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BS 수능강의 참여한 학교는 예외 없이 좋은 성과 거둬
- 0교시 보충수업, 10시 이후 자율학습 하지 말아야
- 수준별은 개별화, 우열반과 다르다
- 당분간 특목고, 자립형사립고 확대 계획 없어
- 선(先)지원 후(後)추첨 등으로 평준화 보완
- 교육자치 공감하나 입시과열 우려
- 8월 중 중장기 인적자원 수급계획 발표
참여정부 1년 만에 사분오열된 교육계는 당장 개혁성보다 중량감, 안정감이 절실했다. 그러나 신임 부총리는 김영삼 정부 시절 교육부 장관을 지내며 5·31교육개혁안의 골격을 세운 ‘시장주의자’로 알려져 있었다. 진보를 표방한 교육운동 진영은 안병영 부총리 체제의 출범을 시장주의 교육개혁의 신호탄으로 보고 시시각각 비판의 날을 세웠다. 결코 호의적이지 않은 시선 속에 사교육비 대책, 평준화 논란, 대학입시 개혁 등 해묵은 과제를 떠안고 안병영호(號)가 출항한 지 4개월. ‘2·17사교육비경감대책’의 일환으로 4월1일 시작된 EBS 수능방송이 뜨거운 관심 속에 순항을 계속하자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간 안병영 부총리와 만났다.
-고교생의 75%가 EBS 수능을 시청한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는데 교육부가 기대했던 것 이상 아닙니까.
“당초 80% 조금 넘는 선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기대가 과했던 것 같고 지금 수준에도 만족합니다.”
-어느 대목에서 성공임을 예감했습니까.
“수능방송 시작 사나흘 전 기자들에게 이야기했어요. 인터넷 대란은 없으니 기다리지 말아라, 경우에 따라 소란은 있다, 그러나 일시적일 것이다라고요. 그러나 소란조차 없었습니다. 고건 총리께서 ‘교육부는 여러 사람의 우려를 겸허하게 받아들여서 다 챙겼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정말 그렇게 했습니다. 주위에서 걱정하신 만큼 전국 2100여개 고등학교를 샅샅이 챙기고 점검했습니다. 동시 폭증에 대비해 다각적인 대책을 마련했고요. 4월1일 이틀 전부터는 내심 웬만큼 됐다고 생각했죠.”
평소의 안 부총리답지 않게 조심스러운 전망 대신 확실한 기대감을 표시했다. 그만큼 EBS 수능방송의 출발은 순조로웠다. 그러나 문제는 이제부터다.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관심은 온통 200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EBS 수능방송에서 얼마나 출제되느냐에 쏠려 있다.
단기효과 아닌 e러닝의 시작
-당장은 EBS 수능이 사교육비 경감효과를 가져온 것이 사실이나 이는 방송과 수능을 연계했기 때문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습니다. EBS 수능 강사조차 ‘방송강의가 찍어주기 식이 되면 교육의 본질을 해치는 것’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기본적으로 학교교육을 정상적으로, 열심히 받으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거라는 말밖에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수능시험과 EBS 강의는 꽤 연계가 되리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출제기관인 교육과정평가원과 EBS가 기획단계부터 출제까지 연계돼서 움직였기 때문에 제법 반영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이 대목에서 안 부총리는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만, EBS 수능은 선발기능만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정상화하는 데도 기여하기 때문에, 수능이 아니라 고등학교 교육과정과 연계됐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합니다. 교육부가 드릴 수 있는 말은 교과서와 핵심영역 중심으로 내겠다는 건데, 물론 그 정도로 학부모와 학생들이 만족할 리 없겠습니다만, 그런 기본적인 공감대 위에서 평가원과 EBS가 협조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안 부총리의 ‘꽤’ ‘제법’이라는 표현으로는 반영정도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다시 물었다.
-국민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부분에서는 피해가시네요.
“별로 출제되지 않아도, 너무 많이 출제되어도 문제가 되겠죠(웃음). 저희 목표는 근본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학교 공부 열심히 하고 수능방송 들으면 좋은 결과가 나옵니다.”
