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호

에티오피아서 열매 맺는 ‘KOICA 드림’

집 짓고 학교 세우고 피임시술까지…

  •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입력2013-03-21 10: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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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엔 6·25전쟁에 참전한 용사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있다.
    • 가슴에 태극기를 단 퇴역군인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 아프리카 최빈국 에티오피아는 KOICA가 지원사업에 가장 공을 들이는 나라.
    • KOICA 단원 60여 명이 에티오피아 곳곳에서 새마을운동과 교육·의료사업을 펼치고 있다.
    • 전통가옥에 창문 달아주기, 새집 짓기, 재봉틀 교육에서 피임시술까지 봉사의 종류도 다양하다.
    에티오피아서 열매 맺는 ‘KOICA 드림’
    에티오피아는 6·25전쟁 당시 아프리카 국가 중 유일하게 한국에 군대를 파견했다. 파병 군인은 6037명. 전체 파병국(16개국) 중 4번째로 많은 병력이었다. 그들은 최정예 황실 근위대 출신으로 당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춘천, 인제, 가평 등지에서 맹활약했다. 파병 군인 중 122명이 전사했고 536명이 부상했다.

    그러나 6·25 참전용사들과 그들의 후손은 오랫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다. 1974년 이 나라에 들어선 사회주의 정권은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핍박했다. 살해당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1991년 멜레스 민주정부가 집권할 때까지 참전용사들은 거의 숨어 살아야 했고 그 탓에 극빈층으로 전락했다. 참전용사협회에 따르면 참전용사 중 생존해 있는 사람은 340명 정도다.

    국제원조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는 1990년대 초반부터 ‘은인(恩人)의 나라’ 에티오피아를 지원했다. 원조 규모는 2005년 229만 달러에서 2012년 716만 달러로 늘었다. 식수원 개발, 초등학교 건립, 가족계획사업에 이르기까지 원조 범위도 계속 확대됐다. 2011년 7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에티오피아를 방문하면서 양국 관계는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이 대통령은 에티오피아에 이틀을 머물며 자원봉사활동에 동참해 화제가 됐다. 두 나라 사이가 더욱 끈끈해진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지난해 KOICA는 총 900만 달러를 들여 참전용사 후손들에 대한 직업교육을 시작했다. 이 대통령 방문 당시 멜레스 에티오피아 총리와 약속한 사업이었다. 처음 선발된 60명은 현재 한국에서 8개월 일정의 직업교육을 받고 있다. 이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미티쿠 베레차 훈데 에티오피아 교육부 대외협력국장은 “참전용사 후손들의 관심이 아주 높다. 지금은 주로 용접·배관, 자동차, 전기·전자 관련 교육을 받고 있는데, 앞으로 철도 및 도로 건설, 사탕수수 재배, 봉제 등으로 교육 범위가 넓어지기를 기대한다. 이들은 훗날 에티오피아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말라세 타마 한국전쟁 참전용사협회장은 “한국이 60년 전의 일을 잊지 않고 에티오피아를 돕고 있는 데 대해 감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와 에티오피아의 돈독한 관계는 지난해 8월 멜레스 총리가 갑자기 사망했을 때 잘 드러났다. 이 전 대통령이 보낸 애도문이 장례식 다음 날 에티오피아의 여러 일간지에 대서특필되면서 한동안 외교가의 화제가 됐다. 김종근 주(駐)에티오피아 대사는 “에티오피아 정부 관료들도 많이 놀랐다. 양국 관계를 제대로 보여준 사례였다”고 말했다.



    KOICA의 에티오피아 봉사활동을 취재하기 위해 기자가 찾아간 곳은 수도 아디스아바바의 남동쪽에 있는 시골 마을 한도데와 데베소였다. 수도에서 차로 2시간 남짓한 거리에 있는 에티오피아 제2의 도시 나자렛을 지나서도 1시간 이상을 더 달려야 닿을 수 있는 곳. 목적지를 향해 가는 동안 창밖으로는 흙빛 세상이 끝도 없이 펼쳐졌다.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막, 여기저기서 피어난 먼지바람만이 건조한 벌판을 휘젓고 있었다. 이런 곳에 사람이 산다는 게 믿기지 않는 풍경이었다.

    한도데, 데베소 마을은 전기와 수도시설조차 없는 곳이다. KOICA 관계자는 “에티오피아에서도 오지 중 오지로 꼽히는 곳”이라고 귀띔했다. 현재 KOICA 단원 10여 명이 1~2년 일정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마을 주민과 함께 생활하며 새마을운동을 벌이고, 초등학교와 보건센터에서 학생과 주민들에게 교육·계몽활동을 하고 있다.

