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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나의 神, 참나무 많아야 참사람 많아져”

40년간 토종나무 풀 기르는 기청산식물원 이삼우 원장

“나무가 나의 神, 참나무 많아야 참사람 많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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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무를 신으로 모시고 2만5000평의 땅에 40년 넘게 토종나무와 풀을 길러온 포항 기청산식물원 이삼우 원장은 지상 유토피아를 만들었다.
  • 그곳에서 산천초목에 대한 사랑이 가슴속에 들끓는 신선처럼 산다.
  • 도시인의 삶에서 자연이 사라지는 생태맹(生態盲) 현상을 우려하면서….
“나무가 나의 神, 참나무 많아야 참사람 많아져”
경북 포항시 청하면에 가서 희한한 어른을 만나고 돌아왔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우물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라고 어린왕자가 말했던가. 세상이 암만 망가져도 여태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것은 곳곳에 이런 보배 같은 사람들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나무를 심어 숲을 가꾸고 그 숲 속에서 평생을 살아온 이는 낯빛이 선사처럼 맑다. 기청산(箕靑山)식물원의 이삼우(李森友·70) 원장은 2만5000평의 땅에 40년 넘게 토종나무와 풀을 심어 길러온 사람이다.

우리 토양과 성정에 맞는 나무와 풀들이 사라지고 속성으로 자라는 외래종들이 온통 범람하는 것이 이 땅의 현실이다. 그리고 웬만한 사람들은 그걸 제대로 알지조차 못한다. 그동안 우리는 오직 잘사는 것만이 시급했다. 돈만 된다면 까짓 나무와 풀쯤이야 아무래도 좋았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나무와 꽃과 풀은 그저 거기 있는 듯하지만 실은 우리 정서와 기질을 암암리에 지배한다. 뿌리가 얕고 우듬지만 큰 나무는 대수롭지 않은 바람에도 휙휙 넘어간다. 수명이 100년이 채 안 되는 나무는 인간에게 하늘의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한다. 노거수(老巨樹·오래되고 큰 나무)가 서 있는 마을이라야 큰 인물이 태어난다. 뿌리 얕은 나무를 보고 자란 이가 심지가 굳기를 바라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 어려운 일이다. 나무에 관한 이런 언설들을 나 또한 모르지 않았다. 믿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러면서 평생 나무 한 그루 심지 않고 살아왔다. 시간 나면 산에 올라 거기 공으로 자라는 놈들을 목마르게 껴안기나 했을 뿐.

그런데 이 원장은 우리 죄를 대속하듯 멸종돼가는 토종나무와 풀의 씨앗으로 낙원을 만들어낸 분이다. 모두 몇 그루냐 물으니 그루 수는 세어보지 않아 알 수도 없단다. 종류만 따진다면 나무와 풀이 각각 1000종이다. 이 중 9할이 순 토종이다.

멸종 위기 식물 41종 길러



기청산식물원을 천천히 걷는다. 멸종위기 식물이 41종이나 있어 환경부는 6년 전 이곳을 희귀멸종위기 식물 보전기관으로 지정했다.

“환경부는 수지 맞은 거요. 이걸 나랏돈 들여서 키우려고 했어봐. 그 인력과 비용이 도대체 얼마겠소?”

선사 같은 낯빛이지만 일단 입을 열면 유쾌하고 진지하고 신랄한 담론이 줄줄 흘러나온다. 볕은 맑고 바람은 청결하고 대기는 달고! 기청산은 과연 낙원이었다. 겨울에 식물원엘 가서 볼 게 뭐 있으랴 싶던 내 예상은 완전히 뒤집혔다. 키 큰 나무들은 수형이 그대로 드러나 늠름했고 키 작은 관목들은 그들대로 잔가지들의 조형이 놀랍도록 섬세했다. 대나무 밭은 청청하게 푸르렀고 멀구슬나무의 노란 열매를 쪼아 먹으려고 직박구리들이 온통 몰려와 재깔거렸다. 낙엽 위 군데군데 산비둘기의 잿빛 털이 잔뜩 뽑혀 있어 사투의 흔적을 짐작게 했다.

“새매의 짓이라오. 맹금류가 깃들인다는 건 여기 건강한 생태계가 유지되고 있다는 의미지.”

참느릅나무, 감태나무, 꽝꽝나무, ‘연아소나무’, 보리수, 참나무, 월계수, 풍향수 밑동을 쓰다듬고 안아보며 지나간다. 나무마다 이야기가 넘쳐난다. 이 원장이 죽 뻗은 참느릅나무를 올려다보며 “날더러 하나를 고르라면 이 나무처럼 되고 싶어”라고 고백처럼 말했다. “왜요?”라고 내가 얼른 그 말을 낚아채자 “뿌리가 깊잖소?”한다. 대답은 간결하나 곁에선 참느릅나무의 훤칠한 기품과 균형 잡힌 수형과 정다운 수피가 이미 충분한 설명을 해준다.

또 감태나무 아래선 가로수로 심기에 최적인 토종나무라 조경수 개발운동까지 벌였지만 다들 외면하다가 그럭저럭 헐값에 팔고나면 그제야 불이 붙더라는 울분이 터지고, 꽝꽝나무 앞에선 불에 넣으면 소리가 꽝꽝거려 붙여진 이름이라는 명칭고(考)가 나왔으며, 아이스 스케이터 김연아 선수가 얼음판에서 허리를 뒤로 휘는 형태로 서 있는 ‘연아송’ 앞에선 우리 젊은이의 역량과 가능성에 흥분했다. 보리수 앞에선 ‘인도의 보리수는 깨달음의 보리(菩)인데 토종 보리수는 씨앗이 보리(麥)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며 염주를 만드는 구주피나무도 곧잘 보리수로 혼용하고 있다’는 혼란도 짚어냈다.

“사실은 가곡 ‘보리수’는 ‘성문 앞 샘물 곁에 서 있는 구주피나무’라고 불러야 해.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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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 칼럼니스트 psyche3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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