-사실 TV과외로 사교육비를 잡겠다고 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1989년 과외금지 해제조치의 보완책으로 TV과외가 등장했을 때도 그해 대입 학력고사에서 TV과외 적중률이 70~80%라고 요란하게 선전했던 기억이 있고, 1997년이면 부총리께서 교육부 장관으로 계실 땐데 별도 과외 없이 위성과외방송만 시청해도 수능을 잘 볼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과외로 과외를 막을 수 없습니다. 이번에도 비슷한 상황 아닐까요.
“그렇지 않아요. 정부가 EBS 수능과 수능시험을 연계하겠다는 이야기를 한 것은 1997년 한 번이었습니다. 그때 정황을 말씀드리면 공교롭게도 고건 총리, 안병영 교육부 장관 팀이었습니다. 그런데 발표 후 곧 제가 그만두었고 고건 총리도 반년 만에 그만두셨거든요. 그래서 사실상 책임질 사람이 없었던 겁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도중에 바뀌는 한이 있어도 끝까지 책임지도록 하겠습니다.”
안 부총리는 이번만큼은 다를 거라 했다. EBS 수능효과가 단기간에 머물지 않고 e러닝(e-learning)체제로 가는 첫걸음이 될 거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수능방송 시작 전에 조사를 해보니까 제법 열심히 듣는 학생이 56%나 됐어요. 반 정도는 이미 보고 있다는 이야기죠. 그리고 주위에 마땅한 학원도 없고 교육여건이 열악한 소외지역일수록 EBS 의존도가 높았고요. 단기간이 아니라 2~3년 계속 관심을 갖고 EBS 수능강의에 참여했던 학교는 거의 예외 없이 (대학입시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EBS 수능에서 사이버 학습으로
-그러나 부총리께서도 EBS 수능강의는 일종의 ‘해열제’라고 했고, 수능방송이 2·17사교육비경감대책의 전부도 아니지 않습니까. 오히려 수능 영향력을 최소화하고 내신 비중을 높이는 것이 기본방침이라고 했는데 현재는 본말이 전도된 느낌입니다.
“2·17대책을 발표할 때 분명히 e러닝 지원체제라고 했습니다. EBS 수능방송이나 인터넷 강의는 e러닝 학습의 한 부분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교수학습센터를 키워서 사이버 가정학습 쪽으로 한 걸음씩 다가가는 것, 이를 통해 공교육체제에 변화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제가 1997년 교육부 장관으로 있으면서 멀티미디어지원센터를 마련했어요. 학교 선생님들에게는 좋은 교수자료를, 학생들은 풍성하고 질 좋은 학습자료를 제공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한 7~8년 사이에 엄청나게 좋은 교수학습자료가 에듀넷 등에 탑재돼 있습니다. 에듀넷에만 약 50만개가 있고 시도교육청 교수학습자료센터에 있는 것까지 전부 보태면 270만개나 됩니다. 다만 수적으로는 늘었는데 부문별로 균형이 맞지 않고 제대로 분류되지 못해 검색이 쉽지 않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선생님들이 살아 있는 교수자료를 얻을 수 있고, 학생들도 수준별로 양질의 학습자료를 손쉽게 찾아갈 수가 있습니다. 정말 창의적이고 자기주도적인 학습이 가능해지는 거죠. 이것이 생활화되면 굳이 학원에 갈 필요가 없고, 방송에 의존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오히려 이쪽에 더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선생님들도 더 좋은 교육을 할 수 있고 학생들도 학교에서 좋은 강의를 듣겠지만, 보충이나 심화학습을 위해서는 스스로 사이버세계로 들어와서 이용할 수가 있단 말이에요. e러닝 학습체제가 교수학습방법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리라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온라인에서 시작했지만 오프라인의 공교육으로 이어지는 교수학습체계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물론 이것도 건널목입니다. 우리가 정작 가장 큰 관심을 갖는 것은 공교육의 내실화, 학교생활의 정상화, 교실혁명입니다.”
EBS 프로그램을 위성과 연결해 초중고 수업시간에 활용케 하고(과열과외 해소), 학교운영위원회를 통해 학교단위 교육자치를 실현하고 생활기록부를 강화해 초중등 교육의 본질을 회복시키겠다는 게 1996년 안 장관이 직접 발표한 정책이었다. “시행착오가 따르더라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던 안 부총리가 8년 만에 다시 그 카드를 꺼내들었다. 과연 이번에는 성공할까.
