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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을 모르는 욕망의 무한 질주

보바리 부인 vs 채털리 부인

‘만족’을 모르는 욕망의 무한 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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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녀는 행복하지 않았고,
  • 한 번도 행복해본 적이 없었다.
  • 인생에 대한 이런 아쉬움은
  •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 의지하는 모든 것이
  • 한순간에 썩어 무너지고 마는 것은
  • 대체 무슨 까닭일까?
  • - 귀스타브 플로베르, ‘보바리 부인’ 중에서
1 파격 혹은 외설로 불렸던 욕망

‘만족’을 모르는 욕망의 무한 질주

권태로운 일상을 벗어나 일탈을 꿈꾸는 여인 엠마 보바리의 삶과 죽음을 그린 영화 ‘보바리 부인’의 한 장면.

역사적 사건의 주인공이나 위대한 영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엿한 ‘이즘’의 주인공이 되는 존재들이 있다. 보바리 부인도 그중 하나다. 보바리즘(bovarysme)은 자기 자신이나 자신이 처한 현실을 다른 존재, 다른 현실로 착각하는 자기 환상, 상상 과잉의 증세를 일컫는다.

‘보바리 부인’의 주인공 엠마 보바리는 언뜻 보면 백치미로 가득하다. 끊임없이 외부 상황을 착각하고, 쉴 새 없이 이성적인 판단력을 상실한다. 그럼에도 그녀가 유혹적인 것은, 모든 실패와 결점에도 불구하고 인간 욕망의 극단 또는 원형을 보여준 기념비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채털리 부인의 사랑’의 채털리 부인은 보바리의 ‘보이지 않는 커플’로서 서로 분신 같은 존재로 기억되곤 한다. ‘보바리 부인’의 엠마 보바리가 평범한 시골의사의 부인으로서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어린 시절 읽은 로맨스 소설의 주인공 같은 허황된 낭만을 추구하는 반면, ‘채털리 부인의 사랑’의 콘스탄스 채털리는 전쟁 중 하반신 불수가 된 남편을 헌신적으로 돌보지만 자기 안의 잃어버린 여성성과 모성을 찾기 위해 분투하는 좀 더 현실적인 캐릭터다. 엠마가 그 어떤 남자에게서도 진정한 만족을 얻지 못하는 반면, 콘스탄스는 산지기 멜러스를 통해 진정한 사랑의 육체성에 눈뜨게 된다.

서구문학에서 여성의 욕망을 파격적으로 드러낸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기억되는 ‘보바리 부인’과 ‘채털리 부인의 사랑’. 두 작품은 때로는 ‘파격의 대명사’로, 때로는 예술작품의 외설 시비의 기원으로, 때로는 인간 욕망의 지형도를 보여주는 진정한 걸작으로 오랫동안 호출돼왔다.



어떤 윤리적 죄책감도 없이 사랑을 향한 욕망에만 충실한 남성적 욕망의 극단에 ‘돈 주앙’이 있다면, 현실의 자아는 자기 자신이 아니며 진정한 자아는 로맨스 소설에 나오는 자유분방한 여주인공들 속에 있다고 생각하는 보바리는 여성적 욕망의 극단에 자리 잡는다. ‘현실의 나’를 부정하고 ‘책 속의 나’를 진정한 자아로 긍정한다는 점에서 보바리는 돈키호테를 닮은 인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보바리의 분신처럼 다루어져왔던 콘스탄스 채털리는 사실 조금 다른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영주의 아내와 그의 산지기라는, 당시로서는 매우 충격적인 이 커플의 사랑 뒤에는 ‘영주’라는 거대한 장애물이 버티고 있다. 콘스탄스의 남편 플리포드는 작가 로렌스가 극복하고자 하는 서구적 근대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는 전쟁의 상처로 인한 성적 불능으로 육체적 성을 부정하는 인물이 되어버린다. 그의 모든 관심은 석탄 광산의 생산성과 수익성을 높이는 데 쏠려 있다. 그는 경제적 효율과 생산성에만 집중하느라 아내의 정신적·육체적 결핍을 돌보지 않는다. 그는 ‘소유’에 대한 본능으로 점철된 인물이며 ‘향유’나 ‘축제’와 같은 ‘비이성적’ 욕망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감하다.

채털리 부인은 남편의 숨막히는 합리적 계산성의 세계에 갇힌 포로였지만, 자연 속에서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산지기의 야성적 매력에 이끌린다. 그녀는 화려한 언어가 아니라 따스한 육체로 다가오는 멜러스를 통해, 남성에게 육체적으로 정복당하는 관계를 넘어, 자신의 육체가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인지, 자신의 삶이 성과 사랑으로 인해 얼마나 눈부시게 빛날 수 있는지를 실험한다. 엠마 보바리의 성적 모험이 자살이라는 파국으로 끝나는 반면, 콘스탄스 채털리의 성적 모험은 단지 ‘성욕’의 이상적 실현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 친밀감과 잃어버린 낙원의 회복을 향해 나아간다.

그는 콘스탄스에게서 등을 돌리고 마음속의 욕망과 싸우고 있었다. … 그의 가슴은 그녀에 대한 연민으로 뭉클해졌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갑자기 그녀 앞에 무릎을 꿇었고, 가슴속의 불꽃은 갑작스럽게 더 세게 타오르고 있었다. … 그는 그녀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조용히 등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 없이 … 그녀의 허리 있는 곳까지. 그리고 그곳에서 더욱더 부드러운 손길로 그녀의 둔부를 애무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맹목적이고, 본능적인 애무였다. 조용하고 무표정한 목소리로 “집으로 들어가요”라고 말하는 … 그의 창백한 얼굴에는 아무 표정도 없었다. 그것은 운명에 그저 순응하는 인간의 표정이었다.

- D.H. 로렌스, ‘채털리 부인의 사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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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문학평론가 suburb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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