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호

기업 특수성 고려 않는 평가, ‘그린 워싱’ 부추긴다

[ESG 아는 체하기] 컨설팅 전문가의 눈으로 본 ESG의 민낯

  • 이명우 ㈜솔루티드 대표

    입력2025-12-10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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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SG 평가의 한계, 정치적 이념화와 획일화

    • 정부의 애매한 태도가 기업 ESG 의지 꺾어

    • “정확히 틀린 것보다 대충 맞는 것이 낫다”

    • ‘모방’ 아닌 ‘주도’에 힘써 K-ESG로 거듭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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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한 중견 토목건설회사의 ESG 컨설팅을 맡고 있다. 햇수로 6년쯤 됐다. ESG 평가 결과는 고객의 입장에서 본 가장 눈에 띄는 성과일 터. 남들은 이런 나를 ‘ESG 전문가’라고 불러주지만 실상은 한낱 생계형 사업자에 불과하다. 고객사가 ESG 평가 점수를 잘 받을 수 있는 방법을 밤낮으로 고민한다. 그러나 본질적 질문이 항상 머릿속을 떠다닌다. ‘이 평가를 잘 받으면 고객사가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연초가 되면 일단 올해 점수부터 잘 받고 보자는 심정으로 수험생 모드에 들어간다. 역시 어쩔 수 없는 생계형이다.

    업자의 눈으로 본 ESG 평가는 아직까지 미흡한 부분이 많다. 내가 담당하는 토목건설회사(이하 A사) 사례를 보자. A사가 죽었다 깨어나도 높은 점수를 받기 어려운 ESG 평가지표가 있다. 바로 ‘고용 다양성’ 지표다. 무엇보다 여성 고용 비율이 골칫거리였다. A사의 정규직 여성은 100명 중 2.5명 수준이다. 몇 명 안 되는 여성 중 거의 모든 직원이 본사 사무직이다. A사는 전국에 걸쳐 수십 개 현장이 있고, 직원의 90% 이상이 현장에서 근무한다. 현장 근무는 육체노동이 필요하고,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우며, 지방 오지에 위치하는 경우도 많다. 여성이 근무하기 쉬운 여건이 아니다. 신입사원 채용 공고를 내도 대다수 지원자가 남성이다. 

     ESG 평가의 한계:  A기업의 사례

    최근 대학생 인턴사원 모집에서 한 여성 지원자가 본사가 아닌 현장을 선택해 화제가 됐다. 경영진은 여성 인턴사원을 위해 본가에서 출퇴근 가능한 거리의 현장 배치, 교통비 지원, 여성 전용 휴게시설 추가 등 각종 편의를 마련했다. A사 입장에서는 여성 현장 근무자를 배치하지 않는 것이 비용 절감일 수 있지만, 오히려 대단하게 생각하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문제는 그럼에도 여성 지원자가 없다는 것이다. 애당초 요즘 대학 토목공학과에서 여학생은 ‘유니콘’과 같은 존재다. 현실에서 보기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A사에 여성 임원이 존재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회사의 경영 방침이나 역량의 문제가 아닌 산업 특수성과 시대적 환경의 문제다. 

    ‘산업재해’ 지표 역시 마찬가지다. 기업의 평가 등급을 매기고, 순위를 정하기 위해서는 동일한 조건에서 비교가 필요하다. 토목건설업은 작업장 자체가 매우 위험하다. 각종 중장비가 오가고, 고소 작업이 비일비재하며, 옥외작업으로 날씨의 영향을 그대로 받는다. 제조업 공장 역시 기계와 화학약품 등 위험 요소가 많지만 공장 내 통제가 용이하며 날씨의 영향은 받지 않는다. 한편, 금융이나 정보통신(IT) 서비스 등 사무직 위주의 기업은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안전사고 발생 위험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업종에 따라, 기업에 따라 안전사고 발생 위험이 천차만별임에도 서로를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물론 안전사고 예방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뉴스에 나오는 안전준칙 미준수나 비용 절감을 위해 안전을 희생하는 구조적 문제가 발생하는 현장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일선 현장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말 누구의 잘못이라 말하기 힘든 사고도 많고, 예방이 불가능한 사고도 많다. 이런 불가피한 사고까지 예방해야 한다면 애초에 사업을 하지 않는 것이 맞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사고도 발생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기업의 배당성향 수준도 평가 대상이다. 심지어 자사주 매입 후 소각 여부가 평가 문항으로 들어오고 있다. 배당은 기업활동의 이익을 주주에게 배분하는 것으로 다분히 경영상의 선택 문제다. 기업이 장기적 관점에서 지속 가능하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배당보다 투자가 더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자사주 소각도 마찬가지다. 특히 이미 성장한 기업보다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는 기업에 불리하다. 이미 성장해 큰 이윤을 남기는 기업은 배당 여력이 높고, 성장하는 초기 기업은 투자할 자금도 부족하기 마련이다. 이를 헌법에 보장된 기업경영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 보는 견해도 있다. 심지어 국가도 아닌 민간기관이 ESG 경영을 평가하기에 더욱 그렇다. 



