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4월호

당적없는 국회의장 이만섭

“이제 ‘국회사전’에 날치기란 없다”

  • 안기석 <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 > daum@donga.com

    입력2004-10-29 16: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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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우리나라 헌정사상 처음으로 무당적(無黨籍) 국회의장 시대가 열렸다. 국회의장 당적 이탈에 대한 법이 통과됐기 때문. 그동안 무당적 의장의 필요성을 역설해왔던 이만섭 국회의장을 만나 무당적 국회의장 탄생의 배경과 의미를 들어보았다.
    요즘 정가의 화제는 온통 민주당 경선 릴레이와 한나라당 분란 사태다. 여당에서는 올해말 치르는 대선의 후보가 되기 위해 경선이 펼쳐지는 지방으로 몰려다니고, 야당에서는 탈당과 이회창 총재와 측근 비판에 대한 시비가 일어나면서 내분하는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그런데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는 최근에 헌정사상 상당히 주목할만한 일이 벌어졌다. 3월8일 입법부의 수장인 국회의장의 당적 보유를 금지한 국회법 개정안에 따라 이만섭(李萬燮) 국회의장이 그동안 소속해 있던 민주당을 탈당했다.

    지금까지 국회의장은 입법부의 수장이긴 하지만 사실상 청와대의 내정에 의해 결정되는 편이었기 때문에 대통령과 집권여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태였다. 이 때문에 권력의 눈치를 보는 국회의장이 ‘날치기 통과’에 앞장서야 하는 눈꼴 사나운 풍경도 여러 번 보여줬다.

    그러나 이번 국회법 개정안의 통과로 국회의장은 재임시 당적 없이 국회를 운영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이 법의 제정과 통과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던 이만섭 국회의장을 3월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의장실에서 만났다. 이의장은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열리는 국제의회연맹(IPU) 제107차 총회 참석과 이집트 모로코 체코 헝가리 오스트리아 등의 공식 방문을 앞두고 있었다. 3월 임시국회가 본회의를 한 번도 열지 못한 상황에서 국회의장이 3월11일부터 16박17일간의 ‘장기외유’를 떠나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도 있지만 이의장은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의장비서실에서는 이의장이 헝가리 방문 때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마들 대통령으로부터 ‘헝가리 대십자 훈장’을 받는다고 귀띔했다.





    청와대나 집권여당 눈치 볼 필요없어


    훤칠한 키의 이의장과 악수를 나누고 난 뒤 “헝가리와 특별한 인연이 있느냐”는 인사성 질문을 하자 이의장은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1955년에 소련이 헝가리를 침공했을 때 내가 연세대에 다니고 있었어요. 헝가리의 자유를 지켜주자며 학생의용군을 조직했지요. 세계적인 여론이 일어날 것 같아서…. 그래서 당시 김용호 국방장관을 찾아갔는데 ‘정의감은 가상하지만 아직 학생들이니까 좀 참으라’고 그러더군요. 그런데 헝가리 정부가 이 사실을 알고 헝가리 대십자 훈장을 주겠다고 한 겁니다.”

    이만섭 의장은 지난 대선 때 이인제 당시 국민신당 대통령 후보와 함께 한나라당을 탈당한 뒤 국민신당 대표로서 이후보를 전면에서 도왔다. 그런만큼 이번에 이인제 민주당 상임고문이 참여하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도 관심이 많을 것 같아 이쪽 화제부터 먼저 꺼냈다. 그런데 이의장은 민주당 경선에 대한 의견을 묻자 의외로 한숨부터 쉬었다.

    “국민을 예비선거에 참여시킨다는 취지는 좋지만 충분한 사전 준비와 보완책을 마련해놓고 국민경선제를 실시하는 것이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어떤 국민이 참여하는 것인지, 어떻게 동원하는지, 그리고 금품은 개재되지 않는지 등의 여부는 나중에 문제가 됩니다. 충분히 대책을 세웠으리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러나 경선 취지와는 달리 부작용이 생기면 경선 결과에 불복하는 사태가 생길 수도 있어 우려됩니다. 정치 이상도 좋지만 현실과 조화를 이뤄야죠. 미국식이라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닙니다. 나는 처음부터 걱정을 했습니다. 경선이 과열돼서 후보들간에 비난, 인신공격, 대의원들에 대한 물량공세 등으로 얼룩지면 경선후 화합이 될지 걱정이 됩니다. 단합이 돼야 할 텐데 분열이 될까 걱정됩니다.”

