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홍죽리 미추산방 앞에는 수령 500년이 넘은 느티나무가 서 있다. 극단 미추 손진책(孫桭策 · 60) 대표가 1992년 이곳을 찾아왔을 때 느티나무를 보고 욕심이 생겨 터를 잡았다. 미추산방 사람들은 매해 고사를 지내며 막걸리 열다섯 말을 느티나무에 붓는다. 500년의 갈증을 채우자면 막걸리를 많이 부어야 하는 모양이다. 느티나무 앞에는 하회별신굿탈놀이 이수자이자 장승쟁이 김종흥씨가 깎은 장승들이 도열해 손을 맞는다.
미추산방 건물 1층은 극장, 2층은 사무실과 배우들의 기숙사 및 식당으로 쓰고 3층은 손 대표와 배우 김성녀(金星女·57) 부부의 살림집이다. 야외극장과 연극학교 건물이 창고처럼 딸려 있다. 단원들이 상추, 가지, 오이, 고추를 심는 채마밭은 아직 철이 일러 비어 있었다. 극단 미추의 단원들은 공동체 생활을 한다. 그래서 연기와 무용의 앙상블이 잘된다고 손 대표는 자랑했다.
2층 손 대표 집무실에는 한쪽 벽면을 연극, 연희(演戱), 역사 서적이 가득 채우고 있다. 다른 쪽 벽면에는 극단 미추의 공연 포스터들이 붙어 있다. 책과 연극 대본 사이마다 작은 불상이 수십개 놓여 있다.
손 대표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벽속의 요정’ 공연을 마치고 뉴욕에 들렀다가 이날 새벽 4시경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손 대표가 따라주는 녹차를 마시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연극은 가장 오래갈 예술”
▼ 교포 관객의 반응이 어땠습니까.
“생각보다 좋았어요. 두 차례 공연에서 1200석이 거의 매진됐습니다. 교포 사회에서 연극 공연치곤 보기 드물게 관객이 다 찼다고 말하더군요.”
▼ 흑자 공연이었습니까.
“배우와 연출, 스태프까지 16명이 갔습니다. 티켓 판매만으로 비용을 충당하기는 어려워요. 티켓 한 장당 50~70달러 받는데, 그중에는 초대권도 있고…. LA KBS에서 방송협찬 지원을 받고 독지가 몇이 도와줬습니다. 후원자 중 한 군데에서 펑크가 나 초청자가 적자를 냈을 겁니다. 그렇지만 교포들의 칭찬이 자자해 보람을 느낀다고 메일이 왔더군요.”
‘벽속의 요정’은 김성녀씨가 1인 30역을 하는 모노드라마. 김성녀의 가창(歌唱)과 연기의 진수를 드러내는 연극이다. 그녀는 국내에서 120회 공연을 하며 동아 연극상 등 주요한 상을 휩쓸었다. 전쟁과 이데올로기가 몰고 온 고통과 가족애를 그린 이 모노드라마는 연극을 보는 재미와 연극을 통한 삶의 재인식을 동시에 충족시킨다. 필자는 지난해 7월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의 공연을 담은 DVD로 ‘벽속의 요정’을 보면서 몇 번씩 배를 움켜쥐고 웃었고, 더러는 눈가가 촉촉해지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