     불공평한 게임판:  산업 특수성 반영 없이 일률적 평가

    기업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않은 일률적 평가 문항은 ESG 경영을 하고자 하는 기업의 의지를 꺾는다. 혹자는 어쩔 수 없는 평가 문항은 포기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기업 ESG 담당자 입장에서 쉬운 일이 아니다. 문항 하나 차이로 등급이 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평가를 안 받으면 몰라도 평가를 받는 이상 낮은 점수를 받는 것은 회사의 이미지나 평판에 타격을 입는다. 심지어 어떤 기업은 평가기관에 대놓고 “우리 회사는 평가를 안 해줄 수 없느냐”고 하소연에 가깝게 읍소하기도 한다. 게다가 어떤 평가지표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평가사들이 세부 기준을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어느 하나라도 소홀하기 어렵다. 기업엔 내부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하면서 정작 평가사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기준과 가중치로 평가되는지 정확한 기준을 알아야 기업 입장에서는 대응할 수 있다. 

    왜 이러한 부적절한 평가 문항이 존재할까. 다시 본질적 질문으로 돌아가면 다양성 지표나 배당성향이 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까(산업재해에 대한 대비는 분명 “그렇다”고 본다). 내 생각에 정답은 “알 수 없다”다. 물론 학계에는 이 같은 평가 요소가 기업의 이익이나 성장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주의 깊게 봐야 할 점은 연구 결과가 인과관계가 아닌 상관관계라는 것이다. 실제로 여성이나 장애인을 많이 고용하고 배당성향 등이 높아서 기업이 성장했는지, 이미 성장한 기업이라 금전적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다양성과 배당을 높일 수 있었는지 알 수 없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이 지표들이 사용되는 것은 일론 머스크나 래리 핑크가 지적하듯 시대의 정치적 이념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어느 사회든 정치는 존재하며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 정치적 선택이 필요하다. 다만 기업경영에 대한 과도한 정치적 개입은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기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

     성과 vs 절차:  평가의 주객전도

    다시 A 기업 사례로 돌아가자. A 기업 직원들과 환경문제를 얘기하다 보면 종종 이런 한숨 섞인 푸념이 나온다. “우리 같은 토목회사는 고속도로 닦고, 터널 뚫고, 다리 놓고 하면서 환경 파괴한다고 갖은 욕은 다 먹는데, 따지고 보면 우리가 제일 환경친화적인 것 아닌가요? 빙빙 둘러 갈 길을 터널이나 고속도로를 통하면 운전 시간도 단축되고 그만큼 온실가스가 많이 감축되잖아요.” 실로 그렇다. 지난 칼럼에서 설명한 온실가스 Scope3 개념을 적용하면 이 말이 맞을 수 있다. Scope3는 기업 활동으로 직·간접적으로 발생하는 모든 온실가스 배출 중 Scope1(기업 내부 자산에서 발생되는 온실가스 배출)과 Scope2(기업이 제3자로부터 구매한 에너지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를 제외한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Scope3 산정에 대한 공식적 기준이 없는 현재로서는 이를 성과로 평가하기는 시기상조다. 따라서 실제 성과보다는 절차나 노력에 대한 평가가 이뤄진다. 

    예를 들자면 성과 이외에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매뉴얼이 준비됐는지, 감축 전략을 마련하고 있는지, 경영진이 감축에 신경을 쓰고 있는지 등을 평가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매뉴얼이나 전략이 잘 세워졌는지 꼼꼼히 검토하고 평가 점수를 내는 것도 아니다. 기업이 제출하는 증빙 자료를 바탕으로 매뉴얼이나 전략의 유무 정도만 평가한다. 이런 평가지표는 실제 성과와 약간 관련이 있긴 하겠지만 계획이 마련돼 있다고 해서 꼭 결과가 좋으리라는 법은 없다. 어찌 됐든 기업 입장에서는 평가지표 위주로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시험을 칠 때 범위 밖의 내용을 공부하는 바보는 없다. 이런 현상이 심화하면 기업은 의도치 않게 ‘그린워싱(Green Washing·친환경 위장)’을 하게 된다. 실제 성과보다 부수적인 것들에 매달리게 되는 것이다. 평가지표에 따라 실제 온실가스 감축 성과보다 계획 등 프로세스, 즉 페이퍼 워크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평가로 인해 주객이 전도되는 것이다. 정유 회사가 전기차 회사보다 ESG 경영 점수가 높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부의 모호한 태도와 기업의 눈치 보기

