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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 불만 많아서 우리 사회 발전한다”

정신과 의사 이나미

“불평, 불만 많아서 우리 사회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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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저자

“불평, 불만 많아서 우리 사회 발전한다”
김호기 1990년대 초반부터 왕성하게 책을 냈습니다. 정신과 의사와 문필가를 병행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이나미 1985년 졸업하고 1988년 정신과 의사가 됐죠.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여의사가 취직하기가 힘들었어요. 아이 딸린 아줌마는 안 쓴다는 병원이 많았어요. 용인 정신병원에서 근무할 때, 남편이 검사였어요. 강력부에 들어가면서 “스폰서 검사는 하기 싫으니 수사비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결혼할 때 딱 100만 원 가지고 화장실도 없는 옥탑방에서 시작했는데. 애들 때문에 응급실 근무도 못하니 번역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때 ‘문학사상’에서 번역 말고 책을 쓰라고 하더라고요. 첫 번째 책이 ‘여자의 허물벗기’였고 두 번째 책이 ‘때론 나도 미치고 싶다’였는데,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어요. 그러면서 책을 쓰게 됐어요.

김호기 소설도 썼지요?

이나미 ‘우리가 사랑한 남자’가 장편소설이고요. ‘물의 혼’이라는 단편소설로 문학사상 신인상도 받았어요. 문학은 제가 트레이닝을 받은 적도 별로 없고 소설을 다른 장르보다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아요. 재능이 없는 것 같아요.



김호기 겸손한 말씀입니다. 선생께서 ‘한국사회와 그 적들’에서 다룬 한국인의 콤플렉스 부분을 재미있게 봤어요. 우리 사회가 경제도 발전하고 민주화도 됐다고 하는데, 정신의학과 심리학 측면에서 볼 때 현재 많은 사람이 불만과 불안을 갖고 있습니다. 최근 ‘헬조선’이란 말이 유행하기도 합니다. 이런 불안의 심리적 원인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북유럽 3국 시나리오

이나미 불만이 많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발전한다고 생각해요. 불안 때문에 굉장히 역동적인 변화가 이뤄지고요. 그래서 저는 그걸 부정적으로만 보지는 않아요. 콤플렉스는 긍정적인 면이 있거든요. 지금 우리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고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하는데, 저는 과도기라고 생각해요. 1970~80년대 전 세계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가 북유럽 3국이었어요. 당시 우리나라는 정서적으로 대단히 안정적이었죠. 외국 정신과 의사들이 “한국이 전쟁도 겪고 기아 상황인데 어떻게 대가족이 살아있냐. 왜 우울증이나 자살이 없느냐”고 연구하러 온 적도 있어요. 지금 부탄이나 네팔에 가면 우리보다 못살지만 훨씬 더 안정적이에요.

우리가 지금 이런 것은 경제가 급속히 발전하면서 낙오된 사람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큰 영향을 미친 거라고 볼 수 있어요. 그게 저는 중진국의 특징이라고 보고요.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가는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북유럽 3국처럼 되는 거잖아요. 사회보장 안전장치가 잘 작동되고 경제 성과가 균등하게 배분되면 사람들의 불만이 줄어들면서 자살률도 낮아지고 인성이 달라지게 돼요.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5만 달러 정도 되면 물질주의에서 정신주의로 가게 돼요.

김호기 사회과학에서는 ‘탈물질주의적 가치(post-materialist value)’라고 합니다. 경제적 성공보다는 자아의 실현을 중시하는 경향을 말하는데, 젊은 세대가 갖는 삶의 가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콤플렉스의 양면성

이나미 영성이나 불교 쪽으로 가치가 이동하죠. 북유럽 3국 젊은이들은 우리보다 덜 물질주의적이에요. 중국은 우리보다 훨씬 더 물질주의적이죠. 20~30대는 자식들한테 지금처럼 사교육을 시키지 않을 거예요. 내가 해봤는데, 경쟁 제일주의로 하니 사람이 불행해진다는 것을 아는 거죠. 이렇게 바뀌는 데 한 세대가 걸린다고 봐요. 나쁜 시나리오는 경제 성과가 균등하게 배분되지 않고 아르헨티나, 필리핀, 인도처럼 잘사는 사람은 굉장히 잘살고 못사는 사람은 더 못살게 돼서 사회가 전반적으로 불안정해지는 거예요.

김호기 모든 세대를 관통하는 불안이 국민에게 불행하다는 느낌을 안기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나미 저는 지금 양 갈래 길에 있다고 봐요. 좋은 징후는 민간에서 봉사하고 나누려는 사람이 많다는 점이에요. 사회적 기업 같은 것은 좋은 징후죠. 그리고 자기 아이 교육이 달라지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나쁜 징후는 젊은 세대든 장년 세대든 냉소주의에 빠지는 것이에요. 무기력, 무관심, 이기주의와 같은 게 나쁜 징후예요. 좋은 징후와 나쁜 징후의 갈림길에서 어느 길로 갈지를 이끌어가는 사람이 리더라고 생각해요. 리더는 대통령에서 오피니언 리더까지 다양하겠죠.

김호기 각종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하면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요.

이나미 적은 외부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적이 될 수 있거든요. 항상 남의 문제점을 찾는데 내가 일으키는 것도 많아요. 상담을 해보거나 소셜 미디어를 보면 많은 사람이 스스로를 피해자라고만 생각하지 자기가 가해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더라고요. 내가 갑이었고 가해자였다는 걸 알려줄 필요가 있어요. 각자 자신의 문제를 먼저 보기 시작하면 사회갈등이 많이 해소될 수 있거든요.

콤플렉스도 융 심리학 이론에서 보면 긍정적인 원동력이 될 수 있어요. 여러 잘못, 미숙한 부분, 오류 같은 것들이 거름이 돼서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자원이 되거든요. 한국 사회를 크게 보면 광복 이후 저지른 잘못이 훨씬 많을 거예요. 후회스러운 부분도 많을 거고요. 역설적으로 그런 것들 중에 나중에 큰 자원이 된 게 적지 않아요.

김호기 콤플렉스의 양면성을 말씀하시는 거죠.

“불평, 불만 많아서 우리 사회 발전한다”

우리 사회의 불안과 콤플렉스를 주제로 열띤 대화를 나눈 김호기 교수와 이나미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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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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