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에서 산다고 하면 시쳇말로 ‘있어’ 보인다. 같은 영어를 써도 왠지 미국보다 절도 있게 들리고, 유럽에 쉽게 뭉뚱그려지지 않으려고 하는 고집도 매력적이다. 하지만 이런 감상은 그야말로 영국을 잘 모르고 하는 막연한 짐작일지 모른다. 오늘날 영국은 어떤 나라인가?
- 구체적으로 한국 사람이 지내기에 어떤가? 아이 둘 딸린 아줌마 유학생이 몸으로 부딪쳐 쓰는 한국인의 영국살이가 생생한 답을 알려줄 것이다.
외국에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꾸리는 일은 대개 이런 방식으로 전개된다. 집 구하기, 은행 계좌 열기, 자동차 구입하기, 아이들 학교 전학 수속하기, 전화와 인터넷 회선 깔기 등. 물론 그전에 그 나라에 입국하기 위해 비자를 받는 절차가 필요하다. 영국은 6개월 체류까지는 비자 없이 입국이 가능하지만, 6개월 이상 체류하기 위해서는 영국 홈 오피스에 속한 UK Border Agency로부터 비자를 받아야 한다. 출국하기 전, 비자 수속 단계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나는 2009년 초에 영국 글래스고 대학교 문화정책연구센터(Centre for Cultural Policy Research)로부터 박사 과정 입학 허가를 받았다. 영국 대학원의 석박사 과정은 미국보다 짧아서 원칙적으로 석사는 1년, 박사는 3년이 걸린다. 그래서 박사 과정 합격 서류와 함께 비자를 신청하면 UK Border Agency는 3년간 유효한 학생 비자를 내준다.
10년 전에도 나는 학생 비자로 영국에 입국했다. 당시 학생 비자를 받는 절차는 절차랄 것도 없을 정도로 간단했다. 우선 학교 측으로부터 ‘이 학생은 우리 학교로부터 풀 타임(Full time) 학생으로 입학 허가를 받았음’을 명시한 레터를 한 장 받는다. 그리고 영국 공항 입국 심사대에 이 비자 레터를 제시하면 여권에 비자 도장을 찍어준다. 이게 전부였다.
비자 받기까지 석 달 노심초사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학생 비자를 받는 절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복잡했다. 학교에서 받은 비자 레터, 재정보증서, 1년 생활비와 등록금에 해당하는 돈이 28일 이상 들어있는 통장(반드시 보통예금이나 정기예금이어야 하고, 적금이나 펀드, 보험 등은 인정하지 않는다), 재정보증인의 세금납부 증명, 공증 받은 가족관계 증명서, 경력 증명서, 인터넷에서 다운로드한 비자신청서 등 준비해야 할 서류가 백화점 쇼핑백 하나를 가득 채우고도 남았다.
그리고 아이들을 포함한 모든 비자 신청인들은 서울의 주한 영국대사관 비자센터에서 지문을 찍고 사진을 촬영해야 했다. 1인당 비자 심사비는 무려 33만원이다. 4인 가족이 비자를 신청하려면 서류와 함께 130만원을 현금으로 내야 하는 것이다. 결과가 바로 나오는 것도 아니다. 아시아 지역의 비자 심사는 필리핀 마닐라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모든 신청서류는 마닐라로 간다. 그 결과가 다시 마닐라에서 날아올 때까지 3주나 한 달 정도를 기다려야만 한다.
말이 한 달이지, 나와 우리 가족이 비자를 준비하고 받는 데 걸린 시간은 6월부터 8월까지 무려 3개월이었다. 그동안 들인 노력과 비용은 차치하고 주위에서 석연치 않은 이유로 비자를 받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아 계속 마음을 졸여야 했다. 내 딴에는 꽤나 어렵게 결심하고 실행한 유학인데 비자 문제로 유학을 못 갈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피가 마르는 것 같았다. 더 어이없는 건, 주한 영국대사관 비자센터에 있는 직원들이 서류를 접수하면서 하자를 발견해도 신청자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센터 직원들이 비자에 대해 신청자에게 가타부타 이야기하는 것이 아예 금지돼 있다. 그렇다고 미국 비자를 신청할 때처럼 영사와 인터뷰를 하는 것도 아니니 비자 신청자는 미심쩍은 부분이 있어도 그 점에 대해 설명할 기회조차 없다.