    -민주당 경선 후보들의 텔레비전 토론은 보았습니까.

    “처음에 보다가 같은 당의 동지들끼리 지나치게 비판, 공격을 하는 것을 보고 괴로워서 그 다음부터는 보지 않았습니다. 지금 여당은 경선이 문제가 아니라 본선거에서 어떻게 이길지 연구해야 하는데 예비선거에서만 치고받고 합니다. 그러니까 국민들도 관심이 없어요.”

    그러나 이의장의 우려와는 달리 현재까지 민주당 경선은 국민들의 시선을 끌며 그동안 추락했던 민주당에 대한 지지도를 올려놓았다. 막판에 가서 이의장의 우려가 현실이 될지는 좀더 지켜볼 일이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무당적 국회의장이 된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내가 16대 국회의장이 된 직후부터 국회의장은 당적을 떠나야 한다고 강조했어요. 그래야 여야를 초월해서 공정한 국회 운영을 하는 데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을 쭉 해왔어요. 정치개혁특별위원들에게 2월말까지 이 법이 통과되도록 해달라고 여러 번 독촉했어요. 왜냐하면 내 임기 전에 만들어놓아야지, 내가 그만두면 이 법을 추진할 사람도 없기 때문이에요. 국회의장이 청와대 눈치 안 보고 또 자기가 속해 있는 당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올바르게 국회를 운영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을 마련한 겁니다. 국회를 민주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진일보한 것이죠.”

    -그래도 ‘친정’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있습니까.

    “물론 당적을 떠나도 내가 돌아갈 당을 생각하면 불공정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안 떠나는 것보다야 낫습니다.”

    -애당초 원안에는 국회의장의 당 복귀 조항이 없었다고 하는데….

    “내 주장은 당적만 떠나게 하고 그 다음에는 국회의장에게 맡기라는 것이었는데 여야가 원래 당으로 돌아가게 하자고 의견 일치를 본 겁니다. 의석 하나라도 안 잃으려고 그런 것 같습니다.”

    이의장은 이 말을 한 뒤 ‘허허’ 소리를 내며 크게 웃었다.

    -이의장은 오랫동안 의정활동을 했는데 무당적 국회의장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모양입니다.

    “내가 6대부터 국회의원을 하면서 한평생 국회에서 생활한 셈인데 뼈에 사무치는 것이 국회 날치기였어요. 국회의장이 청와대나 소속 정당의 눈치를 보지 않고 공정한 사회를 보는 것이 평생 소원이었어요. 그래서 16대 국회의장이 된 다음, 날치기를 완전히 없앴어요. 과거의 국회의장은 본인이 날치기를 하거나 페인트 모션을 하고 부의장이 뒷문이나 옆문으로 들어와서 손바닥으로 탁탁 치고 가지 않았어요. 그런 것을 없애야겠다고 생각한 겁니다.”

    -이의장도 ‘날치기’를 해야 할 상황이 있지 않았습니까.

    “지난번 운영위원회에서 날치기한 국회법 개정안을 여당의 압력이 있었지만 본회의에 상정하지 않았어요. 또 김종호 부의장이 사회권을 넘겨달라 했지만 끝까지 넘겨주지 않았어요. 앞으로 어떤 법안도 상임위원회에서 변칙으로 처리한 것은 본회의에 상정하지 않겠다고 국민들에게 공약을 했어요. 그래서 ‘날치기는 없다’는 책을 발간했어요. 국회가 그나마 3권분립이 된 민의의 전당이 되도록 한 겁니다. 굉장한 긍지를 느낍니다.”

    -군인 대통령 시절보다는 민간인 대통령 시절이 그래도 3권분립이 됐다고 보지 않습니까.

    “YS나 DJ 두 대통령은 모두 의회주의자인데 대통령이 되고 난 뒤에는 국회와 거리를 두었어요. YS는 임기 동안 국회에 세번 나왔어요. DJ는 한 번 나왔어요. 9월 정기국회에 나와 시정연설도 하고 연설을 마친 뒤에는 여야의원들과 차도 마시면서 대화를 해야죠. 군인 대통령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해도 오랫동안 의정활동을 했던 민간인 대통령은 그런 모습을 보여줬어야죠.”

