,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은 채 본업에서 성과를 내며, 체력과 역량을 키워 삶의 외연을 넓혀가는 과정에 가깝다. Gettyimage
투자는 단순히 자산을 불리는 기술이 아니다. 변동성이라는 파도 위에서 자신의 멘털을 지키고,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은 채 본업에서 성과를 내며, 체력과 역량을 키워 삶의 외연을 넓혀가는 과정에 가깝다. 설령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일상이 무너진다면 수익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일상의 균형을 잃어가며 얻은 돈은 이어질 다음 투자에서 시장에 반납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두렵다면 잠시 매수 버튼에서 손을 떼고 쉬어도 된다. 충분히 내 마음이 단단해지고 준비됐다고 느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 역시 투자다. 시장은 내일도 열리고, 내년에도 열린다. 수많은 사람이 대박이 날 종목을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있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평생 동안 관리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자산은 따로 있다. 당신이 가진 최고의 우량주는 시장에 상장된 기업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

● 1981년생
● 연세대 의학과 학사, 동 대학원 정신과 석사
● 저서: ‘구로동 주식 클럽’ ‘살려주식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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