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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

일구이무(一球二無) 정신으로 평생을 야구에 바친 ‘야구의 신’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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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일교포 2세로 태어났다. 일본에서는 ‘조센징’으로, 한국에서는 ‘반(半)쪽발이’로 무시당했다.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이방인 야구인이 믿을 건 오직 실력뿐이었다. 실력을 갖추려면 이를 악물고 남보다 더 노력해야 했고, 야구에 자신의 인생을 걸어야만 했다. 덕분에 한국시리즈에서 세 번 우승하고 두 번 준우승했지만 '한 발만 물러나면 절벽으로 추락한다'는 그의 비장함과 절박감은 언제나 다른 이들과의 불화를 낳았다. 그래서 압도적인 성적을 거뒀음에도 열두 차례나 해고를 당했다. 하지만 일흔 살의 노(老)감독은 아직도 현역 야구인으로 활동하며 새로운 변화를 꿈꾸고 있다. 바로 ‘야신(野神·야구의 신)’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이다.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
“한번 던진 공은 다시 불러들일 수 없다. 타자가 치는 공 하나에도, 수비수가 잡는 공 하나에도 ‘다시’란 없다. 투수의 손에서 공이 떠나는 순간 ‘작은 세상’ 하나가 창조되기 때문이다.”

직경 7㎝가량에 불과한 조그마한 야구공을 두고 이렇게 비장하고 엄숙한 말을 내뱉는 사람이 있다. 칠십 평생을 ‘야구가 곧 내 인생이자 삶 그 자체’라는 태도로 살아온 김성근(70) 고양 원더스 감독이다.

SK 와이번스에서만 한국시리즈 3회 우승, 1회 준우승을 일궈내 SK 와이번스를 2000년대 후반 한국 야구 최강팀으로 만든 김 감독이지만 그는 언제나 격렬한 찬반논란을 몰고 다니는 논쟁적인 지도자다. 20대까지 일본에서 나고 자란 김 감독은 1960년대 초 한국으로 건너와 한국 야구 발전에 투신했다. 한화와 롯데를 제외한 거의 모든 구단과 인연을 맺고 수많은 제자를 길러내며 ‘빈약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다. 하지만 언제나 야구만을 생각하고 타협을 모르는 그의 강인한 성격은 많은 불협화음도 냈다. 2007년 SK 와이번스에서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기 전까지 그는 한국 야구계에서 철저히 비주류였다.

그럼에도 김 감독의 지지자들은 그를 ‘인천 예수’라 부른다. SK 와이번스와 인천 야구의 구세주라는 극존칭 표현이다. 감독으로서의 능력, 야구에 대한 깊이와 철학에 관해서도 그를 능가할 사람이 없다는 게 야구계의 중론이다. 실제로 그는 프로야구 통산 1234승 57무 1036패의 성적을 기록해 김응룡 전 삼성 라이온스 감독의 1436승 65무 1125패에 이어 역대 전적 2위다. 게다가 그는 여전히 현역이다. 비판론자들은 그가 승리만을 목표로 삼고, ‘감독의, 감독에 의한, 감독을 위한 야구’를 시행해 야구의 재미를 반감시켰다고 주장한다. 직설적인 화법으로도 유명한 김 감독이 입을 한 번 열 때마다 야구계가 들썩이고 일부 야구팬은 얼굴을 찡그린다. 이처럼 그의 야구는 아직도 베일에 싸여 있고 찬반론자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관점과 선입관에 따라 편의적으로 그를 해석한다. 2011년 한국 프로야구계의 최대 사건은 김 감독이 2011년 8월 SK 와이번스 감독직을 전격적으로 사퇴한 일이었다. 1984년 OB(현 두산) 감독을 시작으로 태평양, 삼성, 쌍방울, LG, SK의 감독을 거친 그는 프로시장에서만 6번째 해고를 당했다. 아마추어 감독직까지 합하면 무려 12번째다. 하지만 그는 불과 석 달을 쉰 후 같은 해 12월 한국 최초의 독립 야구단 고양 원더스의 감독으로 변신해 또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고양 원더스는 한국 프로야구 신인 지명(드래프트)에서 선택받지 못한 무명 선수들이 프로야구 선수가 될 수 있도록 재도전의 기회를 부여하는 구단이다. 1942년생인 김 감독은 올해 우리 나이로 71세다. 80세를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망팔(望八)’의 나이가 됐음에도 은퇴 의사가 전혀 없다. 프로 감독으로서 온갖 영욕을 누린 그가 독립 구단을 택해 아직도 현역 생활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 늙은 감독을 한국 야구의 최고 지도자로 만든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이를 탐구해보자.