    -왜 그러지 못했다고 생각합니까.

    “국민들을 위해서 일을 하는데 도와주지는 않고 발목만 잡는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미워도 다시 한번’식으로 야당 의원들이 미워도 만나서 대화하고 설득하면 그들도 이해한다고요.”

    -이의장은 정치부 기자로서 또한 의원으로서 오랫동안 한국 정치를 지켜봤는데 헌정사상 국회가 가장 참담했던 것은 언제입니까.

    “자유당 말기의 2·4 파동이 가장 참담했어요. 그때는 무술경위 300명이 국회에 들어와 농성하고 있는 야당 국회의원을 질질 끌고가 지하에 전부 가뒀어요. 그리고 보안법을 통과시켰지요. 그때 내가 동아일보 기자였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는지 취재를 할 수가 없었어요. 화장실에 들어가 엉엉 울었어요. 또 하나, 3선개헌 때 새벽에 본회의장이 아닌 제3별관에서 날치기할 때도 비참했어요. 그리고 YS 야당 총재를 제명할 때 별관에 가서 하지 않았어요.”

    -의정활동을 하면서 특히 보람 있었던 때는 언제입니까.

    “내가 14대 국회의장 때, 그러니까 1993년 12월2일까지 법정기일내에 예산과 정당법 안기부법 통신비밀보호법을 어떻게 해서라도 통과시켜달라고 당시 YS 대통령이 부탁하는 것을 뿌리쳤어요. 청와대에서 오찬을 하면서 법정기일을 지켜달라고 하기에 ‘그것은 훈시 규정이라 반드시 지키지 않아도 됩니다. 12월31일까지 통과되지 않으면 가예산을 집행할 수 있는 조항도 있습니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YS가 ‘내가 문민대통령이니 지켜야 한다’고 해요. 그래서 내가 ‘옛날에는 날치기를 반대해놓고 왜 그러십니까’라고 했어요. 조금만 더 기다리자고 했더니 안된다고 그래요. 그래서 나는 끝까지 날치기를 안하겠다고 했어요. ‘법정기일이 되면 제가 다시 전화를 드리지요’라고 말한 뒤 나와버렸어요. 그후 민주계 황낙주 부의장이 통과시키려다가 무산됐어요.

    그런데 4, 5일 뒤에 내가 법은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시키고 예산은 표결로 통과시켰어요. 그때 보람을 느꼈어요. 그러나 YS는 섭섭했던지 1년2개월 만에 국회의장을 그만두게 됐어요. 16대 들어와서도 자민련을 교섭단체로 만드는 국회법 개정안을 운영위원회에서 여당이 날치기를 했단 말입니다. 본회의에서도 그대로 해주기를 바랐지만 끝까지 뿌리침으로써 여당으로부터 섭섭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나는 보람을 느낍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국회 운영과 관련해서 ‘압력’을 행사하지 않았습니까.

    “DJ 대통령은 머리가 좋아서 그런지 국회에 대해서 나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아요. 전화를 해도 내가 안 듣는다는 것을 아니까 전화도 안해요.”

    -지난번 검찰총장 탄핵소추안 때는 청와대나 민주당 핵심으로부터 어떤 ‘암시’가 없었습니까.

    “박순용과 신승남 검찰총장 탄핵소추안이 제기됐을 때 여당이 여당 출신 의장을 의장실에 밀어넣고 본회의장에 못 들어가도록 봉쇄했을 때 참 곤혹스러웠어요. 일부 야당의원들은 의장이 미리 알고 있지 않았나 의심하기도 했어요.”

    -이의장은 역대 대통령에게 민심을 전하는 직언을 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김대중 대통령에겐 민심과 관련해서 직언을 하지 않았습니까.

    “옷로비사건 때는 내가 ‘대통령이 귀국하기 전에 결자해지해야 한다. 김태정씨가 책임져야 한다’고 당간부회의에서 이야기했어요. 상임고문으로서 바른말을 했어요.”

    -대통령에게 직언한 적도 있습니까.

