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결국 ‘오픈프라이머리’를 포기했다. 그 대신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새정연) 대표와 ‘안심번호 국민공천제’에 합의했다. 그러나 이 또한 청와대와 친박계의 반대에 부딪힌 상황이다. 국민은 혼란스럽다. ‘오픈프라이머리’도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도 생소하기 때문이다.
과거 국회의원을 비롯한 선출직 공직자에 대한 공천권은 정당 지도부가 행사했다. 총재 시절에는 말할 것 없고 대표 체제로 바뀐 이후에도 하향식 공천이 주를 이뤘다. 이 때문에 줄서기와 계파정치가 횡행했고 돈 공천 논란도 끊이질 않았다.
결국 정치개혁 또는 정치쇄신 차원에서 상향식 공천 도입 필요성이 제기됐다. 국민이 공천 과정에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정당들이 경쟁적으로 ‘국민경선제’ 또는 ‘국민공천제’를 도입한 까닭이다.
현재 새누리당의 국회의원 공천에서 국민공천단 대 권리당원의 참여 비율은 50%대 50%이다. 새정연은 국민공천단의 비율이 더 높아서 60%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새누리당과 새정연은 국민참여 비율을 더 높이려는 시도를 해왔다. ‘국민경선제’ 또는 ‘국민공천제’를 ‘완전국민경선제’ 또는 ‘완전국민공천제’로 만들려는 것인데, 새누리당은 미국식 오픈프라이머리를 도입하기로 당론을 정하기도 했다. 누구보다 김무성 대표가 이에 앞장섰다. 오픈프라이머리는 당원을 포함한 국민이 참여하는 100% 현장투표로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비롯한 선출직 공직 후보자를 선출하는 방식이다.
새정연도 최근 혁신위원회가 국민공천단 70%, 권리당원 30%로 국민 참여 비율을 상향 조정하는 공천 방안을 제시했다. 새정연 혁신위원회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안심번호를 도입할 경우에는 국민공천단 비율을 100%로 끌어올리는 방안도 함께 제시했다.
국민이 경선 비용 내기도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오픈프라이머리와 새정연의 국민공천단 100% 참여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전자는 현장투표인 반면에 후자는 여론조사 방식이다. 전자는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국민 모두 현장투표에 참여할 수 있고, 후자는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국민 가운데 1000명 이내의 표본집단을 추출한 뒤 이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방식이다.
이런 차이점 때문에 김무성 대표와 문재인 대표는 ‘안심번호 국민공천제’에 합의한 이후에도 각기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새누리당은 현장투표만 아닐 뿐 참여 의사를 밝힌 국민 모두를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하겠다는 것이고, 새정연은 1000명 이내의 표본집단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라는 표현은 같이 사용하지만 내용은 완전히 다른 제도인 셈이다.
우리 정치권에서 ‘완전국민경선제’ 또는 ‘완전국민공천제’로 부르는 오픈프라이머리는 본래 미국에서 발전했다. 20세기 초반 진보주의 운동의 산물로서 소수의 정당 지도부가 자행하는 불법선거를 개혁하는 차원에서 일반 국민의 공천과정 개입까지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이러한 도입 배경을 보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오픈프라이머리가 미국에서 발전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모든 주에서 실시하는 것은 아니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국가답게 프라이머리(예비경선) 제도는 유형도 제각각이다.
앞서 설명했듯 오픈프라이머리(Open Primary, 개방형 예비경선)는 모든 국민이 어떤 정당의 프라이머리에나 참여해서 현장투표를 할 수 있는 제도다. 이에 비해 클로즈드프라이머리(Closed Primary, 폐쇄형 예비경선)는 당원만이 참여해서 현장투표를 할 수 있는 제도다. 클로즈드프라이머리를 실시하는 주는 코네티컷, 델라웨어, 플로리다, 켄터키, 메인, 네브래스카, 네바다, 뉴저지, 뉴멕시코, 뉴욕, 오클라호마, 펜실베이니아, 사우스다코타 등 13개다.
세미클로즈드프라이머리(Semi-closed Primary, 준폐쇄형 예비경선)를 실시하는 주도 적지 않은데, 당원 이외에도 등록을 하거나 지지 정당을 바꾼 비당원 지지자에게 현장투표를 허용하는 제도다. 세미클로즈드프라이머리를 실시하는 주도 13개다. 알래스카, 애리조나, 콜로라도, 아이오와, 캔자스, 매사추세츠, 뉴햄프셔, 노스캐롤라이나, 오리건, 로드아일랜드, 유타, 웨스트버지니아, 와이오밍 주가 여기에 해당한다.
오픈프라이머리는 이처럼 미국 내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공천 방식이긴 하다. 오픈프라이머리라고 하더라도 각 정당은 투표에 참여하는 국민에게 자기 정당의 정강정책에 대한 지지를 표하도록 요구한다. 역선택을 방지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셈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자발적 참여를 전제로 하는 만큼 경선 비용 일부도 지불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국민이 스스로 비용을 내고 참가해서 자신이 당선되기를 희망하는 후보자를 지지하는 제도인 것이다.
유럽의 오픈프라이머리
미국과 달리 유럽 각국은 오픈프라이머리를 비롯한 프라이머리 실시 여부를 전적으로 정당의 선택에 맡긴다. 의원내각제 국가가 많고 비례대표의 비율이 높은 데다 결선투표 제도가 일반적이라는 상황도 오픈프라이머리의 활성화를 막는 구조적 변수다.
정당 차원에서 도입한 경우에도 당원만 참여하는 클로즈드프라이머리가 대부분인데, 이를 실시했거나 실시하고 있는 정당은 9개다. 벨기에 사회당, 키프로스 사회민주당, 덴마크 사회당, 프랑스 사회당(2011년까지), 아일랜드 노동당, 네덜란드 노동당, 포르투갈 사회당, 영국 노동당 등이다. 유럽에서 오픈프라이머리를 실시하는 정당은 현재 영국 보수당, 프랑스 사회당, 이탈리아 민주당, 그리스 범그리스사회주의운동당 4개 정당뿐이다. 유럽에서는 주로 진보 성향의 정당들이 프라이머리에 적극적인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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