무더운 여름 내내 비자 서류를 준비하고 제출하고(사실 나 역시 아이들의 비자가 거절되어 다시 서류를 제출해야 했다) 거절당하고 다시 서류를 꾸미면서, 비행기를 타기도 전에 지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나는 무언가 달라진 기운을 감지했다. 지금 내가 상대하는 영국은 내가 알던 10년 전의 영국이 아니었다. 거칠게 말하자면, ‘돈 싸들고 온다고 해도 안 반가우니까 오지 말아줄래?’ 하는 기운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막상 비행기를 타고 영국에 내리면 좀 달라질까? 히드로 공항에서 장장 세 시간이나 입국심사에 시달리고, 다시 국내선을 탈 때는 가방에 든 아이들 젓가락까지 뺏기면서(쇠붙이라는 이유로) 어렵게 글래스고에 도착했다. 영국 이웃들은 10년 전에 그랬듯이, 아니 그전보다 더 상냥하고 친절했다. 글래스고는 인구 60만의 제법 큰 도시이지만, 런던이나 에든버러처럼 국제적인 분위기의 도시는 결코 아니다. 한마디로 글래스고는 스코틀랜드 사람들의 도시, 약간은 촌스럽고 지역적인 색깔이 강한 도시다. 자연히 외국인의 수도 적고 동양인은 더욱 찾기 어렵다. 그러다보니 글래스고 사람들은 외국인, 특히 동양인을 보면 ‘우와, 신기해!’ 하는 호기심과 함께 ‘우리 동네에 온 외국인이니까 내가 친절하게 해줘야지’ 하는 마음이 앞서는 것이다. 거리에서 지도를 펼쳐들고 있으면 어느새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옆으로 다가와 “어디를 찾나요? 내가 가르쳐줄게요” 하고 말을 건다.
친절한 영국인, 복잡한 절차
그러나 친절한 영국인 개개인과는 달리, 영국이라는 나라는 그리 친절하지 않았다. 은행계좌 개설하는 것부터 얘기해보자. 영국에서 살기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차도 집도 아닌 은행계좌다. 은행계좌가 없으면 전화회선을 신청할 수 없고 차를 살 수도 없으며, 설령 차를 샀다고 해도 자동차보험에 가입하기가 어렵다(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은행계좌가 없으면 모든 절차가 엄청나게 복잡해지고 돈이 많이 든다). 그래서 도착하는 즉시 은행계좌를 여는 방법부터 알아봐야 했다.
10년 전에는 어떠했더라? 그때는 역시나 간단했다. 한국에서 사온 파운드 여행자 수표를 들고 아무 은행에나 들어간다. “계좌를 새로 열고 싶은데요” 하고 여권과 수표를 보여주면 그 자리에서 바로 계좌를 열고 가져온 수표를 계좌에 예치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은행계좌를 열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입학할 학교가 ‘이 사람은 우리 학교의 학생임을 증명함’이라고 명시한 편지가 있어야 했다. 그런데 내가 학교에 정식으로 등록하기 전이라 등록 관련 서류를 찾는 데 2~3일이 걸렸다. 학교에 찾아간 지 1주일이 지나서야 예비 등록 절차가 끝났고, 은행에 낼 편지를 학교 사무국에 신청했다. 이 편지가 내 손에 쥐어지는 데 또 3일이 걸렸다. 마침내 편지를 손에 넣고 은행에 가 계좌를 열고 싶다고 하자 2주 후에 인터뷰를 해야 한다고 한다. 결국 영국에 도착하고 3주가 지나서야 비로소 은행계좌를 열 수 있었다.
그 3주 동안 나는 전화와 인터넷 회선을 신청할 수도 없었고, 차를 샀지만 자동차보험을 들지 못했다. 전화와 인터넷과 자동차보험이 없는 생활, 생각해보라. 그건 말로는 쉽지만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도시에 온 외국인으로선 정말이지 숨 막히는 생활이었다. 3주가 지나서 비로소 은행계좌를 열고, 인터넷을 신청하러 갔는데 신청한 지 21일이 지나야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아, 대체 이 기나긴 ‘영국 정착 프로세스’는 언제나 끝이 날까? 결국 자동차보험을 들기 위해 엄청 비싼 가격을 감수하며 은행계좌 없고 영국 면허도 없는 외국인을 받아주는 보험회사를 찾아가야 했으며 인터넷 회선은 도착한 지 두 달이 지나서야 비로소 개통됐다.
