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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2억명 살상분 화학무기 보유 세계 3위

‘인류의 재앙’ 화학무기의 얼굴

북한, 2억명 살상분 화학무기 보유 세계 3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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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는 화학무기의 확산을 막기 위해 CWC(화학무기금지협약)를 제정했다. 한국은 이 조약에 가입해 화학무기를 보유하지 않고 있으나 북한은 가입하지 않았다. 핵무기 못지않게 위험한 화학무기의
  • 세계를 살펴본다.
지난 10월26일 러시아는 모스크바 ‘문화궁전’ 극장에서 벌어진 체첸 반군의 인질극을 진압하기 위해 신경가스를 사용하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용된 가스의 종류는 밝히지 않고, 진압 과정에 가스 중독으로 인질 120명이 사망했다고만 발표했다.

이로 인해 국제사회에서는 러시아 특수부대가 사용한 정체불명의 가스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였다. 그에 따라 환각제인 BZ 또는 유기인(燐) 성분의 신경가스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CNN을 비롯한 서방 방송은 전문가의 의견을 취합해 아편계 합성화학물질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하였다. 이렇게 국제사회의 압력이 거세지자 10월30일 유리 쉐브첸코 러시아 보건장관은 “이 가스는 외과 수술에 사용되는 ‘펜타닐(fentanyl)’ 성분의 마취가스”라고 밝혔다.

펜타닐은 어떤 화학물질인가. 펜타닐은 1950년대에 개발되고, 1960년대 ‘서블리마제(Sublimaze)’라는 상품명을 달고 주사용 약품으로 사용되었다. 오늘날 펜타닐은 수술 후의 환자나 암환자의 통증을 경감시키기 위한 마취제와 진통제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펜타닐의 효과는 헤로인보다 80∼100배, 모르핀보다는 200배 이상 강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증상이 나타나는 발현시간은 1∼4분이고 작용시간은 30∼90분이다. 펜타닐은 투여한 즉시 강력한 효력을 발휘하는지라, 다량 복용하면 호흡 장애를 일으켜 산소 부족으로 숨질 수 있다. 펜타닐의 부작용으로는 변비·구역질·구토·졸음·호흡부전 등이 일어난다.

호흡부전은 마약성 진통제를 사용한 경험이 적은 환자가 펜타닐을 많이 사용할 때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호흡부전은 생명을 잃는 치명적인 부작용이니만큼 매우 주의하여야 한다.



펜타닐을 초기에 많이 투여하면 분당 호흡횟수가 8회 미만으로 떨어진다. 분당 호흡 수가 8회 미만이 되면 신속한 병원 응급처지가 필요할 정도로 위험해진다. 따라서 조금씩 투여량을 늘려나가야 호흡 억제를 피할 수 있다.

러시아의 인질극 진압을 계기로 화학무기가 새삼 주목을 끌었다. 사실 화학무기는 전쟁과 테러현장에서 오랫동안 사용돼 왔다. 고대 전쟁에서 인류는 송진과 유황을 연소시켜서 만든 유독가스로 상대를 공격한 적이 있다. 그러다 화학이 발달함에 따라 본격적인 화학무기가 등장하게 되었다.

제1차 대전 때 등장

현대적 의미의 화학무기는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5년 4월22일, 독일군이 벨기에의 이프레스(Ypress) 지역에서 영·불 연합군을 향해 사용한 염소가스가 처음이다. 염소가스 공격으로 영·불 연합군에서는 5000여 명이 사망하고 1만5000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1915년 9월25일 영국군은 똑같은 염소가스로 독일군을 공격했다. 이후 화학전이 본격화하면서 1915년 12월에는 포스겐 가스가, 1917년 7월12일에는 황겨자 가스가 독일군에 의해 최초로 사용되었다.

1914년부터 1918년 사이의 제1차 세계대전에서 화학가스로 사망한 영국군은 8700여 명이고 부상자는 18만5000여명에 이르렀다. 이 기간에 사용된 화학가스는 무려 12만5000t이었고 희생된 사상자는 130만여 명이라고 한다. 때문에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미국·소련·독일·영국 등은 많은 양의 화학가스를 생산·비축하기에 이르렀다.

제1차 세계대전을 통해 염소가스 등 화학무기의 대량 살상력과 비인도적인 사용을 목격한 각국은 1919년 체결한 베르사유조약(Versailles Treaty)에서 독일에 대해서는 화학가스 사용을 전면 금지한다고 규정하였다. 이어 1925년 채택된 제네바의정서(Geneva Protocol)는 질식가스와 독성 가스·세균학적 수단을 전쟁에 이용하지 못하도록 규정하였다.

그러나 제네바의정서는 화학무기의 전시(戰時) 사용을 금지하였을 뿐, 화학무기의 개발과 생산·소유 등은 금지하지 않았다. 또 제네바의정서에 참여한 국가들은, 자국이나 동맹국이 화학무기로 공격을 받았을 때 똑같은 보복을 해야 한다며, 제네바의정서에 서명하지 않은 나라에 대해서는 화학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해, 이를 관철시켰다. 때문에 화학무기 문제는 근본적인 해결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막상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유럽에서는 화학무기가 사용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화학무기에 대한 도덕성 시비가 끊이지 않았고, 화학무기를 사용하면 똑같은 보복을 받는다는 두려움이 널리 퍼졌기 때문이라고 이해됐다.

그러나 일본군은 중국과 전쟁을 벌인 1930년대 후반과 1940년대 초반 중국군을 상대로 화학가스를 사용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인 1936년부터 1944년 사이에 독일은 인체에 매우 치명적인 신경가스인 타분(1936년)과 사린(1938년), 소만(1944년)을 개발하고 비축하였다. 독일에서는 1945년까지 약 1만2000여t의 타분을 비축하였지만 이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이러한 독일의 준비에 놀란 승전국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패전국인 독일과 일본·이탈리아에 대해서는 화학무기 능력을 완전히 상실할 것을 요구해 관철시켰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화학무기를 보유할 수 있었던 국가는 미국과 소련 영국, 프랑스 등 수개 승전국가로 한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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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영식 한국화학연구원 책임연구원 ysjung@pado.krict.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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