    “만난 적이 없어요. 내가 성격상 대통령이 불러야 들어가지 자진해서 들어가지는 않아요. 박정희 대통령은 자주 나를 불렀는데 내가 3선개헌 반대하고 난 뒤에는 돌아가실 때까지 한번도 부르지 않았어요. 내가 3선개헌을 반대한 것은 박대통령을 위해서 그런 것이지…. 무리하게 3선개헌을 했으면 유신은 안하는 게 옳았어요. 유신까지 했으니까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겁니다.”

    -이제 카리스마 대통령 시대는 끝난 것 같은데 어떤 리더십을 가진 대통령이 나와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제는 국민들의 의식이 전부 장관급이고 국회의원급입니다. 절대 속일 수가 없어요. 옛날처럼 카리스마로 누를 수가 없어요. 국민들에게 정직해야 합니다. 정직하게 이야기하고 협조 구할 것은 구하고 심판받을 것은 받아야지…. 제스처나 쇼로는 안됩니다. 다음에는 깨끗하고 경륜이 있는 지도자가 대통령이 돼야 합니다. 역대 대통령이 전부 정경유착과 관계돼 있으니까 도덕적으로 기반이 약합니다. 그 흐름 속에서 권력형 비리가 그대로 쏟아집니다. 국내적으로는 화합을 꾀하고 국제적으로는 협조관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고도의 외교적 능력도 필요합니다.”

    -도덕적으로 깨끗하리라고 생각했던 정치인들도 요즘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 드러나는데 이런 문제들은 결국 ‘패거리의식’ 때문에 생겨나는 것 아닙니까.

    “그렇죠. 3김, 아니 2김이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기여한 것은 인정하지만 패거리정치, 정경유착은 폐단이지요. 패거리정치를 하다보니까 정경유착이 되고 정경유착이 되다보니까 도덕성이 없어지는 겁니다. 패거리정치 때문에 전부 봐줄려고 하다보니 인사의 난맥이 오지요. 공기업 사장이나 감사로 보내고…. 자기 패거리를 먹여살리려니 뭔가 게이트가 자꾸 생기는 거죠. 패거리정치는 완전히 끊어야 합니다. 패거리를 유지하려니까 자연히 재벌의 신세를 지게 되는 겁니다. 이 때문에 만신창이가 된 정치인이 많아요. 중간 보스라는 사람들도 전부 문제가 되잖아요.”

    -이의장은 정치자금과 관련해서 문제될 것이 없습니까.

    “나는 어느 재벌과도 관계가 없어요. 신세진 일이 없어요. 내 신조가 큰정치하려면 절대 재벌의 신세를 져서는 안된다는 것이에요. 내가 정치 후배들에게 충고할 때 여름에 아무리 목이 말라도 물을 마실 때 독이 있는지 없는지 보고 마시라고 말합니다. 당에서 자금이 나온다든가 친척이나 동창이 도와주는 것은 있을 수 있지…. 그러나 꼬리가 달린 것, 꺼림칙한 것은 절대로 조심하라고 충고해요. 우리나라는 비밀이 없어요. 꼬리가 있는 것은 부탁을 안 들어주면 나중에 폭로한다니까요.”

    이의장은 대통령선거 등 각종 선거 비용에 대해 나름대로 연구를 한 모양이었다. 자료 없이 줄곧 이야기하던 이의장은 A4 용지의 자료를 하나 꺼내 말을 이어나갔다.

    “5년전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대통령 선거운동비 한도액을 정했는데 정당활동비를 제외하고 개인적으로 쓸 수 있는 돈 310억원입니다. 올해에는 11월7일에 정하는데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400억~500억원이 될 겁니다. 그러나 돈 없는 사람은 이 거액을 어떻게 마련합니까. 개인이 쓰는 것을 왜 이렇게 많이 정해놓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대통령 선거운동은 텔레비전이나 신문지상에서 토론으로 하면 되는 것이지….

    금년 지방선거 및 대선과 관련해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각 정당에 보조금이 내려가는데 전부 1138억원입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양대선거를 관리하기 위해 쓰는 비용이 2989억원입니다. 이 두 개만 합쳐도 4000억원이 넘어요. 여기에 정당과 후보 개인이 조달한 돈을 전부 사용하면 단위가 조가 넘을 거예요. 이것이 나라 경제에 무슨 도움이 되냐는 겁니다. 대통령선거를 연구해서 돈 안드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현재 제도로는 대선에 돈이 드니까 재벌 신세를 져야 하잖아요. 그게 바로 정경유착이지요. 나중에 대통령이 돼도 큰소리를 못치고 끌려다니는 겁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도움 받을 때는 받고 칠 때는 쳐버리면 이중인격자가 되고 배신자가 돼버리는 겁니다.”