불법체류자에게 꿈의 땅
솔직히 이 모든 절차는 굉장히 놀랍고 의아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10년 전만 해도 영국은 ‘서로 믿는’ 분위기가 강했기 때문이다. 굳이 서류를 바리바리 싸들고 가지 않아도 설명만 잘하면 의심 없이 그 자리에서 비자를 내주고 은행계좌를 터주었으며 아이의 학교 입학을 허락해주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분위기를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아이의 학교 입학만 해도 그랬다. ‘아이와 부모의 여권, 비자, 가족관계 증명서, 출생증명서, 부모의 직장이나 학교 등 합법적 체류증명, 학교 근처 주소지에 거주한다는 증명서(집 계약서나 주민세 납부증명서 등)를 모두 원본으로 제출하며, 이 서류들과 함께 아이 본인이 부모와 함께 와야 전학수속을 시작할 수 있음.’ 집 근처 초등학교에서 받은 전학 서류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10년 전에는 비자 없이 입국한 아이들도 영국 공립학교에 전학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합법적인 비자와 체류 증명이 있어도 외국 아이들이 영국 학교로 쉽사리 전학할 수 없는 제도적인 장벽이 세워졌다.
무엇이 이런 상전벽해를 만들어낸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불법 체류. 지난 10년간 영국은 계속된 경기 호황으로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1997년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이 집권한 이래 경기는 한 번도 꺾이지 않고 계속 상승했고, 런던의 집값과 금융 중심지인 시티지구와 카나리 워프에서 일하는 금융인들의 몸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억대 연봉은 기본이고, 연말에 받는 세금을 물지 않는 보너스는 연봉의 몇 배나 됐다. 이렇게나 경기가 출렁이니, 유럽과 아시아의 불법체류자들이 영국으로 넘어오기 시작했다. 영국은 유럽에서 인건비가 가장 비싼 나라 중 하나이고, 특히 단순 노동에 대한 인건비가 다른 어떤 나라보다 높다. 이래저래 영국은 모든 불법체류자에게 ‘꿈의 땅’일 수밖에 없다.
동유럽과 중국 출신의 불법체류자들은 브로커들로부터 여권을 사서(위조여권의 가격은 우리 돈으로 4000만원을 호가한다) 상대적으로 입국 심사가 느슨한 기차역이나 항구 등으로 입국하거나 배의 짐칸, 심지어 기차 바닥에 매달려 목숨을 건 밀입국을 시도한다. 2000년에는 영국 남부 도버항에 도착한 화물선의 냉동창고에서 무려 58구의 중국인 시체가 쏟아져 나와 온 나라가 발칵 뒤집히기도 했다. 너무 많은 인원이 배 냉동창고에 타고 밀입국을 시도하다 질식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던 것이다.
영국 정부는 이 같은 불법체류자들의 존재를 알면서도 은근히 눈감아주는 경향이 있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이들 불법체류자들이 온갖 허드렛일을 맡아 하면서 사회 시스템이 돌아가는 측면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특히 런던에서는 호경기 바람을 타고 곳곳에서 대규모 건축 공사가 벌어졌는데, 이런 데서 막노동하는 일꾼들은 대개 불법체류자들이었다. 여성 불법체류자들도 일할 곳이 많았다. 영국 어디에나 차고 넘치는 양로원에서 노인을 수발하거나, 맞벌이 부부의 가정부 겸 보모로 일하면 되었다.
런던에서 20년째 살고 있는 친구 하나는 집을 고칠 때마다 중국에서 건너온 조선족 아주머니를 고용하곤 했다. “한번은 그 아주머니에게 어떻게 중국에서 영국까지 건너왔는지 물었어. 그랬더니 뭐라고 하는 줄 알아? 세상에, 중국에서 유럽까지 걸어왔다는 거야. 1년이 걸렸대.” 그 아주머니는 브로커로부터 위조여권을 구입하는 데 든 비용을 벌기 위해 영국에서 꼬박 2년간 일했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10년 이상 허드렛일을 하며 중국에 있는 아들딸을 대학원까지 공부시켰다.