0교시 수업은 자제해야
-하지만 EBS 수능강의와 함께 사교육을 공교육으로 흡수하기 위한 보충학습이 학교별로 과열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0교시 부활 등 무리한 보충수업이 한 교사의 죽음을 초래하기도 해 공교육의 정상화와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입니다. 이것이 일시적인 부작용일까요.
“그 부분은 저희도 힘겹습니다. 사실 보충학습이나 자율학습을 확대하려면 마땅히 교원복지가 함께 개선되야 합니다. 그런데 전제조건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채 일을 시작한 안타까움이 있어요. 선생님 수를 늘리고 수업시수 줄이고 보조교사를 확보하고 보수체계도 정비하는 일에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행정자치부나 기획예산처와 합의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놓지 못해서 굉장히 죄송합니다.
그리고 보충수업 부분은 시도교육청이 좀더 자율적으로 해결해 주셨으면 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0교시 수업, 야간 보충수업 이런 거 정말 안 했으면 좋겠고요. 자율학습도 10시 이후에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교육감님들과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고 이미 서울시와 충북에서는 이런 기본 입장을 천명해주셨어요. 조만간 수렴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3월31일 안병영 부총리와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이 나란히 EBS 수능강의에 대해 발표했다.
“우선 사범대 문제에 대해 말씀드리면 위헌 판결이 나왔기 때문에 법적으로 조금 보완하겠다는 식의 소극적인 대응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교원 임용 및 양성체제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합니다. 사범대학에 프리미엄을 주더라도 교육과정의 개혁과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죠. 교원평가의 경우 어느 날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정책토론을 거쳐 보완해오던 것입니다. 또 교장도 평가대상이고요. 기존의 근무평가시스템을 전반적으로 손보는 등 내적 논의를 거쳐 점진적, 합리적 대안을 찾아볼 생각입니다. 현재 교육부 내에 교원양성체제연구를 위한 팀을 가동하고 있으니까 8월까지는 결론이 나올 것 같아요.”
-이번 대책에는 ‘보충학습’에도 ‘수준별’이라는 말이 붙더군요. 이것이 기존의 우열반과는 무엇이 다릅니까. 결국 평준화 해제 쪽으로 가는 것 아닙니까.
“수준별 이동수업은 학습방식의 꽃이라고 할 수 있어요. 지금까지는 이질적인 학습집단을 한 군데 모아놓고 중간 정도를 겨냥해 수업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수준별 보충학습, 수준별 이동수업, 수준별 수능강의 등 모든 것 앞에 접두어처럼 ‘수준별’이라는 말이 들어갑니다. 수준별이란 자기 수준에 맞게, 즉 개인화를 의미합니다. 모두 한 몫에 몰아버리는 평등화가 아니라 최대한 높은 수준을 담보하면서 그 바탕 위에 개인화된 능력을 추구한다는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부진한 학생들에게는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고, 아주 우수한 학생들은 따로 보살펴서 수월성 교육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개별화입니다.
일부에서는 우열반이라고 하는데, 과거의 우열반은 대학입시과정에서 우반, 열반으로 통째로 나누던 방식이고, 수준별 이동수업의 경우 한두 과목을 수준별로 교육하는 것이죠. 이는 입시경쟁의 산물이 아니라 개인의 능력을 고르게 키우기 위한 노력이라고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평준화 문제인데요. 선(先)지원 후(後)추첨 제도나 내신성적 강화, 수준별 이동학습은 다 평준화 체제 안에서 다양성을 추구하고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노력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낸다면 평준화 논란도 조금 수그러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안 부총리께서 부임 초기 자립형사립고 확대 등을 시사해 평준화 해제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 아니냐는 사람들이 많죠.
“바꿔놓고 생각해보세요. 고교입시가 부활하면 중학교 교육과정은 완전히 망가집니다. 초등학교 고학년도 온전하기가 어려울 겁니다. 교육의 수월성을 추구하더라도 사회통합, 형평성, 대중성을 함께 가꿀 수 있는 방도가 있다면 일단 최선의 노력을 다해본 후 평준화 해제 논의를 해야 한다고 봐요. 그 동안 평준화체제를 내적으로 보완하려는 노력이 별로 없었습니다. 평준화체제 안에서도 얼마든지 수월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영재학급 만들고, 우수한 학생은 빨리 학년을 올라갈 수 있게 만들고, 이렇게 하면 평준화체제의 정체화 논란은 훨씬 줄어들 거라고 봅니다.”