    “이렇게 봉사하는 나라는 한국뿐”

    기자가 이곳을 찾은 날에도 도로와 수로 정비 사업, 저수지 개발 사업이 한창이었다. 30도를 훌쩍 뛰어넘는 뙤약볕이 작열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한 주민은 “이런 곳까지 찾아와 봉사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 한국밖에 없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포스코에서 38년간 근무하고 퇴직한 뒤 이곳에 왔다는 데베소 봉사단 심만조(58) 팀장은 “KOICA의 시니어봉사단 프로그램 덕분에 이런 곳에서 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평생 기억에 남을 일이다. 오는 8월 귀국할 때까지 약 350가구가 거주하는 데베소 마을의 도로를 깔끔하게 정비하는 게 목표다. 지금까지 3km 정도를 정비했고 이제 막바지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에티오피아서 열매 맺는 ‘KOICA 드림’

    오로미아주 아르시존 아둘랄라 마을에서 상수도 공사를 하고 있는 KOICA 단원들.

    에티오피아의 전통가옥은 흙으로 만든 둥근 움막 형태다. 그 안에서 사람과 가축이 뒤엉켜 산다. 창문 하나 없는 움막 안에 불을 피워 음식도 만들고 아기를 낳아 키운다. 연기가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온종일 움막 안에 가득 차 있다. 외지인들은 움막 안에서 1분도 채 못 견딘다.

    움막에서 가축과 공동생활을 하는 것은 하이에나 같은 야생동물로부터 염소와 닭을 지키기 위해서다. 창문을 내지 않은 건 보온 때문이라고 했다. 에티오피아는 적도 인근에 위치해 있지만 해발 3000m 가까운 고산지대가 대부분이라 특히 밤에는 기온이 무척 낮다. 우기가 되면 일교차가 크게 벌어져 밤 기온이 10도 이하로 떨어지므로 보온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KOICA 봉사단은 3년 전 처음 이 지역에 들어왔을 때부터 생활환경 개선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어린이들을 위해서라도 최소한 움막 안의 연기만큼은 없애야 한다고 판단했다. KOICA 단원들은 움막에 유리 창문을 만들고 연통을 설치하거나 화덕을 만들었다. 주민들에게 생활환경 개선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3년이 지난 지금도 생활환경 개선은 여전히 이 지역 KOICA 봉사단의 주요 사업 중 하나다.

    “KOICA의 가장 큰 선물은 희망”

    이와 더불어 KOICA는 주민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사업도 벌이고 있다. 이미 50채가 넘는 신식 가옥이 전통 움막들 사이에 여기저기 들어섰다. 또 마을 주민들과 함께 화덕을 만들어 시장에 파는 수익사업을 벌여 큰 성과를 올리고 있다.

    에티오피아에서 활동하는 KOICA 봉사단이 역점을 두는 또 다른 사업은 물 관리다. 에티오피아는 물 부족 국가가 아니지만, 건기와 우기로 나뉜 기후 탓에 늘 물 때문에 고통을 받아왔다. 1년 중 절반이 넘는 건기에는 아예 농사를 포기할 정도. 그래서 KOICA 단원들은 가는 곳마다 저수지를 파는 등 물 관리 사업에 정성을 쏟고 있다.

    한도데 새마을 사업지에서도 KOICA 단원과 주민들이 대형 저수지를 만드느라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인근의 아둘랄라 마을에서도 KOICA 단원들이 약 8000만 원을 들여 상수도 사업을 벌이고 있다. 6km쯤 떨어진 상수원까지 파이프를 연결하는 사업이었다. 이미 2만L짜리 물탱크와 공동수도를 설치했다. 이 지역 봉사단 정연화(64) 팀장은 “상수도시설을 만들기 전에는 주민들이 매일 3km가량 떨어진 곳에서 물을 길어다 썼다. 생활환경 개선은커녕 식수 문제를 해결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물길이 연결되면 생활환경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데베소 마을 봉사팀은 집집마다 작은 저수지를 만드는 사업에 한창이다. 건기에 텃밭이라도 가꿔 식생활을 해결하자는 취지다. 데베소 새마을 사업지의 심만조 팀장은 “우기에 내린 비를 모아 건기에 쓸 수 있도록 각각 72t 가량의 물을 가둘 수 있는 저수지 10개를 만들었다. 이제 건기에도 간단한 농사가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KOICA는 봉사지역마다 5인 1조 조직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시니어봉사단원이 주로 팀장을 맡는다. 단원들이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태극기와 새마을운동 깃발이 펄럭인다. 새마을운동중앙회 경영관리실장 출신으로, 한도데 마을 새마을 사업지에서 팀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윤성 팀장(61)은 “평생을 새마을운동과 함께 살았다. 1960~70년대 우리가 했던 새마을 사업을 이곳에서 똑같이 재현하면서 큰 보람을 느낀다. 환경개선, 의식개혁, 소득증대 사업이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 옛날 생각이 많이 난다”며 환하게 웃었다.