경기침체 여파
영국 대영박물관을 방문한 필자 전원경 씨와 아들 희찬군, 딸 희원양.
지금 영국 정부는 낮아질 줄 모르는 실업률과 곤두박질치는 경기를 끌어올리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럼에도 ‘세계 경기 약세’라는 글로벌 위기를 극복하기에는 역부족인 듯싶다. 미국과 한국, 독일 등 거개의 나라들이 글로벌 경제위기를 벗어나는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유독 영국의 경기만은 하향세에서 헤어날 줄 모른다. 2009년 12월9일 하원에 출석한 알리스테어 달링 재무부총리는 현재 영국의 경제위기가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며, 정부의 재정 상태도 악화되어 있음을 솔직하게 시인했다. 2009년 영국의 경제성장률은 -4.75%다.
상황이 이렇게 나빠지자 화살은 영국에 차고 넘치는 불법체류자들에게로 향했다. 알고도 묵인해줄 때는 언제고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사실 영국인들을 기회주의자라고 욕할 문제는 아니다. 현재 영국에 불법체류자가 정확하게 몇 명이나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상상 이상으로 많다’는 것 말이다.
2009년 런던정경대학(LSE)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영국의 불법체류자는 최소 52만4000명에서 최대 94만7000명 규모다. 그 중간으로 어림잡아도 72만명의 불법체류자가 영국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2001년에 영국 내무부에서 조사한 불법체류자 규모는 43만명 선이었다. 8년 새에 30만명이나 늘어난 것이다. 가끔 BBC 뉴스에서는 한밤에 경찰이 런던 변두리의 집을 급습해 집안에 숨어있는 불법체류자들을 끌어내는 장면을 방송한다. 아이를 안은 젊은 엄마가 경찰의 손에 무지막지하게 끌려나오는 모습은 딱하기 이를 데 없다. 영국 정치인들 중에는 보리스 존슨 런던시장처럼 어차피 모든 불법체류자를 추방할 수 없는 만큼, 이들에게 합법적 체류의 기회를 주고 세금을 걷자는 주장을 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점점 매서워지는 경기 하강의 찬바람 속에서 이 같은 주장은 힘을 잃는 듯싶다.
외국인이 반갑지 않은 이유
외국인의 입국과 체류를 어렵게 하는 또 하나의 문제는 역시나 테러다. 영국인들은 2005년 7월7일 52명의 사망자를 낸 런던 도심 테러를 잊지 못한다. 런던이 2012년 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된 다음 날, 런던의 킹스 크로스 지하철역과 2층 버스 안 등 도심 네 군데서 동시다발적으로 폭탄이 터졌다. 이 사고로 출근길 시민 52명이 사망하고 수백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테러를 주도한 이들은 영국에서 합법적으로 체류하고 있던 파키스탄인들이었다. 이슬람 원리주의자인 이들 중에는 의사와 간호사 등 엘리트들도 있어서 영국 사회를 큰 충격에 빠뜨렸다. 파키스탄은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 영국의 식민지였고 지금도 영연방의 일원이다. 이러한 과거사 덕에 적지 않은 파키스탄인이 영국으로 이주해와 살고 있고, 파키스탄인의 영국 입국을 막을 뾰족한 방법도 없다. 이들 중에 알 카에다 조직의 일원이 있다 해도 무슨 수로 그들을 찾아내겠는가. 그러니 영국 입장에서는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셈이다. 과거의 죄과를 지금 받는 셈이라고나 할까.
|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영국은 외국인들이 영국에 살러 오는 게 결코 반갑지 않은 눈치다. 잠깐 와서 관광하고 가는 건 무방하지만, 비자까지 받아가며 오래 체류하지는 말았으면 싶은 것이다. 2012년 런던올림픽도 열어야 하는데, 그리고 미국의 눈치 때문에 아프가니스탄 파병도 중단할 수 없는 처지인데, 경기는 자꾸 꺾이기만 하고 실업률은 낮아질 줄을 모른다. 그러니 재집권의 기미가 요원한 노동당 정부는 때려도 반박할 기회조차 없는 외국인과 불법체류자들만 자꾸 들볶아대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한 여행 에세이에서 ‘나를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 아닌 곳’이 바로 타향이라고 했다. 하루키의 말이 이래저래 떠오르는 요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