경남 진양이 본관인 김 감독은 1942년 일본 교토에서 5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일본 이름은 가네바야시 세이콘(金林星根)이다. 김 감독의 부친은 그가 어릴 때 사망했고 집안 형편은 찢어지게 가난했다. 가족 전부가 일을 했고 그 역시 스스로 학비를 벌어 고등학교를 다녔다. 교토 가쓰라고등학교에서 투수로 야구인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는 1960년 야구를 하려고 혼자 한국으로 건너와 동아대 선수가 됐다. 고교 졸업반 때 일본 프로야구팀으로부터 지명을 받지 못해 ‘일본 제일의 투수가 되겠다’는 꿈을 접어야 했기 때문이다.



김성근은 누구인가

한국의 불안한 정국과 빈곤한 생활을 염려한 어머니와 큰형의 반대는 그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한국에 온 후 일본 영주권마저 포기했다. 당시 한국과 일본이 정식으로 수교하지 않은 때라 한국에서 일하는 재일동포들은 1년에 40일가량은 일본으로 돌아가 체류해야만 일본 영주권이 유지됐다. 하지만 한국에서 야구에만 전념하고 싶었던 청년 김성근은 이를 성가시다고 여겼고 결국 일본 영주권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완강히 반대한 어머니를 뒤로하고 김포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탄 그는 대한해협을 건너며 펑펑 울었다. 혼자 남았다는 짙은 외로움이 엄습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은 채 혼자 야구를 하고, 언제나 낭떠러지에 한 발 끝을 걸친 채로 인생을 살아가는 그의 자세가 어디에서 왔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김 감독은 뛰어난 왼손 투수였지만 어깨 부상이 찾아온 탓에 1969년 중소기업은행 선수를 끝으로 현역 선수 생활을 접었다. 당시 실업야구 선수가 은퇴하면 대부분 은행원이 됐다. 하지만 그는 한국말이 어눌해 은행 창구에 앉을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지도자로 야구 인생의 승부를 새롭게 걸기로 마음먹었다. 1969년 마산상고 감독을 시작으로 기업은행 감독, 국가대표 코치, 충암고 및 신일고 감독을 지낸 그는 1982년 OB 베어스(현 두산 베어스) 코치로 프로야구와 인연을 맺는다. 1984년 OB 베어스의 감독이 된 그는 이후 태평양 돌핀스, 삼성 라이온스, 쌍방울 레이더스, LG 트윈스, SK 와이번스 등 총 6개 프로 구단에서 감독을 맡았다. 태평양 돌핀스와 쌍방울 레이더스에서는 열악한 구단 재정, 다른 구단보다 훨씬 처지는 선수 구성에도 우수한 성적을 내 ‘꼴찌 구단을 4강 구단으로 변모시키는 조련사’의 이미지를 굳혔다. 2002년 LG트윈스 감독을 맡았을 때는 압도적인 전력 열세에도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호화 멤버를 앞세운 삼성 라이온스와 6차전까지 가는 접전을 벌여 야구팬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김 감독에게 오늘날의 ‘야신’ 이미지를 만들어준 곳은 LG 트윈스다. 2001년 5월 당시 이광은 LG 트윈스 감독이 전격 경질됐다. 시즌 개막 후 9승1무25패의 최악의 성적을 냈기 때문이다. 이광은 감독 대신 감독대행을 맡은 사람이 바로 당시 LG 트윈스 2군 감독이던 김 감독이다.

어수선한 한 해를 보낸 김 감독은 2002년 정식 감독으로 승격됐다. 2002년 초 일본 오키나와에서 전지훈련을 마친 그는 LG 트윈스가 올해 반드시 4강에 갈 수 있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시즌 개막 후 6월 초까지 두 달 넘게 LG 트윈스는 8개 구단 중 7위라는 초라한 성적을 기록했다. 에이스 이상훈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이승호, 만자니오, 안병원, 신윤호 등 투수진도 잇따라 무너졌다.

하지만 이상훈이 복귀해 에이스 몫을 해주자 사정이 달라졌다. 이승호 최향남, 이동현 최원호 등이 마운드에서, 부상에서 돌아온 유지현과 김재현 등이 타석에서 투혼을 발휘하면서 LG 트윈스의 성적은 서서히 상승했다. 8월 들어 4위를 굳혔고 무난히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LG 트윈스의 상승세는 가을야구에서도 계속됐다. 전문가들은 4강에 오른 팀 중 LG 트윈스의 전력이 가장 처진다며 준플레이오프 탈락을 점쳤지만 김성근 감독은 이를 비웃듯 승승장구했다. 준플레이오프에서는 2001년 한국시리즈 우승팀 현대 유니콘스를 2연승으로 가볍게 눌렀고, 플레이오프에서도 KIA 타이거즈에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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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민│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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