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의 감독 생활 동안 11번 우승, 해마다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미국 프로농구(NBA) 플레이오프 진출, 통산 승률 7할, 플레이오프 승률은 6할8푼8리로 사상 최고, 역대 최단기간 1000승 돌파, 정규리그에서 단 한 번도 승률이 5할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음….
과연 사람의 힘으로 가능한 성적일까. 하지만 이 기록은 모두 한 사람의 손에서 만들어졌다. 주인공은 최근 은퇴를 발표한 필 잭슨 LA 레이커스 감독이다. 미국 프로농구(NBA)의 전설로 불리는 그는 양 손가락에 다 낄 수도 없는 무려 11개의 우승 반지를 보유해 NBA 최다 우승 감독이란 타이틀을 지니고 있다.
1989년부터 감독직을 수행해온 잭슨 감독은 시카고 불스 사령탑 시절 특유의 ‘트라이앵글 오펜스(삼각 공격)’ 전술을 통해 6번이나 챔피언(1991~93년, 1996~98년) 자리에 올랐다. LA 레이커스로 팀을 옮긴 후에도 5개의 우승 반지(2000~02년, 2009~10년)를 수집했다.
NBA 역사에서 한 팀이 3시즌 이상을 연속 우승한 사례는 총 5번이다. 이중 절반이 넘는 3번을 잭슨이 만들어냈다. 하지만 보스턴 셀틱스와 미네소타 레이커스가 이룬 3연패는 NBA 전체 팀이 10팀이 안 되던 시절에 달성한 것이다. 즉 지금처럼 NBA 소속 팀이 20개 이상으로 늘어난 1960년대 이후 한 팀이 3연속 이상 우승한 사례는 잭슨 휘하의 시카고 불스와 LA 레이커스뿐이다. 그의 진가를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잭슨 감독의 이런 업적을 자신의 능력만으로 올린 성과가 아니라고 폄하한다. 실제 그는 시카고 불스 감독 시절 ‘농구 황제’마이클 조던을 포함해 스코티 피펜, 데니스 로드맨, 호레이스 그랜트 등의 슈퍼스타와 함께 했다. LA 레이커스에서도 코비 브라이언트, 샤킬 오닐 등을 선수로 두고 있었다. 잭슨 감독의 전매특허 작전으로 알려진 ‘트라이앵글 오펜스’ 역시 오랜 파트너였던 텍스 윈터 코치의 아이디어였다.
하지만 그가 단순히 좋은 선수와 강력한 전술만으로 11회의 우승을 차지한 건 아니다. 슈퍼스타와 함께 했음에도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한 감독이 한둘이 아닌 게 현실이다. 잭슨이 가진 강력한 무기는 뛰어난 용병술이었다. 마이클 조던, 코비 브라이언트, 스코티 피펜, 데니스 로드맨, 샤킬 오닐 등 과거 잭슨 감독이 지도했던 선수들은 실력이 뛰어났지만 그만큼 강한 개성과 자존심을 지닌 선수들이었다. 감독이 통제하기 힘들었고 성깔도 만만치 않았다. 잭슨 감독은 이 콧대 높은 스타들에게 신기에 가까운 용병술을 발휘해 11번이나 NBA의 정상에 올라섰다.
심리전에 능해 ‘젠 마스터(Zen master, 禪師)’로도 불렸던 잭슨 감독은 선(禪)과 같은 동양사상에 심취했다. 그는 선수들에게 운동 외에 요가·명상·독서를 권유해 팀워크의 중요성을 각인시켰다. 즉 잭슨의 농구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전략과 전술이 아닌 심리다. 선수들의 심리와 성격 파악에 뛰어나고 그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선수들을 지도해 경기력을 최상으로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잭슨을 거친 수많은 스타 선수 중 유독 그와 많이 다퉜던 코비 브라이언트도 “잭슨 감독이 다른 감독과 다른 점은 용병술이다. 그가 있어 우리가 하나로 뭉칠 수 있었다”고 칭찬한 바 있다.
필 잭슨은 누구인가
필 잭슨은 1945년 9월17일 미국에서 가장 조용하고 한적한 곳인 몬태나 주의 디어로지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순복음 신앙에 심취한 사람들이었다. 잭슨의 부모는 잭슨과 다른 3명의 자녀를 종교적 규율에 따라 엄격하게 길렀다. TV 시청이나 춤추기 등은 전혀 허용되지 않았고 주말에는 반드시 교회에 가야 했다. 잭슨은 고등학생 때 처음 영화를 볼 수 있었고, 대학에 가서야 춤을 출 수 있었다. 어릴 적 그의 꿈 역시 목사였다.
잭슨이 농구를 처음 접한 건 고등학교 때였다. 몬태나 주와 인접한 노스다코타 주의 윌리스턴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그는 농구, 축구, 야구, 육상 등 다양한 스포츠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무엇보다 2m가 넘는 신장이 뒷받침이 됐다.
잭슨은 고등학교 시절 학교를 방문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스카우터 빌 피치의 눈에 띄어 본격적인 농구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빌 피치는 노스다코다 주립대 감독에게 잭슨을 유망주라고 추천했고, 덕분에 잭슨은 쉽게 대학에 입학해 심리학, 종교학, 철학을 전공했다. 그때만 해도 그는 ‘언젠가는 목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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