    -국민들이 주인인 만큼 선거제도의 부작용 때문에 예전처럼 ‘체육관’에서 대통령을 뽑을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일부에서는 대통령선거에서 지역감정, 부정한 선거자금, 모략중상, 인신공격, 정국불안, 경제발전 저해 등의 부작용이 빚어지니까 차라리 대통령을 국회에서 뽑는 것이 낫겠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내각책임제를 하든지, 이원집정부제를 하든지, 대통령중심제를 하더라도 권력을 분산시키든지….”

    -국민 다수는 원하지 않을 터인데 누가 그런 이야기를 합니까.

    “대학교수들이 그래요. 내각책임제를 하지 않는 한 어떻게 국회에서 국가지도자를 뽑을 수 있겠냐고 했더니 이승만 대통령이 제헌의회 때 국회에서 뽑히지 않았냐고 해요.”

    -그러나 국민들은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는 권리를 빼앗기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면 차선으로 선거를 동시에 해야 합니다. 대통령선거 국회의원선거 지자체선거 보궐선거 등 해마다 선거를 하다보니 선거망국론이 나올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선거를 동시에 해야 합니다. 이번 대통령선거 끝나면 국가 백년대계를 위하여 헌법연구위원회를 만들어서 연구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의장은 개인적으로 내각책임제가 좋다고 봅니까.

    “내각제보다는 이원집정부제나 대통령 권한을 분산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대통령에 한번 당선되면 잘하든 못하든 임기동안 국민들이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남녀가 결혼해도 참다가 안되면 이혼하는데 국민들은 대통령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이혼하지 못해요. 국정난맥에 대해 국회에서 책임을 지도록 해야죠. 내각제도 이제는 연구할 때가 됐어요. 내각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정권을 잡기 위해서 그런다고 국민들로부터 오해를 받으니까 순수하게 연구를 해야죠.”

    -지금 정당들을 보면 이념이나 정치적 성향이 다른 의원들이 한 당에 혼재돼 있습니다. 국민들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차제에 정계가 개편돼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절대 인위적으로 해서는 안됩니다. 정치적 이해를 위해서 인위적으로 하면 국민의 지지를 못 받습니다. 지금 이 당저 당 다 싫다,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사람 중에 찍을 사람이 없다는 유권자가 한 50% 되니까 변화 가능성은 있어요. 정계개편이 된다면 이제 이념과 정책에 따라 재편됐으면 좋겠어요. 사실 국회에서 의장석에 앉아 있으면 당론이 왔다갔다 하는 것이 보여요. 같은 당에 있으면서도 이념이나 정책이 달라서 그런 거예요. 당의 지도자들도 보수와 진보, 강경과 온건, 지역성에 끼어 우왕좌왕해요.”

    -얼마전에 한나라당을 탈당한 박근혜 의원이 신당을 만든다고 하는데….

    “조금더 두고봐야겠지만 무엇보다 국민적 명분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합쳤다가 이해관계에 따라 헤어질 바에야 합하지 않는 것이 좋고….”

    -우리 정치 수준이 누구를 반대한다는 ‘반(反)의 정서’는 있어도 정치적 비전을 공유하는 ‘합(合)의 정치’는 없는 것 같은데….

    “국가의 미래를 위한 정치를 해야 하는데 당장 대통령 되고 보자, 권력을 잡고 보자, 그게 판단의 기준이 되니까 그런 일이 생기지 않나 생각해요. 그리고 지도자들이 포용력이 있어야 정치가 여유가 있는데 우리 정치는 너무 여유가 없어요.”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사람들에 대해 안타까운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만….

    “내가 특정인을 말하는 것은 아니고 여야를 통틀어 말하는 것이지만…. 그리고 세대교체론이 좋긴 한데 역시 경륜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가 가끔 있어요.”

    -어떤 때 그런 느낌을 갖습니까.