이 대목에서 잠시 정체화가 아니라 하향평준화 아니냐고 했더니 안 부총리는 하형평준화라는 말에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리고 자립형사립고, 특수목적고에 대한 언급을 계속했다.
참여정부의 교육 로드맵
“지금처럼 설립목적과 달리 특정학교 특정학과를 가기 위한 하나의 우회로가 되고 있다면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우선 제 길로 가게 해놓고 발전의 물꼬를 트겠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교육부가 ‘관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봅니다. 예컨대 과학고에 가서 법대를 지망하거나, 외국어고에 가서 의대를 지망하고, 또 그것을 학교가 조장하는 것을 묵시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그리고 지방자치단체가 앞장서 특목고 벨트를 만들겠다거나 엄청난 수의 외국어고를 신설하겠다고 공표하는데 이는 국가적 차원에서나 교육적 견지에서 따져봐야 할 문제입니다. 이렇게 무차별적으로 특목고를 양산할 경우 평준화체제는 공동화될 수밖에 없거든요. 적정한 수준을 유지하도록 할 것입니다. 현재 자립형사립고는 6개인데, 교육부가 예의주시하면서 상황을 살피고 있습니다. 지금은 확대를 말할 때가 아닙니다.”
-결국 대학입시제도의 근본적인 개선 없이는 사교육비 문제나 공교육에 대한 불신도 해소되지 않습니다. 입시제도 개선과 관련해 교육혁신위원회가 8월 중 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하는데, 이에 대한 교육부의 기본방침은 무엇이며, 혁신위와의 의견조율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습니까?
“교육부와 혁신위가 합의한 것은 두 가지입니다. 2008년부터는 수능보다 내신에 치중한다는 것, 그리고 다양한 경로로 학생을 선발한다는 겁니다. 그 이상 구체적인 것은 아직 합의된 바 없고, 의견조율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혁신위의 주요 위원회에는 교육부가 다 관여를 하고 있어 전과정을 소상히 알고 있습니다. 또 한 달에 최소 한 번은 제가 혁신위원장과 만나 그간의 경과를 이야기하고 격의 없이 토론하고 있습니다.”
-참여정부 출범 초기 교육부총리 인선의 난항과 전교조의 교육행정정보시스템 집단거부사태 등 여러 가지 교육부 내부 사정이 겹쳐 이른바 ‘로드맵’이라는 교육개혁 청사진을 발표하지 못하고 단기적인 ‘사교육비 경감대책’을 내놓는 데 그쳤습니다. ‘참여정부’가 그리고 있는 궁극적인 교육목표는 무엇입니까.
“참여정부는 다른 어느 정부보다 참여, 사회적 형평, 인간화된 세계에 강조점을 두고 있습니다. 저는 창의적이며 인간다운 인간을 만드는 일이 우리교육이 추구할 길이라고 말합니다. OECD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는 학업성취도가 높은 반면 창의성이나 자기주도적 학습능력, 팀워크같은 면에서 상당히 뒤쳐집니다. 21세기 인간형은 당장 더 많이 아는 사람보다는 더 많은 상상력을 갖고 새로운 시도를 하고 뭘 일궈내는 사람들이거든요. 제가 e러닝이나 교실혁명을 강조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교육이 기본학력을 키우는 데 주력했다면 이제는 교육복지에 눈을 돌릴 때입니다. 사실 EBS 수능방송은 교육복지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농어촌이나 도서벽지, 저소득층 밀집지역 등 교육 소외지역의 청소년들에게 교육의 기회가 골고루 가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참여정부의 교육목표와 우리가 시행하고 있는 교육정책이 꽤 일치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수준의 국민 최저선 보장’이 참여정부가 추구하는 ‘교육복지’라면, 이미 문민정부 시절 ‘교육복지 5대사업’을 추진한 적이 있는데요.
“그렇습니다. 당시는 세계화를 강조하며 경쟁의 시대로 치닫고 있었는데, 교육 안에는 사각지대가 워낙 많아 경쟁보다 복지가 시급했죠. 그래서 대안학교 운동이라든가 특수교육에 강조점을 두었습니다. 이번 사교육비 경감대책의 기본 개념도 ‘내셔널 미니멈’입니다. 우리나라 국민이면 최소한의 교육기회, 교육수준을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것이 교육기회의 평등화, 실질적인 평등화입니다. 지엽적인 평준화 해제 논쟁과는 달라요.”
