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했다는 말은 진실인 것 같다. 연세대를 졸업하고 잠시 의류회사에 다니다 미국 유학을 떠난 그는 네브래스카대에서 MBA를 받은 뒤 귀국, 모토롤라코리아 홍보팀에 취업했다. 새로운 사회생활의 시작이다. 마케팅 석사였지만, 기업홍보에는 문외한이던 그는 곧장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에 등록했고, 직장생활과 공부를 병행하며 홍보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4년쯤 경력을 쌓자 어느새 명실상부한 홍보전문가가 돼 있었다.
“그 무렵 사내 휴대전화 마케팅 부서에 결원이 생겼어요. MBA에 진학할 때부터 제 목표는 마케팅이었기 때문에 인사이동을 요청했죠. 일껏 키워놓은 홍보 인력을 활용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인데도, 회사에서 제 뜻을 받아들여 부서를 옮길 수 있었어요.”
마침내 전공분야로 돌아왔지만, 일을 해보니 첨단 기술 마케팅은 여느 마케팅과 다른 부분이 많았다. 그는 다시 경희대 경영대학원 e-비즈니스학과에 진학해 주경야독을 시작했다. 그렇게 석사학위가 3개가 됐을 때, 다국적 제약사인 한국릴리에서 홍보팀장(차장급)으로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
“좋은 커리어를 쌓으려면 직접 일을 하는 ‘라인부서’와 회사가 잘 돌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스태프부서’를 골고루 경험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어요. 마케팅은 라인부서고, 홍보는 스태프부서죠. 당시 홍보와 마케팅을 각각 4년쯤 한 뒤였고, 마침 바이오와 제약산업이 각광받기 시작하는 시기여서 또 다른 도전을 해보자고 마음먹었어요.”
한국릴리에서는 그야말로 ‘즐겁게’ 일했다. 발기부전 치료제 ‘시알리스’의 국내 론칭 업무를 맡아 다양한 시도를 벌인 것. 당시만 해도 ‘발기부전’은 입에 올리기 민망한 단어였다. 정김 상무는 그 이미지를 바꾸는 데 앞장섰다. 2005년 3월6일 서울에서 열린 한 마라톤대회에 ‘3ㆍ6 강력한 자신감’ ‘발기부전 숨기지 마세요’ 등의 글귀가 적힌 패널을 들고 직원들과 함께 참가한 것은 당시 여러 언론에 소개될 만큼 눈길을 끌었다. ‘3ㆍ6’이라는 단어에는 ‘3월6일 열리는 마라톤대회’라는 뜻과 함께 ‘발기력이 36시간 지속되는 시알리스’를 홍보하는 의미도 담겨 있었다.
“비뇨기과 의사들과 함께 북한산을 등반하며 등산객에게 ‘발기부전 숨기지 마세요’라는 스티커가 붙은 오이를 나눠주기도 했어요. 산에 가면 50ㆍ60대가 많은데, 이들이 ‘시알리스’의 잠재적 고객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이 이벤트는 릴리 본사에까지 알려져 다른 해외 지사가 벤치마킹하기도 했죠.”
그의 톡톡 튀는 홍보 아이디어 덕에 ‘시알리스’는 발매 1년 만에 30%가 넘는 시장점유율 을 기록하며 당시 시장을 독점하고 있던 ‘비아그라’와 2강 체제를 구축했다. 정김 상무도 시알리스 론칭 후 오래지 않아 부장으로 승진하고, 1년1개월 뒤 다시 마케팅 본부장으로 승진하며 성공 가도를 달렸다.
“일할 때는 일만 하고, 쉴 때는 푹 쉬자”
2007년 알프스 트레킹 ‘투르 드 몽블랑’에 참가한 정김경숙 상무.
“2004년 6월 마라톤을 시작해 그해 9월 말 처음 완주에 성공했어요. 하프 마라톤은 수시로 뛰었죠. 인라인 스케이트도 좋아해서 모토롤라코리아 시절에는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출퇴근하곤 했고요. 요즘엔 아침에는 검도를 하고, 주말엔 산에 다녀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와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등반했죠. 홍보 전략을 짤 때 이런 개인적인 경험들이 도움을 준 것 같아요.”
그의 삶의 원칙은 ‘일할 때는 일만 하고 쉴 때는 푹 쉰다’. 1년에 50편 이상 영화를 볼 만큼 주말에는 철저하게 쉰다. 휴가 때는 전화도 연결되지 않는 곳으로 훌쩍 떠나 스스로를 완전히 고립시키기도 한다. 정김 상무는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 4개국 국경을 넘나들며 11박12일간 알프스 둘레를 트레킹한 ‘투르 드 몽블랑’, 거제도 해변 700리 길을 해안선을 따라 걸었던 4박5일간의 도보 여행을 잊을 수 없는 ‘휴식’의 기억으로 꼽았다.
한국릴리에서도 홍보 2년, 마케팅 2년을 골고루 경험한 뒤 그는 구글코리아 이사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지금은 구글 홍보담당자로서 정책적 식견을 갖추기 위해 서울대 행정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공부를 손에서 놓은 적이 없어요, 하지만 박사학위는 하나도 없죠. 제 목표는 한 분야의 스페셜리스트가 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영역을 고루 아는 제너럴리스트가 되는 것이거든요. 언젠가는 어느 현안에 관한 것이든‘저 사람이 한 말은 믿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들을 만큼의 신뢰를 얻고 싶어요. 지금은 그때를 위해 계속 지식과 경험을 쌓는 과정입니다.”