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락(二樂)’은 얼궈터우술(二鍋頭酒)에 양고기 샤브샤브인 훠궈(火鍋)를 곁들이는 것이다. 삼합을 먹어야 전라도를 체험했다고 말하듯, 얼궈터우에 훠궈를 먹어야 베이징을 체험한 것이다. 얼궈터우는 작은 병 하나에 우리 돈으로 200~300원 한다. 값이 싸서 좋고, 가짜가 없어서 좋다. 65도, 59도, 39도 등 알코올 도수가 다양하고, 도수가 높을수록 술맛이 좋고 비싸다. 최소한 50도는 넘어야 얼궈터우의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솥에서 두 번 내렸다고 해서 얼궈터우인데, 적어도 베이징에서는 훠궈와 천상의 궁합을 이룬다.
경극을 모르면 사람이 아니다?
베이징의 겨울은 눈보다 바람이다. 예전에 베이징에서 공부할 때 새벽에 나를 깨우는 것은 창문을 꽉꽉 닫아놓아도 어느새 스며드는 황사의 흙냄새, 그리고 기숙사 옆에 세워둔 자전거가 거센 북풍에 휙휙 쓰러지는 소리였다. 황사로 목이 칼칼하고 매서운 칼바람이 부는 날에 훠궈와 얼궈터우를 먹어야 한다. 베이징에서 그것은 제의(祭儀)다. 베이징에 온 사람이면 이런 고약한 땅에 왜 수도를 세웠느냐고 불만을 터뜨릴 수 있지만, 베이징의 그런 고약한 날씨를 견디는 제의가 훠궈에 얼궈터우를 먹는 일이다.
그 맛은 겨울에는 겨울대로, 여름에는 여름대로 별미다. 겨울에도 먹다보면 땀이 솟아 에어컨을 켤 정도이니 여름에는 땀으로 목욕을 하며 먹어야 한다. 하지만 독특한 체험이 될 것이다. 뜨거운 육수에 살짝 데친 부드러운 양고기를 특유의 소스에 찍어 독한 얼궈터우와 함께 목으로 넘기는 순간, 목에서부터 불기운이 시작되어 밑으로 내려갔다가 이내 치솟아오르면서 온몸이 달아오른다. 자신도 모르게 언 몸이 스스로 풀리고 일순간 정신이 아득해진다. 예전에 ‘사나이 가슴에 불을 댕긴다’는 고량주 광고 카피가 있었지만, 술이 사람의 가슴에 어떻게 일순간에 불을 댕기는지, 불 같은 술의 힘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온몸에 불을 지르고 나면 뒤끝이 참으로 시원하다. 어찌 이런 술이 있으랴! 내가 위스키보다 중국술을 좋아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가슴에 불을 지르고 끝은 ‘쿨’한 그런 사람이 어디 흔한가. 그래서 중국술에 빠지는 것이다. 인간이든 술이든 뒤끝이 좋아야 하거늘 그 점에서 얼궈터우는 확실하다.
‘삼락(三樂)’은 차를 마시면서 경극(京劇)을 한 대목 감상하는 것이다. 호박씨를 까먹거나 중국 전통 다과와 함께 구수한 룽징차를 마시면서 감상하면 더욱 중국 맛이 난다. 중국의 심벌즈인 나오와 얼후, 비파 같은 다양한 악기로 연주하는 시끄러운 음악과 아득한 고음의 가성에 넋을 빼앗기다보면 여행의 피로를 잊는다.
경극은 원래 베이징 지방에서만 유행했다. 하지만 이제 베이징을 넘어 중국을 대표하는 문화적 아이콘이 됐다. 1990년대 말부터 중국에는 전통 문화를 즐기는 복고주의 물결이 크게 일었는데, 그 덕에 경극을 감상할 수 있는 극장도 급증했다. 중국인의 관심이 높아졌고, 여기에 외국인 관광객이 가세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공연장이 생겼다.
그런데 경극은 중국 역사와 고전에 사전 지식이 없으면 줄거리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또 모든 동작이 관습적으로 약속된 것이어서 미리 알고 봐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경극은 무대장치나 소품이 없고, 모든 것을 동작으로 표현한다. 팔을 괴고 기대면 잠자는 것이고, 말채찍을 들고 있으면 말을 타는 것이다. 상징성이 뛰어난 예술 장르다. 그래서 그저 시끄럽고 엽기적인 오페라쯤으로 여길 수 있다. 외국인이 문화체험 삼아 경극을 감상할 때는 유명한 작품을 한 대목씩 뽑아서 들려주는 극장을 선택하면 경극의 백미를 감상할 수 있다. 영어 자막을 서비스하는 곳이라면 더욱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