교육자치 인프라 구축돼야 권한이양
-최근 교육부 조직개편에서도 교육자치에 무게를 실어주려는 내용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러나 교육감 선거와 관련해 잇따른 비리의혹 등으로 지방교육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졌습니다. 또 지방자치단체장이 지방교육에 대한 권한을 행사하게 된다면 자칫 입시과열과 평준화 해제로 몰고 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교육부 직원들에게 가능한 한 정책에 몰두하고 가능한 한 집행과제는 털어내자는 말을 많이 합니다. 정책기획, 정책에 대한 평가에 역점을 두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칫하면 오해를 유발할 수도 있습니다. 권한 이양도 지방이나 지역 수준에서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인프라가 축적된 후에 해야 합니다. 아직은 저희가 좀더 관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본적인 입장은 자율화라는 시대적 사조, 중앙과 지방의 균형발전이라는 참여정부의 중요한 목표를 감안하면서 이 문제에 접근하겠습니다.”
-과학기술부총리제 이야기가 나오는 마당에 인적자원 개발이라는 의미에서 교육부총리제의 역할을 재검토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지금까지는 인적자원 개발이 지나치게 학교 중심적인 사고에만 안주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것이 중장기 인적자원 수급전망계획입니다. 8월 정도에 모습이 드러날 텐데요, 이것이 제대로 가동되면 우리 사회에 굉장히 큰 충격을 주리라 예상됩니다. 예컨대 대학에서 전공을 선택할 때도 중장기적으로 우리나라 인적자원의 수급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따라 결정할 수 있고, 대학 구조조정에서도 이 분야는 전망이 있다 없다가 분명해집니다. 직업을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미래를 조망하고 정책을 마련할 때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인적자원 개발 및 활용 전반에 걸쳐 관련부처와의 협력을 강화할 계획입니다.
-교육계의 중대 발표는 모두 8월로 예정돼 있군요.
“17대 국회가 6월쯤 열린다고 보고 그 전에 중요한 정책과제들을 전부 챙기고, 아무리 늦어도 국회 가을 회기 시작 전까지 만반의 준비를 할 계획입니다. 그러다 보니 발표가 6~8월로 집중되네요.”
안병영 부총리 취임 후 교육부 직원들은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예전에는 교육부 관료가 신임 장관을 ‘뺑뺑’ 돌렸다고 하는데, 이제는 장관이 관료를 ‘뺑뺑’ 돌린다는 푸념이 나올 정도다. 이런 교육부의 분위기를 전하자 안 부총리는 “제가 장관 하기에는 나이가 많습니다”라고 운을 뗀 후 “두 번째 들어올 때는 나름대로의 결의가 있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라고 했다. 어투는 겸손했지만 결연했다.
안 부총리의 강점 중 하나가 남의 힘을 잘 빌린다는 것이다. EBS 수능방송을 앞두고 준비부족으로 인한 인터넷 대란 가능성이 점쳐질 때 그는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에게 요청해 기술적인 문제 전반을 검토케 했다. 나중에 진 장관이 “안 부총리의 물귀신 작전에 말려들었다”는 농담을 건넸지만 정통부와 교육부는 부처간 협력체제의 좋은 선례를 남겼다.
사교육비 경감대책 발표를 앞두고는 한국교육개발원 등 교육관련 기관 대표들을 불러모으는가 하면, 교총·전교조·한교조 등 3개 교원단체 대표와 협력을 다짐했다. “세상에는 이견만 드러나지만 우리가 좋은 교육을 하자는 데 이견이 있겠습니까. 교육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높이자고 당부했죠.”
‘부드러운 추진력’으로 EBS 수능방송을 본궤도에 올려놓고 본격적인 교육개혁작업에 들어간 안병영 부총리는 끝으로 교육부 내부 개혁을 강조했다.
“저는 일 속에만 파묻혀 헤매지 말고 업무추진에서 창의성, 쇄신성을 추구하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일상화의 수렁에 빠지지 말라, 매일매일 거듭나자, 성공은 성공을 낳는다고 강조합니다. 그 동안 교육이, 그리고 교육부가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겨드렸기 때문에 지금 이 단계에서나마 엄청난 자기 혁신을 하지 않으면 국민의 신뢰를 되찾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