    에티오피아서 열매 맺는 ‘KOICA 드림’

    아르시존 이따야 지역에 들어선 64kw규모의 태양광 시설.

    KOICA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지역에 태양광 발전시설을 설치해 전기를 생산하는 사업도 벌이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오로미아 주 아르시존의 이따야 지역. 이곳에 있는 마가리사 케일 케베 초등학교에는 64kW 규모의 태양광 발전시설이 들어섰다. 여기에서 생산된 전기를 인근 250여 가구가 사용한다. 태양광 발전시설에 마련된 충전지를 가정으로 가져가 불을 밝히는 식이다. 이 지역 기술직업훈련원 타파 하이루 교장은 “전기를 쓸 수 있게 되면서 마을에 활기가 넘치고 있다. 아이들이 공부를 할 수 있게 된 것만 해도 큰 변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는 사실이다. KOICA가 준 가장 큰 선물은 전기가 아니라 희망이다”라고 말했다. 이 사업에는 국내 한 대기업이 참여했다.

    의료사업과 교육사업

    KOICA는 보건의료 사업에도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오로미아 주 아르시존의 공중보건센터가 그 사례다. 2010년 설립된 이 기관은 KOICA와 연세대 간호학과가 함께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주로 보건의료 인력을 교육하고 주민들에게 피임법을 알려주거나 직접 시술하는 등의 사업을 하고 있다. 운영 3년째에 접어들면서 이제는 오로미아 주를 대표하는 의료시설로 부상할 만큼 규모와 영향력이 커졌다. 에티오피아의 많은 의료 인력이 이곳을 찾아 교육을 받고 있다. 공중보건센터에서 2년째 파견 근무 중인 연세대 간호학과 이새롬 연구원은 이렇게 말한다.

    “지역주민들에게 출산에 필요한 장비를 담은 안전분만 키트를 나눠주는 사업 등을 펴고 있는데, 산모와 유아 사망률을 크게 낮추는 효과가 있다. 피임시술도 호응을 얻고 있다. 남성 중심적인 이슬람 문화권이라 피임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가 쉽지 않지만, 출산율을 낮춰 경제적 안정을 찾게 하는 것이 주민들에게 절실하다고 판단해 꾸준히 노력해왔다. 공중보건센터는 이제 1~2년 후에는 오로미아 주에 경영권을 넘겨도 될 만큼 자리를 잡았다.”

    공중보건센터는 재봉틀반, 태권도반, 요리반 등을 운영해 주민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소득 증대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아디스아바바에 있는 공립 리스데스타 병원이나 아디스아바바의 북쪽 메켈레 지역에는 한국 의사 여러 명이 군 복무를 대체한 협력의사 등으로 파견돼 일하고 있다. 이들은 한국의 수준 높은 의료기술을 전수하는 일도 수행해 호응을 얻고 있다.

    초등학교 등 교육기관에 대한 지원도 주목할 만하다. 아디스아바바 한국전쟁 참전용사촌에 있는 히브렛 피레 초등학교가 대표적인 경우다. 이 학교에선 100명 정도의 교사와 교직원, 1100명이 넘는 학생이 생활하고 있다. KOICA는 2005년경부터 80만 달러 이상을 들여 교사를 신축하고 매년 교사를 파견했다. 수학교사로 파견돼 있는 이지화 단원은 “유치원, 카페테리아, 놀이터, 시청각실, 컴퓨터실 등 비교적 시설이 잘 갖춰진 학교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한도데, 데베소 마을과 가까운 아르시존 이따야 초등학교 등에도 KOICA 단원이 다수 파견돼 있다.

    KOICA의 에티오피아 지원사업은 규모와 범위가 계속 확대될 전망이다. ‘KOICA 에티오피아’의 신혜영 부소장은 “에티오피아는 KOICA 아프리카 사업의 거점지역이다. 이곳에서의 성공이 아프리카 전역으로 확산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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