     평가 문제 이외에도 기업이 실제 성과 향상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정부의 모호한 태도와 정책 미비다. 온실가스 감축을 예로 들어보자. 2020년 10월 정부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 달성’을 선언하고 이듬해 탄소중립기본법을 제정했다. 동법 및 시행령에 따르면 2030년까지는 2018년 온실가스 배출량 대비 40% 수준으로 감축하겠다는 목표가 있다. 그러나 2031년 이후에는 구체적 감축 목표가 제시되지 않았다. 

    지난해 헌법재판소는 2031년 이후의 감축 목표 미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정부가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탄소배출권 거래제 역시 낮은 가격 및 무상 할당 과잉 등의 문제로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ESG 공시 역시 해외에서는 신속히 진행되는 반면 한국 정부는 미온적 태도를 지속해 왔다. 큰 틀에서 보면 제도를 마련하고 있으니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세부적인 내용이나 진행 상황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런 메시지에 기업은 민감하게 반응한다. 제도가 만들어지는 초기에는 열심히 할 것처럼 준비하던 기업도 정부가 흐지부지 시행하면 금세 반응이 시큰둥해진다. 온실가스 감축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모호한 태도를 보이는 상황에서 기업이 비싼 비용을 들여가며 열심히 할 이유가 없다. 100의 온실가스를 감축할 수 있다면 20~30 정도만 감축하면서 체면치레하기 마련이다. 나중에 정부가 정말 온실가스 배출을 규제할 경우 그때 감축해도 늦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차후 규제가 시작되면 세금 감면 등 여러 유인책이 나올 것이니 그때 하는 것이 오히려 더 유리하다고 여긴다.

    지금까지 필자가 몇 년간 ESG 평가를 컨설팅하며 느낀 문제점을 제시했다. 평가 방법의 정치적 이념화, 기준의 모호성, 불투명성, 성과보다 절차에 치중하는 점 등이 그것. 이러한 문제들이 일론 머스크가 ‘ESG는 사기’라고 표현한 이유다. 그는 특히 성과보다 부수적 절차 중심의 평가를 비판했다. ESG가 ‘나쁜 행위를 가리기 위한 도덕적 가면(a moral cloak to hide bad behavior)’으로 활용된다고 했다. 그는 본질을 중시하는 사람이기에, ESG 평가가 핵심 성과가 아닌 절차나 기획 문서에 의존하는 현실에 분노하는 것이 이해가 된다. 하지만 지난 칼럼에서 언급했듯 평가사 입장에서도 아직 성과를 평가하기에는 현실적 어려움이 존재한다. 

     후발 주자 아닌 선두 주자로:  K-ESG의 시작

    필자가 좋아하는 격언이 있다. “정확히 틀린 것보다 대충 맞는 것이 낫다(It is better to be vaguely right than exactly wrong)”다. 복잡하고 오래 걸리는 방법으로 틀린 의사결정을 내는 것보다 대충 경험을 통해 신속하지만 맞는 의사결정이 더 낫다는 뜻이다. 현재 ESG 경영 평가 방식에는 여러 문제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결점 없는 제도를 만들기 위해 시간을 지체하는 것보다 지금처럼 어설프게라도 빨리 시작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ESG란 방향성은 거스를 수 없다고 본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고쳐나가는 것이 효율적이다. 평가기관 역시 개선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다만 정부가 좀 더 발 빠른 움직임을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K-팝, K-드라마, K-푸드 등 여러 한국 문화가 세계를 선도하는 작금의 현실에서 아직도 해외 선진국 사례나 동향만 뒤따라가려는 행태는 구시대적이다. 한국은 선진국 반열에 오른 지 오래다. 말뿐이 아닌 세계가 우리를 배울 수 있는 K-ESG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이명우
    ●1983년 출생
    ●포항제철고등학교 졸업
    ●성균관대 중어중문/경영 졸업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現 솔루티드(주) 대표(중소기업 ESG 컨설팅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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