    “여야가 필요없는 싸움을 할 때가 있어요. 교육공무원 정년연장에 관한 법안은 본회의에 상정도 안하면서 상임위원회에서 수로 결정했는데 그 과정에서 온 나라가 떠들썩하지 않았어요. 본회의에 올리지도 않으면서 왜 그렇게 했냐는 겁니다. 건강보험 재정통합문제도 여야가 1년반 유예하기로 했는데 본회의에 올리지도 않으면서 사소한 문제로 옥신각신하고…. 또 부시 미국대통령이 오는 날 정상회담이 있으니까 당연히 국회 문을 열어놓아야 되는데 그 전날 여야가 설전을 벌인 것 때문에 여당이 들어오지 않고…. 아무튼 당의 지도자는 당내 강경파에게 끌려다니면 안됩니다. 당의 지도자로서 당원이나 민심을 존중해야겠지만 때로는 나라를 위하여 앞장서서 끌고 나가는 리더십도 있어야 합니다.”

    -지금 거론되는 대통령 후보 중에 마음에 드는 인물이 있습니까.

    “찍을 사람이 없다는 유권자가 50% 이상 된다는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지금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사람들은 내가 꼭 대통령이 돼야겠다는 생각보다 국민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나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는 어떨까, 내가 만약 대통령이라면 이 문제는 어떻게 했을까, 이런 것을 고민해야 합니다. 대통령은 큰 권한을 쥐는 것이 아니라 봉사하고 희생하는 자리입니다.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 과연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고민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올해 대통령선거는 여러 명의 후보가 나와 표가 분산되리라는 전망도 있습니다만….

    “걱정입니다. 30% 정도의 지지만 받고 대통령이 되는 사람이 어떻게 흩어진 국민의 마음을 모으고 에너지를 결집할 힘이 생기겠어요. 염려스러워요.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식을 한 다음날부터 국회에서는 야당이 참여하지 않고 총리를 인준하지 않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어요. 대통령 취임 다음날부터 여야가 싸울까봐 걱정입니다. 나는 대통령이 안돼도 나라가 잘 되면 좋겠다는 뜻을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합니다.”

    -그동안 국회의장으로서 후배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지켜봤을 터인데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내가 의장석에 앉아서 가만히 보면 다음번에도 나라를 위해서 꼭 들어와야 할 사람, 들어와도 안 들어와도 상관없는 사람, 들어오면 안되는 사람이 나름대로 구별됩니다. 나라를 위해서 꼭 들어와야 할 사람은 때가 되면 여야 가리지 않고 명단을 발표해서 격려할 생각이 있어요.”

    -꼭 들어와야 할 사람은 몇 명 정도입니까.

    “여야 합해서 20~30명 정도 되죠. 비율은 절반씩이고…. 앞으로 국회의원의 질을 더 높여야 합니다. 그러려면 대선거구제를 해야 합니다. 소선거구제에서는 죽자살자식으로 돈 쓰고 달려드는데 능력 있고 점잖은 사람이 되겠어요?”

    -국회의원 질을 높이려면 당총재 1인이 공천지명하는 관행으로 될까요.

    “하향식이 반드시 나쁘다고 할 수는 없어요. 상향식으로 하려면 당비 내는 당원들을 대상으로 해야 하는데 지금 당비 내는 당원이 있나요. 그러니까 지구당 위원장이 대신 당비를 다 내고 사람들을 모아야 해요. 그러면 나라를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나은데도 대의원을 포섭한 사람이 공천을 받는 거죠. 그렇다고 위에서 일방적으로 지명하면 비민주적이라고 하는데 잘 조화시켜야죠.”

    -무당적 의장이 탄생한 것이 진일보였다면 앞으로 더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앞으로 국회의장은 청와대에서 내정하지 말고 그야말로 의원들이 자유의사로 투표해 뽑도록 해야 합니다. 국회가 민의의 전당이 되려면 당론에 얽매이는 의정활동을 하지 않아야 해요. 의원 각자가 헌법기관이니까 당론이 국민의 뜻과 다를 때는 자기 소신대로 했으면 좋겠어요. 크로스 보팅을 해야죠. 그리고 앞으로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원내 다수당을 가지려고 무리한 선거를 하거나 야당 의원을 빼오는 것을 그만둬야 합니다. 대통령은 여야 없이 대화를 해서 야당의 지지도 받도록 노력해야죠. 수의 정치는 끝내고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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